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20190330]군포시 체육의 요람 '군포국민체육센터' 개관

안양지역뉴스/군포

 

군포시가 시민의 여가활동과 생활체육 활성화 목적으로 약 253억원을 투입해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연면적 7천993.3㎡)로 군포2동 복합생활스포츠타운(부곡동 1226)에 조성한 국민체육센터가 지난 29일 개관했다.

군포국민체육센터는 다양한 시설을 한 곳에 모아 여러 세대가 한 공간에서 함께 소통하고 어울릴 수 있는 체육문화공간으로 지하에는 수영장, 지상에는 다목적체육관과 키즈존, 아미스카페 5호점, 스포츠용품점, 탁구장과 헬스장, 배드민턴장과 다목적실 등이 배치돼 있다.

시는 군포국민체육센터의 시설 및 운영 체계 보완․개선점을 찾기 위해 지난 한 달간 시범 개방했고, 4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할 계획으로 수영(장애초등 수영, 어린이 수영)과 다양한 체육 프로그램, 요가와 필라테스 외에도 동화구연 등의 문화․취미 프로그램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시설 대관 방법, 강습 종목과 운영시간, 수강료 등 자세한 정보는 운영을 담당하는 군포시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www.gunpocs.or.kr)에서 확인하거나 전화로 문의(031-390-7644)하면 알 수 있다.

한대희 군포시장은 “군포국민체육센터 개관은 군포시민의 여가 활용 범위가 더 넓고 다양해지며, 건강관리를 위한 기반도 향상된 것을 알리는 신호”라며 “앞으로도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군포국민체육센터는 지난 2016년 8월부터 건립이 시작됐으며, 올해 2월 시설 공사가 완료돼 3월 한 달간 시범운영을 한 바 있다.

[20190330]효성 진달래동산 40회 개방행사 6-7일 이틀간

안양지역뉴스/안양

 

효성 안양공장 제40회 진달래동산 개방행사... "6일과 7일 이틀간 핑크빛 속살 드러낸다"

 

경기 안양시 호계2동 (주)효성 안양공장 안 깊숙히 자리한 진달래 군락지. 담장 밖 너머에서 감탄사를 연발해야 했던 진달래동산이 빗장을 풀고 핑크빛의 속살을 드러낸다.

명학역에서 평촌으로 가는 길(시민대로) 명학대교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효성공장 뒤로 보이는 언덕(진달래동산)에는 진달래가 꽃봉우리를 터트리며 분홍색 속살을 하나 둘 드러내고 있어 마치 핑크빛 물감을 엎질러 놓은 듯 착각에 빠질 정도로 벌써부터 시선을 끌며 유혹하는 듯 하다.

안양시 동안구 시민대로 74 명학대교와 안양천변에 자리한 (주)효성은 매년 공장내 뒤 야산에 진달래꽃이 만발하면 공장 일부구역을 지역주민에게 개방하는 행사를 해오고 있는데 금년이 제40회로 오는 4월 6일과 7일 이틀간 실시한다.

효성은 방문객에게 따뜻한 차를 무료로 제공하고, 효성과 협업하는 사회적기업 ‘굿윌스토어’ 장터를 연다. 진달래 화전, 떡볶이, 순대 등 먹거리와 함께 캘리그라피 체험, 페이스 페인팅, 풍선아트와 버블공연 등이 준비되어 있다. 인근 호계2동사무소의 지원으로 풍물놀이 공연도 열린다.

진달래동산 개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까지로 공장 정문과 후문을 통해 입장할 수 있으며 축구장 면적만한 잔디밭에서 가족 친지들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한편 진달래 동산은 안양시민이 뽑은 명소 중 한곳이다. 안양시가 지난 2008년 안양시민의 자긍심 고취 및 도시경쟁력과 이미지 제고를 위해 '안양의 자랑거리 49선' 시민 공모에 한 결과 많은 시민들이 추천할 만큼 안양시민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특히 공장내 뜨락에는 아름드리 매화와 개나리, 왕벚꽃나무까지 피어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멋진 풍광을 연출해 진달래동산 개방 날짜만 알리면 특별한 홍보가 없어도 인근 지역주민들뿐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까지 몰려든다.

