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안양권지도]1976년 안양시(현 만안구 지역) 지도

타임머신/옛지도읽기

 

1977년 3월 국립지리원이 발행한 안양의 현 만안구(안양동.호계동.비산동) 1:5000 지도  

1974년 6월 항공촬영

1976년 편집

 

지도 상단 좌측 끝자략이 안양역이다. 역 뒤로는 1960-70년대 현찰을 가장 많이 보유해 삼성 이벙쳘 회장도 돈을 빌리러 갔다는 얘기를 들었던 단사천 회장이 경영하던  한국특수제지 공장(현 안양1동 삼성 레미안 아파트)이 보인다. 당시 이 공장은 광택이 나고 빳빳한 아트제지를 생산하던 곳으로 공장안까지 수송용 철길이 놓여 있었다.  한국툭수제지와 태평방직 공장 사이로는 1940-60년대 안양읍 시절  다운타운이었던 구사장(시대동)이다.  

구시장(시대동)은 1968-9년 당시 안양읍내에서 가장 큰 번화가로 안양역에서  인덕원, 과천, 청계, 서울강남(말죽거리) 으로 가는 도로의  길목이었으며 1950년대 이전 5일장이 서다 상설시장(1928년 1월28일 개서)이 형성된 곳이다. 당시 안양의 중심부인데다가 지리적으로 군포, 의왕, 과천, 광명, 수암, 군자등이 인접해 있어 시장으로서는 최적지였다. 이곳에 시장이개시( 開市)되기는 1926 년 1월 28일이었고, 거래되는 품목은 농산물을 위시하여 축산물, 포목, 일용잡화까지 다양했다. 또 1929년 안양 최초로 전기가 송전(送電)된 곳이며 1930-60년대 지역경제의 중심역할을 하던 곳으로 땡땡땡 철길(현 진흥육교 자리)을 건너면 안양역과 1번국도, 행정타운(시흥군청, 읍사무소, 경찰서, 의용소방대)으로 연결된다. 또 구시장 동쪽 끝자락에 있는 우시장을 지나고 안양천 수푸루지 다리(현 임곡교)를 건너면 수푸루지 마을(임곡마을)로 능선 사이 개울옆으로 집들이 있었고 산비탈(현재의 대림대학교)에는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지도에서는 구시장과 수푸루지마을의 가가호호 단독주택들이 표시돼있다. .

수푸루지 마을에서 자그마한 능선(이마트앞)을 돌아 언덕(안양운동장 남쪽)을 넘어가면 수촌마을이 나오고 인덕원을 지나 청계와 과천, 말죽거리로 갈 수 있었는데 안양(버스정류장_현 남부시장 문화철물옆)에서 버스가 출발했다.
현재의 진흥육교는 전철이 개통될 무렵인 1975년에 개설되었는데 육교가 놓여지기 이전 땡댕땡 건널목 좌우로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2층 건물들이 있었으며 주변에는 광창라사, 안양 최초의 다방, 이발소, 중국집, 호떡집 등이 있었다.
지금은 전기(전철) 위험 때문에 철길 횡단은 꿈도 못 꾸지만 당시 건널목에서 안양역으로 이어지는 철길옆은 주민들이 걸어다니던 통행로였다. 또 아이들은 기차가 오나 레일에 귀를 대고 전해지는 진동 소리를 듣기도 했으며 레일에 못을 놓아 기차가 지나간후 납작해지면 이를 갈아 연필깍는 칼로 사용하기도 했던 공작소이자 놀이터이기도 했다.
구시장에서 한국특수제지 공장으로 가던 골목길이 있었다. 골목길 양쪽으로는 음식점과 술집들이 있었고 막걸리집이 다섯개가 있었다. 먹걸리집들은 한국특수제지 노동자들이 근무를 마치고 들리는 단골 참새 방앗간이었다.(김귀연 전 안양2동 주민자치위원장 기억)

안양시장(구시장)은 안양천과 연접한 저지대로 홍수가 나면 하천의 범람으로 침수가 되기 일쑤였고, 6.25전쟁이후 피난민들이 유입하며 판잣집들이 대규모로 들어서고 더우기 1961년 11월 6일 안양4동에 새시장(현 중앙시장)이 개설되면서 상권이 이전하자 60년 중반이후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이후 시대동은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따라 시장 주변에는 안양1동 주공뜨란채, 한국특수제지 안양공장 부지에는 안양1동 삼성레미안, 태평방직 자리에는 안양1동 진흥아파트(현재 재건축 추진)가 들어서면서 옛 모습은 흔적도 사라져 지금은 과거의 엣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당시는 안양역 앞 도로(현 만안로)가 1번 국도로 지도에도 1번으로 표시돼 있다. 지도속 안양동을 살펴보면 안양역부터 님부시장까지 안양1동과 과거 담안이라 불렀던 안양4동 주변은 주택들이 오밀조밀 밀집돼 있는 반면 안양5동과 6동지역은 밀집도가 약해져 집들이 드문드문 있음을 볼수있다.

