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에서도 한국전쟁이? (The Korean war on Surisan mountain)
ch B tv abc/ 2019.06.28
https://youtu.be/WJJFEVdPAUk?si=cdnQ4_DdYIpyNUYH
출처: 네이버 looock님(하모니카맨)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looock/60080329566
바로 내가 태어난곳은 황해도 재령군 은룡면 구연리 입니다 아주 산골마을 이죠.어느정도 시골이 냐 하면 전기도 없고 장터도 삼십리를 가야되는 아주 작은 마을로 약 삼십호 되는 조그만 동네입니다. 동네는 고지대 배모양으로 되었다하여 배형국이라고 하죠. 그래서 우물을 팔 수가없어 동네를 감싸고 도는 재령 강물을 물지계와 물동이로 길어다 먹고 사는 동네 입니다. 우물을 왜 못파는 냐고요? 우물을 파면 배가 갈아 않는다는거죠. 그래도 동네 청년들의 주장으로 우물을 팠더니 즉시 청년들이 사망하기 시작하더니 청년들이 전부 사망하여 우물을 메우고 말았습니다.
그럼 나는 이런 곳에서 1931년 11월 15일 새벽4시에 태어나 여름이면 강에 나가서 낚시도 하고 그물도 처서 많은 고기를 잡고 겨울이면 산에가서 토끼,꿩,노루,덫을 놓는 아주 개구장이였습니다.
그렇게 자라서 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잘 다니던 중 1945년 8월 15일 졸업장도 못 받고 해방을 맞이하여 학업도 중단하고 있다가 동네에서 서당이라는 것이 생겨 서당을 이년 동안 다니다 보니 면소재지에 중학교가 생겼다 하여, 중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학교 통학 거리가 6km 가까운 거리는 아니죠. 아침 해가 뜰때. 어머니가 깨우면 눈을 비비며 밥을 먹고 세수도 못하고 가다가 개울에서 모래로 이를 닦고 세수하고 다녔습니다.
당시 이 학교가 재령 제4중이였어요 당시 우리 1학년만 해도 장가간 학생이 6명이있었고, 애를 가진 학생이 두명이나 있었습니다.
참 옛날 얘기지요. 중학교 3학년 졸업반이 되었는데, 6.25. 사변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나는 농고를 지망하여 재령 읍내 농고를 갈려고 했는데 뜻밖에 학교에 군사 동원부에서 왔다며 학교에서 집에도 못가고 껄려서 장수산 뒤에 인민군 훈련소로 갔습니다.
장수산 여관에서 하루밤을 자고 아침에가서보니 병사는 전부 밤나무 밑에 나무로 만든 초라한곳이였습니다.그때가바로 추석이 3일남았고
인천 상륙이 시작되었을때죠. 훈련소에는 당시 북조선사람은 없고 전부 이남에서 의용군으로 온사람들이죠 대다수 서울대학교수와 대학생들이 였읍니다 북한 사람은 우리학교에서 간 단5명뿐이였습니다. 당시 정규인민군 8사단은 낙동강 전투에서 전멸하다 시피하여 분산되어 산에 산을 이용하여 후퇴중이였습니다 대신 하성훈련소에 있던 훈령병을 신 8사단으로 창단되어 후퇴를 시작하몄습니다. 하성에서 야간에 출발할때 비행기 폭격도 여러번 받았고 희생자도 무척많았습니다 경로는 해주,신천,사리원 황주 평양 안주,를 지나 산으로 들어 갈수밖에 없죠 도로는 유엔군이 점령하고 있기때문에 할수가없죠 산으로 들어 가면서 우리 분대 11명은 부대에서 떨어저 분대장 서울대교수 김회령이 인솔하여 북으로 가던중 북진을 지나 어느 고개를 넘어가는데 중공군이 일단 멈추고 몸수색을 하더니 평안북도 압록강변 초산으로 가면 8사단 집결지라 하며 그리로 가라고 하여 계속 후퇴하였조
그런데 한가지 신기한것은 분대장이 중국어를 잘하여 많은덕을보았죠 분대장하는 말이 당신네들이 어째여기를 나왔느냐고 뭇자 하는말이 당신네들은 이웃집에 불이붙으면 안꺼주야고 대답하는말에 마음이 이상해지데요
그리하여 북진을 거처 계속 가던중 식량이 떨어져 할수없이 민가에 들어갔더니 전부 피란가고 두노부가 있더군요 그래서 분대장이 쌀이나옥수수 좀 달라고 하니까 그런것은 없고 지과(고구마)를 주어서 조금은 삶아먹고 나머지는 배랑에 나누어넣고 계속가던중 부대를 찾지못하여 고통스러워하던중 분대장하는말이 이제는유엔군이 완전점령하였으니 더 이상 갈수가 없다고하며 자기말을 무조건 들으라며 우리는 대한민국으로 가야산다며 산에서 붉은열매와 검은열매를 따서 종이에 태극기를 그려들고 자기만 따르라는거야요 그래서 계속 따라 산으로 가던중 어떤부대를 만나보니 8사단 2연대 포중대 중대장을 만나서요
그러니 대한민국으로 오는것은 싹없어지고 소대에 합유하여 초산까지 1950년 12월 3일 도착하였습니다. 초산에는 인민군 신8사단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압록강물에 세수하고 옥옷도 빨아보았죠 또 처음으로 군복도 입었습니다. 그리고 훈련도 시작하였습니다 훈련이래야 다런것은 없고 무족건 소총 분해하고 결합하는거 다음에 사격연습 다음에 주로정훈교육(사상교육)을 많이하엿습니다
그러던중 한달이되어 서울 예술극단이 같이 있었는데 51년 1월 1일 저녘 복수의길이 라는 연극을 보여주고 이튼날 아침 남쪽으로 행군을 시작하엿습니다
북으로 후퇴 당시 고향이 상당히 멀리 생각하였으나 하루저녁 행군거리는 약100리 어느덧 고향을 지나 한달만에 51년 1월3일에 서울에 도착하였읍니다 서울 서대문에 도착하여 서울대생 집에 들어가보니 가족들은 모두 피란가면서 벽에다 행선지를적어놓고 간것을 보았읍니다 그런데 그해에 어떻게 추운지 한강이 꽁꽁 얼어붙어서 한강을 어럼위로 건널때죠 당시 전쟁중이어서 식량이 아주 부족할때입니다 그때 노량진역 주변에 쌀창고가 이섰는데 서울 피란민들이다 시집으로 올때죠 분대장하는말이 쌀창고에서 쌀두가마를 가져오면 한가마를 피란민에게 주었읍니다
그리고 또 행군을 시작하여 안양에 도착하였죠 그해는 눈이 어떻게 많이왔는지 무릅 깢이 빠졋서요 더디어 전쟁을 시작하였죠 명칭은 포병이나 포도업고 보병도 부적하여 보병전투에참석하게되었읍니다 안양에서 전쟁준비로 민간인이 쓰는 꼭광이 삽 이불을 준비하여 갖이고 수원 수리산으로 가던중 계속되는 포탄공격에 같이가던 전우2명을 일어씁니다 사람죽는것을 처음보아씁니다 그리고 수리산을 향하여 계속 행군하여수리산밑에 도착하였읍니다 도착하여쓸때는새벽4시수리산뒤에는 크다란동굴이2개나있더군요 여기가8사단2연대본부였어요 들어가보니동굴이2개중하나는 완전히인민군 부상자들로꽉 차 있는데거기에는팔다리가없고 얼굴에피투성이가 되어사람살려달 라는소리에 귀가너무따거웠어요 그리고전투배치를 받고산고지를향하여올라가는데 함박눈은펑펑쏟아지고 포탄은계속쏟아지는속을헤메며 산고지에올라가보니중공군이있더군요 중공군이하는말이우리가 여기까지몰고왔으니 이제는당신네들이 잘짘여달라는부탁을 받고임무교대를하였읍니다 호는2인1조로 되어있고 호의 깊이는2메타정도고 호밑에서한사람이 옆으로 누워있을수있는 