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552

[임희택]안양 더푼물 샘과 머리 두개 달린 뱀(2022.05.10)

범고개에서 더푼물까지 가는 고갯길에는 양쪽으로 개나리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봄이면 길가가 아주 샛노랗게 꽃장식이 되었었다.그 개나리숲이 끝나는 무렵, 그러니까 고갯길 정상 무렵 왼쪽으로 더푼물을 들어가는 샛길이 있는데 그 샛길 입구에 어린시절 애들 눈에 제법 큰 향나무가 있었고 그 향나무 아래 작은 옹달샘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차가 많이 다니지 않을 때니 물이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맑아서 고갯길을 오르며 지쳤을 때는 그 물을 마시기도 하였다.어느날 나보다 두살 적은 고종사촌 지훈이가 학교 운동장에서 내게로 달려왔다."형. 더푼물 샘가에서.... 어떤 아저씨가 머리 두개 달린 뱀 잡았다...""어, 그래?"그런 뱀이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가까운데서 그런 뱀을 잡았다니 호기심이 들었다.그 날 방과 ..

[임희택]안양 더푼물고개와 닭 잡던 날의 씁쓸함(2022.07.05)

어릴 때 키우던 메리가 한 번은 닭을 물고 왔다. 비포장 더푼물 고개를 털털거리며 올라가던 닭차에서 탈출한 놈을 메리가 잡아 물고 온 것이다. 그날 우리도 메리도 닭고기를 먹었다. 집 굴뚝 옆으로 얼기설기 그물망을 엮어서 병아리를 키웠는데 금방 중닭이 되고 어미닭이 되고 그랬다. 그런데 쥐의 소행인지 아니면 족제비의 소행인지 몰라도 가끔 아침에 가슴팍이 뚫려 내장을 쏟아 놓고는 헐떡이는 닭들이 나오곤 했다. 그런 날도 우리는 닭고기를 먹었다. 그 때는 닭잡는 게 참 쉬웠다. 고통스러워 하는 걸 보느니 얼른 확... 안양 시내로 이사를 나온 뒤 닭잡을 일이 없었는데 어느날 뒷방 세들어 살던 민정이던가 정이던가 꼬맹이네 엄마가 나를 불러 내다봤더니 닭이 발을 묶인 채 꼬꼬댁 거리고 있었다. 총각. 닭잡아 봤..

[임희택]안양 더푼물 고개와 범고개 그리고 문산옥(2022.07.12)

더푼물 고개를 엔진을 끈 채 달려 내려와 범고개 주막거리에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지무시가 지나가자 문산댁은 하얀 신작로에 물 한대야를 힘차게 끼얹었다. 촤르륵... 한길 건너 문산옥 맞은 편에 까마득히 솟은 미류나무 중턱 어딘가에서 매미가 맴맴 울어댔다. 아직 해가 중천에 뜨기도 전부터 술꾼들 둘이 문산옥 가게 바닥에 파묻힌 항아리 뚜껑을 침을 꼴깍 삼키며 넘겨다 보았다. 문산댁이 항아리 뚜껑을 열자 시큼한 막걸리 향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술꿀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침을 한 번 삼키며 "형수, 거 시원하게 한대접씩 주세요." 한다. 이제 겨우 아침상을 물리고 설겆이를 마친 문산댁은 이른 시간에 술을 청하는 술꾼들은 타박하지도 않고 사람 좋아보이는 눈웃음으로 누런 양은 대접에 가득 담아 한잔씩 건넸..

[임희택]안양 박달동 근명중학교와 대성초자 공장(2023.06.17)

내가 아주 어릴 때 근명중학교는 박달동 벌 산밑에 있었단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어릴 때라 본 기억이 없지만 건물 가운데 떡하니 시계 붙었던 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 학교 운동장 길 쪽으로 대성초자라는 마호병 공장이 있었는데 외사촌 형이 거길 다녔었다. 마호병 만들고 남는 유리물로 애들 놀이하는 다마 ㅡ 구슬도 만들었는데 하루는 구슬을 준다기에 공장 구경 삼아 갔었다. 아저씨들은 난닝구바람으로 기다란 파이프에 유리녹은 물을 묻혀 이리 저리 몸을 비틀며 불어서 마호병을 만들고 있는데 날도 덥고 유리 녹이는 용광로도 덥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지도록 온 힘을 다해 파이프를 부는 아저씨들도 덥고... 더운 열기 속에 애들 미끄럼틀을 작게 만든 것 같은 틀에 유리물을 조금씩 떨어뜨리면 그게 때구르르 굴러서 밑에 ..

[임희택]말이 있던집 도살장자리 경덕이형네 추억(2023.07.09)

말집 안동네 살다가 주막거리로 이사를 나온 뒤인지 아니면 그전부터 있었는지 기억에 없을 정도로 관심이 없던 그 집이 관심거리 안으로 들어온 것은 그집 아들 경덕이 형때문이었다. 우리집 앞 한길에는 아버지와 청년들이 학림산에서 옮겨다 세워놓은 비석같은 바위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날도 그 바위에 기어 올라갔다 뛰어내리기를 무한반복하고 있었다. 비록 내 키가 작기는 했지만 까치발을 들고 두손을 치켜들어도 꼭대기에 닿지 않을 정도의 높이를 가진 비석바위였는데 시외버스가 지날때마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속에서도 내 또래 아이들의 기막힌 놀이터 역할을 하였다. 하여간 동인천 가는 버스인지 물왕리 가는 버스인지 먼지 날리며 더푼물 고개쪽으로 올라가고 먼지 뒤에서 마치 서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탄 이가 짠하고 나타나 ..

