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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하]의왕 능안마을 임영대군 묘역과 사당

능안마을 임영대군 묘역과 사당  임영대군 이구(1418~1469)는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이자 수양대군(세조)의 동생이다. 임영대군은 성격이 매우 활달하고, 문학과 역사를 두루 섭렵해서 논리가 뛰어나며 무예도 훌륭했다고 한다. 세조는 임영대군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선비와 같다고 칭찬했다. 󰡔예종실록󰡕에 따르면, 임영대군은 항상 검소하고 재산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며, 사람을 대할 때 정성을 다하고 거짓과 꾸밈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성품을 따서 예종은 임영대군에게 정간(貞簡)이란 시호를 내렸다. 임영대군은 세종과 문종대에 무기를 연구하여 총통을 새롭게 고쳐 만들고 화차를 제작했다. 형 수양대군이 단종을 물러나게 하고 왕위에 오르자 그의 통치를 보좌하였다. 왕자들 사이에 골육상쟁을 경험한 그는 동기간의..

[박철하]고려말 의왕 청계사를 중창한 조인규 이야기

고려말 조인규의 청계사 중창  조인규(1237~1308)의 가문은 본래 유이민의 후예로 양인 농민 출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려의 재상이자 왕의 장인이 되었으며, 아들들과 사위들은 장군과 재상과 같은 고위직에 오르는 등 고려에서 권세가 대단했다. 1231년 몽골군의 침략으로 시작되어 30년에 걸친 대몽항쟁 기간을 거친 뒤 원나라의 간섭을 받으면서 고려는 대내외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충렬왕을 시작으로 고려의 왕들은 원나라의 황제의 딸과 결혼하고 원 황실의 부마가 되었고, 국가의 주권을 침해당했다. 이와 같은 고려와 원의 관계로 몽골어 통역관의 수요가 급증하던 때, 조인규는 몽골어 양성기관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몽골어에 통달하여 명성을 얻었다. 충렬왕이 세자로서 원에 갈 때 그를 수행하..

[박철하]모락산 정상에 있는 한성기 백제 <모락산성>

삼국시대모락산 정상에 있는 한성기 백제의 산성  의왕 모락산성(義王 慕洛山城)은 대한민국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모락산에 있는 백제 시대의 산성이다. 2007년 9월 7일 경기도 기념물 제216호로 지정되었다. 모락산성은 2002년 및 2005년 세종대학교박물관의 지표조사 결과 자연지형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석축 또는 토석 혼축을 병용하여 축조된 길이 878m의 테뫼식 산성으로, 내부시설로는 문지, 망대지, 치성,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유물로는 백제계의 호, 옹, 완 등의 토기편류가 주로 채집되어 한성백제기에 초축된 성으로 확인되었다. 백제 석축성곽 축조의 시원양식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성곽이다. 현지 안내문의왕모락산성은 해발 385m 모락산 정상에 축조된 백제 한성기 시대 석축산성이다. 산 정상부..

[박철하]의왕시 이동 오봉산 청동기 마을 유적과 고인돌

의왕시 이동 오봉산 청동기 마을 유적은 오봉산 남쪽 봉우리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는 능선 끝자락 구릉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중심 유적은 청동기시대 집터인데, 토기와 석기 등의 유물도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13동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 이후 조성된 돌널무덤(석관묘) 4개도 확인되었다. 돌널무덤은 고인돌보다 앞선 청동기시대의 무덤양식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 집터에서 오봉산 정산으로 오르는 중턱에 고인돌이 온전히 놓여 있다. 이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에 사람들이 이곳 이동 지역에 작은 마을을 이루며 생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집터 이동 청동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집터의 형태로 보면, 오봉산 서쪽 끝자락 능선 구릉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을 둘러보기 좋고 관리와 통제가 쉬운 곳에 있는 가장 큰 ..

