타임머신 677

[안양권지도]1899년 시흥군읍지-안양권(始興郡 邑誌,규10711)

#고지도 #시흥군 #1899년 #기록 #기억 #안양 #군포#금천/ 1899년(光武3)의 전국적인 읍지 편찬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경기도시흥군읍지-始興郡 邑誌』〈규 10711〉에 수록된 경기도 시흥군(始興郡) 지도로 현재의 서울 금천구와 구로구를 중심으로 인근 안양지역의 산세를 보여주고 있다. 시흥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금천구·관악구와 안양천 동쪽의 구로구 및 동작구의 대방동·상도동, 경기도 광명시의 대부분과 안양시의 박달동 일대에 해당된다. 읍치는 금천구 시흥동의 금청구청 근처에 있었으며, 고을의 진산(鎭山)은 읍치 오른쪽에 표시된 三聖山(478m)이었다. 이 지도를 담고 있는 경기도시흥군읍지 책자는 조선 후기 시흥군의 전반적인 상황을 정리한 것으로 당시의 행정 체계·지방재정·역제(役制)의 내용이 ..

[안양권지도]1891년 과천현읍지-안양권(고915.12-G994h)

#지도 #1891년 #과천 #안양 #군포 #고지도/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1891년에 편찬된 『과천현읍지』〈古 915.12-G994h〉에 수록된 과천현 지도로 현재의 과천,안양,군포지역의 과거 지형의 명칭을 알수 있다. 지도는 서남쪽(안양.군포)을 위로 그렸고, 중앙에는 과천(읍내)를 표시하여 서남-동북으로 길게 배치한 회화식 지도이다. 태을산(太乙山), 수리산(修理山), 청계산(淸溪山), 관악산(冠岳山), 우면산(牛面山) 등 주요 산은 검은 먹으로 선을 그린 후 청색으로 채색하였으며 군포천(軍浦川), 안양천(安養川), 공수천(公須川), 승방천(僧房川) 등의 하천과 한강은 청색으로 표현하였고 각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는 붉은 색 선으로 표시하였다. 읍치는 붉은 사각형 안에 ‘읍내(邑內)’라고만..

[안양권지도]1872년 과천지도-안양권(果川地圖,규10370)

조선후기인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지방지도로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과천지도(果川地圖, 규10370)로 관악산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한강과 양재천, 북쪽으로는 남태령과 노량진, 서쪽으로는 수리산과 만안교, 안양장, 남쪽으로는 군포천과 군포장, 인덕원천과 청계산, 지지대고개까지 등 현 과천시, 안양시, 군포시와 서울시 서초구와 동작구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보여주는 조선후기 지방지도에 현재의 위치와 지명을 겹쳐 기입한 것이다. 지도 위쪽에 그려 놓은 산이 과천의 진산(鎭山)인 관악산이다. 연주대와 자운암이 보인다. 한강을 건너 수원으로 향했던 두 갈래 길이 보인다. 관악산 서쪽을 지나는 길은 시흥통로이다. 만안석교를 지나는 길이다. 또 다른 길은 남태령을 넘어 과천행궁을 지난다...

1939년 군포장-부천 버스 운행한 소신여객

#군포 #부천 #소신여객 #기록 #기억/ 1930년 합자회사로 출발해 현재도 31개 노선에서 운행되고 있는 경기도 부천의 대표적인 운수회사인 소신자동차부(소신여객)의 1939년 11월 1일 촬영한 모습으로 지금의 부천역 남부,조흥은행 동쪽 건너편이다. 소신여객의 소신은 설립 초기 운행 구간이었던 소사리(素砂里, 현 부천시 소사동 및 소사본동, 신천리-현 신천동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새해 첫날을 기념하여 운전기사, 종업원 등 직원들이 함께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오른편 간판에 버스가 운행하는 신천, 포리, 안산, 반월 군포장이란 글자가 보인다. 출처: 부천시 홈페이지 http://btv.bucheon.go.kr/site/program/board/photoboard/view?currentpage=1..

1975년 안양여고 학도호국단 결단식

1975년 안양여고 학도호국단 결단식/ #안양 #안양여고 #학도호국단 #기록 #기억 #역사 #1975년/ 2010년 안양여고 개교 50주년 행사에서 전시됐던 안양여고생들의 학도호국단 결단식 모습으로 암울했던 박정희 군사 정부시절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마치 군인들이 열병을 하고 있어 독재 시절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한 장면입니다. 학도 호국단(學徒護國團)은 1949년 4월 22일 대한민국 국방부와 문교부에서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학도 층의 사상 통일과 유사시 향토방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조직한 학생단체다. 제1공화국에서 관변 단체로 이용되다가 1960년 5월 3일 해체되었는데 1975년 5월 20일 박정희 군사정권에서 10월 유신으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학교와 고등..

