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20190301]군포시, 예산규모 처음 7천억원 넘어섰다

안양지역뉴스/군포

 

군포시의 예산규모가 처음으로 7천억원대로 진입했다.

최근 발표된 ‘2019년 군포시 지방재정공시’에 의하면 올해 시의 예산규모는 7천831억5천만원이다.

지난해 보다 1천92억원이 증가한 것으로, 2014년도부터 6천억원대였던 예산규모가 처음으로 7천억원을 넘어선 것이다.

이와 관련 시는 지방세와 보조금 그리고 교부세와 같은 세입재원이 전년 대비 약 567억원 증가하는 등 도시의 발전과 성장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이 중 교부세 부분에서는 2018년도에 행사․축제성 경비를 절감하고, 지방세 징수율을 높인 노력이 반영돼 전년보다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시는 부연했다.

한편 시는 올해 증가한 예산을 도시 균형발전을 증대하는 방안으로 편성했는데, 특히 사회복지와 교육 그리고 공공질서 및 안전 분야의 비중을 높여 시민 삶의 질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문영철 홍보기획과장은 “재정 건전성을 계속 유지해 더 살기 좋은 도시, 새로운 100년을 위해 다시 도약할 군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자세한 2019년도 군포시의 재정 현황은 시청 홈페이지(www.gunpo.go.kr→정보공개→예산/재정공개→재정공시)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공시 내용 관련 의문사항은 시청 홍보기획과에 문의(390-0993)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20190226]자유한국당 5.18망언 규탄한다. 우리 지역 적폐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자 !

안양지역얘기/성명

<규탄성명서>

자유한국당 5.18망언 규탄한다. 우리 지역 적폐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자 !

지난 2월8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가 전두환 군부가 저지른 광주학살만행을 ‘북한군 특수부대’가 저질렀다 하고, 학살원흉을 우러르고 5.18민주항쟁을 ‘폭동’으로 전두환 군부의 피해자, 민주항쟁의 유공자를 ‘괴물’이라 하고 ‘북한군 특수부대원’이라는 끔찍한 발언을 내뱉었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잘못된 정권을 무너뜨린 지 3년이 지났지만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적폐는 호시탐탐 부활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올해는 특히 3.1운동의 100주년으로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피 흘린 역사를 기억해야 할 때다. 우리는 외세의 침략과 분단의 아픔을 딛고 박정희 군사독재와 전두환 일당의 군부쿠데타에 맞서 피 흘려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촛불혁명으로 국민주권을 되찾았다.

그럼에도 3.1 만세를 외치던 동포를 불령선인이라 부르던 그들, 국민을 폭도로 몰던 그들이 다시 살아나 버젓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국민을 조롱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간교하게 부활하려는 적폐세력을 이제라도 제대로 청산해야 한다.

이스라엘기와 성조기를 흔들면서 스스로를 태극기부대라 부르는 세력들을 앞장세워 분단을 공고히 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끊임없이 적개심을 부추기는 것은 적을 만들어야 만 존립하는 그들의 본색이려니와 촛불혁명이후 적폐세력이 사멸해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서 시작한 발악이겠지만 역사를 호도하고 민주주의를 모욕하는 행태를 시민들은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

더구나 자유한국당은 이들을 발판으로 삼아 망언을 교묘히 옹호하는 것도 모자라 전당대회를 빌미로 역사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우리 국민이 촛불혁명을 통해 탄핵으로 무너뜨린 박근혜정권의 총리이던 황교안이 그 당의 대표로 나서 촛불혁명을 부인하고 최고위원으로 나선 자는 자신들이 저지른 국정원 정보사 부정선거와 국정농단 사법농단을 덮으며 촛불혁명으로 뽑은 대통령을 부인하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이명박근혜의 시대로 되돌리려는 그들을 통해 적폐청산이 왜 필요한 지 뼈저리게 느끼는 바이다.

