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기억 124

[jet blue]수원~의왕~안양~과천~사당까지 길 이야기

[글 출처: 네이버블로그-기억을 따라서 떠난 여행 https://blog.naver.com/jandb9731/223721020421 수원에서 사당까지 Part1 (1986년~2025년) – 수원시에서 의왕으로프로파일jet blue ・ 2025. 1. 10. 5:45 이번에는 정말 여행기라고 할 수도 없지만 약 40년 가까이 계속 다녀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그 사이에 대통령은 1986년부터 시작해서 9명씩이나 바뀌었고 세계인구는 49.3억에서 81.8억으로 늘어난 세월이었네요.수원에서는 북쪽, 동쪽과 남쪽 등으로 집들을 옮겨 다녔었고 그리고 서울시내에서도 사무실이 서울역, 명동, 여의도와 마곡 등으로 옮겨 다녔었는데요.그러나 아침과 저녁으로 서울을 오가던 길은 늘 수원의 북문과 사당..

[임희택]안양 박달동 더푼물 주막집의 추억(2025.08.11)

안양 박달동 더푼물 주막집의 추억 주막거리에는 주막이 있어야 하는데...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하여간 주막이라기보다는 구멍가게 같은 가게가 있었는데 그 주인이 문산댁이었다.가게의 벽 쪽 바닥에 항아리가 묻혀있었고 그 항아리에는 더푼물 술도가에서 만들어 내려보낸 막걸리가 들어 있었는데 아버지를 비롯한 술꾼들이 열린 가겟문 앞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한잔씩 마시고 고린내 나는 곤단걀을 하나씩 깨먹으며 퇴퇴 병아리 털을 뱉고 일어나 나가면 행주로 대충 훔치고 그 행주를 빤 개숫물을 먼지가 폴폴 날리는 신작로에 냅다 뿌렸다. 그러면 힘들게 벌 쪽에서 올라온 버스가 다시 뽀얀 먼지를 날리며 지나서 서씨네 집 앞 굵은 플라타나스 나무 밑에 엄마와 함께 몇 사람을 내려주고는 다시 폴폴 먼지 날리며 더푼물 고개..

[이용구]1930년대 안양 학생들의 학교 통학 이야기

유년시절의 학교 이야기 글 이 용 구 내가 어려서는 이지(理智)가 부실하고 시야가 좁아 활동 범위의 무대가 좁은 어린 마음에 그저 멀리는 못가고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서만 맴돌았다. 봄에는 노적봉(露積峰)에 올라가 진달래 꽃떡 만들고 여름에는 냇가에서 물장고 치며 고기잡고 가을에는 알밤 줍고 겨울애는 팽이치고 연날리고 썰매 타는등 평범하게 지냈다. 어릴 때 살던 곳은 안양3동이다 특히 여름에는 안양 3동과 9동 사이 개울가에는 산 딸기(복분자)가 많었다 미역 감다가 알몸으로 가시에 찔려가며 따 먹었으며 그 앞 울찰한 밤나무 슾에는 황버섯 꽤꼬리버섯 밀버섯등이 많었다 더 들어가 수리산(修理山) 슾속에는 싸리버섯이 풍부했는데 이 근자에는 거의 건물로 도시화가 되어 그런지 그 헌적이 없으니 자못 아쉽기만 하..

[박찬응]1977년 안양대홍수 이야기(2023.08.25)

77수해이야기나의집이 사진에서 보이는 건물아래편 수암천변에 있었지.고2때 였어.그날 수원 남문에 있는 극장에서 타워링인가 뭔가 영화를 단체관람하고 늦은 시간 65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중 구군포 사거리에 버스가 멈춰서더라구.무릎까지 빠지면서 걸어서 안양여고 정문을 지나 왔을때 수암천 뚝방이 터졌어. 만안초 운동장 앞으로 흙탕물이 넘쳐 흘러 박달동 주변이 물에 잠겼지. 여기저기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아수라장 이였지.한두시간뒤 친구놈 몇명과 스크럼을 짜고 물길을 해치며 앞장서고 뒤에 사람들이 매달리고 영차영차 앞으로 나갔지. 중간쯤 오니까 입까지 차오르던 물이 서서히 줄어들어. 지금 생각하니 목숨을 걸었던 거야. 부모님이 걱정되서 그랬던거 같아.집에 도착하니 새벽이었는데 우리집 지붕이 물속으로 사라지..

[김춘삼]6.25전쟁에 참전했던 안양 수리산 전투(2009.07.25)

수리산에서도 한국전쟁이? (The Korean war on Surisan mountain)ch B tv abc/ 2019.06.28https://youtu.be/WJJFEVdPAUk?si=cdnQ4_DdYIpyNUYH  출처: 네이버 looock님(하모니카맨)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looock/60080329566 바로  내가 태어난곳은  황해도 재령군  은룡면  구연리 입니다  아주  산골마을 이죠.어느정도 시골이 냐 하면 전기도 없고 장터도 삼십리를 가야되는 아주 작은 마을로 약 삼십호 되는 조그만 동네입니다. 동네는 고지대 배모양으로 되었다하여 배형국이라고 하죠. 그래서 우물을 팔 수가없어 동네를 감싸고  도는 재령 강물을 물지계와 물동이로 길어다 먹고 사는 동네 입니다...

