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기억 122

[김종우]안양 음악다방 이야기(2020.05.06)

나는 지금도 그 예전 30여년 전의 다방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설레고 그 시절의 아련한 기억과 추억이 떠올라서 잠시나마 옛 생각에 잠기고 그 시절 음악을 듣기도 합니다. 1978년 년말 부터 1979년 년초의 한 겨울... 19,20살 시절 철없이 마냥 신나고 즐거웠던 기억의 중심 에는 그 이름도 정겨운 다방이 있었습니다. 다방과 관련된 이야기를 빼놓고선 그 시절을 기억 하거나 추억 할수 없을 정도로 다방에 관련된 이야기 라면 나에게는 아직도 무궁무진한 수다거리가 있습니다. 내가 알고 기억 하는 안양의 다방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안양에서 음악 다방 이라고 지칭 되던 다방의 시작은 중앙 시장 입구의 중앙 다방과 신신 다방 그리고 약속 다방이 처음이 아니었나 생각 되는데 우리 모두가 기억 하는 다방 이..

[이용구]안양 병목안 채석장의 기억(2010.05.20)

병목안시민공원 탐방기 지난 5월15일은 스승의 날이자 우리 안양 토박이들의 모임(서이회)이 있어 점심을 하고 처음으로 안양시 만안구 안양 9동에 있는 병목안 시민공원을 가 보기로 했다 이곳은 벌써 4년전인 2006년 5월 24일에 완공을 보았고 이에대한 찬사(讚詞)가 자자해 한번 꼭 가 보려 했으나 나는 가까이 살고 있다 하여 차일피일 하다가 이제껏 가 보지 않았다가 오늘 시간도 있고 날씨도 좋은 기회라 하여 나섰다 말에 의하면 여기에 10만1.238m2 부지에 약 260억이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안양 시민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시내 창박골행 버스로 삼거리 수퍼앞에 내리니 바로 올려다 보였다 공원입구 광장 안에는 자연석에 가로 새긴 "병목안시민공원"이라 쓴 돌 비석이 있었다 여기에는 주차장이 있고 각..

[조동범]안양 태창목재소 이야기

태창목재소 / 조동범 2003 가을호 시인이 쓴 산문  며칠 전인가 퇴역 군함을 수장시키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거대한, 사진 속의 군함은 제 생명을 다하고 가라앉고 있는 중이었다. 뱃머리를 하늘을 향해 치켜든 군함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자신의 일생을 바다에서 보내고 바다로 돌아가는 군함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수 없이 많은 전투와 항해를 겪었을 군함의 최후는 장엄한 느낌을 주기까지 했다. 다이버들의 훈련용으로 쓰일 것이라고는 하지만 고철로 분해되지 않고 온전히 바다에 묻힐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즐겁고 경이로운 일이었다. 군함은 천천히 녹이 슬어가며 아주 오래도록, 바다에서 보낸 일생을 추억할 것이다.   나는 그 사진을 보고 몇 달 전에 문을 닫은 태창목재소를 떠올렸다. 경기도 안양..

[정진원]한직골에서 안양까지

[정진원]한직골에서 안양까지(1) [한직골-인덕원] 도시 벌레가 농촌 풀잎을 야금야금 잠식(蠶食)하듯이 도시화(urbanization)가 이루어졌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그 거센 파도 아래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는 홈리스(homeless)가 된 느낌이다.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어디 변화되지 않은 곳이 있으랴마는 지금 어딜 가나 어리벙벙해질 뿐이다. 옛날 산골 촌놈 서울 구경의 충격이 도처에 있게 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길가에 동네가 있게 마련이다. 한직골과 안양 사이에는 ‘한직골-양지편-벌모루-성고개-진터-인덕원-(동편)-부림말-간뎃말-(샛말)-말무데미-뺌말-(안날뫼)-구리고개-(운곡)-수푸르지-안양’이 굵은 동아줄에 큰 매듭들로 맺혀있듯이 있었다. 마을마다 아이디(ID)가 붙어있어서 나름대로의..

[정진원]남태령에서 부림말까지

[정진원]님태령에서 부림말까지 옛날 과천(果川)은 한때나마 서울(한양)의 관문이었다. 과천에 ‘관문리(官門里)’가 있는데, 그것이 옛날 과천군의 관문(官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괜찮은 지명이지만, 한양의 관문이란 뜻이라면 관문(關門)이 맞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서울이 낭(떠러지)이라니까 과천서부터 긴다’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한양 남쪽 사람들이 인덕원을 거쳐 과천으로 들어오고, 남태령을 넘어 지금의 사당동을 거쳐 동재기(동작)나루나 노량나루에서 한강을 건너 한양에 입성했을 것이다. 또는 과천 삼거리에서 지금 양재동(옛날 말죽거리)으로 나가 새말(신사동)나루나 압구정나루에서 한강을 건너기도 했었다.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양재역에 이르매, 신하들이 급히 죽을 쑤어 바치니 왕이 말 위에서 죽을 먹고 ..