민족해방을 이루고도 청산하지 못한 친일세력, 민주주의를 쟁취하고도 청산하지 못한 독재세력, 촛불혁명으로도 청산하지 못한 적폐세력, 바로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끊임없이 부활하는 이 악의 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광주항쟁의 비극을 목도한 자로서 권력을 찬탈하는 세력에 빌붙어 고 김대중 대통령을 사형선고에 이르도록 한 자를 오래도록 국회의원으로 뽑아왔던 우리 지역에서부터 나서지 않으면 우리나라를 바로세울 수 없다 여기기에 굳은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
역사를 바로잡아 후손들의 미래를 지켜내고,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제 그간의 과오를 바로잡고 안양의 적폐부터 청산하자!

민주정신 훼손하는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5.18민주화운동 왜곡모독망언 3인 국회의원 퇴출하라!
5.18학살역사왜곡처벌법 제정하라!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심재철은 안양시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회의원퇴출과 법제정에 앞장서라!

 

2019. 2.26.

 

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노총경기중부지부
615공동선언실천경기중부본부
노동당경기중부당원협의회
더불어민주당 군포시갑지역위 교육연수위원회
민중당안양시위원회
안양녹색당
정의당군포시위원회
안양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대안과나눔,안양군포의왕환경운동연합,안양나눔여성회,율목아이쿱생협,행복한마을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안양평화의소녀상네트워크,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안양군포의왕친환경급식시민행동, 전교조안양과천지회, 사단법인해아라경기지부
군포시민단체협의회
(군포시민의모임,군포여성민우회,군포청년회,군포YMCA,군포탁틴내일,군포환경자치시민회,아시아의창)
의왕시민사회단체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경기도지자체지부의왕시지회,전교조군포의왕지회,416그리고우리들,의왕풀뿌리희망연대)

[20190225]5.18망언 김순례, 김진태, 이종명을 국회에서 제명하라!

안양지역얘기/성명

전국 민주계승단체가 명한다!
5.18망언 김순례, 김진태, 이종명을 국회에서 제명하라!

 

지난 8일 개최된 ‘5.18 진상규명 공청회’ 자리에, 이들은 “5.18이 북한 특수대원이 가담해 일으킨 폭동”이었다는 근거없는 허위 주장으로 법적 처벌까지 받았던 지만원을 초청하였고, 망언을 반복하였다. 그는 심지어 살인마 전두환을 영웅이라 칭하는 망발까지 서슴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공청회에 참가한 국회의원 이종명은 “5.18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며 자신이 지만원과 똑같은 족속임을 자백하였고, 국회의원 김순례는 “종북좌파들이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어냈다”고 망발하며 유가족들을 모욕하였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14일 중앙윤리위원회를 열어 ‘5.18 망언’으로 논란을 빚은 이종명 의원은 제명 결정을, 김진태 · 김순례 의원에 대해서 전당대회 후보자의 피선거권 보장이라는 당규를 들어 결정을 유예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한국당 차원의 제명 의결인 만큼, 이종명 의원의 의원직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전국민적 공분을 야기한 책임을 져야 할 망언 당사자들에게 징계를 유예하는 것은 명백한 책임회피이자 자유한국당이 그들과 한통속임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자유한국당은 더 이상 무책임한 정치쇼를 벌이지 말라.
이번 5.18망언은 5.18민중항쟁의 사실을 왜곡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온 국민의 피땀어린 역사를 통째로 부정한 역사적 망발이다. 김진태, 김순례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지금의 전국민적 공분을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더 이상 당규를 이유로 국민적 요구를 회피하거나 기만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국민을 대상으로 꼬리자르기와 정치쇼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국민에게 사죄하는 최선의 길은 전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과오를 인정하고 3명의 망언 의원들을 국회에서 퇴출시키는데 동참하고 스스로 당을 해산하는 길밖에 없다.

‘5.18망언’ 의원들의 응징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나 대한민국은 물론 전세계로 퍼지고 있다.
뜨거운 민심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음을 자유한국당은 똑똑히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다.

