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506

[자료]안양에 잠시 머물렀던 우리나라 최초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인 정월(晶月) 나혜석(1896~1948).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 여권운동가, 문필가 등으로 활동하며 불꽃처럼 살다간 비운의 선각자인 그가 죽기 직전의 말년을 안양 경성기독보육원 양로원에서 보낸 시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안양에서의 삶을 찾아보기 전전에 우선 나혜석은 누구인가 알아본다. 나혜석은 1896년 경기 수원시 신풍동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친 나기정은 대한제국 때 경기도 관찰부 재판주사, 시흥군수를 지냈으며 일제 때는 용인군수를 지냈다. 1913년 진명여자보통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둘째 오빠 나경석의 권유로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유화과에 입학, 화가로서의 공부를 시작했다. 1914년 일본 유학생 동인지 에 '이상적 부인'이라는 ..

[자료]바위에 새겨진 천년의 울림 마애종

1천년 전 한 이름없는 석공이 거대한 암벽에 종을 치는 스님을 새겨 넣으면서 꿈꿨던 安養世界, 마애종 속 스님이 종을 치며 간절히 소망했던 '오로지 기쁨과 평화만이 있든 세상'. 천년 세월 잠자고 있던 마애종을 다시금 깨워 종을 울릴 수 있을까. 2008년 11월 12일 오후 2시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안양 마애종의 학술적·예술적 가치와 국가문화재 승격'을 주제로 개최된 '제3회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에서 문화재 전문가들은 "국내에 유일한 마애종이 국가문화재로 승격돼야 마땅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군포의왕지부(회장 임종순)와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위원장 황평우)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포럼에 참여한 8명의 문화재 전문가들은 발제와 토론을 통해 "국내 유일의 마애종..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3)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3)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화장실 뒷쪽의 자그마한 길옆 암벽에 기와를 얹은 보호각 하나가 있다. 그 안에는 범종 하나가 조각돼 있는데 경기도유형문화재92호로 지정된 마애종(磨崖鐘, 만안구 석수동 산32)이다. 마애종의 역사성과 지역공동체 엄기표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전임연구원 1. 머리말 안양에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늦어도 청동기시대에는 하천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다. 이후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중앙정부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는 불교가 폭넓게 성행한 시대였으므로 불교문화가 이러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당간지주와 石塔(석탑)이 남아있는 중초사지, 석조부도와 귀부 등이 남..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2)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2)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화장실 뒷쪽의 자그마한 길옆 암벽에 기와를 얹은 보호각 하나가 있다. 그 안에는 범종 하나가 조각돼 있는데 경기도유형문화재92호로 지정된 마애종(磨崖鐘, 만안구 석수동 산32)이다. 마애종/안양의 역사성과 마애종의 문화적 가치 엄기표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2005년 「제2회 安養世界 마애종 문화포럼」의 발제문입니다. Ⅰ. 머리말Ⅱ. 안양의 역사와 불가의 안양세계Ⅲ. 마애종의 양식과 조성 시기Ⅳ. 마애종이 갖는 과거와 현재의 의미Ⅴ. 맺음말 국문요약 안양 석수동 마애종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안양 지역에서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던 중초사지(中初寺址)와 安養寺가 위치한 지점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지역적으로 중요한..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1)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1)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화장실 뒷쪽의 자그마한 길옆 암벽에 기와를 얹은 보호각 하나가 있다. 그 안에는 범종 하나가 조각돼 있는데 경기도유형문화재92호로 지정된 마애종(磨崖鐘, 만안구 석수동 산32)이다. “우리는 세계유일의 마애종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포럼은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안양지역사회에서는 민예총을 중심으로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을 통해 마애종의 보물 격상 운동과 더불어 '종교 그 이상의 울림'을 지향으로 하는 영성운동이 잠사나마 전개됐었다. “마애종이 담고 있는 ‘평화와 이상향’의 마음은 어느 종교에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형식을..