진달래동산 개방 행사의 역사를 보면 40년전 동양나일론 안양공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장 기숙사에는 백여명이 넘는 여성근로자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이 기숙사를 가족, 친지, 친구들에게 개방하는 날을 겸해 뒷동산에서 진달래축제를 열자 지역주민들도 진달래동산으로 꽃구경을 오면서 이제는 안양지역의 명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과거 3천여㎡에 달하는 면적에 어른 키 보다 높은 진달래 군락이 만개했으나 가지치기를 이유로 잘라내고, 또 면적 일부에는 값비싼 조경수를 심어 진달래 군락의 면적이 대폭 축소됨에 따라 그 아름답던 명성을 퇴락시키는 양상을 보여 아쉬움을 주고있다.

 

 

[20190330]2019 안양충훈벚꽃축제 5일 개막 7일까지

안양지역뉴스/안양

 

2019 안양충훈벚꽃축제가 오는 5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7일까지 석수동 충훈2교 일대에서 진행된다.
올해로 13회를 맞는 안양충훈벚꽃축제는 안양시와 안양충훈벚꽃축제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안양문화예술재단이 주관한 가운데 1.5km 구간의 안양천변을 따라 만개한 벚꽃의 정취를 느끼며,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봄맞이 축제로 치러진다.
축제의 첫날인 5일에는 시민노래자랑, 둘째날인 6일에는 가족나들이 손님을 위한 각종 체험부스와 어린이 벼룩시장, 시화전, 사생대회, 벚꽃길 곳곳에서 버스킹 및 거리공연이 펼쳐지고 오후 1시부터 벚꽃길과 안양천변을 따라 걷는 안양 꽃길 걷기대회도 열린다.

마지막날인 7일에도 각종 체험부스와 어린이 벼룩시장과 버스킹 및 거리공연이 펼쳐지고 오후6시부터 메인무대에서는 식전공연에 이어 가수 홍진경 등이 츨연하는 축하공연 및 불꽃쇼가 펼쳐진다.

일정 및 프로그램 등 자세한 사항은 안양문화예술재단 홈페이지(www.ayac.or.kr)에서 확인하거나 전화(☎031-687-0500)로 문의하면 된다.


 

 

[20190329]3월 30일은 지구촌 전등끄기(Earth Hour) 동참의 날

안양지역뉴스/정보

 

"토요일 지구를 위해 1시간만 전등을 꺼주세요”

비영리 환경보호단체 세계자연기금(WWF)은 오는 30일 ‘기후변화와 멸종위기’를 주제로 지구촌 전등 끄기 캠페인인 ‘어스아워(Earth Hour) 2019’ 행사를 개최한다.

지구촌 전등끄기-어스아워는 일 년에 한 시간 동안 전등을 끄고, 실질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연보전 캠페인으로 매년 3월 넷째주 토요일 오후 8시30분에 개인, 기업, 공공기관 등이 각국 시간에 따라 전등을 꺼 환경 문제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의지를 표명하고 관심을 촉구하는 뜻에서다.

2007년 호주 시드니에서 처음 시작돼 지난해는 180개 국가 1만8000개 랜드마크가 참여했다고 WWF는 밝혔다.

올해 국내에서는 63빌딩, 숭례문 경주타워, 코엑스, 서울시청, N서울타워, 국회의사당 등 랜드마크가 소등에 참여한다. 서울시 청사와 공사 등 출연기관과 한강 교량, 이순신·세종대왕상 등은 1시간 동안 모두 소등된다.

해외에서는 파리 에펠탑,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 등 세계 각지 24개 랜드마크가 불을 끄고 자연보전의 의미를 강조할 예정이다.