아주깊은호였서요 이럭저럭교대임무가끝나고보니 날이훤하게새여 사방을훌터보니바로길건너 앞고지에유엔군이 진을있는데 군인들이아침식사를하노라고 왔다갔다하는것이보이고 기관총이우리를향하여 있는것이잘보이더군요 우리도아침을먹어야되는데 식사가안양에서오는데 포공격이너무나심하여 식사가오지를못하니아침밥은굶물수밖에 그런데 약10시쯤 되엇는데 값자기비행기공습이시작되고 박격포전차포 기관총공격이1시간동안되더니 비행기박격포공격이 끝이나고정찰기만공중에서비행을 하고있기에호밖을내다보니 산밑에는전차가 끝이안보일정도로늘어서있고 조금있더니군인을실은추럭이한없이산밑으로 유엔군이 얼마나많은지 숫자조차알수없을 정도로 우리고지를향하여 올라오더군요 물론우리는총은없고 중공제방망이수류탄3개씩을 갖이고있었음니다 그런데유엔군이칠부능선까지 올라왔을때 분대장께서명령을내려서요 일제히 수류탄을 하나씩 던지라고하여서 우리분대원11명은일제히 수류탄을 던지고나니 유엔군은 전부하산하여 추럭을타고 어디로 싹 사라젔어요 그때가 바로 정오12시 점심 식사하러갔나봅니다 그런데 공중에서는 비행기 육지에서는전차포 박격포기관총사격이 시작되면 호 밑으로들어가서일명씩교대로 잠을자고 일명은 분대장의지시를받고있죠 그러다보면 포격이멈추면 다시유엔군이다시 공격을 시작하는거죠 아침공격때와 같이칠부능선 까지오면 또 수류탄을 던지죠 그러면 전부하산하여 전부없어지고 전차부대도 싹 없어지고 해는 저서 캄캄한 밤이되고 비행기소리 총소리 포소리 하나도없이 하루전투가 끝나죠 우리는 때는이때다하고 미싯가루를 눈 녹인 물과같이먺고 무조건교대로 잠을자는거죠 잠은아주 꿀잠이죠 잠에서 깨어나보니 날이환히새였어요 호 밖으로나와보니 맞은편고지에서는 유엔군이식사하는것을 보니 너무도배가곺아서 눈을뭉처먺곤하였죠 어느덧해는지고 어두운데 식사가도착하였죠 이대는3일만에 맛보는식사지요 식사는꽁꽁 얼은 주먹밥 반찬은 약간에소금 그래도오랜만에먹는밥이라 끌맛이죠 먹고한잠자면날이새여10시쯤되면 유엔군에 공격이 시작되죠 하루에두번씩 공격을하죠 오후공격이끝나고해는지고 날이어두어지자 분대장께서 후퇴하라는명령을받고 호 를나와 산넘어로막뛰어가던중 분대장이다리에부상을당해 주저앉아서 하는말이나를 이러켜만달라고하여 나와병사 한명하고 이러켜주었더니 우리보다 더 빨이도망가데요 그해 눈은왜그렇게 많이완는지 눈은무릅까지빠지고 잠은오고 눈을떴다감았다하며 수리산뒤 동굴까지도착하였더니 중대장하는말이 수고 많이했다며주먹밥을하나식주더군요 참꿀맛이죠 이런맛은당해보지못한사람은절대로몰라요그리고주먹밥을먹고 분대장은후방으로후송되고 부분대장 인솔하에 후퇴를시작하여 안양에서약간에 전투를하고 노량진을거쳐한강얼음 위로건너서댐문영천고개에다 방어진을치고하루있다가다시후퇴하라는지시를받고 일산쪽으로가서 한강뚝을파서진지를구축했는데 한강건너편을보면김포비행장이보였어요 그런데 한강을내다보니뽀트한척이와있는거요그러더니뽀트에서어린소년이우리있는데로오더니 어제밤에어른이나를 태워다 주면서 오늘밤에데려갈테니 어깨에별있는사람이몇명있나 보고오라고했대요 그러면서 오늘밤에 뽀트있는데까지 데려다달라는거요 그래서 소년은 여기서는경찰 북한에서는치안대에게넘겨중었죠 다음에는이소년은어떻게된지알수가업죠 그리고다시후퇴명령을받고 문산까지갔을때 문산 근방조그만야산에진을치고있을때 전에있던분대장도떨어지고 다시새분대장을만나서요 이번분대장은북한사람인데 사상이 아주빨갱이야요 그때 나는의용군으로온전라도가고향이라는병사와같이 호 안에있엇는데 해가저서어두운데 분대장하는말이 산밑에 민가집에가서저역을먹고오자는거요 바로앞고지에는 유엔군이진을치고있는데 어떻게가냐고하자 분대장하는말이그가짓유엔군은 밤에는 꼼짝못한다는거요 그러면서 우리를산밑 민가 집으로데리고가서 문을두두리니가 할아버지가 문을열어 주더군요 들어 가서보니 할머니가 있더군요 분대장은 따발총을 드려 대고 할머니에게 밥을해달라고 하니까 할수없이 부엌으로 가서 문을열고 아궁이에 불을 부치려 하자 분대장하는말이 이놈에 할망구 죽을려고 환장했야고 소리치자 할머니는 문을 꼭닫고 밥을지었어요 그래서 우리는쌀밥을 처음으로 맛있게 먹고 남은것은 싸 갖이고 고지로올라왔죠 올라와서 호 는2인용으로 되어있어 나는 의용군으로온 전라도친구와 같이 근무를하게되었죠 그때가바로1951년 3 월이였어요 다시후퇴명령을 받고 임진강을 건너 개성까지 후퇴를했어요 개성송학산에 가니 개성시민이 식수로사용하는 아주 큰 저수지가있데요 저수지옆에 민가집에 들어가 이슬때 다시전투명령을 받고 밤12 시에공격을시작하여 개성시내를 지나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개성 삼 밭에엎드려있으니달빛은환하게 비치고 너무도처량한데 옆을보니 전우들이 삼 캐먹느라고정신이업데요 그래서 삼 이 무엇인지 알지도못하던 나도 삼을캐보니 아주가늘데요 지금생각해보니 일년생쯤 되는거요 그런것을 나도 많이 캐먹었죠 그런데 임진강 건너편에서 쏘는포탄은 게속떨어지는데도 게속전진하여 고랑포에 도착하여 임진강 뚝에다 진을치고있는데임진강을 건널수가업는거요 그래서 해가 지면 중공군이 마차에다 다리놓을 자제를싥고와서 다리를겨우놓으면 날이밝아서 비행기기가 와서 전부파괴해버리죠 그러던중 어느날 비가게속 내리는바람에 다리를연결해놓고 우리도임진강을건너는데포탄에맞은 중공군인민군 시체가임진강물을 피물로만들었어요 한편에는 이어떼가 하얗게 떠 있는것을보며 다리를건너고보니 양 길가에는 중공군인민군 부상자들이 나살려달라는고함소리가귀가따거웠어요 게속전진하여도착 한곳은 문산어느야산이었어요 그런데 유엔군이 더 이상은후퇴를안하고 역공을하는바람에 다시후퇴하여 임진강을건너고랑포에 진을치고있을때 만주에서 훈년을받은 신병인민군19 사단이 교대하려 도착하여 진지를인계하고 후방으로가던중 개성을지나 황해도평산까지가서 이모네집에 둘러 하루밤을자면서 아버지 사망소식을 처음들었죠 그리고이모가 하는말이 아래마을에 너의 약혼자가 있으니 가 보라고하여 갔더니 마을 에 전염병이 들어 출입을통제 하여서 마을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모네집으로 와서 점심을 먹고 집에나 가 본다고 장수산쪽으로 가는데 경무원[헌병]이멈추러하더니 하는말이 어디에가느냐고 하여 고랑포에서 전후방교대하고 사리원으로 가는중이라고하니까 안된다고하면서 하는말이 고랑포에도착한 19사단이 완전 포위가 됭었으니 당신네들이 다시가야 된다며 돌려 보내어 다시평산 개성 을 지나 고랑포에 도착하고 보니 중공군이 계속밀고 문산 까지갔다는 소식을듣고 문산까지 행군하여 문산뒷산에 올라가 방어중이엇는데 그때가5월초 김일성은 춘계 대공세라며중공군 인민군 총동원하여서부 동부 중부 전선에총 공격명령을 내리었죠 이번에는반듯이 서울을점령해야된다는거죠 문산에서 해가지고 어두울대 공격을시작하여 일산행주 벌판에도착 하였을때는아침새벽경의선철뚝에다 미군해병대와 한국군 일사단이 방어진을 치고이섰어요 바로그때 문산에서 분대장의 지시를 받아서요 그때가 5월 7일 적에공격을 받았을대는방향을 모르기때문에 하늘을 쳐다보라는거요 그러면 북두칠성이 보인다며 