 

- 국회는 지금 당장 5.18망언 국회의원 모두 제명하라!
- 국민기만 정치쇼 필요없다. 적폐정당 자유한국당 해산하라!
_ 5.18,4.3등의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는 ‘역사부정 처벌법’을 제정하라‘

 

2019년 2월 25일

사)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사)수원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사)대전충남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사)세종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사)목포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사)성남민주화운동사업회
사)여수YMCA
사)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사)여수지역사회연구소
사)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광주전남6월항쟁
사)3.15의거기념사업회
6월항쟁계승안산추진위원회
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월의 울산사람들
원주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6월항쟁정신계승 경남사업회
충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20190228]친일파 작곡 '안양시민의 노래' 제창 중단해라

안양지역뉴스/안양

 

"안양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안양시민의 노래를 아십니까." 

안양시의 공식 행사에서 시가(市歌)로써 불려져 온 안양시 대표 노래로 안양시 홈페이지 '안양시소개'( http://www.anyang.go.kr/anyang/m05/m05_01/m05_01_05.jsp )에도 올려진 이 노래는 안양시 승격 당시인 1973년 무렵 만들어진 노래로 지은이를 보면 작사 김대규, 작곡 박동진으로 되어 있다. 

문제는 작곡가 김동진이 민족문제연구소 발간 친일인명사전에 공식 등재된 친일음악가라는 점이다. 김동진은 1940년과 50년대 일제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위한 연주 활동을 자행했다. 또한 일제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곡을 만드는 등 부일 행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부일보>(2.26일자)에 따르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이흥렬, 김동진, 김성태 등 친일파로 알려진 작곡가들의 곡으로 지자체 대표 노래를 제정, 도·시군 자체 행사에서 제창하는 등 활용하고 있는 곳은 경기도의 경우 경기도를 비롯 무려 12개 시.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돼 충격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작곡가 이흥렬(1909-1980)은 음악단체인 대화(大和)악단을 지휘했으며, 일제시절 음악으로써 일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음악보국(音樂報國)’운동을 펼쳐 온 친일 작곡가로 ▶경기도(경기도의 노래) ▶수원(수원의 노래) ▶평택(애향가) ▶안성(안성의 노래) 등 지자체 대표 노래를 작곡했다.

작곡가 김동진(1913~2009)은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일제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노래를 작곡하는 등 친일행위를 한 인물로 ▶안양(안양시민의 노래)  ▶의정부(의정부시 시가) ▶동두천(동두천시민의 노래) ▶안산(안산시민의 노래) ▶고양(고양시의 노래) ▶오산(시민의 노래) ▶포천(포천시민의 노래) ▶여주(여주의 노래) 등 지자체 대표 노래를 작곡했다.

이밖에도 지휘자 김성태(1910-2012)는 ‘아세아의 힘’, ‘미영(美英)격멸가’ 등 친일 음악을 부른 경성방송혼성합창단의 지휘를 맡은 인물로 ▶파주(파주의 노래)의 노래를 작곡했다. 

이같은 보도를 접한 고양시는 지난 27일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고양시의 노래’를 시가로서 사용하는 것을 일단 중단하고 시민 공론화 작업을 거쳐 새로운 시가를 보급한다고 발표했다.

이재준 고양시장은 “역사의 청산은 정치적 논쟁이 아닌 성장의 토양을 다지는 작업”이라 강조하며, “시간이 흐르며 점차 잊혀져 가는 일제의 흔적은 역사의 아픔으로 생생하게 보존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항일운동의 정신은  3.1운동 100주년을 기점으로 남북이 하나 되는 평화의 정신으로 승화해 그 불씨를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안양시도 당장 이 곡 사용을 중단하고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친일잔재 청산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안양시민으로 애국지사의 한 후손은 "안양시 노래가 친일 인물이 작곡한 노래인 것을 처음 알았다"며 "안양시는 공식행사 노래 제창하는 것을 당장 중단하고, 시민 공론화 작업을 거쳐 새로운 시가를 새롭게 만들어 불려져야 돌아가신 선조들께 떳떳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안양시민의 노래를 작곡한 김동진은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가고파’로 유명한 인물이다. 고인이 남긴 가곡만 100편이 넘는다. 군가·동요 등을 합해 500편 이상을 작곡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 국민훈장 모란장, 3·1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하지만 1939년에 만주의 신경교향악단에 입단하여 제1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만주작곡가협회에 가입하고 만주국 건국을 찬양하는 음악을 작곡하는 등 일본 제국의 만주 정책에 협조한 행적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 부문에 선정되었다.