세계자연기금 관계자는 “일상생활에서 에너지를 절약하고 대중교통 이용, 베란다 미니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생산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에 나설 수 있다”며 “지구촌 전등끄기 행사를 통해 1시간 소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90329]3월 31일로 문 닫는 롯데백화점 안양점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안양역사 한쪽에 자리한 롯데백화점 안양점이 오는 3월 31일부로 영업을 종료하고 문을 닫는다고 공지했네요.

지하1층 지상 9층의 롯데백화점 안양점은 2002년 문을 연 민자안양역사와 함께 2032년까지 30년간 임차계약을 맺고 문화센터, 영화관, 휘트니스, 전문식당가, 롯데갤러리, 옥외 골프연습장 등을 갖추고 영업을 해 왔으나 2012년 3월 개장한 롯데 평촌점과 상권 중복 등으로 매출이 크게 감소하면서 수년전부터 매각 소문이 나돌았지요.

한편 롯데백화점 안양점 공간은 3개월 정도의 리모델링 공사후 패션쇼핑몰 '엔터식스 안양점'으로 이름을 바꿔 Z세대 쇼핑 아지트로 변신을 꾀합니다.

엔터식스는 왕십리, 강변테크노마트, 상봉, 천호, 한양대 등에서 복합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최근에는 온라인쇼핑몰에도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는 중견기업으로 엔터식스가 인수한 안양점은 8번째 오프라인 점포로 가장 큰 규모라고 하네요.

엔터식스는 안양역 및 안양1번가 일대가 타 지역에 비해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상권 특성을 반영해 노후화된 시설과 분위기를 차별화된 MD 전략과 인테리어를 통해 새롭게 리뉴얼, 젊은 층들의 쇼핑 아지트로 만든다는 계획인데요.

이는 ‘Z세대의 쇼핑 아지트’라는 컨셉으로 쇼핑부터 문화, 레저, 힐링, 맛집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쇼퍼테인먼트의 공간으로 조성해 엔터테인먼트, 체험 등 즐길거리 콘텐츠의 비중을 매장 전체면적의 약 30%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으로 앞으로 안양역 일대에 젊음의 물결이 일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90329]군포시의회, '청년기본조례' 만든다

안양지역뉴스/군포

 

군포시의회가 ‘청년기본조례’ 만들기에 나섰다. 

이우천 의원(군포1동, 산본1동, 금정동)이 지난 22일 제237회 임시회 제1차 조례 및 기타안건 심사특별위원회에서 대표발의한 군포시 청년을 위한 조례는 제237회 임시회를 통과하면서 향후 청년들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군포시 청년 기본 조례’는 청년들에게 다양한 분야에서의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자립기반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여 청년의 권익증진과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례안은 2018년에 진행된 의원연구단체 ‘청년정책연구모임’의 성과로, 작년 한 해 각종 간담회와 ‘청년들이 아무말 해드림’ 토론회 등에서 논의되었던 청년에 대한 정의와 청년활동 지원 방안, 청년 참여 확대를 위한 청년정책협의체 구성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청년정책연구모임에는 시의원 4명을 비롯해 군포청년회, 군포YMCA, 군포문화재단, 사)헝겊원숭이운동본부, 대학생, 관계공무원 등이 참여해 청년정책의 기본 조례에 들어갈 사항과 타 시군 조례 분석 등을 집중 논의해 왔다.
이우천 의원은 “청년기본조례가 마련됨에 따라 추후 청년 일자리 및 문화 공간 확대, 권리 보호 방안 등의 논의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어 “기본 조례에 그치지 않고 청년들의 성장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후속 정책도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90328]득템의 찬스, 안양 업사이클링 선풍기 바자회

안양지역뉴스/안양

 

업사이클링 선풍기 바자회가 오는 29일 오전 10시-오후3시 관양1동 주민자치센터 앞 마당에서 열린다.

