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개 주막거리 문산옥 건너편에는 "부로꾸"공장이 있었다. 더푼물 고개 아래로부터 주욱 이어지는 계단식 논 제일 아랫 부분에 자리를 잡은건데 시기적으로 새마을운동이 한창인 때이고 보면 적절한 사업 선택이었던 것 같다.
다만 사업에 대한 의지보다 사람 좋다는 주위 평판에 더 관심을 갖게 되며 납품하고 돈 못받고 흥미를 잃고 작업을 소홀히 하고 돈 못벌고 .... 반복하면서 같은 업종 경쟁자들이 나름 자본을 축적할 때 술로 허송세월을 하신 것이 부끄러워 술을 더 마셔댔던 분이 나의 아버지시다.
그시절 사실 돈이 있어도 시골에서는 그리 먹을 게 흔하지 않았는데 이런 장마철이면 나름 남의 살을 먹을 만한 기회가 오곤 하였다.
비가 논을 거치고 거쳐서 도살장 아래 개울로 흘러 가고 그게 조금 더 많이 내리면 공장 마당으로 넘쳐드는데 그런 후에는 마당에 미꾸라지, 송사리, 붕어 그리고 버들치 들이 여기저기 펄떡대고 있어 작은 바가지 하나 들고 나가면 한끼 찌개거리는 장만할 수가 있었다.
또는 한길 밑으로 형성된 도랑도 이 때는 제법 물이 흐르는데 여기에 구멍나서 안쓰는 얼개미를 대면 역시 작은 분유 깡통 하나는 채울 수 있었다.
논에는 물고기 뿐만 아니라 개구리도 많아서 늦여름 담장에 넣는 철사를 이용해만든 채를 들고 나가 큰 놈 몇마리 잡아다가 뒷다리는 남기고 몸통은 닭장에 던져 넣으면 후다닭 달려들어 먹어치우곤 하였다.
그리고 뒤란 화덕에 냄비를 올려 뒷다리를 삶아 뜯어 주면 잘 받아 먹던 게 지금은 없는 막내 동생이었고.
초봄, 아직 논 여기저기에 눈이며 얼음이 남아 있을 무렵, 윗논에서 아랫논으로 물이 떨어지는 곳, 논물꼬에는 민물새우가 제법 많아 조리를 들고 나가 휘저으면 역시 한끼 찌개거리가 나오곤 하였다.
엄마는 내가 잡아다 주는 민물고기나 새우에 무우와 호박을 썰어 넣고 고추장을 풀어 칼칼한 찌개를 잘 끓여 주셨었다.
어느 해 겨울에는 양지바른 논둑을 뒤져 큼직한 미꾸라지 몇마리를 잡아다가 철사에 꿰어 구어 먹는데 비릿하지만 그 맛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쌀값을 못올려주겠다는 사람들과 올려달라는 농민들 간에 갈등이 있곤 한다.
논 농사를 지어서는 돈도 안되고 고달프기만 하다면 논은 먹거리 생산의 최일선 기지에서 한낮 재산증식용 부동산으로 전락하고 만다.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식량난을 대처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논은 대단히 중요한 자원이다.
논만큼 훌륭하고 소중한 인공습지는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종류의 생명을 품고 있으며 인간에게도 먹거리를 제공하는 논을 제대로 평가한다면 쌀값에 박해져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래야 논을 논으로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은 가톨릭에서 농민주일로 지내는 날이다.
논과 논을 이용해 식량을 생산하는 농부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부디 홀대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쓴이 임희택(맑은한울)님은
안양시 박달동 범고개에서 태어난 1963년생 안양토박이로 안서초, 안양동중(신성중), 신성고, 한양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 대표 등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맑은한울 별칭의 논객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며 사회복지사로, 맑고 밝고 온누리를 추구하는 자칭 진정한 보수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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