[20190228]3.1절에 안양 출신 항일애국지사 '원태우' 방영

안양지역뉴스/안양

 

위 그림: 윤승운화백 작/ 만화로 보는 <원태우 지사> 의거 http://blog.daum.net/21c-bom/5428835?srchid=BR1http://blog.daum.net/21c-bom/5428835 어린이 역사 만화 『맹꽁이서당 10권(웅진닷컴출판사)』132~133쪽

 

1905년 열차를 타고 안양을 지나던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짱돌을 날려 부상을 입힌 안양 출신의 항일 애국지사 원태우 지사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방송을 통해 소개된다.

태광그룹 케이블TV방송사 티브로드는 3.1운동 100주년 특집기획 ‘그날의 함성’ 주제로 캠페인을 펼치면서 전국 각지역 방송망을 통해 지역 내 3.1절 연관 장소를 소개하고 이에 얽힌 스토리를 담아낸 기획 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와 유적지를 발굴하는 특집 기획시리즈 등을 편성했다.

이에 안양.군포.의왕.과천을 방송권역으로 하는 티브로드 abc방송에서는 3월 1일 ‘안양 사람 원태우(abc, 오전 10시) 특집 프로그램과 함께 각 지자체 주관으로 진행되는 3.1절 100주년 기념행사들을 지역채널 1번을 통해 방영한다.

티브로드 강신웅 대표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이번 3.1절의 역사적 의의는 물론 선열들의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기는 기념행사를 지역채널을 통해 널리 알리고자 한다”며 “각지에서 울려 퍼지는 3.1운동의 함성과 감격을 생생히 전달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가정에서 지역채널 TV시청이 어려운 시청자들은 티브로드 앱과 VOD, 티브로드 지역채널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도 무료 시청이 가능하다.

 


안양사람 원태우 지사는 누구인가?

 

원태우(元泰祐)/ 1882년(고종19년) 출생 - 1950년 사망

항일애국지사. 본관은 원주(原州). 원태성과 이호순 사이에서 2남으로 1882년 3월 4일 안양시 만안구 안양 1동 642(당시 행정지번 경기도 과천군 하서면. 현 농협중앙회 안양시지부 부근)에서 태어났다.

문헌에 따라 원태근, 김시근, .김태근등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호적에는 원태우로 되어 있다. 그의 형이 원영우인 것으로 보아 「우(祐)」가 항열로 보여진다. 그는 본래 농촌 출신으로 깊은 학식은 없지만 평소에 의기가 높고 바른 일에 앞장을 서는 정신과 기백이 있었다.

그가 23세 되던 해(1905)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위하여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제로 체결한 비운의 해였다. 일제는 이 조약을 맺기 위하여 광무8년(1904) 노일전쟁의 승리로 이끈 후 포츠머스 조약에서 한국에서 정치, 경제, 군사상 우월한 지위와 권익을 얻게 되자 침략의 첫 사업으로 먼저 외교권을 박탈을 꾀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광무9년(1905) 10월에는 포츠머스 회담의 일본측 대표인 고무라를 비롯하여, 주한공사 하야시, 총리대신 가찌라등이 조약을 체결할 모의를 하고, 동년 11월 9일에는 추밀원장(樞密院長) 이토 히로부미를 황제위문의 특파대사라는 구실로 한국에 파견, 한일협상안을 정부에 제출토록하고, 10일 서울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는 그 다음날 고종황제를 배알하여 일본 천황의 친서를 봉정(奉呈)하고, 15일 재차 배알하여 한일협약안을 보였는데, 그것이 중대한 내용이어서 조정의 반대가 심하였다. 16일에는 정동에 있는 손택호텔에서 참정대신 한규설 이하 여덟대신을 위협하여 헙약안의 가결을 강요하였다. 17일에는 일본공사가 우리 정부의 전각료를 일본공사관에 불러 한, 일 협약의 승인을 괴했으나 오후 3시까지 동의를 얻지 못하므로, 그 길로 궁중에 들어가 어전회의(御前會議)를 열기로 하였다. 이날 궁성의 주위 및 시내 요소에는 무장한 일본군이 경계하고 다른 부대는 쉴사이 없이 시내를 돌아다니고 궁중에는 거리낌없이 드나들면서 시위하였다. 이날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주한일군사령관 하세가와와 함께 세 번이나 고종황제를 배알하여 강제로 황제로 하여금 정부대신과 숙의하여 원만한 해결을 볼 것을 재촉하였다. 한편 어전회의는 고종황제가 병으로 인하여 참석치 못한 채 열렸는데, 이 회의에서는 의견의 일치를 모지 못하자 일본공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불러왔다. 하세가와를 대동하고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온 이토 히로부미는 즉시 각료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협약에 대한 찬부(贊否)를 물었다. 참정대신 한규설과 탁지부대신 민병기, 법부대신 이하영이 반대하였을 따름이고 다른 대신들은 이토 히로부미의 강압에 못이겨 약간의 수정을 조건으로 찬성하였다. 이날 밤 이토 히로부미는 조약체결에 찬성하는 대신들과 다시 회의를 역고 자필로 약간의 수정을 가한 후 위협적으로 조인을 받았다.