1964년 안양유원지로 소풍온 평택초교 6학년 학생들

#안양 #안양풀 #안양유원지 #백마사 #1964년/ 지난 3월 9일 페북에 뜬 한장의 사진입니다. 1964년경에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로 소풍 온 평택 친구(당시 평택국민학교 6학년)가 최근 놀러와서는 너무도 많은 변화된 풍경에 놀라며 이곳의 위치를 묻는데 답변을 제대로 못했다며 사진속 위치가 어디 쯤인지 아는 사람은 확인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지요. 1960년대 안양은 물론 인근의 가까운 군포, 의왕 등에서 도보로 걸어서, 서울에서는 중고생들이 기차를 타고 안양유원지로 소풍을 많이 왔지만 평택에서 안양까지 소풍왔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사진속 학생들이 모여 있는 장소는 어릴적 기억에 보태 젊은시절 안양유원지에서 사진을 찍던 이정범선생을 통해 확인한 바 안양예술공원내 현재의 파빌리..

1970년대 삼덕제지 안양공장과 수암천

#안양 #삼덕제지 #삼왕제지 #삼덕공원 #제지공장/ 1970년대 중반에 찍은 안양4동 수암천변에 자리했던 삼덕제지 공장으로 고 전재준 회장이 안양시에 기증해 지금은 삼덕공원으로 바뀐 곳으로 기부문화의 상징처럼 자리한 곳이지요. 사진은 양지3교 대농단지 입구쪽에서 수리산방향으로 공장을 찍은 모습으로 토사를 걷어낸 듯한 수암천 건너에 높다란 굴뚝이 우둑 서 있는 삼덕제지 공장의 건물들이 보입니다. 이 공장은 설립한지 아주 오래돼 과거 철판으로 반원형 지붕을 얹은 듯한 마치 미군 콘셋트 막사 형태의 창고도 있었고, 빨간벽돌로 튼튼하게 지어진 사무실과 공장이 공장 부지 이곳저곳에 있었지요. 사진 중간 오른쪽 모서리를 보면 안양역에서 병목안채석장(현재의 병목안시민공원)을 연결했던 철길이 보이는데 철길 건너쪽은 공..

1920-30년대 안양에서 전국 부인 밤줍기대회 열렸다

#안양 #기록 #신문 #밤 #동아일보 #신가정/ 일제강점기인 1933년 10월0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안양에서 열린 제1회 전국 부인 밤줍기대회 행사를 보여주는 이미지 그림입니다. 안양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1960년대에는 교과서에 안양포도가 특산물로 소개될 정도로 유명했지만 그 이전인 1920-30년대에는 밤나무가 참 많아 전국 밥줍기 대회가 열릴 정도로 밤 생산의 명산지로 유명했음을 보여줍니다. 동아일보 옛 신문을 보면 1933년(10월1일)과 1934년(10월1일) 신가정(여성동아 전신) 주최로 제1회와 제2회 전국 부인 밤 줍기 대회가 안양에서 열렸는데 장소는 안양3.9동 일대인 노적봉 아래(현재의 성원아파트, 프라자아파트 주변)에서 열렸답니다. 1회/ 1933년 안양 2회/ 1934년 안양 3..

1987년 대한뉴스로 방영된 관악산 청자 가마터

#안양 #관악산 #청자가마터 #서울농대수목원 #역사 #기록 #영상/ 안양예술공원 끝자락 서울농대수목원에 있는 고려시대 청자가마터 발굴 영상(0분47초)으로 제목은 청자가마터, 제작연도는 1987-10-21일로 대한뉴스 제1667호로 제작되어 당시 극장 등에서 상영됐다. 11세기에서 14세기까지 청자를 생산했던 이곳 가마터의 공식 명칭은 안양시비산동도요지(安養市飛山洞陶窯址)로 경기도 기념물 제124호이다. 지정(등록)일은 1991.04.12.이고 소재지는 경기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산3-1 (서울농대 수목원내)이며 관리주체는 안양시이다. 이곳 가마터는 우리나라 도자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손꼽힘에도 홍보 부족 및 접근의 어려움 등으로 정작 대다수 안양시민들은 잘 알지 못하는 곳중 하나다. e-영상역사관 ..

1970년대 안양3동 병목안로와 수암천과 채석장 철길

#안양 #안양3동 #수암천 #채석장철길 #병목안로 #노적봉 #삼진알미늄 #한국아트제지/ 1970년대 안양3동 병목안로의 풍경으로 새마을쪽에서 안양역 방향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오른쪽은 당시 삼진알미늄과 한국아트제지(현재의 프라자아파트, 1986년 신축, 안양역 뒤에는 한국특수제지-한국제지가 있었음)가 있던 것으로 오른쪽에 살짝 공장 정문이 보이네요. 작고하신 변원신 어르신 구술에 의하면 해방이후 이 자리에는 미군부대가 있었다고 하네요. 당시 미군부대는 수리산 정상(슬기봉)에 있는 통신대를 운영했지요. 수리산 통신대는 석수동에 있던 미군부대가 이전하기 전인 1970년대 중반까지 운용하다가 한국군이 인계받아 단말기 중계소를 운용했는데 제 어릴적 기억으로는 수리산정상에 1개 분대 정도가 근무했던 것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