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동네탐사 80

[탐사10]안양 진달래동산.학의천.apap새동네(2013.04.13)

10차(2013.4.13) 효성 진달래동산과 안양천.학의천 그리고 APAP2010 새동네 안양에는 꼭꼭 숨어있는 명소가 몇군데 있습니다. 안양유원지(안야예술공원) 끝자락 서울농대 수목원이 그렇고 효성 안양공장 진달래동산도 그중 한곳이지요. 진달래동산은 봄이 오면 핑크빛 명소로 입소문난 곳인데 일년에 단 하루만 개방하면서 그 속살을 드러냄에 따라 평소에는 보고 싶어도 멀리에서만 볼 수 있고 들어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인데 지난 13일 일반에 개방했답니다. 효성 안양공장은 안양 명학역에서 평촌으로 가는 길 우측에 자리하고 있지요. 주소지로는 안양시 동안구 시민대로 74로 명학대교를 건너며 오른쪽에 보이는 야산(진달래동산)이 마치 핑크빛 물감을 엎질러 놓은 듯 착각에 빠질 정도이지요. ㈜효성이 진달래동산을..

[탐사9]안양8동 옛 안양경찰서 건물(2013.04.06)

안양기억찾기탐사대 아홉번째 탐사로 2013년 4월 6일 옛 안양경찰서 건물을 안양시의 협조로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어렵게 찾은 안양경찰의 역사를 보면 1945년 10월 21일 안양읍 안양리(당시 금성방직 자리. 현 안양2동)에 처음 개서하고는 이어 1950년대 시흥군청, 안양읍사무소, 의용소방대 등과 함께 안양읍 안양리(현 안양1번가)에 자리하게 됩니다. 이후 안양경찰서는 1973년 7월 시흥군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되면서 안양6동에 관공서들이 마련되자 안양시청(현재의 만안구청), 시흥군청(현재의 만안여성화관) 등과 함께 이전한 것이 사진첩속 모습입니다. 안양경찰서는 1990년대 말 안양 동안구에 평촌 신도시 건설되고 관공서의 평촌시대를 시작하면서 1999년 11월 3일 평촌에 새청사를 짓고 다시..

[탐사8]안양2동 좋은집과 양명고의 문화유산(2013.03.30)

안양기억찾기 탐사 8번째로 찾아간 안양 최초의 사회복지시설 ‘좋은집’과 양명고입니다. 이곳에는 1930~1950년대 지어진 옛 건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사회복지시설 좋은집은 1918년 서울에서 경성기독보육원으로 출발한 고아원이 1936년 안양으로 이전해 기독보육원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으며 이후 해관보육원, 현재는 좋은집으로 불리우고 있지요. 기록을 보면 좋은집에는 한국 첫 여류화가, 문필가, 여성운동가였던 나혜석이 시대적 편견에 떠밀려 유랑생활을 하던 중인 1947년에 이곳 농장에 머물었으며, 당시 이화여대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던 젊은 시절의 화가 박인경(한국 동양화가의 대가 고암 이응노 화백의 미망인)이 이곳에서 나혜석을 만나는 등 문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정작 안양시와 지역문화계에서는 잘..

[탐사7]안양6동 소골안(小谷洞)마을(2013.03.23)

안양 동네 탐사 일곱번째. 오늘(2013년 3월 23일)은 소골안입니다. 소골안은 안양세무서에서 서쪽으로 수리산 계곡을 따라 형성된 마을로 1945년 광복 직전까지만 해도 주접동 주민 3가구가 이주해 살던 한촌이었는데, 한국전쟁 직후 강원도 철원 등지의 난민들이 안양1동 소재 진흥아파트단지(구 태평방직)에서 수용소 생활을 하자 당시 시흥군 안양읍장 조한구(趙漢九)의 주선으로 이들을 집단 이주시키면서 부락이 형성된 곳이지요. 이곳 땅은 본래 서울출신 이해범(李海範)의 소유였는데, 이 토지를 조한구가 관리, 읍장으로 재직 중 소유주의 양해를 받아 이주를 성사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 마을은 수리산의 작은 골짜기 안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소골안 (小谷洞)이라 칭하고 있는데, 일설에는 이..

[탐사6]안양5동 냉천마을과 소방망루(2013.03.09)

안양 동네 탐사 여섯번째. 오늘(2013년 3월 9일)은 안양시 안양5동으로 예전부터 물이 좋기로 소문나고, 아직도 수질검사시 이상이 없어 동네 주민들이 수돗물이나 생수대신 먹는 냉천약수에서 시작해 충혼탑까지의 여정입니다. 해방전부터 어른들은 이 지역에 맑은 샘이 있어서 찬우물, 냉천동이라 불렀지요. 1960년대에는 단독주택들이 들어섰던 안양의 부자동네이기도 했고요. 찬우물은 수돗물이 귀하던 시절 안양시 주민들은 찬우물의 물을 안양시내 최고의 물로 쳤답니다. 찬우물은 어느 농부의 지성에 샘물이 솟았다는 전설이 이어져 오는데, 약수터 주변은 물론 바로 위에 주택이 있음에도 질 좋은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안양5동은 충혼탑에서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마을 오른쪽으로는 근명여자정보고등학교(1962년 개교)와..