[임희택]시멘트담장 판넬만들기, 거푸집과 폐유(2021.09.10)

어릴 때 집에서 시멘트 제품을 만들어 납품을 했는데 내 아버지는 팔기는 잘 파는데 수금을 잘 못하셨다. 게다가 새벽부터 한두잔 하신 것이 점심 무렵이면 인사불성 되기 일쑤. 덕분에 가끔은 내가 담장을 만들곤 하였다. 먼저 자리를 잡고 그 위에 쇠로 만든 거푸집을 조립한다. 모래를 체로 걸러 시멘트를 섞은 뒤에 물을 넣고 몰탈을 만든다. 한 뼘 가량 거푸집에 몰탈을 넣고 쇠 막대기로 잘 다진 후에 철사를 몇가닥씩 넣는다. 철사가 고르게 잘 들어가야 잘 깨지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몰탈 넣고 다지고 철사 넣고 또 몰탈 넣고 또 다지고 평평하게 하면 일단 끝. 하루가 지나면 굳는데 거푸집을 제거하고 물을 뿌려 이삼일 더 양생한다. 완전히 굳으면 한 쪽에 쌓아 놓고 판다. 만드는 과정은 이랬다. 거푸집이 잘 빠..

[임희택]육골 계곡으로 학교에서 집 오던 날의 추억(2022.05.10)

종실이네 과수원에서 몰래 따온 덜 익은 복숭아를 먹으며 친목동에 사는 친구들이 아침부터 자랑을 하곤 하였다. 우리 집은 지금 범고개(호현마을이라고 바꿨는데 나는 별로 탐탁치가 않아 그냥 범고개라고 부른다) 안동네에 있었는데 길 너머로 큰 고모네가 있었고 집 뒤로는 같은 반 친구네 공장이 있었다. 사실 친목동 친구들도 집 앞으로 지나갈 때도 있지만 대개 그들은 윗동네로 우회하여 육골로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절대로 육골 쪽으로 다니지 못하게 하였고 범고개 사는 친구들 따라서 신작로를 걸어 학교에 다니도록 하였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한 번 꼭 육골을 가보고 싶었는데 당최 그 쪽으로 가지지를 않았다. 몇달 차이 아니라고 해도 한해 일찍 들어간 학교에서 나는 유난히 작았다. 어머니는 그런 이유..

[임희택]안양 박달동 범고개와 주막거리(2023.07.07)

주막거리 어릴 때 살던 범고개는 한길 가의 주막거리, 안쪽으로 안동네 그리고 논 넘어 웃동네로 이루어져 있었다. 논이 있던 자리는 지금 안산가는 고속도로의 고가차도가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 주유소 자리, 그러니까 주막거리에 우리집이 있었고 맞은 쪽에 문산옥이 있었는데 가게 바닥에 항아리가 뚜껑만 내만 채 묻혀있었다. 문산옥의 문산댁을 큰엄마라고 부르며 왕래를 했는데 가끔 미루꾸도 주시고 삶은 곤달걀도 주시곤 했다. 문산댁은 어디 멀리에다 아들을 두고 와서 늘 끌탕을 하더니 내가 중학교 들어갈 무렵 그 아들이 왔다. 그는 가슴이 유난히 불쑥 나온 새가슴이었는데 어려서부터 나뭇지게를 힘들게 진 탓이라고 한숨 섞어 얘기하시곤 했다. 문산옥 앞에서 버스를 내려 길을 건너다 트럭에 치여 죽은 동생때문에 범고개를..

[20230707]어린이과학동아에 게제된 안양 왕개미제국 이야기

지난 2019년 4월 15일자 어린이과학동아(08호)에 [기획]국내 최대 개미왕국의 운명은? 제목으로 게제됐던 안양시 안양6동 옛 국립수의과학검억원 땅밑에 사는 왕개미 제국의 이야기입니다.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에 자리한 도심 정원(구 농림축산검역본부)에는 오랜 검역원의 역사를 지켜본 마치 정원을 지키는 수호신같은 수령 100년 가까이되는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를 근거지 삼아 엄청난 수의 왕개미들이 지하 땅속 제국을 이루어 살고 있는데 정원내 돌 경계석을 연결하는 수많은 틈새의 구멍은 지하 제국으로 연결되는 통로이고, 돌 경계석은 정원내 곳곳을 연결하는 개미들의 고속도로라 할수 있지요. 안양시 안양6동에 자리했던 구 농림축산검역본부(이전명칭: 국립수의과학검역원)는 일제 강점기 1942년 ..

[20230707]어린이과학동아에 게제된 안양 왕개미제국 이야기

지난 2019년 4월 15일자 어린이과학동아(08호)에 [기획]국내 최대 개미왕국의 운명은? 제목으로 게제됐던 안양시 안양6동 옛 국립수의과학검억원 땅밑에 사는 왕개미 제국의 이야기입니다.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에 자리한 도심 정원(구 농림축산검역본부)에는 오랜 검역원의 역사를 지켜본 마치 정원을 지키는 수호신같은 수령 100년 가까이되는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를 근거지 삼아 엄청난 수의 왕개미들이 지하 땅속 제국을 이루어 살고 있는데 정원내 돌 경계석을 연결하는 수많은 틈새의 구멍은 지하 제국으로 연결되는 통로이고, 돌 경계석은 정원내 곳곳을 연결하는 개미들의 고속도로라 할수 있지요. 안양시 안양6동에 자리했던 구 농림축산검역본부(이전명칭: 국립수의과학검역원)는 일제 강점기 1942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