안양6동에는 농민기술교. 재건중교가 있었고, 안양시청 북쪽으로는 안양역지하상가를 공사한 정덕한씨가 건추한 것으로 알려진 문화주택들이 보이고, 안양로 건너편으로는 가축위생연구소(국립수의과학검역원-안양시 메입)내 당시 건물들 배치 현황이 자세하게 표시돼 있다.

가축생연구소(옛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안양지역민들에게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란 명칭으로 더 친숙한 곳으로 1964년 건립된 안양가축위생연구소가 전신으로 국내.외 축산식품에 대한 위생관리와 검역 실시, 축산농민들을 위한 가축질병의 예방, 퇴치 및 해외 악성 가축 전염병의 유입방지 업무를 수행하는 농림수산부식품부 산하 기관이 있던 곳이다.
역사를 보면 검역원은 1909년 부산에서 수출우검역소와 1911년 우역혈청제조소가 설립돼 가축위생시험소로 통폐합된후 1942년 안양으로 이전해 왔으며 1964년 안양가축연구소, 1998년 국립수의과학검역원, 2011년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2013년 농림축산검역본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2009년에는 이곳에서 국립수의과학검역원 100주년 기념식을 갖기도 했던 농림축산검역본부는 2004년 4월 시행된 국가균형발전특별법과 2005년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에 따라 의해 74년만에 안양을 떠나 경북도 김천으로 이전(2016년 4월 말 안양에서의 업무 종료)했다.

옛 농림축산검역본부 부지는 만안구 안양6동 480번지 일대 주거지역 4만4324㎡, 상업지역 1만1985㎡의 전체부지 5만6309㎡(건물 27개동 2만8천612㎡)에 달하는 규모로 안양 도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공간으로 잔디밭, 수목원, 운동장 등이 자리해 평촌중앙공원에 버금가는 공원뿐 아니라 활용 방안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이용될 수 있는 노른자위 땅이라 할 수 있다.

안양에 검역원의 역사를 정리해 보면 안양에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축산검역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상으로는 1961년 남부지방을 강타한 사라호 태풍으로 부산에 있던 가축위생시험소가 초토화되자 농업연구기관을 수원을 중심으로 집결시킨다는 정부(농사원)의 벙침에 따라 미국 USOM의 협조자금으로 지소였던 안양(본소이전 1962년)에 1963년 10월 대규모 현대적인 종합시설을 건립하였다.

