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552

[김종우]안양시내 경양식집 이야기(2020.05.06)

안양 시내의 수많았던 음악 다방...음악 다방과 함께 젊은이들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 이 또 있었습니다. 바로 경양식 집 이라고 불리웠던 RESTAURANT 입니다. 오늘은 RESTAURANT 이야기 입니다.아... RESTAURANT 이라는 표현 보다는 경양식 집 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 할 듯 합니다.왜냐하면...30년 전 에는 경양식 집 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썼기 때문 입니다. 30년전의 이야기 입니다.아직도 먹거리가 귀하던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삼시 세끼 밥만 먹어도 다행 이었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輕 洋 食 ... 경양식 이라는 표현은 일본식 표현 방법 입니다.말 그대로 가볍게 먹을수 있는 서양식 음식을 말합니다.그러나 표현 처럼 경양식은 이래 저래 가볍게 먹을수 만 은 없는 고급..

[김종우]안양 음악다방 이야기(2020.05.06)

나는 지금도 그 예전 30여년 전의 다방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설레고 그 시절의 아련한 기억과 추억이 떠올라서 잠시나마 옛 생각에 잠기고 그 시절 음악을 듣기도 합니다. 1978년 년말 부터 1979년 년초의 한 겨울... 19,20살 시절 철없이 마냥 신나고 즐거웠던 기억의 중심 에는 그 이름도 정겨운 다방이 있었습니다. 다방과 관련된 이야기를 빼놓고선 그 시절을 기억 하거나 추억 할수 없을 정도로 다방에 관련된 이야기 라면 나에게는 아직도 무궁무진한 수다거리가 있습니다. 내가 알고 기억 하는 안양의 다방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안양에서 음악 다방 이라고 지칭 되던 다방의 시작은 중앙 시장 입구의 중앙 다방과 신신 다방 그리고 약속 다방이 처음이 아니었나 생각 되는데 우리 모두가 기억 하는 다방 이..

[20190916]창립 100년 맞이한 안양 좋은집

북쪽으로는 관악산과 삼성산, 서쪽으로는 수리산, 남쪽으로는 청계산과 백운산 그리고 모락산과 오봉산이 둘러싸고 산자락 샘터에서 떠난 물줄기가 흐르는 산본천과 당정천, 왕곡천과 오전천 그리고 갈현천과 청계천이 합쳐진 학의천(옛 인덕원천), 삼성천과 삼막천, 수암천과 삼봉천 등의 여러 지천들이 모인 커다란 물줄기 안양천(갈천-사근천-기탄-대천)이 흐르던 옛 잉벌노현(금천현.과천현->시흥군->과천.군포.안양.군포.의왕시)은 사람 살기에 아늑하고 아기 키우기에 좋았던 곳이었나 봅니다. 편안할 안(安)자와 기를 양(養)자를 지명으로 쓰는 안양에 3개의 보육시설(기독보육원, 평화보육원, 안양보육원)이, 의왕에도 1개의 보육시설(명륜보육원)이 둥지를 틀었으니 말입니다. 그중 1936년 안양2동에 안양천변에 둥지를 튼 ..

[이용구]안양 병목안 채석장의 기억(2010.05.20)

병목안시민공원 탐방기 지난 5월15일은 스승의 날이자 우리 안양 토박이들의 모임(서이회)이 있어 점심을 하고 처음으로 안양시 만안구 안양 9동에 있는 병목안 시민공원을 가 보기로 했다 이곳은 벌써 4년전인 2006년 5월 24일에 완공을 보았고 이에대한 찬사(讚詞)가 자자해 한번 꼭 가 보려 했으나 나는 가까이 살고 있다 하여 차일피일 하다가 이제껏 가 보지 않았다가 오늘 시간도 있고 날씨도 좋은 기회라 하여 나섰다 말에 의하면 여기에 10만1.238m2 부지에 약 260억이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안양 시민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시내 창박골행 버스로 삼거리 수퍼앞에 내리니 바로 올려다 보였다 공원입구 광장 안에는 자연석에 가로 새긴 "병목안시민공원"이라 쓴 돌 비석이 있었다 여기에는 주차장이 있고 각..

[자료]의왕의 역사와 각 동 지명유래

의왕시는 경기도 중서부에 있으며 면적은 53,986㎢(경기도의 0.5%) 인구 15만 6,763명(2016년 12월)의 아담한 전원도시이다. 시의 경계는 6개 시군과 접하고 있어, 동쪽은 성남시 용인시, 서쪽으로 안양시 군포시, 남쪽으로는 수원시 안산시, 북쪽으로는 과천시와 접하고 있으며, 시청소재지는 고천동에 있다. 의왕시는 인구밀집 지역인 아파트나 주택지역이 청계산 줄기의 백운산과 모락산, 오봉산으로 이어지는 산 자락에 휘돌아 감겨있어 공기가 맑고 깨끗하며,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산은 청계산, 백운산(567m), 바라산(428m), 모락산(385m), 오봉산(205m)으로 이어져, 작고 아담한 산들로 이우러져 사람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 안양천(安養川)과 ..

