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678

1970년대 안양 중앙시장 신신다방앞 골목 풍경

1970년대 안양 중앙시장 신신다방과 보금장앞 골목 풍경 #안양 #안양4동 #중앙시장 #기록 #기억/ 안양 중앙시장의 1970년대 중반의 풍경으로 김귀연 전 안양2동주민자치위원장이 보관하고 있는 사진으로 길 가운데 아이를 앉고 있는 옆이 김귀연씨 부친으로 당시 안양소방서에 근무했답니다. 1970년대는 경제가 비교적 좋았던 시절로 당시 중앙시장 거와 골목에는 활기가 넘쳤다 시대동(현 안양1동)에 있던 안양시장을 이곳으로 이전한 후 새시장으로 불리우던 중앙시장은 지금도 비교적 규코가 크지만 1970년대에는 군포.의왕,과천은 물론 멀리 안산과 고잔, 오이도 등에서도 장보러 오는 큰 시장이었지요. 사진에 보이는 도로는 중앙시장의 중앙통로(안양로 291번길. 현재 떡볶이 포장마차와 호이호떡 등 노점들이 있는 곳)..

1960년대 금성방직과 안양읍내 항공사진

#기록 #기억 #옛사진 #안양 #금성방직 #안양중학교#안양여중고 #양짓말 #안양천 #수암천/ 안양 도심(안양읍) 한복판에 자리했던 금성방직(현 대농단지)을 중심으로 안양천과 수암천, 북부동(안양2동)과 남부동과 구시장 및 시대동과 중앙동(안양1동), 양지동(안양3동)과 장내동(안양4동) 등 현재의 만안구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1960년대 중반의 항공사진입니다. 사진을 찍은 곳은 안양3동 우성아파트 상공으로 윗쪽 방향이 안양천과 비산동,안양7동 및 지금의 평촌, 왼쪽은 안양3동과 석수동, 오른쪽은 안양4동과 3동및 9동쪽, 아랫쪽은 안양3동과 박달동 방향이지요.(출처:안양시자료관) 사진 중앙 아래의 큰 건물이 금성방직입니다. 금성방직에는 당시 전국에 단 3군데 밖에 없던 잔디축구장이 이곳(사진 중간 왼쪽 ..

1970년 안양 금성방직 앞 도로 풍경

1970년 안양 금성방직 앞 도로 풍경/ #안양 #기억 #기록 #옛사진 #금성방직 #중앙로 #안양2동 #감리교회/ 1970년 4월의 금성방직 안양공장 정문앞 도로(현 안양로)의 풍경으로 예비군의날 기념 아치가 세워진 것이 이채롭습니다. 사진은 삼원극장(현 안양CGV)에서 석수동쪽을 향해 찍은 것으로 사진 좌측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 정문이 있었으며, 사진 뒤쪽에 보이는 건물이 현재의 1층에 안경점(안경박사)이 있는 4층 건물 위치이며 그 뒤로는 감리교회(현 13층 금강빌딩)가 보이네요. 금성방직은 현재의 안양3동 국민은행 안양지점과 왕궁예식장 뒷편에서 박달동 우성아파트에 걸쳐 있던 대규모 면적으로 1960-70년대 안양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던 곳이지요. 3천 궁녀(?)가 안양을 먹여살린다고 할 정도..

1950년대 안양에 있던 시흥군청사

1950년대 안양에 있던 시흥군청사 #안양 #옛사진 #과거 #기억 #기록 #시흥군청/ 1950년대 중반에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안양 중앙동(안양1동)에 있던 시흥군청사(1946년 준공)의 모습입니다. 안양 일번가는 1940-70년대 초까지 안양읍사무소, 시흥군청, 안양경찰서, 의용소방대 등 관공사와 양화점, 양복점, 대서소, 다방, 식당 등이 밀집한 다운타운이었지요. 시흥군청은 현재 안양 일번가 삼원프라자호텔과 그 주변을 포함하는 넓은 면적을 차지했었지요. 건축가 최승원 교수의 전언에 의하면 시흥군청은 1946년 7월 준공됐으며 설계는 군정시 경기도청 회계과 영선담임 홍광우洪寬祐(서울 흑석동 20의4)가 했으며 일본 강점기때 일반 풍조이던 절충주의적인 면모는 일소되고 고졸한 근대여명기의 성격이 표현되고 ..

1987-88년 무렵의 안양 원도심 4.5동 항공사진

#옛사진 #기록 #항공사진 #안양 #안양4동 #안양5동#장내동성당 #벽산쇼핑 #벽산아파트 #안양5동놀이터/ 1987-88년경 무렵의 안양4동.5동 사진으로 헬기에서 찍은 항공사진입니다. 사진 중앙의 큰 건물이 벽산아파트(85년 9월 준공)와 벽산쇼핑(현 2001아울렛)이고 그 좌측으로 보이는 뾰족한 종탑이 장내동성당(현 안양중앙성당) 이며, 벽산쇼핑 위로는 1978년 12월 18일에 오픈한 안양1번가의 뉴코리아호텔(현 삼원프라자호텔, 벽산아파트 아래쪽으로는 안양5동 놀이터의 모습도 보입니다. 안양4동은 과거 밤나무 울타리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장내동 또는 담안(墻內洞.澹安)이라 불리웠지요. 조선시대에는 과천군 하서면 장내리라 칭했던 마을로, 진주 강씨, 전주 이씨, 원주 원씨 등이 세거하면서 취락이 이..