[박철하]의왕의 어제와 오늘: 역사와 지역정체성

박철하(의왕문하원 향토문화연구소장) 목차1.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2. 내고장 역사문화 인식이 부재한 현실3. 전통마을의 파괴, 역사문화 유적의 파괴4. 역사문화의식을 갖는 창조도시 건설5. 내고장 우리 역사 바로알기 1.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란 무엇일가? 역사는 일반적으로 과거의 일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지난 일보다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과거의 어떤 사실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즉 우리가 얘기하는 역사란 과거의 사실들 가운데 일정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판단 기준 아래 취사선택된 내용에 대하여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규명해서 우리에게 유용한 지식으로 전달된 것을 일컫는다고 하겠다. 우리는 역사가를 통해서 역사를 읽는다. 역사가는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20250322]안양 비산3동 마장골, 매곡(梅谷) 마을의 전설

안양 비산3동 매곡마을의 전설 경기도 안양시 비산3동에는 옛날부터 마장골(梅谷洞)이란 마을이 있었다. 구름울(雲谷洞)과 안날미(內飛山) 사이에 위치해 마장골을 웃말, 구름울을 아랫말이라 불렀다 한다. 조선시대 관가에서 사용하던 말을 이곳에서 사육했기 때문에 마장골이라 불렀는데 오늘날 매곡(梅谷)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이 곳이라는 것이다. 매곡마을로 불린 연유에는 조선 중엽 마장골에 사는 어떤 농부의 아내가 밭에서 일을 하며 갓난아기는 풀밭에서 놀게 했는데 갑자기 큰 매가 날아와 아기를 낚아채 날아갔다. 임금님이 이 소식을 듣고 원님을 보냈으나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기는 없어져 이후 매가 자취를 감추었다 하여 매곡동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은 안양종합운동장을 비롯하여 ..

[이승언]安養의 由來_안양문화 제4호 글(1985.12.31)

1. 안양의 근원지1) 안양의 근원지에 대한 청설안양의 근원지 즉 뿌리는 필자(이승언)가 安養文化號에 「行政 域變쩔史」에서 언급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안양의 근원지는 금천현이었고, 금천현의 중심지는 안양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이러한 오류는 해방이후 향토사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없이 어느 한 책자가 발표한 용을 그대로 전재했기 때문인데,  살펴 본 바를 종합해 보연, 안양의 뿌리 즉 근원지는 삼성산에서 말원한 삼성천을 현계로 했고 뒤에서 언급을 하겠지만 안양의 영칭 유래가 삼성산.안양사에서 유래되었으니 염밀한 의미에서는 금천현이 안양의 근원지라는 것이 옳다고 보나 현 안양시의 인구 및 면적은 물론 안양 행정 중심지가 삼성천 이남의 지역으로  과거 과천현의 치역이었으니, 안양의 근원지는 과천현이라..

[20250322]이등박문에 짱돌 던진 원태우지사 사건 기록

2025.03.21/ #아카이브 #기록 #역사 #안양 #항일운동 #원테우 #원태근 #조선총독부 #판결문/한국근대사료 데이터베이스 {주한일본공사관기록·통감부문서} 기록에서 원태우지사의 판결.선고문을 발견했다. 선고문 내용을 보면 그동안 전해지고 있는 것과 다르게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자료에 원 지사의 주소지는 京畿道 果川郡 安養市場 22통 不詳로 기록돼 있다. 이는 현재 원 지사 생가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안양1번가 농협(현 안양1동)이 아닌 과거 시대동 구시장(현 안양1동)이 아닌가 싶다. 또한 이름과 나이는 元泰根(원태근) 당시 20세로 기록돼 있어 현재 불러지고 기록되는 원태우와 다르다.이는 공식기록을 통해 이름, 사망일자, 이미지 등 가짜 정보가 안내되고 지식백과 등 온라인상..

[20250322]안양천&학의천 쌍개울 문화광장 옆 <중앙초등학교>

2025.03.21/ #도시기록 #안양 #중앙초등학교/ 안양천과 학의천 물길이 만나는 쌍개울문화광장 옆에 자리한 안양 중앙초등학교. 중앙초등학교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신2동(경수대로883번길 11)에 있는 공립초등학교로 1984년 9월4일 개교했다. 교화: 개나리, 교목: 사철나무/ 웹사이트 https://ayja-e.goeay.kr/ayja-e/main.do  안양중앙초등학교안양중앙초등학교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ayja-e.goeay.kr

[20250322]삼봉천과 안양천 합류지점 <삼봉초등학교>

2025.03.21 #도시기록 #안양 #박달2동 #삼봉천 #삼봉추등학교/ 안양 삼봉천에도 봄이 왔나봄. 삼봉천과 안양천 합류 지점에는 삼봉초등학교가 있다. 삼봉초등학교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박달2동(박달로437번길 21)에 있는 공립초등학교로 2001년 3월 1일 개교했다. "삼봉"은 박달동에 위치한 수리산 자락 삼봉에서 학교 이름을 가져왔다. 교화: 장미, 교목: 은행나무/ 웹사이트 www.asambong.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