[정진원]인덕원에서 지지대고개까지

[정진원]인덕원에서 지지대고개까지   “… 동재기 바삐 건너 승방들, 남태령, 과천, 인덕원 중화하고, 갈미, 사근내, 군포내, 미    륵당 지나 오봉산 바라보고 지지대를 올라서서 …”「춘향전」의 한 대목이란다.    ‘동작진(洞雀津)-승방평(僧房坪)-남태령(南太嶺)-과천(果川)-인덕원(仁德院)-갈산점(葛山    店)-사근평(肆覲坪)-지지대(遲遲臺)-수원(水原)’ 김정호의「대동지지」가운데 일부분이다.   ‘중화(中火)’한다는 것은 길을 가다가 점심을 한다는 뜻이므로 한양을 바삐 떠나 한강을 건너고, 세네 시간 걸려서 점심때쯤 인덕원에 당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몽룡이 인덕원에서 어떤 점심을 먹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인덕원 사거리에서 남쪽으로 학의천이 흐른다. 그 개울을 건너면 벌말(평촌)인데,..

[조성원]1960년대 안양초등학교의 봄소풍

봄소풍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상큼한 이 노랫말을 들으면 지금도 나는 풀 향기 그윽한 푸르른 아이가 된다. 환경미화 기간이 지나면 어느 새 산천은 온통 짙게 푸르렀다. 흡사 천천히 아주 느리게 아다지오의 선율로 시작되어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의 흐름으로 펴져 경쾌한 알레그레토 교향곡으로 변한 왕연한 산천초목의 느낌이다. 시와 때를 구분하는 질서와 정렬 그리고도 분수껏 품위를 스스로 낮추는 봄의 꽃 마음을 읽는다. 그 시절 목련 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빛나는 청춘의 계절을 음미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순진한 꿈은 마냥 부풀었다. 5월은 어버이날에 스승의 날 그리고 우리의 날이 있어 늘 분주하였으며 더욱이 5월 초는 반드시 봄 소풍을 갔기 때..

[이용구]안양에 비친 당시 제일교회의 모습

이 글을 쓰신 이용구 선생은 1926년생으로 제일교회가 창립된 1930년도에는 다섯 살 밖에 안 되는 어린이였지만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양3동 양지마을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며,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의 생활과 안양의 당시 모습들은 눈썰미 있게 보아 두었다가 그의 책 '양지마을의 까치소리'  등을 통해 안양지역 사회의 과거를 들려주고 있다. -편집자 주- 내가 나가는 안양제일교회 80년사(1930년~2010년)가 발간 되었습니다 여기에 투고한 글이 등재 되었기에 전기 하오니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1030.5.17 창립) 1930년 당시 안양은 서울역에서 24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안양역을 중심으로 밀집된 곳에만 겨우 전깃불이 있을 뿐, 그 외에는 밤이면 희미한 석유 등잔불만이 가물거리는 고장..

[최병렬]안양지역사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사람들

향토사는 지역사·국사·민족사의 모체요 뿌리로, 곧 모든 역사의 콘텐츠라 할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근래 들어 지역향토사를 연구, 탐구하는 이들이 극히 드물고, 문화원들도 이같은 연구를 소홀히 하고 있어 과거사의 연구는 커녕 현존하는 사실들 조차 제대로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채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안양지역의 향토사에 대해 박식하거나 자료를 수집하거나 기록을 남기는 분들이 여러분 있지요. 안양지역 변천과 행정사에 박식한 변원신 선생, 안양사 발굴을 안양청원할 정도로 안양시 연구에 몰두해 온 지역원로인 정덕한선생, 안양시 홍보실에 근무하며 70년대 부터 안양지역을 사진 기록에 담은 이정범 선생, 1968-69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애 근무하며 안양지역의 풍물을 컬러슬라이드와 흑백필림에 담아낸 닐 미..

[최병렬]안양사람들이 기억하는 오래된 음식점 이야기

안양사람들이 기억하는 오래된 음식점 이야기안양지역에 음식점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아마도 한양가는 길목인 인덕원 사거리 일대 자리했던 주막에서 당시 오가던 길손에게 팔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추정일뿐 기록은 없다. 안양시는 2006년 안양시민축제 당시 음식문화축제를 준비하면서 안양의 대표음식으로 설렁탕을 선정해 과거 자료를 수집한 적이 있다.자료를 조사한 안양문화원 최태술 위원은 “지금 동안구 평촌에 귀인동이 있다. 이 마을은 이름 그대로 宮中에서 宮人으로 생활하다 퇴역 하신 귀인(貴人)들이 살든 곳이어서 귀인동이다. 또 수촌마을에는 내시촌이 있어 두 곳 다 퇴역한 궁인들이 궁중에서 하던 선농제 행사에서 끓이던 설렁탕 기술을 알았을 것이다”며 이를 통해 설렁탕이 일반에게 전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