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기억

[임희택]안양 더푼물 고개와 범고개 그리고 문산옥(2022.07.12)

안양똑딱이 2023. 7. 9. 21:22

더푼물 고개를 엔진을 끈 채 달려 내려와 범고개 주막거리에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지무시가 지나가자 문산댁은 하얀 신작로에 물 한대야를 힘차게 끼얹었다.

촤르륵...

한길 건너 문산옥 맞은 편에 까마득히 솟은 미류나무 중턱 어딘가에서 매미가 맴맴 울어댔다.

아직 해가 중천에 뜨기도 전부터 술꾼들 둘이 문산옥 가게 바닥에 파묻힌 항아리 뚜껑을 침을 꼴깍 삼키며 넘겨다 보았다.

문산댁이 항아리 뚜껑을 열자 시큼한 막걸리 향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술꿀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침을 한 번 삼키며

"형수, 거 시원하게 한대접씩 주세요." 한다.

이제 겨우 아침상을 물리고 설겆이를 마친 문산댁은 이른 시간에 술을 청하는 술꾼들은 타박하지도 않고 사람 좋아보이는 눈웃음으로 누런 양은 대접에 가득 담아 한잔씩 건넸다.

"아침은 들 자시고 나온건가?"

문산댁은 공대도 아니고 하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을 놓는 것도 아닌 특유의 말투로 지나가듯이 물었다.

"아침은 무슨.... 이렇게 막걸리 한잔이면 요기도 되고 그러는 거죠."

오히려 술꾼 하나의 대답은 공손하였다. 하지만 빈 속에 들이부은 술기운이 돌자 혀가 살짝 꼬였다.

"어제 곤달걀 새로 쪄놨어. 하나씩 자셔봐요. 사람이 속이 든든하게 뭐든 채우고 술을 마셔야지."

문산댁이 제법 술꾼들의 몸생각을 해주는 듯한 말에 두 사람은 작은 함지박에서 곤달걀을 하나씩 까서 입에 넣었다.

"이제 일들 하셔야지."

문산댁이 두 사람을 밀어내듯 어깨를 툭 쳤다.

". 잘 먹었습니다."

두 술꾼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쉰을 이제 갓넘은 김씨는 얼핏 얼굴이나 체구만 보아서는 일흔은 되어 보였다. 그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었는지를 그의 외모가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햇볕을 받아 달궈질대로 달궈진 한길에서는 열기를 뿜어 냈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목재를 실은 복사트럭이 고개를 향해 지나가자 김씨와 임사장은 손사래를 치며 한길을 건너 작업장으로 갔다.

그 뒤로 문산댁은 탁자를 닦고 난 행주를 빤 물을 냅다 신작로에 또 뿌렸다.

임사장이 부로꾸 공장을 내고 얼마 안있어 시멘트 기와를 찍어내기로 한 것은 타이밍이 좋았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서 얼마 안있어 시작한 새마을운동은 근동의 오래된 가옥의 초기지붕을 모두 걷어내고 값싼 슬레이트나 시멘트 기와로 바꾸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바꾸기 쉽고 값이 싼 슬레이트 지붕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는 얘기가 돌자 슬레이트보다는 다소 값이 더 나가더라도 시멘트 기와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글쓴이 임희택(맑은한울)님은

안양시 박달동 범고개에서 태어난 1963년생 안양토박이로 안서초, 안양동중(신성중), 신성고, 한양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 대표 등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맑은한울 별칭의 논객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며 사회복지사로, 맑고 밝고 온누리를 추구하는 자칭 진정한 보수주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