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601

민주화 거리행진 나선 1987년 6월의 안양 도심

#안양 #기록 #기억 #민주화 #중앙로/ 1987년 6월 안양시 중앙로(중앙시장 동문앞) 거리를 행진하는 시민들. 오늘은 6·10민주항쟁 29주년이다. 1987년 6월의 안양은 정말 뜨거웠다. 6.10일 이후인 26일 오후 11시20분경, 무려 2만명에 달하는 안양시민들은 안양경찰서에서 우체국에 이르는 거리를 가득 메웠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직격탄을 쏘았고 3명이 부상당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안양에서는 1987년 당시 6월 항쟁 기간인 6월 19일, 6월 23일, 6월 26일 모두 세 차례의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전개됐다. 안양에서의 첫 대중 집회인 6월 19일 집회에 대해 시사월간지 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9시 30분경, 1만여 명의 시민들이 도로에 앉아 대중 집회가 시작됐다. … 약 2시간..

1960년대 연탄 배달 소달구지

#안양 #역사 #기록 #기억 #연탄/ 1960년대 초반 소달구지(우마차)로 연탄 배달을 하던 안양시내의 풍경으로 안양시사료관에서 찾은 자료 사진입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60년대 서민들에겐 겨우 내 쓸 연탄을 빈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이 중요한 월동준비였지요. 또 연탄은 난방용으로 겨울철에만 사용한는 것이 아니라 LPG가스가 없던 당시에는 각 가정과 식당에서 움식조리도 해야 했기에 서민들에게 그야말로 사계절 내낸 필수불가결한 연료였지요. 연탄을 주문하면 연탄광이 커 보관할 공간이 큰 집의 경우 트럭으로 날랐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연탄가게에서 사진처럼 달구지나 리어카로 날랐지요. 너도 나도 연탄을 때던 시절 전국에 연탄공장은 400여 개에 달했고 동네마다 연탄가게 하나씩은 꼭 있었고 안양의 경우 화물..

1968년 안양 1번국도와 마차

#Mishalov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닐미샬로프 /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에는 이 도로를 통해 서울에서 부산 그리고 목포까지 갔던 1번국도의 1968년 6월의 안양 구간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에 전령으로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가 칼라슬라이드로 찍은 것입니다. 사진 윗쪽이 석수동과 안양교 방향, 아래쪽이 안양역 방향으로 우마차가 안양역으로 열심히 가고 있다. 당시 1번국도는 서울과 수원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로 2차선에 아스팔트 포장길이었다. 해마다 개나리 필 무렵 수원에 모심으러 박대통령이 행차하는 날엔 도로변애 있던 안양초, 만안초, 삼성초교에 다니던 어린이들은 도로변에 늘어서 태극기를 흔들고 박수를 쳤다. 사진 뒷쪽은 석수동인데 멀리 보이는 다리가 당시 만안초등학교 앞으로 흐르던..

1973년 안양 망해암행 안양천 건너던 줄배

#응답하라 #1973 #안양 #양명고 #안양천 #나무다리/ 1970년대 초 안양천을 건너던 줄배입니다. 당시 안양천에는 물이 많았답니다. 이 배가 운행되던 곳은 현재의 양명고앞인데 먼길을 돌아다녀야 했던 주민들과 여름철에는 안양유원지로 가고자 하는 이들이 이배를 타고 건너가기도 했지요. 이후 1970년대 중반에는 안양2동 토박이 김귀연 전 안양2동 주민자치위원장 부친께서 나무다리를 놓아 양명고 학생들의 통학을 위해 애쓰셨지요. 평소에는 나무다리라도 건너 등하교를 할 수 있었지만 여름철 비라도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나면 다리가 잠기거나 다리가 물에 떠내려가면 비산동 임곡교 또는 안양유원지쪽으로 빙 돌아다녀야 했답니다. 안양천은 60-70년대 초만 해도 은모래가 깔려있고, 어항을 놓아 물고기도 잡고, 멱도 감..

1983-4년 양명고 가는 길 안양천 나무다리

#응답하라 #1983-4년 #안양 #양명고 #안양천 #나무다리/ 안양2동 토박이인 김귀연 전 안양2동 주민자치위원장이 직은 사진으로 수업을 마치고 나무다리를 건너 집으로 귀가하는 안양 양명고교 학생들입니다. 나무다리가 있는 곳은 현재 구도로(만안로)에서 청원지하도를 지나면 보이는 양명교가 놓여진 곳으로 안양천에 물이 많았던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드럼통으로 만든 줄배를 타고 건너야 했는데 이후 임시 나무다리가 가설됐는데 안양2동 김귀연 전 주민위원장의 부친으로 안양 의용소방대에 소방대원으로 근문하셨던 고 김인섭 어르신께서 매년 사비를 들여 놓으셨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나무다리라도 건너 등하교를 할 수 있었지만 여름철 비라도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나면 다리가 잠기거나 다리가 물에 떠내려가면 비산동 ..

