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학연구소장/ 성결대교수 1932년 서이면 안양리, 현 대농단지 약 1만평의 부지 위에 일본인 자본에 의해 ‘조선직물주식회사’라는 최초의 근대적 방직공장이 설립되었다. 섬유공업에 적합한 공업용수를 찾아 전국의 물을 조사해 본 바, 박달동 일대에서 채집한 안양천의 수질이 최상이라는 판정을 얻은 결과였다. 덧붙여 안양리 일대의 풍부한 노동력과 서울에 인접한 교통상의 강점이 고려된 결정이었다. 8.15 광복 직전, 4개에 불과하던 제조업체 수는 6.25사변 직전까지 약 14개 업체에 종업원 수 1,068명에 이를 정도로 안양은 순탄한 도시화 및 산업화의 길을 걸어 왔다. 여기서 초기 안양의 산업화에 기여한 업종을 조사해 보면 양질의 공업용수가 있어야 가능한 산업 즉, 방직공업과 제지산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