반품마트와 관양1동 주민자치위원회가 마련한 이날 행사는 CJ홈쇼핑, 전자랜드에서 판매하다 반품된 강력한 모터(50W)의 고급 선풍기들로 마을 자원봉사자들의 검사로 정상 작동하는 물품들이며 이날 판매된 수익금은 관양1동 마을 복지사업으로 쓰여질 예정이다.
한편 업사이클링이란 버려지는 물건을 재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가진 제품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업사이클링(Upcycling)은 ‘개선하다, 높이다’는 뜻의 업그레이드(Upgrade)와 재활용한다는 뜻의 리사이클링(Recycle)을 합친 합성어로 가치 상향형의 재활용을 통해 기존보다 더 좋은 품질, 더높은 수준의 제품으로 재탄생키는 것을 의미한다.

[20190328]안양8동주민센터 기존 자리에 신축? 글쎄!

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철거가 시작된 구 안양8동주민센터 입니다. 안양8동 명학공원 한쪽에 있던 안양8동주민센터를 허물고 새로 짓는 공사가 시작된 것이지요.

안양8동 주민센터는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약 270평으로 1987년도에 건립되어 30년이 넘었지요. 지하 1층은 풍물교실과 창고, 1층은 사무실, 2층은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실과 동대본부로 활용되어 오다 신축 계획에 따라 철거와 신축 공사에 들어갈 예정으로 임시 청사는 지난 3월 5일 만안구청 사거리(계양빌딩 2층)에 마련했지요.

장기적으로 보면 중앙로 도로에서 보이지 않는 안양문화예술의 구심점인 안양아트센터를 생각하면 주민자치센터를 다른 곳에 짓고 안양아트센터와 명학공원을 직접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결국 그 자리에 더 크게 신축하면서 공원 면적은 축소가 불가피 할듯(이미 놀이터 반쪽은 없어짐).
근본적인 것은 옛 가축위생시험소(현 명학공원) 부지 매입 및 공원화과정에 IT활성화 및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연성대학교에 매각해 공원 1/4 면적에 빌딩을 짓게 만든 당시 경기도지사, 안양시장의 잘못된 결정. 덧붙여 명학공원옆에 자리한 안양아트센터. 안양 문화에술의 구심점임에도 대로변 뒷쪽 접근성도 떨어지는 곳에 세워 많은 시민들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는 현실을 생각하면 안양의 문화 현주소는 낙제점이 아닐까 싶네요^^

 

 


[박철하]1919년 3월 31일 의왕면사무소앞 독립만세운동

이야기보따리/자료

한적한 농촌마을에 일제에 대한 저항의 기운이 돋다

 

의왕시는 대한제국 시기까지만 해도 광주군 의곡면과 왕륜면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일제는 1910년 강제로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효율적으로 식민통치를 하기 위해 1914년 지방행정구역 통폐합을 단행하였다. 이때 조선총독부는 의곡면과 왕륜면을 하나로 통합하여 의왕면이라 하고 수원군에 편입시켰다. 당시 의왕지역은 지금의 부곡동(삼동, 이동), 고천동(왕곡동, 고천동), 오전동, 내손1.2동, 청계동(청계동, 학의동, 포일동) 등을 포함하였다.

고천에는 조선시대에 임금이 쉬어가던 사근(천)주정소가 있었다. 현종 때부터 그 기록이 나타나지만 가장 많이 이용했던 임금은 정조였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화산 현륭원에 모시고, 이어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을 설치한 뒤 자주 왕래하게 되면서 주정소를 수리 확장하고 ‘사근행궁’이라 명명했다. 일제는 바로 이 사근행궁을 그대로 의왕면사무소로 이용하였다. 곧이어 면사무소 가까이에 경찰관주재소도 설치되었다. 고천 일대에는 소규모 장을 볼 수 있는 곳과 주막이 들어서고 의왕면의 읍내로서 모습을 갖춰갔다.

