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동네탐사 85

[탐사44]안양 석수3동 충훈부(2)(2014.04.12)

2014.04.12/ #도시 #동네 #골목 #안양탐사대 #석수3동 #충훈부/ 안양기억찾기탐사대 44차 탐방. 석수3동-충훈부 골목(2)/ APAP 안양 만담 발표 그리고 아주 늦은 저녁식사를 했던 안양 초당두부집 까지 이어지는 여정. 석수3동주민센터-석수로 212번길-충훈로-충훈로 101번길-석수로 166번길-와룡로 안양 석수3동은 예로부터 충훈부(忠勳府)라 불리워 왔다. 충훈부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에 공훈을 세운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고 공적을 보존하는 사무와 공신으로 책록할 때 해당자의 업적을 조사하거나 공신 책봉 후 그 후손들을 관리하는 업무도 맡는 등 현재의 국가보훈처와 유사한 업무를 처리하던 기관으로 현 서울 안국동 사거리에서 인사동 들어가는 광장에 자리하고 있었다. 안양 석수3동은 일제강점기에..

[탐사43]안양 충훈벚꽃축제 & 석수3동(1)(2014.03.29)

2014.04.05/ #안양 #기억찾기탐사대 #골목 #동네 #석수동3동 #충훈벚꽃축제/ 안양기억찾기탐사대 43차 여정을 석수3동에서 시작. 충훈고-충훈부 안양천 뚝방길(충훈벚꽃축제)-충훈2교-와룡로3번길-석수로202번길-석수동주민센터-석수로212.216번길-시내버스9-3차고지-충훈고-안양예술공원(김중업박물관)-뒷풀이 안양 석수3동은 일제강점기에 밤의 명산지로, 1950년대에는 화훼와 고등채소로 키우던 곳이다. 1970년대 초 시흥군 안양읍 시절에는 이곳(현 럭키아파트 자리)에 안양공설운동장이 설치돼 군과 읍 행사 등 다양한 대규모 행사들이 이곳에서 열렸다. 특히 1977년 안양 대홍수때는 이곳에 수백동의 천막이 설치돼 피난민들이 임시 수용돼 생활하기도 했다가 1986년 6월 30일 비산동에 새 운동장을 ..

[탐사42]안양 박달1동(2) 만안유치원 주변(2014.03.22)

2014.03.22/ #안양 #안양기억찾기탐사대 #박달1동 #안양2동 #마을 #동네 #골목/ 안양기억찾기탐사대가 42차 탐사 여정으로 찾아간 박달1동 두번째. 안양2동 미래신협정류장-박달우회로 골목-만안유치원- 안양천변까지/ 이 동네 골목길은 비교적 넓찍 넓찍합니다. 이 곳에도 원룸건물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지만 그래도 마당이 있는 집도 있고, 골목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예쁜 집앞 골목도 있답니다. 박달1동은 조선시대에 금천현 현내면 박달리였다가 제22대 정조때(1795년)만안교를 가설한 후, 시흥현 현내면 박달리로 되었다가 고종때(1895년) 시흥군 군내면 박달리로 개칭되었다. 본래 박달1동주민센터 일대는 먹해들이라고 불렀는데 박토여서 농사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37년경 박달2동 붓골..

[탐사41]안양 박달1동(1) 박달시장 주변(2014.03.15)

2014.03.15/ #안양 #안양기억찾기탐사대 #박달1동 #마을 #동네 #골목/ 안양기억찾기탐사대가 41차 탐사 여정으로 찾아간 박달1동. 안양여고 정문앞에서 출발해 박달시장 주변과 안양천 박석교. 박달1동은 조선시대에 금천현 현내면 박달리였다가 제22대 정조때(1795년)만안교를 가설한 후, 시흥현 현내면 박달리로 되었다가 고종때(1895년) 시흥군 군내면 박달리로 개칭되었다. 본래 박달1동주민센터 일대는 먹해들이라고 불렀는데 박토여서 농사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37년경 박달2동 붓골 살던 권공선(시흥시 신현동 출신으로 알려짐)이 평양 육균병기창 안양분창 건설로 마을이 폐동되자, 농사를 짓기 위해 지금에 박달1동주민센터 부근에 처음으로 정착한 후 일제 말엽부터 차차 민가가 형성되..

[탐사40]안양2동(3) 안양여고 뒷동네(2014.03.08)

2014.03.08/ #안양 #안양기억찾기탐사대 #안양2동 #박달동 #마을 #동네 #골목/ 안양기억찾기탐사대가 40차 탐사 여정으로 찾아간 안양2동 세번째는 안양여고 뒷동네. 안양여고-벽화 그려진 임희택씨 집-안민교회-어수정경로당-만안플러스어린이집- 군부대 옛관사촌(양화로 116번길) 안양여고 뒷편에는 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주택이 많지 않았다. 60년대 중반 들어 택지를 분할해 문화주택들이 골목마다 들어섰고 그 덕분에 지금도 골목길이 넓찍넓찍하다. 옛 단독주택들은 다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연립, 다세대, 다가구주택에 이어 원룸 건물이 여기저기 들어서고 새로운 공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안양2동과 박달동에 만나는 경계지역에는 예전에 수원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소를 찾아가던 정조 임금이 능행사를 하면서 마신..