1960년대 안양 망해암 가는 길목 오시오매점

#안양 #응답하라1960 #추억 #기억 #과거 #옛이야기#안양 #망해암/ 1950년대 안양천(현 양명여고)에서 망해암 올라가는 길목에 있던 매점이다. 1950-70년대 안양읍내에서 연인들이 데이트, 밀회를 할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안양유원지, 청계호수(현 백운호수), 그리고 안양천 모래가 쌓인 삼각주의 미루나무숲(당시 한국특수제지 옆)과 망해암 등이 인기 코스였다. 당시 안양시내에서 망해암을 가기 위해서는 차가 한대 겨우 지나갈 비산동의 수푸루지 다리와 수푸루지 마을을 지나 바포장 산길을 올라가기도 했지만 너무 멀어 안양천을 건너 곧바로 멍해암으로 오르는 산길을 택했다. 가는 길을 보면 만안초교 건너편에 있던 안양 최초의 극장인 화단극장옆으로 철길을 건너고 안양천을 나무다리, 여름철 물이..

1970년대 안양 삼성천과 석수1동 구룡마을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응답하라1970 #안양 #석수동 #구룡마을 #삼성천/ 안양 석수1동 관악역 동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현재 석수1동사무소가 있는 부근을 예전에는 ‘구룡마을’이라고했다. ‘구룡마을’의 지명유래는 두가지가 전해온다. ① 삼막사가 있는 삼성산 혈맥이 아홉 마리 용이 굽이쳐 내려와 현재 ‘한마음선원’ 이 있는곳에서끝맺음 한다는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② 현재 석수1동 구룡경로당 자리가 풍수적으로 ‘구룡목’이라서 그렇다는 설이다. 구전에 의하면, 예로부터 이 마을은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하는 명당지지(明堂之地)다. 조선시대 어느 왕비의 묘를 이곳에 쓰려고 하는데 비록 명당이지만 아쉽게도 조산(助産)에는 약하다고 하여 동구릉에 썼다는이야기도 전해지고있다. 구룡마을에..

1932년 안양4동 삼왕제지(삼덕제지-현삼덕공원) 전경

#아카이브 #기록 #옛사진 #​삼덕제지 #구삼왕제지 #삼덕공원/ 안양4동 수암천변에 자리했던 삼덕제지 공장(현 삼덕공원)으로 1050년대 이전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 이 공장에는 과거 철판으로 반원형 지붕을 얹은 듯한 마치 미군 콘셋트 막사 형태의 창고도 있었고, 빨간벽돌로 튼튼하게 지어진 사무실과 공장이 공장 부지 이곳저곳에 있었다. 삼덕제지 공장에 대해 좀 더 알아볼까요. 삼덕제지 자리에는 일제강점기 당시인 1941년 일본인 고토우가 설립한 삼왕제지가 있었는데 일반 종이류의 제조 및 가공 판매, 제지업 관련 투자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는데 자본금은 49만 원이었으며 최초 12만2500원이 불입되었는데 모조지 생산에 주력했답니다. 경영진은 사장 이하 4명의 이사와 2명의 감사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일본..

1970년대 시흥군 안양의용소방대 장비와 복장

#안양 #응답하라1970 #추억 #기억 #과거 #옛이야기#안양 #소방서 #김인섭/ 1970년대 시흥군 안양읍 시절 당시 안양1동(현 안양1번가 중앙로 양옆)에는 시흥군청과 안양읍사무소, 안양경찰서, 의용소방대 등 관공서가 있었지요. 독립적인 소방서가 없던 당시 안양경찰서에 소속된 의용소방대가 운용중이었는데 경찰서 뒷마당에 화재발생시 사이렌을 울리는 소방망루와 군용차량을 개조한 소방차량들이 출동 태세를 갖추고 있었지요. 사진속 차량들이 1970년대 중반 운영되던 소방차량과 소방대원의 복장입니다. 사진은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한 김귀연 전 안양2동 주민자치위원장이 제공한 것으로 사진속 인물은 1960-70년대 안양소방서 소방대원으로 근무했던 김인섭(1935.11.10일생) 씨로 김귀남 위원장의 부친이지요.

1967년 8월의 안양유원지 공짜풀장

1967년 8월의 안양유원지 공짜풀장/ ‪#‎안양‬ ‪#‎안양유원지‬ ‪#‎풀장‬ ‪#‎안양예술공원‬/ 경인일보DB에서 발견한 50년전인 1967년 여름의 안양유원지 풍경으로 해방 이후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가장 호황을 누렸던 시기 답게 풀장에 피서객이 그야말로 바글바글합니다. 당시에는 안양유원지 계곡에 시원하고 맑은 물이 철철 넘쳐 흘렀고, 너럭바위에는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덥히며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숲속에서는 도시락을 먹는 가족들과 풍악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는 노인들까지 그야말로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였지요. 1960년대 말에는 사진속 그림의 공짜풀장(자유풀)과 돈을 내고 들어가는 유료풀장으로는 대영풀 하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진 뒤로 보이는 하얀 건물은 안양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