[최병렬]1930년대 안양통학생과 기억프로젝트 전시(2007.07.21)

경기 안양에 자리한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주최로 2007년 7월 21일부터 8월3일까지 롯데백화점 안양점 갤러리에서   '기억프로젝트-사람을 찾습니다' 전시회를 개최했을 당시의 기록이다.  특히 전시회중 많은 이들로 부터 관심을 모았던것은 1930-40년대 안양시가지 모형으로 종이모형 아티스트 장형순 작가가 초배지로 도배한 오래된 벽지와 골판지로 만들었다.  제가 찍은 모형 사진이 인터넷 공간에 올라가고 이를 통해 과거의 안양을 더듬어 찾는 연구자들이 생기고 연락이 오기에  당시 전시회 관련 기사와 사진에 모형을 만든 장형순 작가로부터 제공받은 사진을 추가하여 당시 전시회 이모저모를 기록으로 남긴다. '기억프로젝트-사람을 찾습니다'는 안양 스톤앤워터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안양시가 후원하고  안..

[박중련]나의 외삼촌 이용경 전 KT사장(2009.02.27)

글 출처: 티스토리 박중련의 세계 1%를 꿈꾸면 두려움 없이 떠나라. https://worldonepercent.tistory.com/79 한 길만을 걸은 사람의 이야기(이용경 전 KT사장) 외삼촌인 KT의 이용경 사장은 만 16살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최연소란 소리를 들었고, 지금은 정보통신업계에서는 60세의 최고령으로 한국재계 6번째 규모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삼사십대 worldonepercent.tistory.com 외삼촌인 KT의 이용경 사장은 만 16살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최연소란 소리를 들었고, 지금은 정보통신업계에서는 60세의 최고령으로 한국재계 6번째 규모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삼사십대 사장들이 맹활약하는 이 업계에서 계속 신상품을 내놓으면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용경사..

[플록스]고향 안양읍 주접동을 그리며...(2018.08.15)

내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주접동(지금의 안양6동)이었지요.집 주변에는 수리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고 임업시험장이 있었습니다.고만고만했던 네 자매의 놀이터는 임업시험장이었고 그곳에서 찍었던 사진들은 흑백의 시절이었습니다.임업 시험장 앞으로는 국도가 있었고 그 너머에는 기찻길이 있었지요.우리는 낮은 동산에 않아서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매일매일 보았습니다.기차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적을 울리며 우리들 앞으로 지나갑니다.화물칸이 대부분이었던 기차는 길게는 삼십 량을 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기차구경을 하다가 심심하면 수영할 채비를 해가지고 냇가로 갑니다.그 시절엔 검은 사각 빤쓰와 나닝구라고 부르는 것이 수영복의 전부였습니다.갈아입을 옷 한 벌을 가지고 안양천으로 무리지어 달려가면 깨끗한 물..

[김인호]군포 욕골 출신 토박이 1970년대 용호마을(2022.07.28)

2023년 7월 16일 군포시생활문화센터 다목적스튜디오에서 군포문화재단과 군포문화도시지원센터가 주최한 ‘시민정책연구단 3차 연구모임’이 ‘나의 군포 이야기’를 주제로 열렸다. 이날 이야기 손님은 김인호씨(61세)다. 김인호씨는 경기 시흥군 남면 548번지에서 태어나 군포초, 안양동중(현 신성중), 안양동고(현 신성고), 한양공대를 졸업하기까지 한 곳에서 살아온 군포 토박이다. 2천년대 이후 용호마을 이편한세상아파트가 들어선 그곳에는 부모님이 여전히 살고 계신다. ㈜네오임플란트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그가 들려주는 어린 시절 군포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욕골_나는 군포의 면소재지(당말)에서 조금 떨어진 ‘욕골’(용호동)이라는 시골마을 출신이다. 어릴 적 군포라고 하면 군포국민(초등)학교와 군포역, 당..

[김태민]안양3동 대농단지와 안양월드의 기억(2023.07.11)

덕천마을은 재개발로 인해 사라졌지만 대농단지와 안양월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한 번씩 댕리단길에서 지인들을 만나 식사를 할 때면 안양월드 앞을 지나게 된다. 26년 전 모습이 거의 대부분 남아있는 오래된 동네는 잊고 있었던 기억과 추억을 불러온다. 당장이라도 함께 놀던 동네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골목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다. 매일 보면서 각인된 풍경은 때로는 기억보다 더 선명하게 남는다. 기억 속의 안양월드는 대농단지의 유일한 쇼핑센터로서 일종의 랜드마크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안양월드 앞에서 자주 만났다. 대농단지는 비슷하게 생긴 다세대주택이 늘어선 동네였으므로 눈에 띄는 건물은 안양월드 밖에 없었다. 집에서 가까운 것도 좋았지만 쾌적한 점도 한 몫했다.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