당시 신축한 가축위생시험소(현재의 검역원 본관 등)는 서울대학교 공대 이강노 교수가 설계와 공사감독을 맡아 완성했다. 특히 본관 건물 전면부의 3층에는 여러 동물들의 형상이 양각으로 새겨진 부조물이 있는데 이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대표적 조각가인 김문기의 작품이다. 오른쪽 위 한 켠에 ‘LABORATORY’라고 씌어 있어 이 건물이 실험시설임을 알려 주고 있다.
먼저 건물을 설계한 이강노 교수는 1949년부터 1987년까지 ‘현역’ 시절 남산 어린이회관, 국회의사당, 서울대 캠퍼스, 삼성빌딩, 서울대학병원, 주한중국대사관, 아산재단 중앙병원 등 170여 점에 달하는 내노라하는 건축물들을 설계한 인물로 1955년 그의 아호를 딴 무애(無涯)건축연구소를 설립해 한국 현대건축을 이끈 한국 건축학계의 원로다.
1928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생한 이광노는 경복중학을 거쳐 1945년 4월, 경성공업전문학교(서울공대 전신)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이광노는 1949년 21세의 나이에 대구시청사 현상설계를 시작으로, 6·25전쟁 기간 동안 국군충혼탑, 유엔전우탑 등을 설계하는 등 청년건축가로서 촉망을 받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교통부·서울시 연구원, 한미재단 주택건설 실무자로 6·25 직후 건축계의 부흥을 이끌었고, 1954년 도미(渡美)해 세계적 명성의 건축사무소 ‘아이엠페이(I.M.PEI)’에서 세계적 건축가 이오밍 페이(Ieoh Ming Pei)에게 세계 수준의 건축기법을 전수했다.
28세 때 서울공대 건축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30여 년 동안 교단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한편 건설부 건축위원,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 서울시 도시계획위원·건축위원, 대한건축학회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미국 건축가협회(AIA) 명예특별회원을 역임했다.
이 교수는 88올림픽경기장과 선수촌, 법원청사, 코엑스몰, 국립중앙박물관, 인천국제공항 등의 심사위원장, 국립중앙박물관 건립기획단 위원장, 1999 건축문화의 해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1960~1970년 대한국건축사의 새 장을 연 무애건축연구소와 서울대 건축과를 축(軸)으로 현대 건축가 양성의 '본산(本山)'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서울시문화상, 보관문화훈장,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건축구조], 역서로는 [한(韓)의 건축문화](후지시마 가이지로 저) 등이 있다.현재도 활동이 왕성해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명예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할동허고 있으며 2015년 11월 18일에는 한국건축가협회 명예이사협의회 초대 의장으로 추대받았다.
그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현역' 시절 남긴 작품은 170여 점에 달한다.  주요작품을 보면 안양가축위생시험소(1963), 삼성빌딩(1964), 국회의사당(1968), 홍릉 한국과학기술연구원(1968), 서울 한국어린이회관(1969), 서울대부속병원(1970), 서울대 종합계획 및 기본설계(1972), 제주대(1976),영남대(1981), 아산재단 중앙병원 기본설계(1986), 오지호기념미술관(1997), S문화관(2002), 오페라극장(2008) 등이다. 특히 대한극장·크리스천아카데미 등은 근대건축을 충실하게 해석해 한국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중국대사관·서울대 규장각도서관은 전통미를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축의 전염병 및 기타 질병의 예방 연구 기능을 하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지상 3층 건물로 T자 모양의 평면으로 되어 있는데, 내부에는 항생 항습실, 무균작업실 같은 특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건립 당시 아직 미개발 상태였던 뒷산을 배경으로 자아내는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이다.
옆으로 긴 2층의 주 건축물의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기둥을 벽면 밖으로 돌출시켰으며, 그 사이의 창들이 리듬감을 더해 주고 있다. 중앙 현관의 차양 지붕은 돌출되어 있는데 V자 모양으로 하늘로 치켜 올라가 있어 더욱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중앙 현관 주변을 외줄 기둥과 경쾌한 지붕으로 디자인 하는 것은 1950∼1960년대 한국 건축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것으로, 당시에 모더니즘 경향이 넓게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부의 바닥과 기둥의 마감은 인조석 테라죠물갈기로 하였으며, 그 바탕을 연분홍, 살구색 등 온화한 계통으로 배색하여 자칫 차가워보일 수 있는 실험실의 내부에 온기를 주고 있다. 또한 현관 내부 중앙 기둥에 1950년대 한미경제원조 조치에 의해 이 건물이 지어졌음을 나타내는 표식 동판이 붙어 있다.
평면을 살펴보면, 북쪽에 복도를 배치한 평복도형으로 남쪽에 실험실과 사무실을 배치하였다. 서쪽에는 계단실을 두어 높아지는 대지에 맞추어 옥외로 통하는 출구를 두었다. 이 건물은 계단실의 창을 옆으로 길게 내고 열려 있는 공간도 세밀한 창살로 구획하여 르 코르뷔제에를 비롯한 근대 건축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국제주의 양식이 짙게 배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전면은 콘크리트 마감으로 하였는데 측면과 배면 등 뒤편의 외벽만은 붉은 벽돌로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이어지는 전쟁복구사업의 연장에서 본다면 풍족하지 못한 재료의 생산 및 수급, 무엇보다 기술적으로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당시 상황으로 인해 완벽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내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했던 것에 기인한다. 따라서 전체의 형태는 국제주의 양식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구조 기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재료는 이에 미치지 못하여 건물의 뒤편에서는 현장의 재료를 활용하여 겉모양을 맞추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콘크리트로 미끈한 형태를 빚는 요즘 추세에 비추어 볼 때 1960년대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농촌이었던 안양의 교외 현장에서는 재래 재료인 붉은 점토벽돌로 근사한 외양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 건물에서 또 하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건물 전면부의 3층에 새겨져 있는 부조물인데, 이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대표적 조각가인 김문기의 작품이다. 이 부조물에는 인간의 안전한 식생활을 확보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들의 형상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오른쪽 위 한 켠에‘LABORATORY’라고 씌어 있어 이 건물이 실험시설임을 알려 주고 있다.
이 실험실 건물 뒤편(서쪽)에도 부속시설 등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지금은 새로운 건물이 신축되어 옛 모습을 찾을 길 없다.
이 검역원은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방침에 따라 경북 김천으로로 이전하며 안양시는 2010년 12월 당시 국토해양부와 1292억3100만원에 매입하기로 계약하고 계약금으로 129억3000만원을 지불한 후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총 891억원을 지불하고, 2016년 5월 말과 2017년에 각각 91억원을, 2018년에 90여억원을 지불하면 안양시 소유가 됐다.

