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506

[자료]헷갈리는 서울 시흥, 경기도 시흥

. ■ 헷갈리는 서울 시흥, 경기도 시흥 1. 개요 시흥(始興)은 원래 구한말까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영등포구(양화동과 조선시대-구한말 한정으로 여의도 제외), 구로구 동부, 관악구 상당 부분, 동작구 일부 및 경기도 광명시,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박달동 일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시흥의 행정구역 변천을 보면 고구려 때 잉벌노현(仍伐奴縣)에 속해 있었으며 757년 경덕왕이 곡양(穀壤)으로 고쳐 율진현(栗津縣)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초기에 금주(衿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폐하여 수주(樹州)에 예속시켰다. 1172년(명종 2) 감무(監務)를 설치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변천을 거쳐 1416년(태종 16) 금천현(衿川)으로 하여 현감을 두었다. 세조 때 과천군에 편입되었으나 정조 때 ..

[20170705]이필운 안양시장 취임3주년 기자간담회 회견문

󰡒제2의 안양 부흥󰡓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취임3주년 기자간담회 - 민선6기 취임3주년 - 주요성과 및 향후 시정운영방향 2017. 7. 4.(화) 10:30 기 자 간 담 회 【󰡐제2의 안양 부흥󰡑추진】 ❍ 지난 해 2월 1일󰡐제2의 안양 부흥󰡑을 선포하고 재도약을 위해 쉴 틈 없이 달려온 결과, 많은 부분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 농림축산검역본부 부지는 경기도시공사와 기본 협약을 체결하고, 사업화방안 용역을 착수하는 등 만안구와 동안구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 박달테크노밸리 조성사업은 제19대 대통령 공약사항에 정책공약으로 반영됨은 물론 경기도 국가발전 전략과제에 포함되었고, 현재 제3군지원사령부와 안양시간 군․관 정책협의체 구성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 인덕원․관양고 ..

[기억-조성원]1960년대 안양초등학교의 봄소풍

봄소풍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상큼한 이 노랫말을 들으면 지금도 나는 풀 향기 그윽한 푸르른 아이가 된다. 환경미화 기간이 지나면 어느 새 산천은 온통 짙게 푸르렀다. 흡사 천천히 아주 느리게 아다지오의 선율로 시작되어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의 흐름으로 펴져 경쾌한 알레그레토 교향곡으로 변한 왕연한 산천초목의 느낌이다. 시와 때를 구분하는 질서와 정렬 그리고도 분수껏 품위를 스스로 낮추는 봄의 꽃 마음을 읽는다. 그 시절 목련 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빛나는 청춘의 계절을 음미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순진한 꿈은 마냥 부풀었다. 5월은 어버이날에 스승의 날 그리고 우리의 날이 있어 늘 분주하였으며 더욱이 5월 초는 반드시 봄 소풍을 갔기 때문..

[기사]정조 임금 어가 행차하듯 가는 '통영별로' 첫걸음

정조 임금 어가 행차하듯 가는 '통영별로' 첫걸음 [통영로 옛길을 되살린다] (35)통영별로(統營別路) 다시 출발선에 서다 출처: 2013.01.17일자 경남도민일보에서(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02626) 최헌섭(두류문화연구원 원장) | webmaster@idomin.com 앞선 호에서 지난 2년간 진행해 온 통영로가 숭례문에 도착함으로써 긴 여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도착은 새로운 출발을 전제하는 것이니, 방향을 바꾸면 들머리가 날머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계사년 1월, 이제 통영으로 향하는 다른 길(통영별로, 통영일로)을 잡아 새로운 출발선에 섰습니다. 통영별로(統營別路)는 서울과 삼도수군통제영을 오가던 통영로(統營路)의 다른..

[기사]나그네 쌈짓돈 뜯던 사또 민담 뒤로하고 사근행궁으로

나그네 쌈짓돈 뜯던 사또 민담 뒤로하고 사근행궁으로 [통영로 옛길을 되살린다] (36) 통영별로(統營別路) 2일차 출처: 2013.01.31일자 경남도민일보에서(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04003)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 | webmaster@idomin.com 오늘은 과천과 경계를 이루는 남태령에서 길을 잡습니다. 이곳이 지경(地境) 고개임을 알 수 있는 현대적 증거는 고개의 서쪽에 자리한 수도방위사령부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도를 지키는 부대가 이곳에 있음은 이 고개가 지경으로서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노정을 〈과천시지〉에는 남태령(南泰嶺)-과천현행궁(果川縣行宮)-읍내전천교(邑內前川橋)-냉정점(冷井店)-..