1910년대 의왕면에는 800여 호 안팎에 3,000여 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었다. 농업인구가 90% 이상 절대적으로 많았고 약간의 상업인구가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농업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영세빈민으로 불안한 소작인의 지위에 처한 주민들이 많은 아주 궁벽한 농촌마을이었다. 학교도 없어서 인근의 과천으로 가야 했고, 일본인은 한 두 가구 거주했을 뿐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별을 크게 경험하지도 않았다. 그저 전통적인 마을공동체를 유지하며 평범한 농민들의 삶터에 불과한 곳이었다.

하지만 1900년대 초 경부선 철도가 설치되면서 철도용지로 수용당한 논밭 및 임야의 주인과 소작인들은 불만이 많았다. 조상의 묘역이 훼손된 어느 가족은 저항하다가 ‘반일분자’로 몰리며 혼쭐이 나기도 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이후 청계산일대에는 의병들의 활동이 활발했다. 당시 광주군 학현(현 의왕시 청계동)에 거주하던 박성삼은 윤치장 의병부대의 일원으로 청계산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군량미와 군자금모집에 참여하다가 체포되기도 하였다.

특히 청계지역에는 마을마다 작은 서당을 중심으로 한학을 배우는 학동들이 적지 않았고, 19세기 후반 이후 하우현성당의 교세가 확장되면서 성당에서 운영하는 근대적인 학교인 경애강습소가 있어서 그곳에서 신학문을 습득하고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눈을 뜬 젊은이들이 있었다.

 

청계마을 청년들이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3월 5일에는 서울지역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남대문역 앞에서 종로에 이르는 곳까지 행진하며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독립만세운동에는 의왕면 청계리 출신으로 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성주복도 참여했다. 성주복(成周復, 1894~1971)은 당일 아침 남대문 밖에서 고향에서 온 동생 성주관을 만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학교 도구와 양복을 동생에게 건네주고, 두루마기를 건네받아 갈아입고 만세운동 시위 대열에 합류했다.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 소식은 성주복의 동생을 통해 청계 마을에 있는 친구 이복영((李復英, 1893~1938. 호적 이봉근)에게 전달되었다. 훗날 이복영의 사촌 동생 이철영의 증언에 따르면, 이복영은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사전에 의왕지역에서 만세시위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먼저 청계지역을 중심으로 인근 4개리(포일리, 내손리, 청계리, 학의리)의 책임자를 정하였다. 1주일 동안 비밀리에 만세시위에 필요한 태극기를 제작했다. 또한 집집마다 한 사람씩 반드시 참석하도록 하고, ‘숲밖에’(현 백운호수 주차장 지역) 집결하기로 했다. 이러한 계획은 마을 구장(이장)에게 통문으로 전달되었고, 그의 책임 아래 의무적으로 한 집마다 한 사람씩 참가하도록 했다. 만약 이 기밀을 누설하거나 만세운동에 불참하는 가정에 대해서는 만세시위 후 방화한다고 경고까지 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전계획과 준비는 고개 너머 고천리와 오전리, 삼리에도 전달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3월 31일 의왕면사무소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3월 중순 이후 독립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평화적인 만세시위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폭력화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3월 27~28일 인근지역에서는 시위대가 군수를 협박하는가 하면 면장을 구타하고 헌병의 총기를 빼앗고, 면사무소를 습격하기도 했다. 안양과 군포, 과천에서도 300명에서 1천명이 넘는 시위대의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군포장역 경찰관주재소 부근에서는 3월 31일 2,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1919년 3월 31일 밤 의왕지역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청계마을 주민들은 3월 31일 저녁 무렵 ‘숲밖에’ 모여 시위대를 형성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는 300~350여 명에 달했고, 그들의 손에는 태극기와 횃불이 들려 있었다. 시위대는 오전리 고개를 넘어 오매기 마을과 전주나미 마을을 지나고, 고천리 사그내마을에 있는 경찰관주재소를 거쳐 의왕면사무소로 나아갔다. 일부는 지지대고개의 산봉우리에 올라 횃불을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의왕면사무소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농민인 마을주민들이었으며, 기독교인과 천도교인들도 참여했다. 군중 수는 800여 명에 달했다. 인근의 왕곡리와 이리, 삼리지역의 주민들도 함께 했다.

