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개에서 친목동으로 넘어가는 곳에 정수장이 생겼고 그 아래로 안산가는 고속도로 고가다리 밑에 나 국민학교 1학년 무렵에 살던 집이 있었는데 그게 아직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좁은 마당 끝에는 무궁화나무가 서너 그루 있었고 그 너머로는 거머리가 득실거리는 논이었다. 일명 미나리꽝.
엎드려 팔 하나를 넣으면 거머리 한두마리가 득달같이 달라붙는데 살을 뚫기 전에 잽싸게 뜯어내어 손바닥에 때굴때굴 굴리면서 뒷집 미숙이한테 '야, 니네 집에 그거 핸들 좀 가져와.' 하면 미숙이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여자들 아이샤도 바르는 솔 손잡이를 몇개 가져왔다. 이쑤시개보다는 약간 큰 그 프라스틱을 거머리 똥구녕부터 밀어 넣으면 거꾸로 홀랑 뒤집어 지는데 그걸 무궁화 나무 옆에 세워놓아 말리곤 하였다.
우리집에서 안동네로 넘어가는 길 위쪽으로 얼마 안되는 논을 빌어 붙인 것도 그 무렵이었다.
가난뱅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논농사를 짓는다니 괜히 으쓱해진 때였다. 빌린 거였는데... 아버지께서 약을 치신다고 나와서 줄 좀 잡아라 하셔서 줄을 이리저리로 넘겨줄 때는 농약이 내게로 날아와 콧속이 매캐해도 마냥 좋았었다.
논으로 흘러드는 물은 육골에서 흘러 내려온 것인데 언제나 맑았다. 그 해 여름에는 그 논에서 유난히 많은 반딧불이를 만났다. 우리가 농사를 짓는 논이기에 더 애정있게 바라 본 까닭이리라.
그 논농사는 겨우 한해만에 파작을 하였다. 아버지 성격에 뭘 오래 진드감치 하시질 못한 연유다.
그래도 오십년이 넘도록 그런 기억을 아니 추억을 갖게 해주셨으니 고맙기는 하다.
그 뒤로 이사한 집이 범고개 입구 지금의 주유소 자리다. 마을에서 먼지 폴폴 날리는 한길을 건너 외딴 집이었는데 논을 메꾸고 집터를 만들어 한길 반대쪽 집 뒤로는 삼면이 다 논이었다.
비가 좀 내리면 마당에 물고기들이 나타나고..... 한길 밑 도랑에는 미꾸라지들이 득시글...
그래서 비오는 날에는 얼개미를 들고 나가 비를 맞으며 도랑에서 물고기를 잡는 재미도 있었다.
그 때는 어디 남의 살 먹기 쉬운가... 어머니께서는 내가 잡은 물고기에 고추장 풀고 호박과 감자를 썰어 넣고 매운탕을 끓여 주셨었다.
추억과 기억 속의 논은 화수분이었다. 얼음이 완전히 녹기 전 이른 봄에는 민물 새우를 주고 여름에는 투실투실한 뒷다리를 가진 개구리를 주고 계절을 가리지 않고 미꾸라지, 송사리를 주고 봄에는 또 삘기, 갈대속 등 먹을 거리를 주고 잠자리, 논병아리, 거머리, 올챙이 등 수많은 놀이 친구들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최근 기후위기, 탄소중립 등 생태환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미세먼지 등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치는 공해도 큰 문제가 되면서 습지에 대한 관심과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논은 그런 면에서 훌륭한 자원이며 보고이다. 논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나 기업에서 지원을 하고 논농사를 짓는 농민에게도 농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 수곡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권의 전향적인 자세를 기대한다. 그저 이익만 바라보는 돈버러지가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맑고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줄 수 있는 그런 세대의 지도자로 마음 바뀜하기를 바란다.
글쓴이 임희택(맑은한울)님은
안양시 박달동 범고개에서 태어난 1963년생 안양토박이로 안서초, 안양동중(신성중), 신성고, 한양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 대표 등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맑은한울 별칭의 논객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며 사회복지사로, 맑고 밝고 온누리를 추구하는 자칭 진정한 보수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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