하지만 향후 부지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두세차례 용역은 물론 각계 의견이 제각각으로 현재까지도 뚜렷한 방향을 집지 못하고 있다.

역대 민선 시장들은 이 부지를 공원이나 종합복지시설, 기업지원시설 등으로 활용할 계획을 잠정적으로 모색해 온 반면 지역정가에서는 시청을 이전해 침체된 만안구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도 냈다. 최대호 안양시장도 2010년 7월 첫 시장 취임 당시 어려운 시 재정을 고려해 매입 철회의사를 밝혔다가 그해 9월 다시 매입하기로 번복 결정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지난 4.13총선에서는 구체적으로 도시균형발전과 침체된 만안구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동안구에 있는 시청사를 이전해 새로운 성장의 모텐텀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정치인들은 "시청 이전보다는 대기업 이전 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최근 시릿한 21대총 선에서 당선된 강득구 당선자는 만안구 발전을 위해 이곳으로 안양시청을 이전한다는 공약을 내세우기도도 했다. .

더욱이 농림축산검역본부 부지앞 정원 일대가 우리나라 개미중 가장 큰 토종개미(학명 일본왕개미)의 국내 최대 집단서식지로 밝혀져 KBS 등을 통해 보도되고 검역본부 본관 건물이 1950년대 연구소를 상징적으로 특화시켜 지어진 건축물로 문화유산 가치가 높은 것으로 드러나 이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않아 개발계획안에 이같은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다시 지도를 살펴보면 안양8동에서는 현재 성결대학교를 당시 성결교신학대학교로 불렀으며 현재의 명학공원에는 지금은 없어진 경기도임업연구소, 경기도잠사시험소 건물들이 있었고, 경찰서사거리에 성문교회도 표시돼 있다.  

 

 

지도속에 담긴 이야기는 계속 업그레이드 될 예정입니다

 

 

이 지도는 안양의 원로 건축사인 최승원 교수님께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로 엣 안양 시가지 분석을 위해 이미지 파일을 제공해 주셨다.

최승원 건축사는 1945년생으로 서울(종로구)에서 태어나 5살때 안양으로 이사를 와 시대동(현 안양1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안양초교와 삼성초교(5회), 안양중학교(12회)를 다녔다. 교육부 실업계 교과서 심의위원, 국립중앙박물관회 평의원, 홍익대학교. 성균관대학교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 한국건축가협회 이사 및 분과위원장, 앙가주망건축사무소 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최승원 건축도시문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6년 본백화점 갤러리에서 최승원건축전을 개최했으며, 1998년 아카시아arcasia건축상 골든메달(천안티센쿠루프)수상했다. 건축 현장에 돌아다니는 나무조각을 수집하여 조형물을 만들던 취미가 이제는 제2의 인생 작업이 되어 부인인 신영옥 섬유공예작가와 부부작품 전시회를 수차례 열기도 했다.
안양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는 최승원 건축사로 부터 옛 안양에 대한 기억구술자리를 가진바 있는데 세밀한 기억력으로 담아낼 양이 많아 세차례 가진바 있는데 유년시절, 한국전쟁 피난시절, 기차통학생 시절, 전쟁이후 안양의 거리모습, 교회, 안양영화촬영소에 대한 기억과 비롯 광복직전인 일제강점기 비행기공장과 비행장 건설, 안양지역의 건축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구술 내용은 2018년 자료집으로 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