시위대는 준비해온 태극기를 흔들고 횃불을 높이 들어 의왕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를 오가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의왕면사무소앞 시위대에는 면장도 함께 했다. 시위대는 주재소로 달려갔다. 주재소에 있던 조선인 순사는 “저는 (총독부)에서 주는 제복을 입고 녹을 먹는 관리이므로 내몸은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없으나 마음은 함께 합니다. 계속해서 만세를 부르세요. 그래서 우리가 독립을 쟁취하기를 고대합니다” 라며 시위대를 격려했다고 한다.

시위대의 만세시위가 계속되자 수원으로부터 일본 보병이 출동했다. 갑자기 나타난 세 명의 보병은 총을 쏘기 시작했고, 시위대 두 명이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피하던 동료 시위자들은 부상자를 부축하기 위해 되돌아왔다. 이들은 모두 현장에서 체포되어 포승줄에 묶여 수원경찰서로 압송되었다. 46명이었다. 체포된 시위대는 밤새워 조사를 받았다. 이들 가운데 41명은 4월 1일 태형 60~90대의 무자비한 폭력적 처벌을 받고 풀려났다. 부상자 두 명 가운데 한 명, 즉 청계리의 독립만세운동 지도자 이복영은 서울 세브란스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3.1독립만세운동의 현장이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1919년 3월 31일 의왕면사무소앞 독립만세운동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특징을 갖는다. 첫째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준비되어 실행되었다는 점, 둘째는 비밀 누설자 또는 불참자에 대한 시위조직자들의 강력한 통제 아래 진행되었다는 점, 셋째는 농민만이 아니라 기독교인과 천도교인들도 다수 참가하였다는 점, 넷째 순사와 면장도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했다는 점, 다섯째는 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는 폭력적 양상을 보이고 있는 점, 여섯째는 일본군의 무력적인 탄압과 경찰의 폭력적 고문이 자행되었다는 점 등이 확인된다.

이와 같은 의왕면사무소 앞 독립만세운동을 역사적으로 기리기 위해 의왕문화원은 2011년 독립만세운동 사실을 역사적으로 규명하고 2012년부터 매년 3.1절을 기해 기념행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특히 2017년부터는 기념식 중에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연극반을 구성하여 의왕면사무소앞 독립만세운동을 주제로 한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

한편, 2013년부터 의왕시민사회단체들은 연합하여 3월 31일 저녁을 기해 독립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던 의왕면사무소터(현 고천동 소재 의왕시청 별관/사근행궁터)에서 독립만세운동 재현생사를 해오고 있다. 특히 3.1운동이 우리나라의 자주독립뿐만 아니라 평화와 민주주의 및 인권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혁명임을 인식하고 마을공동체, 장애인단체, 생활협동조합, 교육공동체, 노동조합 기타 시민사회단체가 각각 3.1운동을 기념하는 ‘선언서’를 낭독하고, 횃불과 태극기를 들고 1919년 만세시위대의 발자취를 따라 거리행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의왕시의 독립만세운동 현장은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의왕시는 3월 31일을 의왕시의 독립만세운동 기념일로 지정하고, 독립만세운동의 현장을 보존하고, 시위대가 행진하던 거리를 ‘만세거리’로 조성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0329]의왕시, 오는 31일 100년전 의왕면사무소앞 만세운동 기념

안양지역뉴스/의왕

의왕시 3.31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 포스터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오는 3월 31일 100년전인 1919년 당시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옛 의왕면사무소(현 의왕시청 별관) 앞과 인근 고천체육공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

이날 행사는 고천체육공원에서 오전10시부터 다채로운 체험 행사들이 진행되고 오후 1시30분 기념식과 독립만세운동 재현 뮤지컬 공연, 100년의 울림 진혼 공연 등 문화행사에 이어 오후 3시30분 고천체육공원을 출발해 시티병원을 거쳐 의왕시청별관(옛의왕면사무소)까지 독립만세 거리행진을 재현한다.

