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724

[20241105]K-로컬 미식여행 33선 전자책 PDF파일

K-로컬 미식여행 33선.한국어 포함 7개 국어로 번역이 되는 전자책이 나왔다.외국인 대상으로 음식 선정을 하고 그에 맞게 내용을 채웠다.. 아래 링크를 누르면 무료 다운로드 할 수 있다. https://korean.visitkorea.or.kr/resources/plugins/pdf.js/web/viewer.html?file=https%3A%2F%2Fsupport.visitkorea.or.kr%2Fimg%2Fcall%3Fcmd%3DTEMP_VIEW%26name%3D299d27a0-fcc1-4179-a5fc-1c819e63d540.pdf&filename=K-%EB%A1%9C%EC%BB%AC%EB%AF%B8%EC%8B%9D%EC%97%AC%ED%96%89_33%EC%84%A0&fbclid=IwY2xjawG..

[20241104]1910년 시흥군청이 있던 영등포 역사와 기록

영등포사 그날의 기억 그리고 기록(영상)유튜브 영상 보기https://www.youtube.com/watch?v=HcQulJdPZJg&t=136s 영등포는 언제 서울이 되었나글  원문 발췌 영등포문화원 영등포이야기(2017-09-07) 에서  대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영등포가 서울이 된 것은 1936년이다.경기도 시흥군이었는데 그 때 경성부에 편입되었다. 다은은 영등포의 연혁을 정리한 것이다. 영등포구라는 지명이 이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1943년의 일이다.이전에는 경성부(京城府) 영등포출장소(永登浦出張所)였는데 이 때 경성부가 구제(區制)를 실시하면서 경성부 영등포구(永登浦區)가 되었다.그리하여 영등포구에는 영등포출장소에 속해 있던 영등포정(永登浦町) 도림동에서 분동된 사옥정(絲屋町) 당산정..

[20241023]경인일보,전쟁과분단의기억 시즌2 '안양기독보육원'(2)

[경인일보]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 과거와 현재 100년… 역사 잇는 공간 '안양기독보육원'[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5)]이영지이영지 기자 bbangzi@kyeongin.com입력 2024-10-21 20:54수정 2024-10-21 21:03 '타자 할아버지' 오긍선 박사의 '좋은집' 정신 이어받다유년시절 보낸 이영운씨, 학교 다닌 덕에 무사히 사회 정착아이들 영농기술 가르치려 힘써 '우장춘 박사' 초빙하기도재원 마련 위해 손수 편지 써… 항상 타이프 치던 모습 기억3천명 거쳐간 곳인데 정신 깃든 공간은 낡아 용도 잃기 직전 경인일보 홈페이지 원문보기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41022010002054  안양기독보육원지난 4일 찾은 안양 ..

[20241026]1948년(76주년) 개교한 안양공업고등학교 변천사

2024.10.26/ #도시기록 #역사 #안양 #안양공업고등학교/ 안양공고 역사홍보관과 상징물들 공립학교인 안양공고는 이명섭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의 사재 출연으로 1947년 10월 설립인가를 받아서 1948년 3월 15일 염색과 6년제 6학급을 둔 시흥학원 안양공업중학교로 개교해 70년 넘는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1951년 8월 31일 학제 개편으로 안양중학교와 분리돼 3년제 공업고등학교로 재탄생했다.안양공고는 지난 1960~80년대 산업화시대에 전국 공업계 고교에서 으뜸가는 학교였으며 전국을 재패하기도 했던 축구명문학교였다. 2024년으로 개교 76주년을 맞이한 안양공업고등학교는 공업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특성화고로 교훈은 ‘튼튼한 몸, 슬기로운 마음, 앞서가는 기능·기술인’이다. 시대 변화에 ..

[20241013]1970년대 옛 안양 모습 담긴 <시흥화보>

2024.10.13/ #아카이브 #기록 #안양 #자료 #화보 #안양박물관/안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 제목으로 보면 마치 행정구역상 현재의 시흥시 자료 아닌가 싶지만 1972년 당시 행정구역이던 시흥군에 속해 있던 안양읍의 모습을 살펴볼수 있는 옛 자료다. 시흥군은 1895년 5월 26일 탄생되어 1988년 12월 31일로 93년만에 폐군되기까지 지금의 서울시의 6개구와 안양, 군포, 의왕, 과천, 시흥, 부천, 광명, 안산시 등 경기도의 8개시를 탄생시켰던 거대한 행정구역으로 해체전 군청이 안양에 있었다    시흥군의 변천사를 들여다보면 아주  복잡하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시키는 자료를 보면 알수 있다. 시흥(始興)이라는 명칭이 "넓은 땅(廣野)"을 의미하고 고구려 시대 지명인 잉벌노(仍伐奴)의 뜻풀..