그방향으로만오라는거요 더이상은공격을멈추고 공병대특수부대가 가마니를구해다가 철조망을씨우자미해병대에 발각되어 하늘에는 비행기 육지에는 포 와기관총사격이 계속되는데 어디로 도망갈곳도 업고 하여 논 웅덩이에무조건업드려 잠이들고말았죠 얼마후 피비린내가 심하여 잠에서 깨어나 보니 인민군시체가 나를덮어 주었읍니다 그때 나는 인민군시체를 헤치고 나와보니 날은환하게 발갔는데 총소리포소리 하나 안나고 너무 조용하니까 몸에 소름이끼치데요 사방을 보니 중공군 인민군 헤아릴 수업시 깔려있는데 어떻게할까 생각해보니까 분대장 이 일러준 생각이나서 인민군 장교들 시체에서권총 두개를 떼어 갖이고 하늘을 쳐다보니 북두칠성이 보이고 멀리 문산쪽으로 어렴푸시 산이보이더군요 그래서 처음에는 업뜨려서 기어 가다가 벌판중간줌 가서 에이 이판사판이다 하고 서서 산밑에 까지띠어서 도착하여 문산쪽으로 가는데 옛말에 가뭄에 콩나듯 나처럼 가끔 산 중공군 인민군들이 후퇴하여오는데 그 길목에서 인민군 경무원이 오는대로 직결시켜서 뒷산으로 올라가서 보니 인민군분대장 1명 인민군전사 전라도사람하고 나하고 일조가되어 우리두리 호 에서 방어하고 바로옆에서 분대장이 지시를 하고있었죠 그러다보니 오늘해도지고 그리고 밤도지나고 아침 해가 떠올라오던군요 그런데 산밑을 내려다보니 도로가보이는데 도로에는 유엔군탱크가 끝이안보이게 와서 있더군요 웬일입니까 갑자기 공중에서는비행기사격 육지에서는탱크포사격 맞은편산에서는 기관총사격을 하니 정신이하나도없는거요 그런데 마침 분대장하는말이 호 에서나오라고 항여 나와서 셋이서 산넘어로 후퇴를하는데 산밑에가 밀밭이어서 밀밭으로 숨어서 뛰는데 비행기기관총 사격이 계속되는데 분대장이 아이코하고 쓰러지더니 하는말이 내팔좀 무꺼달라고하여보니 왼팔에 부상을 입어 피가 막흘러더군요 그래서 분대로 묶어주었더니 자기혼자 막 도망가데요 할수없이 밀밭을 빠저나와보니 시골부락이잇데요 그래서 시골부락으로 가던중 길 옆에방공호가 있어서 들어가보니 밑에는물이있고 그위에는나무가 걸쳐있데요 거기에서 귀순을 결심하고 의용군으로온 병사와같이 자기고향으로 가면 자기네집에서 가치살기로 하고인민군 옷 모자 총 실탄을 전부 물속에 넣고 둘이 다 잠이들었죠 깊이 잠들어있는데 여자의비명소리가 들리어 밖을 내다보니 웬아주머니가 사람살리오하며 도망가는것을 따라가면서 우리는나뿐사람이아니라고 하였더니 아주머니하는말이 따라오지말고 방공호에가서 있으라는거요 그래서우리는 방공호로와서누워잇는데 얼마후어떤남자 가오더군요 당시에는 이런것을 신고하면 보상금을준다고하데요 이 남자오더니 나오라고하여 나와서 그남자집으로딸아갔더니 이 남자하는말이 조그만태극기를 두개갖다 주면서 하는말이 국군이나오라면 태극기를들고 나오라고하더군요 알았다고 앉아있는데 갑자기배가고푸지뭐요 긴장이어느정도 풀려다는거죠 그래서그남자를불러서 우리가배가고파서죽게서니 방공호에 가면쌀주머니가 두개있으니 갔다가 밥좀해줄수있느냐고 하니까 해준다고하더군요 고맙다고하고 서로태극기를머리위에두고 잠이들었죠 그런데아저씨가 문을두두리더니 식사하라고하더구요 이러나보니 큰 양푼에 흰밥하나하고 새로자란마늘에고추장을갖이고와서 하는말이전쟁중이라 반찬이없다고하몀맛있게많이 먺으려고하데요 잘먺엤읍니다하고 몃달만에 쌀밥을보니 혼자서도 다 먺을것 같은데 막상먺어보니 세숫가락도 못먺고목이메어 아저씨에게 조금있다가먺겠다고하고 또 잠이들었죠 그런데이게윈말입니까 갑자기방문을확열고 한국군두명이 총을드려대고 빨리나오라고 소리치는바람에 잠에서깨어나 나갈려고하는데 내 머리맡에 있던 태극기가 없는거요 의용군친구가 내 머리우에잇는태극기를 먼저갖이고 나가서니나는어떻게하나요 한참방을찾아보니 의용군친구머리위에 태극기가있더군요 그래서태극기를갖이고 나갔더니 한국군하는말이 경상도말로수고들햇데 하면서 방공호로가서 웃 옷을입고 총과실탄을꺼내서 총 을우리한데주면서 총 을메고가자고하면서하는말이 이틀전에여기서싸웠지그러데요 그말을들으니방공호에서2 일을잦다는것을알았죠 그리고산으로올라가는길에 움물이있는데우물가에서 아주머니들이 물을퍼고잇데요 그래서국군서생님 우리목이마르니 물좀먺을수없느냐고그랬더니 무거라 무거라 하더군요 아주머니한분이물을주면서하는말이전쟁때문에 이런어린사람들이고생한다며 눈물을 흘리데요 어머니생각이물큰나데요 그ㅡ러면서도 사랑방에두고온쌀밥이 너무아쉽데요 아주머니가 깡통 드레박 하나를 다 마시니 만사가부러울기 업데요 그리고산고지를따라 올라 가 보니 이틀전에 우리가 있던곳이데요 한국군대위가 수고들햇어요 하면서 악수를청하더니 화랑담배하나를 불을부처주는데참으로고맙고 담배맛은 아주꿀맛이데요 이제는살았다는생각 에 의용군친구에게 너의집에 가면 먹여살릴수 있느냐고하니까 이 친구하는말이 자기네집이 무척부자라며 걱정말라고하여 이제는전라도로 가는생각만하고있는데 이게윈말입니까
중대장하는말이 너이들은 이제 포로수용소로가면 아주 편한생활을 할것이다 하면서 너이들총을 메고 저 산밑으로 내려가라고하여 내려갔더니짚으차 한대가있더군요 차 옆으로갔더니 지금알고보니 일등중사 가내리더니 무조건 이새끼들고향이어디냐고하여 황해도재령이라고하였더니이놈에새끼 내가 황해도 시촌이다 그러면서 뭘하다이제오냐며 너이들한국군 얼마나 죽였어 하면서 칼빙총으로 마구때리더니 쏴 죽인다고 하며 총을앞으로대더군요 인ㅁ민군에있을때한국군에잡피면 죽인다는말이 사실이구나 하면서 이제는주었다하였죠 그런데 논 가에물이흘러길래 국군선생 으리죽기전에 세수나한번학게해주세요 그랬더니하는말이 그해내려가서 세수하려고하는데갑자기 총소리가빵하고나는거요 그래서이제는죽억구나하고 논 뚝을바라보니 노 뚝위에 인민군 부상벼이둘 이이섰는데 그만그총에맞아죽어서요 그래서 우리는 세수돔못하고있는데 한국군하는 말이걱정마라 너의들은 안죽인다 저것들은 부상이심하여 살아도고생이니 여기서죽는것이 편하다며 너의들은 편한데로보내줄테니 걱정말라고하여도 안심이안되고 불안하데요 그리고찌프차에 태ㅐ우더니 어디로 갔는데 시골부락이였어요 그기가대대 본부였어요 그때가막 점심시간잉였어요 차에서내려주더니 한국군상사에게 인계시키고 일등중사는 가버리데요 우리는배가고파 죽겠는데 한국군상사 우리를세워놓고 총검술연습한다며 우리총을갖이고 기압소리를내며 우리를개머리판으로 치면서 장난하던중 대대 장이 가죽으로된채직을 갖이고나타나니까 차렷자세로 경례를부치데요 그때 대대 장은우리를총으로 때리는것을 보았어요 대대 장우리에게오더니 점심먺었야고 하여 못먺었다고 하니까 상사를부르더니너 하는일이 뭐야 포로 밥도안메기고 무슨짓이냐며군화발로차고가죽채직으로 막때리는데 약간미안하데요 대대 장하는말이 30분내로식사시키라고 하자 상사가시골집 부엌으로가더니취사병에게 30분내로 식사끗나게 하라고하느가취사병하는말이 밥이없다고 하니까 대대 장에게맞은것만치 취사병을때리데요 그러자서울에서포로를빨이보내라는연락이와서 우리는점심도못먺고어울서대문형무소로왔지요 형무소에 도착 하니벌써 30 명정도 와서있더군요 우리둘이도 거기에합처서요 건물아래 층에 침실이마루로 되어있는데 들어가자마자 국군감시병이 발싸게를 제발좀 빼서 쓰레기통에 버리라는거요 