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김수섭]안양의 ‘기러기 한 마리’

안양똑딱이 2016. 6. 21. 17:00
[김수섭]안양의 ‘기러기 한 마리’

[2005/01/28 안양시민신문]변호사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자 동네 중 하나가 ‘압구정(狎鷗亭)’동이다. 한글로 풀이하면 ‘기러기와 더불어 노니는 정자’라는 의미로 압구정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권신이었던 한명회가 한강가에 지은 정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기러기가 먹이를 찾아 한강 중류지역까지 거슬러 올라오는 장관을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조선시대 많은 사람을 죽인 공로로 권세를 얻은 사람이 지은 정자가 수백년 후 우리나라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는 투기지역이 되는 것을 보면 혜안이라고 하기보다는 씁쓸할 따름이다.

물가에서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는 기러기가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아마 ‘기러기 아빠’라는 새로운 단어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자녀의 유학을 도우러 장기간 함께 외국에 나가 있을 때 국내에 남아서 열심히 돈을 벌어주는 남성을 ‘기러기 아빠’라고 하는 듯하다. 아마 기러기 새끼를 암컷이 품고 있으면 수컷이 멀리 날아가 양식을 구하기 위해 혼자 돌아다니는 일을 하는 모습에서 착안한 어휘가 아닐까 싶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가 아니면 친정에도 가지 않는 집사람과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었다. “한번 다녀가라”는 처제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남편을 들볶는 집사람에게 선녀라도 너무 무거워 하늘로 날아서 도망가지 못한다는 세 아이를 딸려 보내고는 외로운 기러기가 되었다. 주말의 한가로움과 저녁에는 식탁에 앉아서 차 끓는 소리를 듣는 우아한 모습을 상상하며 내심 즐거운 일탈을 꿈꿨었다. 하지만 우아한 솔로가 되기 위해서는 부지런함과 살림에 대한 최소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불과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천성이 게을러 집안청소에 열을 내지 않고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고는 라면 밖에 없는 서생이 우아한 솔로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처럼 불가능했다. 우아함은 고사하고 생존을 위해 허덕이는 중년의 불쌍한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작년 연말 날씨가 너무 따뜻하다고 푸념한 것이 동티가 되었는지, 새해 초부터 추위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몇만명에 달한다는 노숙자들은 지하철 한구석이라도 차지하려고 자리싸움을 하고, 경제난으로 무료급식소는 운영에 허덕인다는 보도를 들으며, 풍요의 시대를 자랑하는 우리들이 우리 사회 한 부분의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게 된다.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안양에서 설마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에 빠지는 것이 된다. 한 여성단체에서 조사한 바로는 동안구에만 1만3천가구 이상의 모자(母子)가정이 있었고, 아마 부자(父子)가정도 이와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추산되었고, 만안구의 상황은 보다 더 열악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스스로 자초한 기러기아빠의 생활도 일주일을 버티기 어려운데 수년간 가정이 깨어져 타의에 의해 기러기가 된 사람들의 어려움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안양시, 국가가 나서 지역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지만, 결국 이웃과 나누어 사회의 붕괴를 막으려는 안양시민의 노력과 헌신이 결부되지 않으면 우리 이웃이 어려움을 견뎌 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올해는 사랑의 쌀나누기 사업에 꼭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2005-01-29 13:0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