[20241009]경인일보,전쟁과분단의기억 시즌2 '안양기독보육원'(1)

경인일보 전쟁과 분단의 기억고교 한 귀퉁이 '석축건물'… 아픈 역사, 흔적만 '덩그러니' 경인일보 홈페이지 원문보기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41008010000508&fbclid=IwY2xjawFylwtleHRuA2FlbQIxMQABHa3AMPPLK9d_hqaOD8VPpXD3ph_COgi6YeiA7GwYELnLIv7NGny886EoQg_aem_7j35KaHYcDnGil5pZCwxlg 입력 2024-10-07 20:34이영지기자 bbangzi@kyeongin.com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4)] 광복 - 안양 양명고교 현대식 건물 사이 '안양기독보육원' 일제강점기·한국전쟁 기간 고아 보살펴과거 교직원 사택 용도 사용… 현재 방치폭격 폐허 복구..

[20241009]경인일보 식민지 수탈의 오랜 상처… 안양 박달동

경인일보 전쟁과 분단의 기억식민지 수탈의 오랜 상처… 안양 박달동, 다시 '호랑이가 살던 마을'로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1)]경인일보 홈페이지 원문보기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40827010002770&fbclid=IwY2xjawFykhhleHRuA2FlbQIxMQABHQYCdDTAnTdUfPlZmhEf5QQOUgQWvJTaWkwQ823tvZBYHSjVzHxLtvtKTg_aem_9DdA34FCJGjwOlUu1K3u5A 입력 2024-08-26 20:40수정 2024-09-19 14:42\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광복 - 일제 안양~안산 병참기지 잇던 박달교 최적 요지 이유 '도로공사' 일부 건설 추정목조로 지어진후 미군 승..

[20241004]오래된추억, 마이크로카세트레코더 소니 M-550V

2024. 10.04/ #오래된추억 #아날로그 #소니휴대용녹음기/ 사용 안하는 물건들을 넣어둔 박스속에서 찾아낸 물건.오래된 세월 만큼이나 귀한 물건이 되다보니 구입 당시 몇만원짜리가 지금은 중고물건이 이베이에서 수십만원 한다. 마이크로카세트레코더 소니 M-550V매우 작은 휴대용 또는 포켓용(핸드헬드) 8인치.치수(WHD) 67.5 x 124 x 27mm / 2.7 x 4.9 x 1.1인치2트랙, 1채널 모노 녹음 시스템을 갖춘 마이크로카세트 레코더입니다.테이프 속도: 2.4 및 1.2cm/초주파수 응답: 250 - 4000Hz(2.4cm/초에서) DC 입력, 이어폰 및 외부 마이크를 위한 콘덴서 마이크 잭

[20241003]유유 안양공장 1996년 대형화재 발생했었다

2024.10.03/ #기록 #기억 #화재 #유유산업/ 1985년 4월 29일 안양 석수동에 있는 유유산업(현 안양박물관)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사진에 보이는 발화 장소는 공장내 뒷편 창고(현 특별기획전시관)로 사진은 당시 화재 현장에 출동했던 안양소방서 홍보담당김종철 소방관이 촬영했다.당시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1996년 4월 29일 오후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모기약제조업체인 유유후마킬라㈜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불은 창고안에 있던 18억9천7백여만원 상당의 분무식 모기약 완제품과 기계류, 창고건물 3채를 모두 태운 뒤 인근 1백40평규모의 비닐하우스로 된 화원(주인 김태종) 2채와 김씨의 승합차로 옮겨 붙어 1천3백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내 전체 재산피해액은 19억1천여만원(경찰추정)에 달하는..

[20241002]오래된추억, 컴퓨터 3.5인치 플르피디스켓

2024.10.02/ #아카이브 #오래된추억 #디스켓/ 사용 안하는 물건들을 넣어둔 박스속에서 찾아낸 물건. 컴퓨터 3.5인치 플로피 디스켓. 예전에는 컴퓨터 본체에 들어갔지만,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예전의 컴퓨터 저장 장치로​ 플로피 디디스켓을 사용했다. 5.25인치와 3.5인치가 있었는데 5.25인치는 얇고 쉽게 구부러질 수 있었고, 자기 디스크가 그냥 만질 수 있는 구조로 자칫 디스켓이 깨졌다고 표현하면서 고장에 취약했다.3.5인치는 좀 더 단단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으며 자기 디스크는 금속 셔터로 보호되어 슨으로 쉽게 만질수 있었다. 3.5인치는 1.44MB 용량이 있었고, 그것보다 작은 720Kb 짜리 용량의 것도 있었어. 1.44MB 용량은 2HD라고 불렀고, 작은 것은 SD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