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김대규]양지동에서 관양동까지

안양똑딱이 2016. 7. 1. 16:16
[김대규]양지동에서 관양동까지

[2006/06/17]시인
양지동에서 관양동까지

나는 양지동(안양3동) 나의 집에서 관양1동 소재 안양시민신문사까지 주로 8-1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한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14개의 정류장을 거치는 코스는 매일 똑같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노라면 날마다가 새로운 아침 여행길이다.

버스를 타러가는 양지동 골목길은 초·중·고·대학생들이 어우러진 등교시간인지라 나의 유년시절부터 대학생활까지를 회상해볼 수 있어, 언제나 내 자신이 학생으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어느 날이었던가, 버스에 오르니 “어서 오세요”라는 여기사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모든 승객들에게 일일이 똑같은 인사를 한다.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해진다. 하차할 때는 빠짐없이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는 인사말이다.
8-1번의 ‘바 1068’차량 여기사. 은근히 기대해 보지만, 지금까지 서너번 밖에 만나지 못했다.

삼덕제지 정류장을 지날 때는 전재준 회장님 생각이 먼저 나지만, 6·25 직후 초등학생일 때, 건물은 무너지고 덩그마니 남아 있는 굴뚝을 누가 가장 높은 데까지 오를 수 있나 시합을 하던 아슬아슬한 추억이 떠오른다. 이제 굴뚝은 사라졌으나 옛생각은 갈수록 새로와지리라.

중앙시장 정류소 만안로 사거리 한 구석의 안양역전 우체국. 그곳은 나의 모든 편지들이 발송되던 곳. 조병화 시인과의 ‘시인의 편지’도, 아내의 소녀시절에 보냈던 사랑의 편지도 그곳에 들러 부쳤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 공연히 가슴이 뛴다.

요즘 안양1번가 주변 상가들은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사업으로 새 단장을 했다. 보기에 좋다. 그러나 바탕이 나무색으로 획일화된 점, 2층 이상과는 오히려 조화스럽지 못한 점이 거슬린다. 업종별로 같은 색깔로 한다든가, 건물의 특성을 살리는 개별화된 디자인이 아쉽다.

2001아울렛 정류소 인근은 그 옛날 일제하에서는 ‘신사(神社) 마당’이라 해서 넓은 공터에 뛰어놀기 좋은 곳이었다.

그 인근에 ‘통술집’이라는 막걸리집이 있었다. 고인이 된 안진호 시인의 단골집. 우리는 그곳에서 매일이다 싶게 시와 사랑과 인생의 정열을 대포잔에 퍼붓곤했다. 그 언덕 위의 안양샘병원. 우리 세 아이들도 거기서 출산했고, 아버지가 운명을 하신 것도 그곳이니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없을 수 없다.

중화한방병원 바로 뒤에 나의 모교 안양초등학교. 반 세기 훨씬 너머 그 시절에는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은 족히 걸어야 했다. 차가 어디 있었나. 지금은 차만 타면 10분 이내다. 그렇게 변했다. 그러나 시간보다 세월이 더 빠르게 느껴진다.

비산대교를 건널 때마다 나는 파리의 세느강과 미라보다리를 생각한다. 50여 개의 다리 중에 ‘미라보다리’는 시인 아뽈리네르가 유명한 시를 써서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그런데 안양천은 공해·오염의 상징처럼 운위되어 와서 가슴이 편치 않았다.

동안구로 넘어오면 정류장이름에 ‘OO아파트’가 많다. ‘수촌마을’만 정겹다. 더구나 정류장에 영업관계 업소의 명칭이 많아, 차내 방송에서는 광고까지 한다. 늘 반복되기 때문에 무감각해졌다. 지면 관계로 출근길의 단상은 여기서 접어야겠지만, 엄청나게 변화한 안양의 모습이 나에게는 별로 변한 것 같지가 않다. 늘 조금씩 달라진 것을 계속 보아왔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고향은 불변인가 보다.

2006-06-16 22:4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