청천벽력과 같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외교권이 탈취당하였다는 소식이 천하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동 조약체결 다음 날인 11월 18일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뒤집힌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국민들은 통곡과 격분속에서 한때나마 방향감각을 찾지 못하였다. 이에 서울 종로상인들은 철시한 채 통곡하는가 하면, 각급 학교는 폐문하고 스승과 제자가 손을 맞잡고 개탄과 비분에 빠졌다. 3일 후에는 사학자이자 애국지사인 장지연선생이 자신이 사장겸 주필로 있던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480여 자(字)의 논설을 실어 온 국민의 울분을 대신해서 풀어준 결과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2천만 한국민을 항쟁의 대열로 끌어들이기에 족할 만큼 격동적이었다.

5일 후인 11월 22일에는 조약체결의 장본인이자 우리민족의 불공대천지원수인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의 일본측 조약담당자였던 하야시 곤스케 공사를 대동하고 이날 오전 9시에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특별열차를 타고 수원에서 하차, 수원의 주산인 팔달산 등 경치를 구경하고 수원에서 안양까지 사냥을 하며 안양에 도착, 안양역에서 오후 6시 15분 서울행 열차를 탔다.

이토 히로부미가 수원지방을 구경한다는 소식을 접한 청년 원태우는 동료 이만려, 김장성, 남통봉 등과 함께 거사할 것을 맹세하고 이토 히로부미가 탄 기차가 지나가는 안양 서리재고개(현재 관악 전철역에서 서울방면으로 약 400m지점 안양육교) 아래 철로변에 돌을 깔고 열차가 전복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두려움에 떨던 이만려가 돌을 치우자 곧 이어 열차가 나타났는데, 원태우는 혼자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를 향해 사방세치 크기의 돌맹이 수개를 던졌다. 이때 유리창이 박살나며 파편이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 여덟군데에 박혔다.

여기서 잠깐. 그럼 원태우는 어떻게 달리는 기차 그것도 열차안에 찬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정확하게 돌멩이를 던질 수 있었을까?

1905년 당시 기차 속도는 시속 20km~30km로 속도가 느렸으며 돌팔매질을 한 장소는 당시 서릿재 고개라 부르던 곳으로 경사가 급하여 열차는 더욱 천천히 지나가야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 이야기로 서행을 하지 않을수 없었던 곳이다. 또 고개를 깍아 기찻길을 놓았기에 비탈진 위쪽에서 아래쪽을 느리게 지나가는 기차 내부를 보기가 쉬운 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에 아시 장사라 불리우던 원 지사의 돌팔매질 실력과 천운을 더해서.