[기억-정진원]의왕 덕장골 촌놈 콤플렉스

그때는 백성의 대부분이 촌놈들인 세상이었는데도 촌놈 연쇄 콤플렉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았었다. 아무리 화려한 덕장골의 유년시대라 할지라도 어머니 안의 꽃궁에 대해서 그것은 콤플렉스였다. 아무리 덕장골이 꽃대궐이고, 그 안에 기화요초, 은빛 강물이 흐르고, 그 위를 쪽빛 바람이 불어도 저녁이면 스산하고, 그리움과 기다림에 겨워 골짜기의 밤이 무섭고, 싫었었다. 서울이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에 촌놈 콤플렉스가 우리들을 한없는 어리보기들로 만드는 것 같았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요물들이 밀려들어왔다. 지리가미와 시레이션, 분유와 디디티, B-29와 쌕쌕이(제트기), 탄피와 앞 논에 박힌 박격포, 인민군과 중공군, 데스까브도(철모)와 덴찌(손전등). 생소하고 신기한 것들이 주어졌을 때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

[기억-정진원]한 장의 졸업사진, 덕장초교 10회

현실보다 이상이 언제나 더 화려하다. 사실보다 이미지가 더 아름답다. 현상보다 환상이 더 환상적이다. 눈으로 보는 인상보다 마음속에 박힌 인상이 더 인상적이다. 펜팔이 줄 수 있는 연면한 동경과 환상은 맞선의 자리에서 쩔쩔매게 되는 어색함과 대개의 실망보다 언제나 매력적인 것이다. 사진은 글자대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찍어낸 것이다. 거기에 시골 사진사의 에스프리가 깃들어 있으면 얼마나 대단한 것이겠는가. 생긴 대로 박아낸 사진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사회심리학적 행동 유인들이 내면화 되어있고, 험산준령이나 구비치는 강 같은 개인사의 곡절들이 그 얼굴 하나하나에 박혀있는 것이다. 같은 집단의 단체사진을 비교분석해보라. 언제나 회중의 변두리에 밀려나 있는 사람은 머리만 중심부로 향해서 기울이고 있..

[기억-정진원]덕장골과 큰집골

덕장골과 큰집골 [큰집 “죄수들의 은어로, ‘교도소’를 이르는 말”] 내가 나고 자란 마을은 마을이랄 것도 없이 서너 채 집들로 된 작은 동네였는데, 동네 이름이 ‘덕장골’이었다. ‘덕짱꿀’이라 소리 나는 대로 불렀었다. 그곳에 큰집이 있다고 해서 그런 동네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큰 ‘덕(德)’, 집 ‘장(莊)’하여 ‘덕장골’이 되었단다. ‘큰집골’이라 하면 더 좋았을 것을 딱딱한 한자식 이름이 되어 좋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떠랴. 그야말로 큰일이 터지고 말았다. 큰집골에 진짜로 ‘큰집’이 들어오게 되었다. 1987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던 서울구치소가 의왕시 포일동 큰집골, 덕장골로 밀고 들어왔다. 국어사전에서 ‘큰집’을 찾으면 네 가지 정도의 뜻을 풀이하고..

[자료]콜롬비아로 시집간 동해급 마지막 함정 '안양함' 역사

안양시청사 1층 홀 국제·국내 자매도시 기념품 진열장 속에는 한 척의 배 모형이 있다. 해상초계 및 대공전투 임무를 띠고 1983년 취역해 28년간 바다를 지키다 2011년 9월 28일 전역식을 갖고 퇴역한 우리 해군의 동해급 마지막 초계함(PCC-755) '안양함'이다. 이 안양함이 2014년 7월30일 경남 창원시 진행군항 부두에서 양도 기념식을 갖고 콜롬비아로 시집을 갔다. 콜롬비아 해양에서 불법 마약거래 근절과 해상환경 보호 등 콜롬비아의 바다를 지키는 새 임무를 위해 우리 군이 해외에 양도하는 첫 초계함급 군함이 됐다. 이는 콜롬비아 측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콜롬비아는 6·25전쟁 당시 호위함과 병력 5천100명을 파병한 중남미 유일의 6·25참전국으로 212명의 콜롬비아 장병들이 희생됐..

[기억-정진원]1950년대 용어 기브미 껌과 갓댐

기브미 껌과 갓댐 6ㆍ25전쟁 직후에 우리 마을에 이러한 말들이 어떻게 해서 들어왔는지 잘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헬로우, 기브미’와 ‘갓댐’과 ‘사나나베치’ 등 당시로서는 아주 낯선 방언들이었다. 내 나이 예닐곱 살 때였으니까 누구들이 하는 말이 하도 이상해서 마음속에 새겨 넣었을 것이다. 모국어도 제대로 다 하지 못하는 형편에 듣도 보도 못한 말들이 골짜기 안에까지 들어왔던 것이다. 미군이 우리 동네까지 진주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가 맥아더 장군이나 된 것처럼 자랑삼아 인천상륙작전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해병대 출신 동네 아저씨가 전해준 것들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해서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헬로우), 손 벌려 달라 하다가(기브미), 못된 놈(갓댐)이라 욕먹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