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506

[자료]근대 안양 시금석 안양장과 안양역

안양지역 상권의 변화 과정 안양지역에서 보부상이 자주 드나들던 곳은 어디였을까. 지금의 안양을 포함하였던 옛 시흥 지역은 조선시대에 중부지방의 교역 중심지로서 시장이 발달하여 조선 후기에 방축장(防築場)·산대장(山垈場)·수암장(秀岩場) 등이 열렸다. 일제강점기에도 시흥군 서이면 호계리(지금의 동안구 호계3동)의 군포장이 매달 끝자리가 5·10인 날에 열렸고, 1926년 서이면 안양리(지금의 만안구 안양1동)에 안양시장이 개설되어 매달 끝자리가 5·10인 날에 장이 섰다. 안양시장은 1961년 지금의 안양4동 자리로 이전하여 안양공설시장으로 개칭하고 장날도 3·8일로 변경하였다가 1970년대에 상설시장으로 전환되어 지금의 안양중앙시장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안양시의 전통시장은 만안구에 안양중앙시장 외에 안양..

[기억-최병렬]안양사람들이 기억하는 오래된 음식점 이야기

안양사람들이 기억하는 오래된 음식점 이야기 안양지역에 음식점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아마도 한양가는 길목인 인덕원 사거리 일대 자리했던 주막에서 당시 오가던 길손에게 팔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추정일뿐 기록은 없다. 안양시는 2006년 안양시민축제 당시 음식문화축제를 준비하면서 안양의 대표음식으로 설렁탕을 선정해 과거 자료를 수집한 적이 있다. 자료를 조사한 안양문화원 최태술 위원은 “지금 동안구 평촌에 귀인동이 있다. 이 마을은 이름 그대로 宮中에서 宮人으로 생활하다 퇴역 하신 귀인(貴人)들이 살든 곳이어서 귀인동이다. 또 수촌마을에는 내시촌이 있어 두 곳 다 퇴역한 궁인들이 궁중에서 하던 선농제 행사에서 끓이던 설렁탕 기술을 알았을 것이다”며 이를 통해 설렁탕이 일반에게 전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

[기억-최병렬]안양 병목안 기찻길옆 2층 ‘길모퉁이까페’

안양에서 처음 카페 명칭 붙였던 ‘길모퉁이까페’ 1970년대 안양에서 카페란 명칭을 사용한 곳은 안양1동 CGV옆 기찻길 골목 2층에 있던 길모퉁이카페가 아닐까 싶다. K연구소에 다니는 남편을 둔 서른 살을 갓 넘은 예쁜 누나가 커피와 함께 진토닉 등 칵테일과 위스키 등을 팔던 가게였다. 지금은 50대 중반이 된 친구들이 겨울에는 난로 불을 쬐며 노닥거리며 암울했던 현실을 고민하고 LP음반을 뒤적거리며 ‘까라마드르 조르쥬(길모퉁이 카페의 작가)’를 이야기했다. 당시 청년들의 주머니가 허전하던 때여서 주인 누나가 공짜로 주는 따끈한 커피와 술 한잔에 고마워하고 풋풋하고 넉넉한 쓰임새에 감동하며 간혹 안양9동 채석장에서 돌을 채취한 화물열차가 지나치기라도 하면 도로에 멈춰 기나긴 차량들을 보는 것도 또다른 ..

[자료]안양역의 변천과정과 숨은 이야기

안양역의 변천과정과 숨은 이야기 나의 고향은 급행열차가 서지 않는 곳 친구야, 놀러 오려거든 삼등객차를 타고오렴 - 김대규 시인의 엽서 - 경부선 개설과 함께 1905년 1월 1일 문을 연 안양역은 2001년 12월 14일 최신시설의 민자역사로 탄생됐으며 전동차를 포함 새마을호, 무궁화호, 화물열차 등이 경유하고 있으며 하루 출퇴근시간대만 최대 4만여명이 이용하는 것으로 안양역 측은 집계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양역은 어떤 변천 과정을 거쳤을까. 100년 전 안양역의 모습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독일인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산더(1868∼1945)가 1906년부터 1년여간 러일전쟁의 흔적을 조사하는 여행길에 기차가 정차한 1906년 9월의 '안양역 풍경'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지난 과거를 되돌아 보게 한..

[기록]효성 안양공장 잔디운동장 불에 탄 사건

효성 안양공장 잔디운동장이 불에 탄 사건 방수조작을 하지 못해 공장을 다 태울 뻔한 사고 (2013-04-29 경기북부신문 기사) 1983년 11월에 소방펌프차 방수조작을 할 줄 아는 진압요원(경방)이 없어서 운동장의 잔디를 다 태우고 공장까지 화재가 확산될 뻔한 사례입니다. 경기도 안양에 현재는 효성그룹의 섬유공장인 동양나이론이란 회사가 가진,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든 잔디로 되어 있는 축구장에서 열린 회사직원들의 소방기술경연대회를 지원하기 위하여 10여명의 소방공무원이 소방펌프차 1대를 동원하여 대회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담뱃불에 의한 화재로 추정되는 불이 나서 순식간에 인근의 야적된 섬유류와 공장 주변까지 화재가 확대될 위험한 상태가 될 때까지 소방차를 세워놓고도 구경만 하였습니다. 담당..

