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50년대 안양에 있던 시흥군청사

안양똑딱이 2017. 2. 11. 17:58

 

1950년대 안양에 있던 시흥군청사 #안양 #옛사진 #과거 #기억 #기록 #시흥군청/ 1950년대 중반에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안양 중앙동(안양1동)에 있던 시흥군청사(1946년 준공)의 모습입니다. 
안양 일번가는 1940-70년대 초까지 안양읍사무소, 시흥군청, 안양경찰서, 의용소방대 등 관공사와 양화점, 양복점, 대서소, 다방, 식당 등이 밀집한 다운타운이었지요. 
시흥군청은 현재 안양 일번가 삼원프라자호텔과 그 주변을 포함하는 넓은 면적을 차지했었지요.
건축가 최승원 교수의 전언에 의하면 시흥군청은 1946년 7월 준공됐으며 설계는 군정시 경기도청 회계과 영선담임 홍광우洪寬祐(서울 흑석동 20의4)가 했으며 일본 강점기때 일반 풍조이던 절충주의적인 면모는 일소되고 고졸한 근대여명기의 성격이 표현되고 있다. 현대건축론 정인국 274p
어릴적 기억으로는 안양읍사무소와 시흥군청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는데 마당에는 향나무가 참 많았습니다. 지금의 안양 평촌에 있는 안양시청 정문을 들어서 우측 민원실이 있는 별관앞 정원에는 150년이 넘는 향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이 나무는 안양1동(현 안양1번가)에 있던 시흥군청 마당에 심어져 있던 것이지요. 이 나무는 1978년 안양6동에 시흥군청(현 만안여성회관)을 신축해 이전하면서 이식되었다가 1996년 평촌에 안양시청사를 신축한 후 2001년 4월 10일 다시 현 안양시청 마당으로 재이식한 것이지요.

시흥(始興)이라는 명칭은 "넓은 땅(廣野)"을 의미하고 고구려 시대 지명인 잉벌노(仍伐奴)의 뜻풀이인 "뻗어가는 땅"과 걸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흥군은 서울의 영등포구ㆍ구로구ㆍ금천구ㆍ관악구ㆍ동작구ㆍ서초구 등과 경기도의 안양시ㆍ광명시ㆍ안산시ㆍ과천시ㆍ군포시ㆍ의왕시 등을 분가 시켰으니 명칭과도 일맥상통하지요.
시흥군(始興郡)의 변천과정을 보면 1895년 5월26일 탐생한 후 1988년까지 존재했던 경기도 최대의 행정 구역으로 원래의 시흥군은 현재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군청을 두고, 서울특별시 금천구를 중심으로 영등포구(양화동, 여의도동 제외) · 관악구(남현동 제외) · 동작구 일부(신대방동, 대방동, 상도동) · 구로구 동부(안양천 동쪽)와 경기도 광명시(옥길동 제외) · 안양시 일부(석수동, 박달동)를 관할구역으로 할 만큼 엄청 컷지요.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통합으로 과천군(현 과천시·안양시·군포시 및 서울 동작구·서초구)과 안산군(현 안산시와 시흥시 남부)이 시흥군으로 통합되면서 지금의 시흥시 북부 지역을 이루는 인천부 신현면·전반면·황등천면은 부천군으로 통합되어 부천군 소래면이 되었지요.
시흥군은 1989년 1월 1일 시흥시, 군포시, 의왕시 등 3개시로 분리·승격하면서 1988년 12월 31일 종무식을 끝으로 93년만에 해체(폐군)되면서 행정구역상에서 그 명칭이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현재의 시흥시 지역은 구한말까지 원래 안산군과 인천부(일제강점기 이후 부천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결과적으로 시흥이라는 명칭만 이어질 뿐 대한제국 시기의 시흥군 지역과는 다른 곳이 시흥시가 됐으니 아이러니 한 결과이지요.
사진출처/ 경기부흥총람. 단기4291년(1958년) 3월25일 인쇄 4월1일. 발행경인일보사. 출판 경기문화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