[탐사5]안양3동 양지마을.병목안시민공원.무당골짜기.문둥바위(2013.03.02)

다섯번째 탐사, 2013년 3월 2일 햇살 따뜻한 안양3동, 양지동(陽地洞)을 가다. 또 안양9동의 병목안 끝자락, 그곳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1080년대 초까지 경부선 철길 노반의 자갈을 채취하던 채석장이 변신한 병목안시민공원, 담배촌 아이들이 무서워하던 문둥바위, 여성만이 들어갈 수 있는 한증막, 치성을 드리는 명소였던 무당골 등이 자리하고 있지요. 먼저 안양3동 안양공고 주변에 위치한 양지(陽地)마을. 남향으로 부락이 형성되어 있어 따뜻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안양3동의 지명이었다. 이 마을은 조선조 제 2대 정종의 7남인 수도군(守道君)의 증손 이공(지제부수) 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이래 원주 원씨 등이 세거했다. 이 마을 명칭 에 대하여 양지(陽地), (陽智), (陽知), (陽至)등 문헌마다..

[탐사4]안양 만안교, 원태우의사, 안양천대보름축제(2013.04.23)

1년에 단 하루 남녀노소가 모여 도심 한복판에서 장작불을 지피우고, 벌겋게 달은 쥐불 깡통을 돌리면서 마음껏 불장난(?)을 할 수 있는 날이 있다. 희망과 밝음의 상징인 보름달을 보며 달집에 액운을 태워보내는 정월대보름이 바로 그날이다.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둔 2월 22일 '2013 안양대보름축제'가 안양시 박달동 박석교 일대 안양천변에서 펼쳐졌다. 안양 대보름축제는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안양지부가 처음 기획하여 2004년 '희망맞이-안영천대보름축제'란 타이틀로 처음 연 것을 시작으로 매년 열어 금년이 10회째로 수도권 최대의 축제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금년에는 민예총 단체의 사정으로 안양문화원이 주최.주관으로 개최됐다. 이날 행사의 서막은 오후 3시30분 정조대왕 능행차시 건넜던 만안교에서 ..

[탐사3]안양9동(2) 담배촌 최경환성지, 돌석도예박물관, 창박골(2013.02.16)

03차(2013.2.16) 안양9동(2) 담배촌 최경환성지, 돌석도예박물관, 창박골 안양 탐사. 2013년 2월 16일 오늘은 제3 경기도립공원의 수리산의 안양쪽 관문격인 담배촌 끝자락 공군부대에서 부터 안양8경중 제5경인 최경환 성지,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돌석도예박물관, 작달막한 낮은집들이 다 없어지고 아파트와 다가구 .다세대 주택이 들어선 창박골까지 이어지는 계곡으로 한국관광공사는 수리산 담배촌 골짜기를 2009년 1월 '소원성취명소'란 테마로 희망을 주는 가볼만한 곳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봄이 오는 자연에 취해서 들려 보아야 할 무당골짜기과 병목안시민공원에는 들려보지를 못해 다음 탐사를 기약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공기가 너무나 좋기만 합니다. 오늘의 두번째 탐사 지역 최경환 성지입니다...

[탐사2]안양9동(1) 새마을 골목길 풍경(2013.02.09)

02차(2013.2.09) 안양9동(1) 새마을 골목길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몇년후에는 사라질 안양9동 새마을(병목안) 골목길 풍경으로 아직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입니다. 새마을은 안양역에서 삼덕공원을 지나 담배촌과 창박골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주민들이 농사를 지을 농경지로서 처음에는 신부골(新富谷)로 불리워 오다가 1969년에 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마을로 개칭되었지요. 1977년 안양 대홍수때는 산자락이 무너져 내리고, 수암천변의 주택들이 물살에 쉽쓸려 내려가면서 이곳에서만 수십여명의 주민들이 숨지는 아픔도 있었지요. 새마을 안쪽으로 서쪽 끝자락에는 초등학교가 있는데 1988년에 설립한 양지초등학교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시흥군 안양읍 당시 이곳에 안양공설운동장 설치 계..

[탐사1]안양역-병목안채석장 철길을 따라서(2013.02.02)

[탐사1]안양역에서 병목안 채석장 철길의 흔적(2013.02.02) #안양 #철길 #병목안 #안양역 #채석장 #안양9동 #일제강점기 #안양기억찾기탐사대/ 일제 강점기인 1934년부터 1980년대까지 경부선 및 경인선 철도 부설을 위한 철도용 자갈 채취를 위해 안양역에서 안양9동 병목안 채석장까지 철길이 있었지요. 그 자리에 지금은 철길은 모두 철거돼 없어졌지만 흔적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병목안은 수리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그 지형이 병의 모가지 같다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전해집니다. 병목안은 그 안이 깊어 조선시대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교우촌을 이루며 옹기와 담배농사로 생활 터전을 이루고 살았던 곳으로 1997년 우리나라 두번째 방인사제인 최경환 성인의 무덤이 있고 오늘 날에는 '수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