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615

[자료-오기환]문화예술과 역사4, 안양 지정문화재 및 문화유산

문화예술과 역사가 어우러진 안양- 안양광역신문사(aknews0511@daum.net) 2015-09-04 오전 10:12:00 1591 안양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부소장 오 기 환 5. 삼막사는 신라의 승려, 원효·의상·운필이 창건하여 산의 이름을 삼성산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후기 마애불과 칠성각이 건립되는 등 지속적으로 중창과 중건이 이루어지면서 법등이 이어져 왔으며 현대에 들어와 크게 중창이 되면서, 대웅전·명왕전·망해전·관음전·천불전 등 다수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초석·석탑·석간·석상·마애삼존불 칠성각 등 전통사찰의 위상을 보여주는 다수의 유적, 유물들이 전하고 있는데 그 수가 안양에 소재하고 있는 사찰중 가장 많다. 사찰은 안양사·삼막사·불성사·염불암·망월암·망해암·반월암 보장사 ..

[자료-오기환]문화예술과 역사3, 안양의 전통문화재(유물.유적)

문화예술과 역사가 어우러진 안양- 안양광역신문사(aknews0511@daum.net) 2015-08-28 오전 10:52:00 1375 안양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부소장 오 기 환 3. 안양의 전통문화재(유물.유적)로 본 사회적, 경제적 변화 선사(청동기)시대의 유물인 타제석기가 평촌동 250번지 귀인마을 일대에서 수습된바 있고 동안구 관양동 산15번지 일대에서도 석핵, 찍개, 긁개, 박편석기, 망치돌, 식재류 등의 석기류가 확인되었다. 최근 광역상수도사업 확장공사시 선사시대의 생할터전을 발굴 확인하여 보존하고 있으며, 내비산동에서도 타제석기가 수습된 바 있다. 4 관양동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8기와 수혈유구 4기가 확인되었고, 주거지는 대략 해발 600미터 내외의 구릉 남사면에 위치하여, 장축 ..

[오기환]문화예술과 역사2, 조선사회와 안양의 발전

문화예술과 역사가 어우러진 안양- 안양광역신문사(aknews0511@daum.net) 2015-08-20 오후 6:51:00 1257 안양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부소장 오 기 환 2. 조선사회와 안양의 발전 조선 후기에 안양은 한적하기 그지없는 시골마을이었다. 하지만 정조가 즉위하고 수원에 현룽원이 조성되고, 새로이 화성이 축조되면서 안양은 새롭게 부상했다. 이는 임금이 행차할 때 기존 과천길을 버리고 시흥 안양을 경유하는 길을 조성하면서부터였다. 원래 화산능행 노정은 노량의 배다리를 건너 요양봉저정-만안고개-금불암-금불고개((현 숭실대 부근)-사당리-남태령-과천행궁-찬우물점-인덕원천교-갈산점-원동점-사근참행궁-지지대고개를 거쳐 화성에 이르렀다. 이는 호현(여우고개) 또는 염시현이라 불리던 남태령을 넘어 ..

[최태술]알기쉬운 안양의 역사

구석기시대 안양 평촌 택지개발을 위해 지표조사를 할 때 타재석기 일부가 발견되기는 했으나 안양 인근 지역에서 더 이상의 구석기 관련 유적이 발견 되지 않아 아직 확실한 학설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신석기시대 안양 안양에서 직접 신석기유적이 발견된 것은 없어나, 이미 확인된 시흥시의 오이도 패총이나 한강 유역의 미사리 유적지를 보아 서해안과 한강을 연결하는 범주 내에 위치한 안양권도 신석기문화권에 속하였을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의 안양 청동기시대 안양의 확실한 증거는 평촌 개발을 위해 지표조사를 할 때 분포 되어 있던 여러 기의 지석묘(고인돌)들이 확인되었다. 이 지석묘들을 지금 평촌 자유고원 내에 옮겨 보존 하고 있다. 이밖에 청동기문화의 유산인 고인돌은 인근 군포, 의왕, 시흥시 등..

[오기환]문화예술과 역사1, 안양의 연혁

문화예술과 역사가 어우러진 안양- 안양광역신문사(aknews0511@daum.net) 2015-08-20 오후 6:51:00 1257 안양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부소장 오 기 환 1. 안양의 연혁 안양 지역은 역사와 문화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다. 안양이란 명칭의 연원은 고려 태조 왕건이 승려 능정을 만나 안양사를 창건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안양사의 안양(安養)은 마음을 편안하게 지니고 몸을 쉬게 하는 극락정토를 일컬는 말이다. 왕건과 승려 능정과 함께 세운 안양사(安養寺)는 거대 사찰로 조선중기까지 상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안양은 지명의 연원에서부터 행정구역의 변천까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겪어 온 것을 볼 수 있다. 즉, 서울의 관문이자 위성도시인 안양은 한반도의 중남부에 위치해 있고 관악산. 수..