[20190518]5.18민주화운동 39주년, 다시 꺼내 보는 옛 기록

2019.05.18/ #광주 #민주화 #39주년 #자료 #기록 #기억/ 광주5.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맞아 책장에서 꺼내본 5.18 자료들. 기억은 기록을 만들고 기록은 기억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광주 자료들을 잘 보관해 줄 만 한 곳으로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몇가지가 더 있네요. 1985년 광주교구 정의평화원회가 발간한 , 1988년 광주의거자료집1. , 1988년 발간한 광주의거자료집2 , 한국기독교학생총연맹, 대한가톨릭학생전국연합회,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이 펴낸 연도 미상의 빛바랜 책자에는 역사의 진실이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기억합니다...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5.18. 삼가 5.18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20190408]안양시 관내 천주교 성당 설립일

. 안양시 관내 천주교 성당 설립일 수원교구 제2대리구 안양1지구(본당 6개소) 안양2지구(본당 6개소) 안양1지구 본당[6개소] ​관악 성당(설립일;1998년01월) - 안양시 만안구 안양2동 18-114 - 명학 성당(설립일;1978년10월) - 안양시 만안구 안양8동 551-1 - 석수동 성당(설립일;1983년08월) - 안양시 만안구 석수2동 323-2 - 중앙 성당(설립일;1954년09월) - 안양시 만안구 장내로 116 - 호계동 성당(설립일;1975년12월) - 안양시 동안구 호계1동 953 ​호평동 성당(설립일;1997년02월) - 안양시 호계2동 893-3 - 안양2지구 본당[6개소]순 ​매곡 성당(설립일;2003년09월) - 안양시 동안구 비산3동 318-2 -​ ​​벌말 성당(설립일;..

[자료]정조의 화성을묘원행(花城乙卯園幸) 옛길 지금 어디인가

조선후기 중흥기를 이끌었던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 방문을 비롯해 재위기간 동안 총66회의 궁궐밖 행차를 했다. 또한 현릉원 자리에 있었던 수원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화성을 축성하고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하였으며, 직할부대인 외장용을 설치하였다. 이는 정조의 개혁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데, 당시 기득권세력이었던 노론세력을 견제하고 강력한 왕권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정조의 화성행차에는 많은 인원과 물자가 동원되었는데, 당시 행렬에 동원되었던 6,000여명의 인원 중 절반이 정조의 친위부대이 장용영 군사였다. 이는 오늘날 ‘국군의 날’ 행사가 갖는 무력시위의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일반백성들이 국왕의 행렬을 구경하고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백성들과 함께 하는 국왕의 모습을 연출하..

[자료]14개 지자체 유역을 지나는 안양천(安養川)

안양천(安養川) 한강의 지류인 안양천은 경기도의 의왕시, 군포시, 안양시, 광명시, 시흥시, 부천시 등 7개 시와 서울의 금천구, 구로구, 영등포구, 관악구, 동작구, 양천구, 강서구 등 7개 구 등 14개 지자체 지역에서 지천이 흘러들고 지나면서 성산대교 서쪽에서 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으로 유역의 면적은 286km²이며, 총 길이(지류 제외)는 32.5km에 달한다. 안양천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하천이 안양 시가지 앞을 지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 편에는 "대천(大川)이 현의 서쪽 4리에 있으며, 과천현의 관악산과 청계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양천현의 철곶포(鐵串浦)로 흘러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고, 만안교(萬安橋)는 "남쪽으로 10리에 있는데, 안양천에서 수원(水原..

[자료]안양의 독립운동가

안양의 독립운동가 1. 원태우(元泰祐) (고종19(1882)∼1950) 독립운동가. 본관은 원주(原州). 원태성과 이호순 사이에서 2남으로 안양시 만안구 안양 1동 642(현 농협중앙회 안양시지부 부근)에서 태어났다.문헌에 따라 원태근; 김시근;.김태근등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호적에는 원태우로 되어 있다. 그의 형이 원영우인 것으로 보아 「우(祐)」가 항열로 보여진다. 그는 본래 농촌 출신으로 깊은 학식은 없지만 평소에 의기가 높고 바른 일에 앞장을 서는 정신과 기백이 있었다. 그가 23세 되던 해(1905)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위하여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비운의 해였다. 일제는 이 조약을 맺기 위하여 광무8년(1904) 러일전쟁의 승리로 이끈 후 포츠머스 조약에서 한국에서 정치, 경제, 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