그래서발싸게를 빼 버리니 어떻게시원한지 살것갔데요 그런데5명씩 호명을하더니 이층으로올라오라고하여 오라갔더니 앞 벽에는 인민군소총두자루를깨끗이닦아서걸어놓고 소총아레에는인민군장교 복을걸어노았더군요 정신이어떨떨 한데 내이름을부르데요 그래서 책상 앞에않잤더니 심사원하는말이 내가하는말에 솔직이대답안하면 여기서사형한다는거요 그리고 질문이시작되는데 첫번째인민군 소속 계급 포로당시 장소 군사물자를어디에 주로어디에숨기는지 정확하게대답하였어요 그런데이게 웬말입니까 너는이제 사형이야 마지막으로 하고싶은말이있으면 다 하라는거요 그래서할말이없으니 죽여주세요 하고눈을감았죠 그러더니 권총에시탄장진 하는소리가들니더니 이제하나 둘 셋 하면 죽는다고하여 완전이 죽는다하고정신없이 눈을감고 있는데한나 둘 셋 소리가 들리더니 빵하고소리를 내데요 거러더니 어깨를 두두 리며 하는 말이여기꺄지오느라고 수고했어 하면서 자유담배하나를 불을붙어주데요 그러면서 하는말이 [시 아이 시]지금주앙정보부 에서 온 사람이라며 빨갱이 잡는귀신이라며 너는빨갱이가아니기에 이제 거제도포로수용소로 가면 아주편한생활할테니 그리알고 가서잘지내라고하여도 항상 나의마음은 죽은목쑴 같아서요 그리고 심사가 끝나고아렛층으로내려오니까저녁때가되어서 저녁식사를주먹 밥으로주데요 그것도꿀맛이죠 그리고 또 건빵한봉씩을주데요 그래서건빵을 머리위에놓고 자다가 건빵이먺고싶어서 건빵을먹으려고 건빵을잡는데 경비병이와서 내 손을꼭잡는거요거러더니건빵을보고 먹어라 먹어라 하여 건빵한봉을 다 먹고 잠이들었읍니다 아침이발갓읍니다 또 군용트럭에다 태우더니어디론가 가더니 대전형무소에내려놓터군요 형무소간빵에 들어가자마자 기독교선교사가와서 사람사는이야기 고통과 행복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때서야 마음이조금 안정이되데요 그리고 하루밤을자고 다음날에는 기차를타고 부산동네 수용소에도착 하였읍니다 도착하자마자 중국소대 이남소대 이북소대 분리하는거요 거기에서전라도 친구는 헤여젔어요 그리고나더니 먼저온사람들이 중국소대장 이남소대장 이북소대장 들이 통솔하고있더구뇨 그리고 밖으로 집합시키더니 입고온 옷은 신발서부터 모자까지벗은 옷은 저부 불태우고 홀랑벗고우선 디 디 티이 약을먼저뿌리고 머리를삭발하고수용소를한바퀴 돌기 시작하면 신발서부터속옷다음에옷두벌담요두장을주는데 옷에는 p w 영어로 전쟁포로라는뜻이죠
솟에는 전부검은 페인트로 pw 라는도장을찍어서주더군요왜그러나했더니 미군들이 부산항에 하역작업을 나갈때도주할우려도있고 또 민간인에게 팔아먹는다하여 꼭 도장을찍죠그리고나면 이제는완전포로가되는거죠그때부터 군번처럼 포로번호가 주어지죠 나의 포로번호가 138000 번 이것을주면서 꼭 외워두라는거죠 다시여기서부터 단체생활이시작되는거죠 소대장 분대장 이 사람들이 통솔하는거요 여기서부터 미군 의 지시를받게되는거요 미군들은 이름대신 포로번호를 부르죠 왜 야하면 이름은발음도 잘안되고 사람 확인하기가 어려우니까 꼭 포로번호를부르죠 그런데 자유가있어서 좋긴좋은데 잠자리가무척불편해요 24 인천막에 50 명씩자야되니 저녁점호시간에는빼국이 섯다가 추침하면 그대로안자서 자고 아침에깨여보면 반은밖으로밀 려나가요 그리고아침점호를하죠 밤상이 도주핸포로 가없나 하고점호를하죠 점호가끝나면 아침식사를해요 주식은 너무나 좋아서요 안락미쌀밥에 생선소고기통조림국 이였으니까요 그런데밥그럿이없는거요 숫가락과훠크는있는데 밥그럿은 내가해결해야돼요 밥은식당에서 나오는박스나종이를찌저서받음면되는데 국은 바들수가 없으까 거데기만받게되죠 구물이어떻게먹고싶은지 그래서생각을했어요 인민군있을 때 띠던허리띠를 주방장에게주고 통조림깡통을 얻어서 국을받아먹으니 얼마나좋은지 너무나즐거웠어요 그런데 이게 윈말입니까 밤에 잘때 깡통을 천막 기둥에다 걸고 잣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깡통이 없는거요 다른 사람이 먼저 갖어 간거요 얼마나 서운 한지 어떻게 말로 다 하겠읍니까 이제는 거제도로 가야되죠 매일 포로병이 오는데 2000명이되면 배에다 싥고 거제도로 가는거죠 나도 이제는 거제도에 도착 하였읍니다 도착한곳은 83캄파운트[여단] 이미먼저 온 사람들이 질서를 잡고 있더군요 울타리는 철저망이 이중으로 되어 있고 사방에는 기관 총과 겨비병이 주 야 로 철저한 경비를하고 있고 정문에는 박에는 미군 안에는 포로병이 경비를맡고 있더군요 우선 들어가서 2대대 1소대로배치를 받았읍니다 배치받고 들어가니 우선 밥그럿국그럿 그리고 수저하나 훠크 하나를 받았어요 천막에는 24명 씩이고 소대장 지시를 받아야되죠 짐을 풀어놓고 수용소 밖을 나가 보니 무척 널분데 커다란 식당 의무실 화장실 세면장 이 있는데 식당은 지붕이 있는데 화장실과 세면장은 지붕이 없고 화장실은 도라무를 반 짤라서 놓고 그위에 베니야판을 깔고 양변기모양으로 구멍을 뚤러노았더군요 처음에는 변보는것이 익숙이 안되어 위로올 라가서 변을보고 했는데 얼마안가서 익숙해지데요 수용소자리는 논 바닥이어서 습기가많은데다 가마니 한장씩을 깔고자니 이질병이 많이걸리데요 이질병이 그렇게무서운것을 그때알았어요 아침기상 시간에 못이러나는 사람은 전부 죽은사람이죠 이질 병으로 많이죽어서요 지금도 포로들의 묘지가있을거요 묘지에는 다음에 묻을우덩이가 항상대기 하고 있어지요 묘지는 묘 가잇는것이아니라 평지로 해놓고 펜말에다 이름과 포로번호기록되어있지요 세월이 너무오래되어 지금도 팻말이있는지모르겠네요 미군들도 이질때문에 상당히 고민끝에 시체해부를많이 하더니 일년후에 약이캡술로 나오데요 약이나오고부터는 이질걱정은싹없어저서요 그때부터 포로들을 놀리면 너무고민끝에 머리가돌아버린다하여 매일같이 작업을 시키는거요 작업은 앞으로막사 지을돌을산으로가는것 인분 도라무를 메고 바다로가는사람 그리고 나머지는 수용소 내에청소를하지요 그래도 머리가 돈 사람이 무척많이 있었어요 그때는 우리에게 보급이 너무많아서 옷도 담요도 신발도 남아돌기 때문에 돌산으로 작업나갈때는 옷을 두벌 껴입고 나가지요 그러면 민간인 엿 장수 아주머니 들이 숩속에숨어있는거요 그러면 미군몰래 옷을 벗어 숩속에다 두면 엿 50개를 숩속에다노아두면 우리는그것을 갖어오죠 그런데 6개월이 지나니 엿이 반으로줄어버리는거요 그러니 그 당시엿장수아주머니들은 돈많이벌어설거요 그리고포로 간부들은 옷 큰 뭉치를 한국군과 약속하고 철조망밖으로 내보내면 한국군은 스피야캉 물통에다 [소주]막 소주를하통 넣어 주지요 그러면 우리들은 소주한잔에 담배 10개를주고 사서 먹곤 했지요 이래저래 포로생활에 익숙 해저서 생활하기에는 편해젓는데 바로그때 휴전회담에서 포로 자유송환이 결정되 는 바람에 친공과 반공포로 로 갈라 논는심사가 있었는데 묘하게도 친공포로 수용소에 반공포로가 잇고 반공 포로 수용소에 친공포로 가있어 수용소안에는싸늘한 냉기가 돌고있어서요 마침 내가 있는여단에는 여단장이 반공포로여서 친공포로들은 아주고통스러웠어요 왜야하면 친공포로로 탄로가 나면 밤중에 끌고빈천막으로 가서 꼭괭이자루로 때려죽이넌 거요 그러니사람속은 알수가없지요 누가 반공이고 누가 친공인지 어떻게알겠어요 그러나묘하게 친공을잡는수가 있데요 수용소 안에도 사회 에서 청치하는것 과똑 같아요 반공포로 일행들이 주권을 잡고 잇기때문에 중대장 소대장 경비[경찰]들이기때문에 밤에 추침시간에 경비가 순찰을돌죠 그때친공포로는잠고대를하죠 어떤잠고대야고요 자기가 인민군에 있을때사용하던[김일성노래북한친공구호 를잠고대로 하면즉시잡아다 죽이는거요 그리고 빨갱이잡는것이 또있어요 무었이야하면 친공포로들의 팔이나등에 문신안핸사람이 없어요 주로 김ㅇ일성장군만세 또는 인민군만세들을했죠 그래서 이문신을지우려고 바늘로 콕 콕 질러서 피를빼데요