독립기념관 및 의왕시사 자료를 보면 1919년 3월31일 밤 의왕주민 800여 명이 당시 의왕면사무소가 위치한 고천리로 모여 의왕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현 고천약국앞 경수도로변)를 오가며 독립만세를 외치는가 하면, 일부 군중들은 지지대고개에서 햇불을 높이 들고 수원을 향해 만세운동이 펼쳐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주민들은 마을마다 비밀리에 지도부가 형성되고 태극기도 만들었다. 청계지역 주민들은 합세하여 시위대를 형성하고 대오를 맞춰 오매기 고개를 넘어왔다. 삼동지역의 주민들도 어엽이고개를 넘어와 고천, 오전지역 주민들과 합세하였다. 시위대 몇몇은 지지대고개로 가서 횃불을 높이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고천리 의왕면사무소 앞에 모인 시위 군중들은 면사무소(현 고천동주민센터)와 경찰관주재소(현 고천약국 앞)를 오가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심지어는 그 두 곳을 습격하는 등 폭력적인 투쟁도 전개했다. 독립만세 시위에는 면장도 함께 했다.
 , 그래서 우리가 독립을 쟁취하기를 바란다.’라며 격려하였다.
당시 수원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헌병 세 명이 출동하여 경찰관과 함께 총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때 시위대 3명이 부상당했고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한 46명의 주민이 체포되었다. 모두 손을 묶인 채 수원경찰서로 압송된 뒤 조사와 심문을 받았다.
그들은 60대에서 90대의 매(태형)를 맞은 뒤 41명은 그 이튿날 4월 1일 석방되었다. 부상자 두 명도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갔는데, 부상이 심한 의왕시 청계 출신의 이봉근(족보이름은 이복영, 1893~1938)씨는 세브란스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주민들은 마을마다 비밀리에 지도부가 형성되고 태극기도 만들었다. 청계지역 주민들은 합세하여 시위대를 형성하고 대오를 맞춰 오매기 고개를 넘어왔다. 삼동지역의 주민들도 어엽이고개를 넘어와 고천, 오전지역 주민들과 합세하였다. 시위대 몇몇은 수원이 려다 모인 시위 군중들은 면사무소(현 고천동주민센터)와 경찰관주재소(현 고천약국 앞)를 오가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심지어는 그 두 곳을 습격하는 등 폭력적인 투쟁도 전개했다. 독립만세 시위에는 면장도 함께 했다.

의왕의 한 역사학자에 따르면 당시 경찰관 주재소의 조선인 경찰도 ‘시위는 함께 할 수 없지만 마음은 함께 하고 있다. 계속해서 만세를 외치세요, 그래서 우리가 독립을 쟁취하기를 바란다.’라며 격려하였다.
당시 수원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헌병 세 명이 출동하여 경찰관과 함께 총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때 시위대 3명이 부상당했고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한 46명의 주민이 체포되었다. 모두 손을 묶인 채 수원경찰서로 압송된 뒤 조사와 심문을 받았다.
그들은 60대에서 90대의 매(태형)를 맞은 뒤 41명은 그 이튿날 4월 1일 석방되었다. 부상자 두 명도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갔는데, 부상이 심한 의왕시 청계 출신의 이봉근(족보이름은 이복영, 1893~1938)씨는 세브란스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관련 인물로는 이봉근(李鳳根 1903-?), 성주복(成周復 1894-1971), 이복길 등이 있다. 정부는 2005년 성주복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만세운동을 전개했던 의왕면사무소는 정조대왕이 1790년에 사근행궁을 설치한 자리로 의왕지역의 3.1 독립만세운동의 중심지이자 정조의 효행이 서려있는 역사문화공간으로  3.1기념물을 건립하는 등 보존하고 기념해야 할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