[기억-이용구]안양에 비친 당시 제일교회의 모습

이 글을 쓰신 이용구 선생은 1926년생으로 제일교회가 창립된 1930년도에는 다섯 살 밖에 안 되는 어린이였지만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양3동 양지마을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며,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의 생활과 안양의 당시 모습들은 눈썰미 있게 보아 두었다가 그의 책 '양지마을의 까치소리' 등을 통해 안양지역 사회의 과거를 들려주고 있다. -편집자 주- 내가 나가는 안양제일교회 80년사(1930년~2010년)가 발간 되었습니다 여기에 투고한 글이 등재 되었기에 전기 하오니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1030.5.17 창립) 1930년 당시 안양은 서울역에서 24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안양역을 중심으로 밀집된 곳에만 겨우 전깃불이 있을 뿐, 그 외에는 밤이면 희미한 석유 등잔불만이 가물거리는 고장…..

[최병렬]안양지역사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사람들

향토사는 지역사·국사·민족사의 모체요 뿌리로, 곧 모든 역사의 콘텐츠라 할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근래 들어 지역향토사를 연구, 탐구하는 이들이 극히 드물고, 문화원들도 이같은 연구를 소홀히 하고 있어 과거사의 연구는 커녕 현존하는 사실들 조차 제대로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채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안양지역의 향토사에 대해 박식하거나 자료를 수집하거나 기록을 남기는 분들이 여러분 있지요. 안양지역 변천과 행정사에 박식한 변원신 선생, 안양사 발굴을 안양청원할 정도로 안양시 연구에 몰두해 온 지역원로인 정덕한선생, 안양시 홍보실에 근무하며 70년대 부터 안양지역을 사진 기록에 담은 이정범 선생, 1968-69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애 근무하며 안양지역의 풍물을 컬러슬라이드와 흑백필림에 담아낸 닐 미..

[안양광역]안양7동 덕천마을의 옛 지명은 ‘벌터(坪村)’

안양7동 덕천마을의 옛 지명은 ‘벌터(坪村)’ 2015-04-13 오후 5:32:00 12 ‘벌터’자연마을 지명석 이전설치 행사에 참석한 안양7동 박창배 동장, 정하길 주민자치위원장, 민정기 (사)대한노인회 안양7동 경로당 회장(통친회장) 및 경로당회원 등 지역주민들이 마을의 발전을 염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고 대부분 농경지였던 지역에 일제강점기 초 시흥시 정왕동에 살던 원정상(元貞常)씨가 분가하면서 정착 이래 자연마을이 형성되면서 ‘벌터’라 불리었다. 1978년 마을의 유지들에 의해 ‘덕천마을’로 개칭되었고, 이듬해 5월 1일 안양 6동에서 분리되어 안양7동으로 분동(分洞)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리적, 인문적 특성을 간직한 자연마을 지명은 지역의..

[자료]군포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군포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사람들에게는 모두 각자의 이름이 있듯이 땅에는 땅 이름, 즉 지명(地明)이 있다. 지명은 인류의 사회생활과 더불어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났으며 그 지역의 주변 환경과 역사, 이에 대한 의미부여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다양하게 얽히면서 생겨나게 되었다. 따라서 지명에는 그 지역에 대한 역사와 풍속, 문화 등은 물론 그 지역의 독특한 자연환경이나 생활풍습 등이 녹아있는 경우가 많다. 지명에 대한 유래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 지명에 대한 의미를 해석하는 일이다. 지명이 고유어(순 우리말)라면 이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고, 한자어가 있다면 그 한자어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 보는 일이다. 군포시는 1979년 5월에 시흥군 남면에서 군포읍으로 승격하였..

[자료]수리산과 모락산의 역사

경기 수리산과 모락산의 역사(월간산 2001년 6월호) 수리산(修理山)-태을성 초제를 지내던 독수리 형상의 산 경기도 안성의 칠현산에서 맥이 북으로 뻗어가서 용인의 보개산, 수원의 광교산을 지나 서쪽으로 다시 이어지는 한남정맥(漢南正脈)이 수리산의 山經이다. 경기도 안양시·군포시·안산시의 진산이며, 안양·군포·안산·시흥의 네 도시가 접경하는 해발 474.8m의 산이다. 비운의 임금 단종이 사냥을 했을 만큼 그 옛날엔 숲이 무성하고 산짐승이 많았던 산이다. 2년 10월 1일 기묘일조에, "임금이 보천리에 이르러 낮 수라를 들고 수리산(修理山)에서 말을 몰아 사냥하였다. 해질 무렵에 과천에 이르러 비을매리(飛乙每里: 지금의 안양 비산동 추정)에서 거가(車駕)를 멈추었다."고 이 때의 일을 기록하였다. 주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