그래도 문신은 완전히 없어지지 는않아요 이런사람들은 저부 잡아다 무자비한고문 끝에 반공포로로 전환한 사람도 있는데 이런사람들은 사회에나와도 온전한사람이 못되었을거요 그러던중 유엔군 측에서 치 반공 포로를 구별하기위하여 심사위원 들이 수용소에도착 하였어요 우리들은 아침을일찍 먹고 연병장에 모여 줄을서고있는데 3000명을 심사하는데 하루가꼭 걸리데요 심사석이 10군데인데한번에10 명씩하는데 여기에서 북으로 간다면 친공포로수용소로 보내주지오 여기에서는완전 자유지요 그래서 친공포로들이 친공 포로수용소로 많이갔어요 그대신 친공포로 수용소에 있던반공포로도 들도 우리수용소로 많이왔어요 그러니 서로 반공이니 친공이니하며 서로 죽이는바람에 많이죽어서요 여기서죽은시체는 어떠헤됐을까요 밤중에 도라무로만든칼로 토막을처서 인분나가는도라무에 넣어버리다가 미군에게 발각되는바람에 그렇게도못하고 빈 천막말하자면 사형장이죠 거기에다땅을 파고 묻어서요 아마 지금도 거제도 그 천막밑에는 그렇게 죽은 시체들이 잠들고있겠지요 그러니 북한에 있는가족들은 얼마나 기다리고있어설까요 우리한번 생각해보고 이땅에서다시는 전쟁이있엇서는 안되곗읍니다 이제는완전이 질서가 잡히어서 조용하고편한 생활이 시작되었죠 우리는 반공포로 수용소기때문에 정부에서 민주주의에 대한서적을 많이 넣어주고 오락 노리 화투 마작 바둑 장기 외에도 여러가지를 많이넣어주었어요 그렇게 행복하게 보내는동안 마작 도 배우도 화투 뜨게질도 뱅ㅇ웠어요 사람들 각자 취미대로 오락 도 하고 물건을 뿌서서 장란감 도 만들고 사지 옷을 찌저서 올을 풀어서 모자 장갑 양발 을 만드러서 팔곤 했지요 수용소 내에서는 화폐 대신 밤배로 통하지요 보통 모자 장갑은 담배두갑 씩 팔아서요 수용소 내에서는 돈도 담배 몇갑 이렇게 하지 돈으로 생각 하지를 안해요 그런데 평화 로운 날도 얼마 ㅇ안가서 1952 년이되어 여름이었는데 밤중에 갑자기 김일성 인민군 노래 가요란하게 나는거요 바로 우리수용소 길 하나 두고 공산군 수용소 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포로들이 이마에다 불근 글씨로 전투라고 쓴 머리띠를 수용소를돌며 북한노래 를 부르는거요 깜짝 놀래서 요 인민군이 거제도를 점령했줄 알앆어요 날이 새고 아침이되자 공산군포로 수용소를 탱크 와 장갑차로 완전히 포위하고 공중에는 헤레곱트 가떠서 지상탱크 부대와 무선연락 하는소리 전부 들리어 전쟁이 난줄알았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그때가 5월이였는데 공산 포로 경비병이 포로 수용소 소장 도 드준장을 납치해 강금 해놓고 포로들의 요구조건을무조건 들어 달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리고 얼마후 탱크 장갑차 가 포를 쏘면서 공산군포로 수용소를 공격하는거요 그릭고 채류탄과 연막탄을 뿌리더니 마군들이 방독면을 쓰고 수용소안으로 들어 가서 포로들을 전부 연병장으로 끌고나와 양손을 머리 위에올려 놓고 쪼구려안쳐놓데요 문론 죽은사람도 많이 생겼죠 숫자는알수가 없네요 얼마후소식이 들어왔는데 도-드 준장이 석방되었다는거요 다행으로생각하였읍니다 그리고나서 포로수용소 소장이 바뀌어서요 그때부터 치공 은 물론 반공포로수용소도 냉기가 흐르기 시작하는거요 그리고 얼마안가서 주식도 틀리고 보급도 완전히줄었어요 그리고나서 얼마안가서 새로온소장은 포로들을 한군데다 너무많이 수용하여 이런사건이 난다며 포로들을 500 명단위로 분리수용하기 시작하였어요 나는그당시 경상도 영천으로 이송되었죠 와서보니주식 은 보리쌀대신에 통밀을 주는거요 통밀을쌀마주니 소화가전녀 안되고 통밀그대로나오는거요 그래서 미군에게 항의를하였어요 우리도사람이니 밀을주지말고 쌀로달라고 하였더니 상부의지시라 절대로 안된다는거요 그래서 할수없이 그러면 밀을제분소에서 갈아서 밀가루로 달라고 하였더니 그렇게하여준다며 영천제분소에맛꼈더니 제분소에서 일하는사람들이안좋와여 왜야하면 포로들거라 하여 밀을갈아서 가루는팔아먹고 밀기우리에다 가루를약간 섞어서보내는거요 그러나통밀보다 좀 낫긴 나흔데 그래도먺기는 나빴어요 그래서미군에게 얘기를했죠 제분소 사람들이 가루를빼먺으니 우리 포로대표를감시 하게내보내달라고 하였더니 그렇게하여주던군요그런데 그 사람이 그사람이야요 모처럼 갗쳐있다가 제분소에나가니얼만아 좋겠어요 제분소사람들이 담배도주지 술도쥐맛 있는거를사주면서 꾀우니 넘어 갈수밖에없죠 그러니감시가소을해질수 밖에없죠 그래서이사람들도 철수시키고말았어요그리고 또 이동준비를하라고하여 이동준비를하였더니 이번에는열차를타고마산에도착하였읍니다 마산해변가에수용소가 완전히 준비가되어있더군요이제는천ㅁ막이아니고 벽은 돌로 쌓고 지붕은 스레이트로된 아주좋은막사였어요 내부도 현재 우리군인들이 쓰는병사와 똑같았어요 그때가 1953 년 판문점에서는 휴전협정이 막바지에있을때죠 마산 시민들은 매일같이 휴전반대시위를하는거요마침그때 이승만대통령께서결단을 내려서요 반공포로는 공산 치하에 보낼수없으니 대한민국 국민과 군인들은 반공포로석방에 많은협조를 부탁하였읍니다
그리고 6월 18 일영시를기하여 헌병사령부에 반공포로를 완전 탈출 시키라고명령을내렸읍니다
그때 대한민국은 민 관 군 은모두완전바상이었어요
그날밤은 한국군과헌병들이 계속 순찰을 도는거요왜야하면 미군들의경비를막기위한전술이었어요 때는그날저녁 헌병중대장으로부터 쪽지 한장과 철조망끈는 뺏지 두개가들어왔어요 쪽지내용에는 6 월 18 일 0시로 되어있는데 수용소대표는 0시를 2시로잘 못 보았죠 아주커다란 실수였죠
부산 과주 영천 거제 수용소에서는 18일 0시에 모두 탈출하였는데 우리는2시를 기다리고있는데 미군경비병들이수용소전체를와전포위하고있고 한국군도 계속순찰을강화하고있는데 시간은 2시가 되어수요소대표두명이 철조망을끊기시작하고 우리들은잠도안자고 탈출준비를하고있는데 철조망 다 끊고 탈출구멍이완성되어 선발대가 탈출을시작하는데 미군이 한국군경비병을 모두몰아내고 탈출하는구멍에다 대고 기관총을쏘기시작하는거요
헌병중대장이보낸쪽지내용에는
'여러분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 되니 탈출항여바다가로 나오면 해군군함이 대기하고있으니 그리로오라'는내용이었읍니다.