[문원식]‘안양’의 유래와 뿌리

‘안양’의 유래와 뿌리 AD 900년 경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의 명을 받아 조공을 바치지 않던 광주, 충주, 청주 등 남쪽 3개 주를 정벌하기 위하여 삼성산 자락을 지나가던 중 산꼭대기에서 오색무지개가 어리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사람을 보내 살피게 하였더니 늙은 중 능정(能正)을 구름 밑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더불어 대화해 보니 뜻이 맞아 ‘안양사(安養寺)’를 세웠다는 기록이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등에 전해지고 있다. 이 안양사에 관한 기록은 고려와 조선시대 중엽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중수한 기록이 남아 있고, 현재 안양이란 지명의 유래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국정토를 일컫는 안양이라는 말이 지명으로 처음 사용된 기록은 영조 35년(1759..

[김정대]지명 금천(衿川)과 안양(安養)

금천(衿川)은 금주(衿州), 금양(衿陽)으로 통하던 향토의 옛 지명으로 가장 오래 불리던 이름이다. 문헌에 나타난 것을 보면 지명의 첫 이름은 고구려때에 잉벌노현(孕伐奴縣)이라 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경덕왕(757)때 진율군(津栗郡)이라 개칭하여 오다가 고려 태조(왕건)시기 934년부터 금천현(금주, 금양)이라 불렀다. 조선왕조 22대 정조대왕(1795)이 만안교(萬安橋)를 축조한 뒤 이 지역을 시흥(始興)이라 부르도록 하였으나, 기록상으로는 1914년 안산 및 과천과 군(郡)을 통합하면서 시흥군(始興郡)으로 명명된 것이다. 안양(安養)이란 지명은 여지도서(영조35, 1759)에 금주현(衿州縣) 현내면(縣內面) 안양리(安養里)로도 나타난다. 3군(三郡) 통합이후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를 합쳤으며 ..

[최병렬]15년만에 발견한 실업극복 통장에 담긴 사연

15년만에 찾은 실업극복 통장에 담긴 사연 벌써 5년전의 이야기네요. 2013년 5월 한무리나눔의집 문경식 대표로 부터 받은 통장과 도장입니다. 1998년에 시민운동 차원에서 안양군포의왕실업극복운동본부가 만들어져 모금활동을 펼쳐왔는데 그때 제 명의로 만든 통장이지요. 실업극복운동은 몇년후 사랑의쌀나누기운동으로 바뀌어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져 오고 있지요. 이 통장은 처음에 사업을 시작할때 제가 만들어 사무국을 운영하던 한무리교회에 준 것인데, 최근에서야 발견했다고 하면서 휴면통장이라 명의자인 저 보고 해지했으면 좋겠다고 전해받은 것이지요. 통장에 찍힌 내용을 보니 잔고가 8,873원이지만... 많을 때는 2천만원이 넘었네요. 안양참빛교회, 이덕희, 진상해, 동은교회, 신안초, 최중현, 서일규, 호계교회,..

[최병렬]안양 상공은 비행기 '항로' 심장이다

안양 상공은 비행기 '항로' 심장이다 수원-안양 상공에서 우박과 낙뢰에 맞아 비상착륙한 아시아나 여객기에서 떨어져 나간 비행기 앞부분이 3일째 발견되지 않고 있어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항공사고조사위원회가 경찰청에 사고 부분이 발견되는 대로 통보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비행기 사고가 안양 상공에서 발생했다는 뉴스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일부 네티즌들은 "저렇게 큰게 안양에 떨어졌다면 안양 사는 사람중 다친사람은? 맞으면 즉사일텐데… 누구 안다쳤나. 어디 떨어졌을까"라며 파손된 부분의 행방에 의문을 나타냈다. 2013년 6월 어느날 오후5시45분께 제주발 김포행 OZ(아시아나) 8942기는 영화속 장면과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김포공항을 7∼10 여분 남겨 놓은 안양 남동쪽 부근 상..

[최병렬]안양1동 진흥아파트의 이승만 대통령 느티나무

안양1동 진흥아파트에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 식수가 있다 경기 안양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식수(기증)한 나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22일 오후 마을 탐사길에 찾았다. 나무가 있는 곳은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 진흥아파트 단지내 8동 3∼4호 입구로 수종은 느티나무, 현재 크기는 밑동 둘레 약 1.6m에 높이 약 20m로 수령은 70~80년 정도로 추정된다.이 나무 바로 옆에는 ‘이승만 대통령 기증식수, 서기 1955년 4월 5일’이라는 백색의 사각철재 표식이 세워져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관리를 해오고 있으나 정작 아파트 주민들은 이 나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며 안양시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이 나무가 심어졌다는 1955년 당시 이 자리에는 삼흥방직이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