[자료]6.25전쟁에서 수리산을 지킨 형제의 나라 '터키'

‘형제의 나라’ 터키, 6.25전쟁에서 수리산을 지켰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 기획취재 - ⑥ [군포신문 2010-08-26일자] 1951년 수리산 탈환에 큰 공 … “군포는 터키에 보은의 표시해야” 기념비 건립, 참전용사 초청행사 등 도립공원 연계 추진시 시너지 효과 올해(2010년)는 6.25전쟁이 발발한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세월이 흘러 하나둘 세상을 떠나가고 현재의 젊은이들은 6.25의 참상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지역 군포에서 당시 어떤 전투가 있었고 어떤 사람들이 이 땅을 지켜내기 위해 희생됐는지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호에서는 1951년 1월, 수리산 고지를 탈환하고 이 지역을 지켜내기 위한 사람들에 대해 조명해 보고, 수리산도립..

[기억-정진원]1950년대 안양시장(구시장) 이야기

[정진원]그곳에 ‘안양시장’이 있었다 50년 전 안양시장(市場)은 그야말로 궁벽한 산골 촌놈을 어리둥절케 한 별유천지였었다. 당시 수푸르지(지금 비산동)에서 안양천 다리(지금 임곡교)를 건너서 철길을 넘어 경수국도까지의 오른편 넓은 터에 안양시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도 당시 안양의 유일한 시장이었을 것이다. 현재는 상전벽해 시장의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거나 머슴의 지게꼬리를 잡고 힘겹게 걷고 걸어서 그곳엘 갔었다. 구리고개 언덕에 올라서서 한숨을 내쉬면 멀리 신세계 안양의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었다. 구리고개 밑에 운곡 마을을 오른쪽에 두고 산모롱이를 돌면 제법 곧게 된 한길이 뻗어있었는데, 거기를 걸으면서 안양쪽을 보면 기차가 하얀 연기를 뿜으면서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고, ..

[기억-정진원]1950년대 안양 인덕원사거리

[정진원]50년 전 안양 인덕원사거리 인덕원 사거리에서 청계 방면으로 진터를 지나 이미 마을을 옆에 두고 작은 고개를 넘으면 덕장골이었다. 50여 년 전 내 고향 마을은 마을이랄 것도 없을 정도로 서너 채 집으로 된 작은 동네여서, 마을 끝 언덕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하얀 겨울 입김이 보였고, 이웃집들의 애기 우는 소리, 기침하는 소리, 대문 여닫는 소리 등이 모두 들려서, 시쳇말로 프라이버시가 있을 것도 없고, 있어도 지켜질 수 없는 한 집안 같은 동네였다. 느티나무 가지 밑으로 나 있었던 집 너머 오솔길에서 사당골 개울까지와 아래 논가 동네 어귀 향나무에서 뒷동산 소나무가 서 있었던 곳까지가 산토끼 굴 같은 우리들의 둥지였다. 그 당시에 인덕원 사거리는 대처였다. 우리 마을에 없는 것들, 볼 수 없..

[기억-최병렬]인기DJ를 스카웃했던 70년대 안양의 음악다방들

인기DJ를 스카웃했던 70년대 안양 음악다방 이야기 1970년대는 통기타, 장발, 나팔바지와 함께 LP음악을 들려주었던 DJ가 인기를 누리던 음악다방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다방의 추억이 유별났던 곳은 단지 차만 팔고 약속장소만이 아니라 그 시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믄화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뽀얀 담배 연기로 가득찬 다방은 유리창 속에 앉아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는 'DJ'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카펜터스와 아바, 스모키 등의 팝송과 때로는 신나는 디스코 장단에 흥겨워하는 모습은 지난 70년대를 거쳐 80년대 중반까지 자리했던 '음악다방'속의 한 풍경이다. 음악다방의 얼굴마담은 단연 DJ였다. 유리창 너머 뮤직박스속의 DJ들은 왜 그리도 멋지고 경외스러웠던지. 그 시절 젊은이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

[기억-최병렬]안양 과거 문화사랑방 '곧망할' & '대합실'

안양엔 끼 있는 문화예술인 사랑방 '곧망할' 있었다 “우린 망한다는 확신 아래 여기 작은 꿈을 이름하여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실패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다만 혼란스러운 것이라는 이론으로 출입구를 냅니다.” -곧 망할 카페 전단지- 1978년 5월 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 부림상호신용금고 앞 중앙시장 골목길 안쪽 건물 지하에 당시로는 아주 정치적이고 요상한 상호를 내건 카페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름하여 ‘Gote manghale’(곧 망할) 입니다. 이 카페의 주인장은 알마전까지 안양에서 하늘새 조각가로 잘 알려진 이강식 선생(2012년 병점으로 이사를 하셨지요)과 당시 안양에서 연극인으로 활동하던 윤고성씨(미스 강원과 결혼한 후 안양을 떠나 춘천으로 갔는데 전 아직 그 이후 만나지를 못했음... 춘천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