우리는어떻게해서라도 탈출하려고 철조망구멍으로 몰니는데 기관총 사격이 계속되어 시체들이철조망구멍을막자 더 이상 나갈수가 없자 우리는할수없이 철조망에 담요를 씨우고 탈출을하기지작하였죠 사방으로포로들이탈출하니 미군도 다황하였죠 마침 전쟁터가 되엇서요 그러자미군은 채류탄을쏘기시작하는거요 우리는모두 수건에다 물을적셔 입막고 마루밑으로 들어가업드려서 정신을일코 말았읍니다 얼마후 정신을 차려보니 날이 환하게 밝았더군요 마루밑에는 아직도 채류탄에서 못깨낸 사람이 많았어요 시간이지나니 전부깨어나서 목욕들을 하고 아침식사를끝내고 미군들이 들어와서 인원 파악을 하는데 500 명중 150 명밖에 안남았어요 미군 의 가 없어 너털웃음을 지며 이제는절대로 나갈생각 을하지말라고하고 영내 청소를 시작하는데 시체치우는 작업을 하루종일 걸려서요 싳체는 미군 추럭에 실려보내서니 어떻게 된지 알수가없네요 이런것은 지금까지도 아는사람은 하나도없겠지요 사람의 목숨은 이렇게 가치가 없네요 그러나 산 사람은 살아야죠 몇일후 간첩소행인지는 알수없으나 쪽지한장이 수용소안으로 날라 왔어요 내용은 이렀읍니다 미군도 이제는얼마 안 남은 포로 두면 무엇한야 하면서 우리가 못본척 할테니 오늘저녁 8 시에 소집품 전부 갖이고 정문으로 질서있게나가라는거요 그래서 이렇게 행운도 있구나하고 소지품 빽 두개에다 먼저탈출한 사람 죽은사람들물건까지 빵 빵 이넣고 저녁 8 시만기다리던중 마침 8 시가되어 전부 정문앞으로 모여서 선발대가 정문을열고 나가는데 이게웬말입니까 미군이 무차별 기관총 사격을하여 살상 되고 부상자도 무척많이 생겨서요 할수없이 수용소 생활을 하고있는데 매일 같이 두명에서 열명 씩다시 잪여오는거요 잪혀오는사람은 무척재수가 없는사람이죠 잪혀온사람의 말을 좀들어볼까요 포로들은 웃도리를 매일같이 벗고있기 때문에 어깨에 난닝고자리 가있어포로표시가난다는거요 어떤사람얘기 아주 재미있어요 시골민가 집으로 들어 갔더니 주인아주머니가 하는말이 미군이 오니 부엌에 나무단에 숨으라고 하여 숨어 있는데 미군이오더니 시골 아주머니에게 까뎀 하면서 총을드려대니 아주머니 손가락으로 우리잇는데를가려키는거요 미군이 나무단을 총으로 치우는바람에 다시잡혀 왔다는 얘기를 하면서 시골아주머니를 원망하데요 아무리 이장님이 포로를 숨겨주라고 하여도 완전무장한 미군이 총을댈때 얼마나 무섭고 놀랬을까요 지금도그아주머니 가 살아 계심면 이런얘기를 많이하겠지요 그러던중 휴전회담은 성립이되었지요 휴전협정 내용에 당신네가 반공포로라고 하지만 우리는 믿을수가 없으니 [현재판문점]중립 지대에서 100 일간 우리가설득을 하기로하고 휴전이조인되었읍니다 휴전회담이 조인되자 우리는마산에서 부산 가야산 수용소로 직결하였읍니다 가야산수용소는 철조망도 아주낮고 경ㄱ계선으로만 되어있어 아주자유스러웠어요 앞으로 판문점에 설득받으러갈날이 일 개월정도 남았을때 하얀쌀밥과 부식도 매일같이 생선 과 소고기 국으로 메기고 당시에 미제 까통 우유를 하루세번씩 메기니 사람들이 얼굴이 뽀얗게 살이찌데요 그렇게 세월이흘러 판문점으로 가게되니 속옷서부터 것옷가지 갈아입히고 아침일찍이 부산진역으로 가서 열차를탓는데 아주열차도 ㅌ특급열차에 타고갈때도 물도따뜻한물에 씨 레이숀도 따뜻하게 데워서주고 우유도 따뜻하게 데워서주었어요 그렇게도착한곳이 지금임진각에 도착하였읍니다 여기서부터 중립국 인도군에게 인계를 하는데 지금의자유의 다리가 그때만들어진곳입니다 모든포로 교환이 이 다리에서 이루워지었지요 우리도이때 이다리에서 인도군에게 인계가 되는데 자유에다리에 하얀페인트로 원형을 5개 그려놓고 그원에 들어 갔다 나가면 인도군에 가는거죠 이원이 왜그려전냐하면 인원파악학이쉽게 그린겄이었어요 그때 그래도 미군하고 3년이나 이섰는데미군이 손을흔들면서 도라서는데 가족을떨어지는것 같아서 눈물이막 흘어데요 여기서부터미군과는와전히 헤어지고 이제부터는인도군하고 생활하기위하여 지금 도라산역있는데로 천막을치고 인도군과같이 생활을시작하였죠 당시 수용소 안에는 4군데에 망크 가설치되어있는데 아침 점심 저녁 으로 인민군이 집단설득을하지요 주로하는말이 당신네들 부모 형제 처자가여기 개성에와서 당신네들오기를 기다리고있는데 미군압자비 이승만 정부의 말을 믿지말고 지금도늦지않으니빨이 오라는소리를들으면 집으로가고싶은생각도들지요 그러나여기에도 완전반공주의자들이 주권을잡고있기때문에 그렇게 맘대로북으로 가기에는쉬운일이아니지요 함부로 북으로갈 말 을 했다가간부들에게발각되면 처참하게 목숨을일고 마는거요 여기는법이없기때문에 죽어도 호소 할떼가 없어요그러니 말과행동을 조심해야되지요우리는반고포로기때문에 여기에서도 대한민국 정부의 지시를받고있기 때문에 신문이나 라디오를 들을수가있지요 그래서 정부에서매일같이 지시를 해주지요 우선 여기에는 당신네들세상이니 당신네들이하고싶은대로 해도어떤나라사람도 간섭을못하니 당신네들이하고 싶은대로하고 백일을 기다려주기바란다는지시이죠 그러니 우선 수용소 내에 스피커 4 개에서 나오는소리를 소리들리지않게 진흑으로 틀어막으라는거죠 그래서 스피커를 진흑으로틀어막았지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공산군앞으로 설득을 받으러 지금 판문점으로하루에약 200 명정도로알고 있는데 일단아침식사를끛 내고 판문점으로가서 일단 1 시간동안 집단설득을받고 개인ㅅ설득을받으려 들어갑니다 한사람설득 시간은 3 분이고 설득이끛나면 천막뒷문으로나가면 남 과 북 이라는화살표가있는데 북으로 갈려면 북이라고된 화살표쪽으호가면 북으로가고 남 으로 된화살표쪽으로 오면도로 우리수용소로오는거죠 설득장소는 24 인용 천막 입구에들어 가면 인도군이양쪽에 서 서 있고우측 책상에는 인민군장교가 안자 있고천막 안에는공산측 기자 대한민국 기자 그리고 전 세계기자들이우리하나 보고 천막이 꽉 차 있고 기자들의 후라시는 계속터지는데정신이 떨 떨하더군요 여기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지시를 받죠 내용은 당신네들은 재판관이다 설득장소에서 인민군장교 께급장 또는 모자를뺏고 뺨을때려도어떤사람에게도 제 제 를 받지안 는다고하고하면서 그럴용기가 없으면 북으로 갈것처럼 하면서 시간을 지연 시키라는거죠 시간을오래끌면 하루에 설득할사람이많이 줄어들기때문이죠 그래서청음설득 조 는힘도세고 반공정신이 아주 투철한 사람으로 선발대가 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인민군장교의 껜장과 모자를베끼는 소동이일어나자 설득은중단 됭었죠 사실 말이그렇치 연극도 아니고 쑈도 아니고전 세께 기자들앞에서 인민군들은얼마나 망신을당했읍니까그래서 설득은중단되고 판문점에서 유엔군과 공산측이 회담을하여 설득받으러 들어갈때 인도군이 양쪽팔을 잡고 인민군앞에서 설득을받았죠 그러자 대한민국에서는 인권유린이라며 인도군은 중립을지키라며 설득을중단시키었죠 이래저래중단하다보니 설득날자가 거진 다가왔읍니다설득날자는 100 일인데 96 일이지나자 공산측에서더이상 설득을취소하였죠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54 년1 월 20 일 0시를 기하여 대한민국으로 데려간다는합의를하고 우리에게 20 일아침식사를 끝내고 대한민국으로 올 준비를하라고하여 우리는아침식사를끝내고 천막을전부불태우고 소지품을 빽에다넣고 20일 영시를 기다리는데 비무장지대라 조용한데 공산군 측에서 마지막설득 방송을 계속하는데 내용은 당신네들을 부모 형제 처자 가돌아오기를 개성에서 기다리고 있는데가족 생각도 눈물도 