[탐사39]안양2동(2) 만안초-안양천변(2014.03.01)

2014.03.01/ #안양 #안양기억찾기탐사대 #안양2동 #북부동 #마을 #동네 #골목/ 안양기억찾기탐사대가 39차 탐사 여정으로 찾아간 안양2동 두번째. 만안초등학교-대교보신탕-1번국도(구도로)안양천변-안양교-수암천합류부-안양천교-수암천변-양명인도교-옛 화단극장-안일초교-안양역. 안양시 안양2동 만안초교 주변은 과거 중앙동(현 안양1동/안양일번가) 북쪽에 있다 해서 북부동이라 불리우던 동네였습니다. 변원신 어르신의 구술에 의하면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에는 안양에 포도를 들여와 심었던 대규모 오끼농장이 있던 자리였다고 합니다. 농장의 흔적은 1960년대에도 만안초등학교 북쪽, 안양보육원(현 좋은집) 인근에서 볼 수 있었지요. 만안초교 뒷편에서 안양천변까지는 아주 넓은 농장이었는데 곡식을 담는 커다란 싸일..

[탐사38]안양2동(1) 옛 북부동/안양역-만안초교(2014.02.22)

안양기억찾기탐사대가 38차 탐사 여정으로 찾아간 안양2동. 안양 대동문고 - 체석장행철길 - 공구상가 - 안양2동주민센터 - 만안초등학교 "안양 일번가는 예전에 중앙동, 남부시장쪽은 남부동은 만안초교가 지리한 안양2동은 북부동으라 불리웠다" 안양이 시로써 변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895년 과천군에서 1949년 안양읍으로, 1973년 안양시로 승격하면서 부터다. 안양의 다운타운은 1902년 경부선 철도가 놓여지고 안양역이 생기면서 장이 서던 과거 시대동(市垈洞)이라 불리우던 시대동(1926년 개설된 구시장터/ 주거환경사업업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린 주공아파트단지 ) 에서 시작된다. 902년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안양역을 중심으로 발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안양역 앞에 있던 용화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탐사34]안양3동 대농단지 골목길2(2013.12.07)

안양탐사대가 2013년 11월 30일에 이어 12월 7일 두번째로 찾아간 34차 여정은 안양 박달1동과 안양3동의 대농단지라 불리우는 곳으로 지금은 안양1번가와 연계하는 상업지역이자 주거지역으로 다양한 형태의 주거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인 1932년 일본인들에 의해 군복용 광목을 생산하는 조선직물주식회사가 설립되고 조선견직이 들어섰던 대규모 공장이었지요. 이 곳에는 1938년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화신백화점 총수였던 박흥식이 해방을 앞둔 1944년 8월19일 자본금 5천만원(당시화폐)으로 부지 3만평에 건평 1만평 규모의 초대형 조선비행기주식회사를 설립합니다. 조선비행기주식회사의 설립과정은 박흥식에 대한 반민특위 공소장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는데, 인근 토지를 몰수하는 등 총독부 힘을 ..

[탐사37]안양3동 햇살 따사로운 양짓말(2014.02.15)

2014년 2월 15일 안양기억찾기 탐사대가 37차 여정으로 찾은 곳은 안양3동 양짓말(양지마을)로 지난해 5차(2013.3.02) 여정에서 찾았다가 1년만에 다시 가본 골목 골목에는 변함 없이 그대로 반겨주는 것들도 있지만 새롭게 바뀐 것들도 적지 않네요. 양짓말은 이 마을의 지세가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예로 부터 '양짓말'로 불리우다 행정명칭인 양지동(陽地洞)으로 지금은 안양3동이라 불리우지요. 안양시사 등 기록을 보면 이 마을에는 조선조 제 2대 정종의 7남인 수도군(守道君)의 증손 이공(지제부수) 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이래 원주 원씨 등이 세거했답니다. 마을 명칭 에 대하여 양지(陽地), (陽智), (陽知), (陽至)등 문헌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마을의 지세가 양지바..

[탐사36]안양초교 주변과 덕천마을 마지막 모습(2014.02.08)

2014년 2월 8일 안양기억찾기 탐사대의 36차 여정은 2014년도 첫 탐사로 하얀눈이 내리는 이날 찾아간 곳은 안양7동 덕천마을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찾아간 재개발로 철거가 한창인 공사 현장과 경부선 철길과 서울-수원간 국도1호선(구도로) 건너편에 있는 안양초교 주변 교하동이다. 안양7동 덕천마을은 많은 사람들이 오손도손 살던 집들과 그 많은 건물들이 모두 헐리고 이제 몇채 남지 않은 건물들에 대한 철거작업이 막바지다. 또 비산고가쪽 도로 입구 주변에는 재개발 건축을 위한 현장사무소 설치를 위한 지반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중앙 도로 안으로 들어가며 사진촬영을 하자 경광등을 단 승용차 한대가 오더니 공사현장에서 나가란다. 덕천마을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왔다며 정중히 양해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