1956년 정부통령 선거 시흥군 남면(군포) 투표소

#기록 #기억 #옛사진 #시흥군 #남면 #군포 #선거 #1956년/ 1956년 5월15일 치러진 제3대 정부통령 선거 당시 시흥군 남면(현 군포) 투표소앞 풍경으로 국가기록원에서 찾은 자료 사진입니다.시흥군 남면은 당리, 당정리, 금정리,산본리, 부곡리를 관할했으며 1979년에 시흥군 군포읍으로, 1989년에는 시흥군에서 분리되면서 군포시로 승격되지요. 당시의 사진들을 보면 국민들은 6·25전쟁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지도자를 뽑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얀 도포를 입고 줄을 선 촌로들의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정치에 대한 관심은 매우 컷음을 보여줍니다. 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실시된 제3대 대통령 선거 및 제4대 부통령 선거에 집권 자유당에서는 정부통령 후보로 이승만 대..

1980년대 초 안양천과 한국제지 안양공장

1980년대 초 안양천과 한국제지 안양공장/ #안양 #기록 #기억#한국제지 #안양역 #안양천/ 1980년 무렵의 한국제지 안양공장의 전경으로 사진에 보이는 안양천으로 비산동성당 앞쪽에서 안양역 방향으로 찍은 사진이지요. 안양천변의 풍경은 지금과 다른 모습입니다. 당시에는 안양천에 홍수와 집중 호우 등으로 물의 범람이 잦았습니다. 특히 1977년 안양천 대홍수 이후 하천을 곡선에서 직각으로 만들고 천변을 시멘트 블럭으로 메꾸어 아주 삭막하게 만들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안양천 뒤로 오른쪽에 굴뚝이 보이는 큰 공장이 한국특수제지(1966년 한국제지로 변경)입니다. 현재 이 자리에는 안양1동 삼성레미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요. 한국제지는 해성그룹 창업주인 고 단사천 회장이 1958년 2월 25일 설립한 공장으..

1966년 안양 만안초등학생들의 안양유원지 봄소풍

#안양 #역사 #기록 #기억 #사람 #응팔이다 #응답하라 #1966년 #안양풀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소풍 #만안초등학교/ 1966년 4월 29일 안양유원지로 봄소풍을 온 만안초등학교 학생들의 기념사진입니다. 사진속 인물들은 만안초등학교 7회 졸업생(1957년생)들로 당시 3학년 학생들인데 지금은 한반에 2-30여명 정도이지만 강냉이죽과 옥수수빵을 급식으로 먹고, 알탄과 솔방울로 난로를 때면서 공부를 해야했던 당시에는 한반 평균 7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를 했지요. 1970년대 말 이전만 하더라도 안양유원지 계곡에는 물이 참 많았답니다.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말에는 관료들의 피서지였고,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는 계곡을 돌로 막아 안양풀을 만들었으며, 1970년대까지 유원지입구 철길에..

1968년 겨울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정문앞 풍경

1968년 겨울 안양 석수동 군부대 정문앞 풍경 #안양 #닐미샬로프 #기록 #기억 #역사 #석수동 #동네 #골목 #미군부대 #1968년 #닐미샬로프/ 안양시 석수동에 있던 미군부대(83병기대대) 정문 앞의 1968년 겨울 풍경으로 이 부대에 전령으로 1968년 3월부터 1969년 4월까지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가 코닥 컬러슬라이드필림으로 찍은 것이다. 경부선과 삼성천을 끼고 있던 이 부대는 특수탄약을 관리하던 부대가 있었는데 박달동 수리산 자락의 군용지라 불리우던 탄약 벙커에 있던 전술 핵탄두와 로켓을 관리.운용했다. 당시 만안초교 등하교길에 비포장도로였던 안양-안산간 도로에서 허큘리스미사일을 싣고 가던 대형트레일러 트럭을 목격했었다. 간혹 트레일러와 호위 차량이 지나가면서 사탕..

1968년 겨울 안양, 하얀 눈에 덮인 기와집

1968년 겨울 안양, 하얀 눈에 덮인 기와집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만안 #원도심 #동네 #골목 #1968년 #닐미샬로프/ 1968-69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83병기대대)에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Neil Mishalov)가 코닥 컬러슬라이드필림으로 찍은 1968년 겨울의 하얀눈이 내린 안양의 어느 집 풍경이다. 기와집과 담장을 볼때 당시로서는 꽤 잘 살았던 집이다. 닐 미샬포프는 당시 안양뿐 아니라 서울, 인천, 수원, 평택 등 전령으로 이동하면서 마주친 한국사회의 다양한 풍물을 당시로는 아주 귀했던 컬러 기록사진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