없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서니 빨리 북으로 오라는 방송을 남자가한번 여자가우는목소리로 하는소리를 들을때 그심정을 무었으로 말을 다 하겠습니까 그러던중 시간은 흘러 20 일영시가되자 인도군설하에서 벗어나 한국군에게 인께되어 얼마정도 걸어나와보니 열차가왓서 대기하고있더군요 제가타는열차가 5 열차였는데열차는아주초라하기 한이없어요 판문점에 올때는특급열차였는데 이번에는정반대였어요 열차는화물창ㅇㅇ였는데 그나마 가축을 실고 다니던화물 칸이라 우 마 배설물냄새가 코를찌르는거요 그래도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이 된다는기분에 기뿌기만하였죠 도라산역을 출발하여 용산역에 도착하였을때는 약 2 시가량되었는데 환영객이 얼마나많이 나왔는지알수가없을 정도로 나와서 과일과 핞은 음식을 넣어주면서 만세를불러주니 너무나 흐뭇했읍니다 그리고 브랭카드를 보니 기달렸소 잘왔소 반공 애국청년 이라는글을보고 신문을보니 여러분이 잘삸수있는 보금자리와 편이 살수있게 도와드리겠다는 기사를보니 너무나 좋았읍니다 그렇게 기차는 밤새도록 달려 대구에도착하여 많은 환영을받고 출발하여 어느덧 포항에도착하였을때 는동이트는아침이 었읍니다 도착한곳은 포항보충대였읍니다 연병장에다 천막을치고 휴식을취하는데 사회생활은 처음이라 아무것도모르는 저는 같이다니는형 서정길 양덕맹산사람인데 백혁업 장군과 국민학교동창이 었읍니다 이 형을꼭 따라다니는데 형하는말이 오늘저녁에놀러나가자는거요 그래서그러자고하였더니 나갈때담요한장을갖이고하여 해는저서어두운데 담요를갖이고갔더니 상인에게주고 돈을얼마받았는지도 저는모르는데저를데리고 바다가판잣집 술집으로 가는거요 그래서따라갔더니 한복을입은예뿐 누나들이 친절하게대해주며 술을따라주는거요 술못마신다고 그랬더니 이럴때한잔마시고 노는거라며 술을억지로먹여 이세상에태어나 처음으로 술을먺었읍니다 그런데형 하는말이 귀에다대고 소변보러간다고하고 뒷문으로나가면바다가로해서 보충대로가라는거요 저는아무내막도모르고 형이하라는대로 뒷문으로나갔더니 바닷물이빠젔는데 뻘이발목까지빠지데요
그런데조금있더니 술집주인이거기서라며 소리를치는거요 그러자 형이벌써나와서 보충대쪽으로가면서 빨리 따라오라고하여 뻘늘빠지며 보충대로들어가죠
들어가서 형얘기를들어보니 술값이모자라서 도망친거요
지금생각하니 너무나미안한생각이드네요 술집주인에게 지금이남아 용서를빕니댜
지금이라도 그술집이있다면 꼭 술값을갑파주고싶은심정이네요 그리고 하루밤을자고 일어나니 서로수건거리는소리가 이승만대통령은 전부시민증을주어서 사회로 내보내러는거요 그런데 육군참총장 백성협 장군은 이사람들을사회로 내보내면 우리나라형편상 생활하기가곤란하니
전부구대에 입대시켜야한다는거죠 대통령과 육군참모총장과와 생각이엇갈여 애국청년대표와 협상을하였는데 애국청년측에서는 일단대한민국 국민이되었다가 법에의하여 군에입대하겠다고하자 백성협장군께서 직접포항보충대에오셔서 우리에게하는말이 여러분나를보세요 하며 별 4개를가르키면서 우리나라형편상 당신네들이 사회에 나가서 생활하기가힘들다며 나처럼 군에서 출세하는길이 제일빠르다는거죠 그러면서 군에입대하면 의식주 걱정할것이없다는거죠 그러면서 당신네들이 사회경엄을하고싶다면 일개월간휴가를보내준다는거죠 그러면서 지금입대를원하는사람에게는 광주보병학교 입학특례를 준다는바람에 많은사람들이 광주보병학교로갔어요 그때나는 집에서학교다닐때 선배들이 졸업기념으로 경성을다녀오는것을보고 경성한번가는것이 소원이였는데 이번기회에 목적지를경성으로 정하고 신분증을받았읍니다 당시신분증은 아주특별한신분증이죠 반공애국청년으로되어있고 대각선으로 붉은줄이두개가거저있고 이것을받을때 우리에게하는말이 이 신분증은 국가에서특별이주는신분증이니 분실또는다른사람에게빌여주어서는절때안된다는거죠
그리고 이 신분증은 대한민국내에서는 의.식,주.는문론 굩통 극장 이발까지도무료였읍니다 그대신 한달 날자가되면 포항보충대로 귀대해야되고 이 신분증은효력이업서집니다 저는처음으로 서울행기차를타고 서울에도착한시간은 저녁7시쯤 서울역에도착하였는데제가목적지를 종로 로 하였더니 종로경찰서에서 기차시간맟추어 경찰두명이와서 저를경찰차에 태워갖이고 종로1 가 파출소에 도착하였죠 촌놈이 처음으로 종로복판에 와서보니 너무나 떨 떨 하더군요 도로 복판에는 전차가 땡땡 하는종소리 마주보니 말로만듣던 화신백화점이 보이고 옆에는 우미관이있고 우미관옆에 동원여관이있는데 나 를이 여관에 데려다주면서 내일아침에온다며 잘자라고하고 경찰은가 버리고 여관주인과 이런얘기 저런얘기 하던중 여관주인하는말이 정부에서반공청년이오면 누구를막론하고 따뜻하게환영해 주라는 공문이왔다는거요 그러니 너무나특대우를 해 주는 바람에 너무웃질해젔서요 동원여관에서 하루밤을 자고 아참에일어나니 인의동직원이와서 동회로갖자고하여 동회로가서 동회창고에다 짐을보관하고 종로 4 가 비원앞에 있는 동일여관에 데려다주면서 여기에서 자고 있으라는거요 나의방은 대문으로들어가면 첫째방 말하자면일호방이죠 주위를돌아보니 크다란전매청건물이있고 천주교 우일야조장이있고종묘앞일때가 전부창녀촌이더군요 당시에는625 전쟁으로 살기가 힘들어서 시골처녀들이서울로와서 차녀생활을하는데 여관방을 어더서 매일 손님을받아서 방세를주곤하더군요 그런데그때도 성병때문에 보건증과 달 달이 검진표가있어야되는데 시골여자들이어서 보건증도검진표도없이 손님을받기때무네 겨찰서에서 자주검문을나오죠 검문오는날은 포주에게 연락이오죠 그러면창녀누나들이전부내방으로 오는거요 왜야하면 나의방은검문을할수가없기때문이죠 그래도 저는그때도 이성관계를 몰라서 누나들하고한이불속에서 그냥자곤했어요 지금생각하니 참어리섞었다는생각이드네요 우리는 극장도무료이기때문에 나만구경하면되지 창녀들을 두명씩 데리고들어가니 극장측에서 제발혼자 오라고 사정을하는거요 그것뿐이아니지요 술집에서 술을잔뜩먹고 교통순경이나 헌병있는데가서 술이취해서 여관을 못찾겠다고하면 자기네 차로다 여관까지데려다 주곤하였죠 참 지금생각하면 왜 그랬는지하고 반성하고있읍니다 그러던중 낙원동 283 의5호 집에서연락이왔어요 신문을보고 한번보고싶다며 초청을 하여 그집에 가서 식사를하고 이런 얘기 저런얘기 를 하다가 집주인니 하는말이 여관에있지말고 자기네 집에서 자고 있으라는거요 ㅣ집 주인은 기독교 신자이며 동대문시장에서 양복지장사를하는사람인데 하는말이 그러고다니지말고 공부를더 하라는거요 그런데 그때당시는 공부할 생각은 하나도 없고 어떻게든 통일이 되면 집에갈 생각뿐이었어요 이 집주인성암은 한철우 아주머니는 김정숙 아주머니 고향은 개성이고 주인 아저씨평택이고 슬하에 자녀는이남이녀 막내아들이 돌 지나설때죠 애기가 참 에뻐서요 이름은한기돈 제가 할일이 없으니까 제가 매일 애기를보고 있었어요
나의 잠자리는다락방이지요 옛날집은 안방건너방 문간방 이렇게 세계 뿐이지요 건너방은 [식모]지금은 가정부라고하지요 건너방은 가정부가 차지하고 문간방은세를노았죠 마치그때문간방 세들은사람이 국회의원운전수였어요 그때당시 국회의사당이 덕수궁옆에있었는데 그당시 국회소식을 자주들었죠 그당시는 자유당이 완전장악 하고있었고 민주당원들도 만 만 치않았서요 정치얘기 그만하고 사회생활로 넘어갑시다 다락방에서 자니 꼭 안방을 통해야 올라가고 내려오는데 주인아저씨는 12 시가되어야 들어오니 그 안에올라가서 잠을자는데제일곤란한것이 있어요 무얼까요 밤중에 볼일보는거요 염치불문하고 안방을통해서 옆문으로 나와서 볼일을보고가만히 들어가서 자는거죠 날이새면 아침식사를끛내고 막내는내차지 그 당시 50 환을 갖이고 파고다 공원에가서 노인네들얘기도 듣고 그당시는 공원내에서도 도박을했어요 도박내용은 칠성리 예를 들면 이곱자중 한자를써써 맞으면일고배를주는거죠 호기심에 애기 간식거리를 칠성리도박으로날란적도있어요 그릭고 일요일은 종로3 가에있는 묘동교회 에 다니다 영락교회는 실향민들이 나와서 세운교회이기 때문에 주로북한 사람들이 많았서요 평일에는애기 데리고마포강을자주가는거요 그당시는전차가 마포가 종점이었어요 종로에서 전차를타고 마포까지가는동안 손님들이 애기이뿌다고 안아도주고 과자도 주곤했어요 노래 에도 있덧이 마포종점에내리면 새우젓 도매상들이 있고 한강 뚝밑으로 강가로 가는 문이 있죠 이문은 여름장마철에
