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이금연]안양시장님, 벽산로를 느껴보십시오

안양똑딱이 2016. 6. 21. 16:56
[이금연]안양시장님, 벽산로를 느껴보십시오

[2004/12/31 안양시민신문]

 

신중대 안양시장님께 드립니다.

차가운 바람에 감겨 새로운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느 한곳 차별하지 않고 고루 온 누리에 빛을 선사하는 햇님의 따뜻함이 시장님의 마음에 가득하시길 바라며, 저희 이웃인 벽산로 노점상들의 이전문제로 의견을 드리고자 합니다.

편리한 문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문명도시에 있어 바람직한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벽산로를 정비하겠다는 안양시의 행정계획에 딴지를 걸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추진은 자칫 그 자리에 살아온 삶의 고귀한 모습을 파괴하고 소외계층을 더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됩니다.

현재 벽산로 노점상의 대부분은 여성들이며 그중 70세이상 고령의 할머니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이 20년 가까이 시 당국의 협조와 배려 아래 벽산로에서 노점을 해 온 것은 그 자체로 역사이고 문화입니다. 텅빈거리가 아닌, 충만하고 활기찬 거리로 만들어 보행자들의 발길을 이끄는 따뜻한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 바로 벽산로입니다.

안양시는 한순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돌 하나 풀 한포기 그리고 사람들… 한명 한명이 바로 안양을 구성하고 있고, 그것들이 함께 존재하며 안양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벽산로를 오고갔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한숨과 주름살 하나하나가 베어 있는 곳이 바로 이 거리입니다. 1960년대 중반 가난한 노동자들이 ‘보리싹 식당’(이곳은 안양시 역사에 기록될 최초의 급식소라고 볼 수 있음)에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다시 기운차려 일터로 돌아갔던 이 거리에서는 지금도 노숙자들이나 시장상인들, 장보러 오신 시민들이 같이 어울려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노점상과 보행자간의 어울림의 무대는 문화 그 자체입니다. 불편함을 호소한다는 얼굴 없는 민원인들 때문에 혹은 편리함과 깨끗함을 선호하는 행정당국의 눈으로 이 거리를 진단해 이주를 강요하는 것은 문화의 파괴이자 존재에 대한 위협입니다.

시장님, 시청의 높은 건물 위에서는 자칫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기가 조금 힘들 수 있습니다. 내려오십시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오십시오. 노점 할머니들의 손을 잡아 보시고 눈길을 느껴 보십시오. 이 거리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일상의 퍼포먼스’에 동참하셔서 생활문화가 얼마나 맛나고 값진 것인지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시아 전체가 재앙으로 몸부림치고 있으며, 서민들이 생활고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때입니다. 노점 아주머님들과 할머님들에게 지난날 시 당국이 관용의 행정을 펼쳤던 것처럼 그대로 해주십시오. 벽산로 거리문화를 온전하게 보전해 주시길 청하며 이만 줄입니다.

2004년 12월31일 이 금 연
안양 전진상복지관장 드림

2004-12-31 16:5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