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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조성원]안양초-안양중-안양공고 축구의 배경

안양똑따기 2017. 3. 15. 15:50

[조성원]안양초-안양중-안양공고 축구의 배경
(새학기)

방학숙제를 3일 만에 해치웠다. 그런 엉터리 숙제물이 전시하는데 뽑혔다. 나는 몰래 전시실에 들러 내 숙제 물을 꺼내왔다. 짧은 봄방학은 덤으로 얻은 것 같아 겨울 방학보다 더욱 고소했다. 그리고는 새 학기가 시작된다. 반 편성도 다시 하고 선생님들도 전근을 가시고 또 새로 전학 온 아이들도 생겨난다. 안양이 커져 가면서 갈수록 전학 온 아이들은 늘어만 갔다.
 
사투리가 심한 아이들은 입을 오므려가며 표준말을 하려했지만 그것이 곧 웃음꺼리였다. 새 반이 편성되면 서먹서먹하고 같은 반에서 올라온 아이들끼리만 어울린다. 한동안은 말 수 적어진 아이들로 교실은 조용하다. 탐색의 과정이 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서는 누구든 그러한 과정을 거친다. 여러 사람이 화합하는 인화라는 의미가 반 편성의 주된 요지가 아닐까.
 
신학기에는 청소를 무척 많이 한다. 일부러 그러하였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우리는 물 부족으로 학교밑창에 친구집까지 내려가 물을 길어 왔다. 먹먹한 학기 초라 가능한 일이었지만 힘이 센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서서 일을 도왔다. 신학기는 선생님이 제일 바쁜 때다. 청소 확인 검사를 받으러 가면 선생님은 생활기록부에 글을 옮겨 적고 계시거나 계획표 같은 것을 만들고 계셨다.
 
음악 실기 우수학교로 지정된 우리 학교는 학기 초 부터 분주했다. 50대가 넘는 풍금이 교무실 바로 옆 교실에 따로 있었는데 풍금소리가 학기 초 부터 울려 퍼졌었다. 아이들 또한 긴장감을 갖고 새학기를 맞는다. 동아전과는 동네 형 것을 빌렸지만 공책이나 책이 모두 새것이다. 새로움은 각오와 희망을 새기게 한다. 무엇보다 각오를 다진 아이들은 송구부 아이들이다. 우리학교 송구부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팀이었다.
 
송구가 유명하다보니 서울 은평학교에서 전학을 온 고아 아이들도 생겼으며 그 아이들은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축구선수가 되었다. 안양중학교하고 안양공고가 축구명문이 된 것이 모두 그아이들 덕분이다. 선수들은 신학기 상관없이 골 망이 쳐진 운동장에서 살았다. 박선생님은 선수들 감독하랴 아이들 가르치랴 늘 바빴다. 우리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음악에는 소질이 없으셨는지 대신 여선생님이 들어와 우리를 가르쳤다. 송구부가 그 해 전국을 제패하자 음악을 가르친 선생님은 박 선생님하고 결혼을 하고 학기 중인데도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신학기 들어 한달 쯤 지나면 어느 새 아이들은 한 목소리다. 그쯤엔 다른 반 아이들하고 달리기 시합이나 축구 게임을 한다. 작년까지도 우리 선수였던 아이가 다른 반 대표이고 우리 팀은 작년에 애를 먹였던 아이가 달리기 대표선수이다. 소속감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작년의 우리선수 허점을 탓하고 단결하고 또 단결하여 한 반의 큰 함성은 선생님의 흐뭇한 미소가 된다.
 
문득 다시 떠오르는 우리학교의 교훈 성실 인화 단결. 그쯤의 인화와 단결력에 성실함만 보태면 우리 반은 최고였을 것인데 아쉽게도 공부만은 늘 우리 반이 꼴찌였다. 반 편성이 잘못되어 그런지는 모르지만. 몇 년 전 곤지암에 사시는 박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은 중풍을 앓으셔서 말을 하지 못하셨다. 당시는 훌쩍 큰 키에 강골이셨던 선생님이신지라 빗자루만 들어도 숨죽이던 우리였는데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그 당시 전근을 가셨던 사모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사모님이 한 말씀 하셨다. “ 일부러 운동장에 나가서는 음악을 대신 가르치라고 한 거야. 나중에 저녁 사준다고 꼬드기려고.” 여전히 행복한 미소의 두 분이다. 당시 화장실에 적힌 두 분 선생님의 사랑 얘기 또한 혹여 그 당시 보탬이 되었던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그 글 쓴 녀석을 이 황우라고 내가 잘 아는데 말이다. 돌아서는 길 곤지암의 저녁 놀이 붉게 타올랐다. 그 시절의 펄펄 나셨던 박선생님의 열정처럼.
 
조성원의 수필 '나 어릴적' 초고에서 발췌. 이 글을 쓴 조성원(어릴적 이름 조형곤) 수필가는 1957년 안양에서 태어난 안양초교 38회, 안양중학교 23회 졸업생으로, 저하고 동창으로 오랜 기간 대덕 모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지요. 블랙죠라는 이름을 글을 쓰다가 수필가로 등단해 현재는 한국수필가협회와 수필문학가협회에서 이사직으로 적극적인 문단 활동을 해오며 제2회 문학저널 창작문학상과 수필문학사가 주관한 제1회 소운문학상을 수상도 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수필집인 ‘빈 가슴에 머무는 바람 1&2’이외에도 ‘송사리 떼의 다른 느낌’, ‘작게 사는 행복이지만’, '‘오후 다섯 시 반’ 등 7권의 수필집을 내놓었으며 ‘2천 년 로마 이야기’와 ‘스페인 이야기’ 등 여행 에세이집도 발표했습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