물이 뿔으면 문을단는거요 문을통해 강가로나가면 뚝밑으로 실향민들이 천막을치고살고 뚝밑에서 강까지는 넓은 백사장인데 마포사람들이 여기에서 빨래를하여 말려거기도하였죠 나는당시 수영을 참 잘했어요 마포강을
애기를업고 건너갔다오곤하였어요 백사장에는 과자파는사람 빨래비누도팔고 돈 받고 빨래를 살마주는사람도
있고 당시에도 청춘남녀가 연애하는사람도만터군요
청춘 남녀가 오면 나루배를운영 하는아저씨 가 남녀를 태우고 [지금국회의사당]그때는여의도 비행장이 있었고 사람들이 없어서 청춘남여가 연애 하가가 아주좋은자리였죠 아마 그때연애한사람이면자녀들 다 키워서 시집장가 다 본내고 나처럼80 노인이 되었을거요 내가그때21 살이었으니까 그대신불우한 사람도 많았어요 빨래터위는바로 원효로 뚝밑에는 바위가많고 물살이 빨라서요 어떤사람인지는모르겠지만 자살하는사람이많았어요 제가생각하기에는 연애하다 실패한 처녀 총각같아요 제가목격한바로는대부분 미혼여성이었어요 강물에 투신한지 24 시간이면 물위로떠오르면 순경들이 와서 강가에다 끌어다노면 신문이나 라디오 방송을듣고 가족이 찾아오죠 한번은 아가시 시체인데몸이너무부어서 사람같지도않은데 부모는 와서 껴안고통곡 하는것을보고 가족이라는것이 이러쿠나한것을알았읍니다 이집 아저씨아주머니는 지금도 카나다에서살고있읍니다 내가데리고 다니던 한기돈이는 카도릭 의대 를나와 내과의사 박사로써 부평오피스탈4 층에서 내과병원을 운녕하고있지요 그러나찾아 가 봊ㅈ지는못했어요내가이세상떠나기전에 한ㅂㅂ번찾아가려합니다 벌써 찾아가 보려하였으나 환자 진료에 바쁜사람에게 방해가될까바망서리고있읍니다 그러다보니 한달 휴가날자도 다 되어서 포항보충대로 갈날을 하루앞두고 명동에있는 쑈 구경을들어가서 맨 뒤에서있는데 뒤에서계급없는 군복차림을한사람이와서 하는말이 반공청년이냐고묻더니 자기는미 8 군에있는첩보원이라며 얘기나하자며어느다방에서 얘기를하는데 지금한국군에가야 별볼일없으니 자기말을잘 들으라는거요 하는말이 자기는미 8 군첩보원중대장이라면서 미 8 군 첩보원으로가면 미군과똑같이대우해주고 일차로북한에갔다오면 어마 어마 한금액지금돈으로 약일억 첩보장비용 카메라 를갖어오면 본인것이 되니될수있으니갖이고와도 좋치만 잡힐 위험이있으니될수있으면 땅에다 묻고오라는거요 그리고첩보활동에대한 증명을하기 위한근거를갖어와야하지요 예를들면 북한정부요인을살얘 했을때는손가락이나 귀 를잘라와야인정이되고 군인부대나 당원들이동하는것을카메라에정확
하게찍어와야 인정이되죠 그런데이런이야기를듣고 그럼
가겠다고 서류에서명하고 첩보중대장을따라 지푸 차를
타고 미 8 군으로갈때는 저녁 7 시경이었어요 우선 8군에
들어 가서저녁을양식으로 하고 담배도 양담배로한보로
씨 레이숀도 열개씩받아서요 그때 우리일행은15 명이나되었어요 우리 15 명은저녁식사를끝내고 미군스리코타를타고 인천으로가는데 휘장을덮었기 때문에 사람은안보이죠 그래서검문소를지날때도 한국경찰이나헌병도 검문을 안하데요 약 한시간걸려 인천항에도착하여 조그만 배에탓는데 기관실에는간부들만타고 우리는휘장도업는데탓는데 파도가어떻게심한지 바닷물이비오덧 들어오는바람에 휘장을덮어주더군요 처음으로배를타서그런지 전부다 멀미를하여 저녁ㅁ먹은것을 전부다 토하고잠이들었어요 얼마있다가깨여보니 바다는 잔 잔 한데파도때문에운항을못하고 크다란배에묶어놓앗다가 바다가 잔 잔 해지자 운항을하여 도착한곳은 서해 슈전선에있는 인생말도에아침에도착하여보니 조그만산이있는데 산 반은북한이고 반은 대한민국땅인데 미군[케로]첩보부대가점령하고있는데 중대장하는말이 경계선을절대 넘지말라고하고 여기는법이없다 말안들으면 총으로 쏴서 바다에던저도호소할떼가없으니그리알고우리가시키는대로잘하라는거죠 그섬에는민가가한집있는데 주로굴을따서 인천이나 백년도에 갔다팔아서살고있더군요 그러자 이제부터 훈련이시작되는데 무기와식량은 비행기로 공수해주더군요
우리는 사왼쪽 바다가에 천막을 치고침대를 놓고잠을자고 산우측에는 중국사람들이 20 명정도와서 있고요 훈련은 별고아니고 주로 북한에서 첩보활동을 하고 오는사람들의 이야기를듣고 매일 매일 북한 뉴스 를듣고 혹시 북한사람이 아닌 사람은 북한말도배우고 북한 노래 애국가 김일성노래 빨지산노래를 매일같이 불러요 딱 북한에와서있는것 같죠 맨 처음북한에가는 교육을 하지요 여러분이 북한에가는것은 걱정할것이 없다는거죠왜야하면 여기말도에서부터 가 나 다 순으로 백두산까지 고정첩보원이 있기때문에 목적지까지무사히갈수 가 있다는거죠 그런데 여기에오면 미군대우해 준다고하였는데 한국군과 똑같은 대우를하여주어 항의를 하였더니 중대장하는말이 너의들은 어느나라 사람이야 대한민국사람이 내 나라를 직히 는데 무슨이유가많으야고 눈알을 다 파낸다는거요 할수없이 훈연을계속 받아 일개월이되어 북한으로가야된다면서 자기가갈 행선지와 직업을쓰라고 하여 나는인민군 장교로하고 행선지는 황해도 재령으로 썼는데 인민군장교복을입고 사진을찍어 군인증을 발부받았는데 목적지가 신의주로되어 있어 그리론못간다고 하였더니 그날부터 식사를 안주는거요 그래서미군고문에게 가서사실얘기를 하였더니 중국사람들있는데로 가서있으려고하여 중국사람들있는데로 갔더니 친절이대해 주며 잠자리도주고 식사도 양식으로 주고 담배도 양담배로 주더군요
그래서 그때야 첩보중대장을좋치 않는사람이라는것을알았죠 우리도 미군과같은 보급을받아서 국군부식으로 교채하여 이득을전부 챙겨서 서울가서 흥청만청써버리는거요 그러자 하루밤을자고 아침을먹고 나니 연락이와써요
미군고문께서 빨리 바닷가로 나오라는거요 밀물이들어와서 배가도착하였덕군요 그래서 배를타고 인천경찰소로왔읍니다 들어갈때는세시간이나 걸였는데 나올때는 한시간
바게안걸리데요 파도가없으니까 멀미도안하고 무척편하게 인천에왔읍니다 경찰서에 들어가니 형사하는말이 한국군에도첩보부대가있는데 왜 하필이면 미군 첩보부대를갔느냐고하면서 거기에서 죽으면 보상도 아무것도없다는거요 이제라도 잘 왔으니 한국군으로입대하라며 포항보충대까지 인솔하여주어서 포항에도착하여 신체검사를받고 논산훈련소로갔읍니다 훈련소에도착하여 훈련을받기시작했는데가장외로운것은 가족이없다는것을 정말뼈 저리게 느꼈읍니다 매주일요일은 면회오는날이죠 우리는단신 월남자기때 문에 면회올사람이없는거죠 그래서 훈련소에서 반공청년들에게는 특별이 영화나 연극을 관람시켜주죠 그러나 관람갖이고는 만족하질못하죠 왜야하면 부대매점에는 면회온사람과 훈련병들은 맛있는음식과 술을마시며 즐거워하는데 우리는돈도 가족도 없으니 얼마나 외러웠을가요 그래서 일요일오는것을 별로 반갑게 생각하지를안 했어요 그러자전반기를 끝내고 후반기로넘어가서 훈련을받는데 반공청년중대가 있고 [피사병]군에갔다 탈령했던 병들 이 술을 마시고 와서 우리들에게 적이라며 시비를걸어 한때 치고패는 싸음도있었죠 그러자 연대장이 연병장에 집합 시켜놓고 대표들을 모아놓고 화회를시켜서 다음부터는 더욱친절해서 일요일에 면회 오면 같이음식도노나 먹고 친하게지내서요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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