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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봉]안양시민신문 폐업 有感(2000.05.21 페이스북 글)

김인봉님이 쓴글.2020년 5월 21일 #안양시민신문폐업有感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안양시민신문사 문닫은지 벌써 이태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야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그간 몹쓸 정때문에 안양시민신문이라는 제호를 반납하지 못하고 있다가 경기도가 신문도 안 내면서 제호를 갖고 있으면 안된다며 폐업신고를 독촉해서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돌아보니 정말 예술영화처럼 지루하게 끝없이 어려운 장면이 흘러갑니다. 15년 전, 박길용원장님이 지역에서 공론의 장을 열어보겠다며 어려움을 겪는 안양시민신문에 힘을 보태 함께 하자 하여 시작한 것이 열두 해나 넘기는 동안 내내 어려웠습니다. 돈이 없어서도 함께하는 사람이 없어서도 아닌데 말이지요.우리 안양시민신문사에 아무 사심없이 매달 ..

[변원신]안양시민신문 그시절 안양이야기(4) 안양공립보통학교 개교

일제시대 때만 해도 안양에는 학교가 없었다. 그 당시 학생들은 먼 거리에 위치한 군포보통학교나 과천, 안산까지 등교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다. 학교 건립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안양 유지들과 주민들이 기성회를 조직하고 학교 설립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안양산업사 엄기승 사장과 당시 초대 서이면장인 조한구 씨도 학교 건립 모금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자금은 제대로 모이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안 동아일보에서 전국에 대대적인 홍보를 해줬다. 전국에 있는 많은 국민들이 성금 모금에 동참했고, 일본인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모금운동은 성공리에 이뤄졌다.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1927년 12월 20일 안양공립보통학교가 개교했다. 현재 안양초등학교의 전신이다. 처음에는 4년제로 유지되다가 후에 6년제로 바뀌..

[변원신]안양시민신문 그시절 안양이야기(8) 박달동(博達洞)

박달동의 박달은 ‘밝다’, ‘밝은 산’ 또는 ‘밝은 땅’의 뜻으로 보기도 한다. 또 배우리 선생의 ‘우리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에 따르면 ‘높은 산’의 뜻도 가진다. 박달1동은 조선시대에는 금천현 현내면 박달리였다. 정조 때 만안교가 가설된 후 시흥현 현내면 박달리로 개청됐다. 후에 1973년 7월 안양시 박달동이 됐다. 박달1동사무소 일대는 ‘먹해이 들’이라고 불렀는데 박토여서 농사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평양육군병기창 안양분창 건설로 마을이 폐동됐다. 박달2동은 자연취락지역으로 수리산 서쪽 끝 산에서 줄기를 따라 크고 작은 산으로 이뤄졌다. 햇골, 선녀골, 곤두레미 고개와 남쪽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이밖에도 능골, 동수암, 막상골, 미름물, 범고개, 붓골, 삼봉마을 등의 부락이 있었다..

[변원신]안양시민신문 그시절 안양이야기(3) 호계동(虎溪洞)

2026.10.20/ #지명 #안양 #호계동 #변원신 고 변원신 선생이 들려준 안양이야기호계동은 예전에 방죽말, 샛터말, 안말 일대가 범이 많은 곳이라 하여 범계 즉 호계(虎溪)라 칭한데서 유래되었다. 호계1동은 조선시대에는 과천현 상서면 도양리 지역이었다가 1914년 3월 1일 시흥군 서이면 호계리로 되었다. 1941년 10월 1일 안양면 호계리에서 1949년 8월 15일 대통령령 제162호에 따라 안양읍 호계리로 칭했다. 호계1동은 1983년 10월 1일 시 조례에 의해 호계동을 분동해 덕고개, 금성마을 지역을 호계1동으로 분리하게 되었다. 동으로는 갈산동, 서로 군포시 금정도, 남으로 호계3동, 북으로 호계2동이 각각 위치해있다.덕고개는 현 호계신사거리에서 교도소로 향하는 고개를 일컬었으며 옛날 지..

[20261020]안양시-PFV 박달스마트시티 조성사업 시행 대행 협약

안양시가 20일 안양시청 3층 접견실에서 ‘서안양친환경융합스마트밸리피에프브이(PFV) 주식회사’와 박달스마트시티 조성사업의 사업시행대행 협약을 체결함에 따라 박달스마트시티 조성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업은 안양 50탄약대대 이전사업과 연계해 추진되는 것으로 만안구 박달동 일대 군 탄약시설을 이전·지하화한 뒤 국방부에 기부하고, 기존 군부대 부지를 넘겨받아 첨단산업과 주거, 문화 기능이 결합된 스마트 도시를 조성하는 내용이다. 이날 협약식에는 최대호 안양시장을 비롯해 강득구 국회의원, 윤해동 안양시의회 부의장, 곽동윤·윤순섭 시의원, 김경수 안양도시공사 사장, PFV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협약의 핵심은 사업시행자인 안양시와 사업시행대행자인 PFV 간 업무 범위와 책임을 구체화하는..

[20261020]안양 호계동에 자리했던 금성통신 본사(1969~1992)

2026.10.20/ #아카이브 #기록 #엣사진 #안양 #금성통신 #sinvce1980/ 안양 호계동에 있었던 금성통신 본사 건물로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발견한 사진이다(원본 보기 https://archive.history.go.kr/image/viewer.do?catalogId=DKI012_06_01V0000_030 ) 1980년 무렵 찍은 이 사진은 안양상공회의소에서 수집해 국사편찬위원회에 제공한 사료다. 금성통신은 금성사(현 LG전자)가 1969년 10월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호계1리(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에서 대한민국 전화기와 통신장비 산업을 이끌었던 제조 시설로, 1992년 부지가 매각된후 현재 안양국제유통단지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금성통신의 역사를 보면 1965년 부산 온천동(溫..

[20261020]안양소리보존회 정기공연 10.29일 제8회 안양소리여행

우리 전통의 소리, 특히 안양지역의 소리를 보존하고자 설립된 안양소리보존회의 정기 공연, 제8회 테마가 있는 안양소리여행(채석장, 집짓는 소리)이 안양문화원이 주최하고 안양일소리보존회가 주관하며 안양시, 안양시의회, 안양문화예슬재단 후원 아래 오는 19일 오후7시 안양아트센터 1층 대공연장에서 무료공연으로 진행된다. 이날 정기공연은 ‘1막 '채석장의소리(돌깨는소라)’, ‘2막 '지경소리(땅 다지는 소리)’, ‘3막 성주풀이(한옥 짓는 이야기)’, ‘4막 대꼬질소리(돌 다듬는 이야기)’, '5막 목도소리(돌과 나무를 옮기는 이야기)' '6막 상량식(마룻대 올리는 이야기)', '7막 현판식(현판과 주련을 다는 이야기) '9막 경기민요'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안양일소리보존회는 테마가 있는 안양..

[20261020]안양일번가, 제4회 넘버원 페스티벌 간만에 인파 북적

안양의 대표 상권인 안양1번가에서 지난 16일과 17일 이틀간 ‘제4회 안양1번가 넘버원 페스티벌’이 열리자 간만에 인파로 북적이묘 덩달아 상권도 모처럼만에 활기가 넘쳤다. ‘원더랜드(ONE-DER LAND), 모두의 꿈이 모이는 곳’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추진된 이번 페스티벌은 시와 지역 4개 대학(대림대·성결대·안양대·연성대), 안양1번가 상가번영회가 상호 협력해 기획한 오감 만족 체험형 축제로 꾸며졌다. 안양1번가 상가번영회는 대림대·연성대와 손잡고 다채로운 먹거리를 제공하는 푸드존을 기획·운영했으며, 헤어 스타일링, 캐리커처, 페이스 페인팅 등 다양한 체험형 부스가 마련돼 방문객들에게 참신한 즐길 거리를 선사했다. 행사 첫날인 16일에는 대림대 ‘메멘토’와 안양대 ‘비아워’의 버스킹 연주를 비롯..

[20261018]안양3동 양지마을내 안양서초 신축 부지 1970년 풍경

2026.10.18./ #아카이브 #기록 #옛사진 #양지마을 #안양서초 #since1970/ 경기 시흥군 안양읍 안양3리 양지마을의 1970년 풍경으로 안양서초등학교가 들어설 부지 주변 모습이다. 1972년 11월21일 안양서초등학교는 1972년 11월21일 개교했으니 그 이전인 1970년에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안양시 홍보실에 근무했던 이정범 선생이 소장한 기록물로 안양광역신문 2026.10.16.일자(제1229호) 이정범의 추억속의 안양(530)을 통해 소개됐다.안양3동 양지마을은 이 마을의 지세가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예로 부터 '양짓말'로 불리우다 행정명칭인 양지동(陽地洞)으로 지금은 안양3동이라 불리운다.안양시사 등 기록을 보면 이 마을에는 조선조 제2대 정종의 7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