이 사건이 국민에게 알려진 것은 2일 후인 11월 24일 <대한매일신보>에 의해서였고, 일본에서는 사건 발생 다음날부터 신문에 보도되었다. 오사카에서 발행한 <대한매일신문> 11월23일자에는 원태근이란 이름으로 안양시장 「22통1호」라는 주소와 함께 보도했고, 도쿄에서 발행하는 <동경매일신문> 11월29일자에는 「이토 히로부미 조난전말」의 기사로 사건상황을 설명했으며, 일본 박물관 발행의 《일로전쟁화보》제29권(1905.12.8 발행)에는 「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이란 제하의 기록화와 함께 보도했다. 일본인 화가 기무라 고타로가 그린 것으로 명기된 이 그림은, 갓을 쓰고 흰 도포를 입은 남자(원태우)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열차를 향해 돌을 던지는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이토에 대한 피격 사건이 전보를 통해 일본에 알려지자 일본의 증시가 한때 일시 폭락하고 일본의 언론에도 보도되면서 일본열도를 한바탕 흔들어 놓았다고 한다. 또 사건 발생 이틀후에는 국내에도 알려지자 고종은 사좌서신을 보내고 사건 책임을 물어 시흥군수를 파면하고 경기 관찰사를 견책 처분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 사건 이후 전국에서 본격적인 항일운동이 시작되었고, 이후 적극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사건 직후 원태우는 자리를 피하였으나 사이토 일본 헌병대장이 수명의 헌병과 경찰들을 이끌고 현장에 내려와 안양역의 철도노무자 였던 다니노와 야마사키의 도움으로 원테우를 포함한 4명을 체포하였다. 그중 이만려, 김장성, 남통봉은 곧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원태우는 철도방해죄로 감금되어 징역 2개월에 곤장 1백대를 맞고 이듬 해 1월 24일에 영등포감옥에 석방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조선의 민중 봉기 등으로 확대될까 하여 자신을 공격한 원태우의 처벌 수위를 낮추도록 지시했기에 처벌의 수위가 아주 약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태우는 왜경의 혹독한 고문으로 온몸에 흉칙한 흉터 때문에 한 여름에도 긴 옷을 입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국부에까지 심한 고문을 당해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했다. 더욱이 생계를 꾸렸으나 여의치 못해 원 의사 형(영우)의 삼남인 계복(1910-?)씨가 원태우의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말년에는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수푸루지(임곡동)에서 불우하게 살다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타계해 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 709∼16 공동묘지에 장례를 치뤘는데, 그후 1982년 이곳에 화영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화장되었다고 전해지나 그 처리 과정은 기록으로 명확하게 남아 있지않다.

원태우 지사의 유품으로는 생존시 만든 돌절구 2개와 맷돌 1개가 있는데, 그중 맷돌 한 개는 1990년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었고, 또 한 개와 맷돌 1개는 원 지사 양자가 소장하고 있다가 안양시에 기증되어 안양시청 민원실 1층 홀에 전시되어 있다가 2018년에 안양박물관으로 옮겨 보관중이다.

정부는 원태우 지사 의거 결행 85주년이자 원 지사 서거 40년만인 1990년 8월15일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992년 11월 22일에는 안양의 자생단체인 「새안양회」에 의해 「원태우지사의거비」가 안양만안시립도서관 광장에 세워졌다. 또 안양역 광장에서 2층 대합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조형물, 평촌 자유공원에는 동상, 그가 돌멩이를 던졌던 의거지 자리(관악역에서 서울 방향 300미터 안양자동차학원 맞은편 버스정류장)에는 안양시에 세운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가 2018년 11월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에 의해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유적' 조형물이 새로 설치됐다. 또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원 지사가 태어나 자랐던 안양1동(현 농협 안양역지점)에도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유적' 원태우 집터 표지석을 신규 설치했다.

원태우 지사의 의거는 을사늑약 이후 일제에 맞선 최초의 공개적 저항 활동으로 역사적으로 대단히 값지고 의미가 있을뿐 아니라 과거 시흥군 당시에도 안양1동에서 태어난 안양이 낳은 인물임에도 안양에서는 그의 업적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원태우 지사의 조형물을 보면 의거 당시 20대 청년을 5-60대 장년으로 잘못 그린 일본인 화가의 그림을 그대로 인용해 표현하고 있어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건 당시 원태우는 24살의 청년으로 농부이자 석공이었다.
그러나 자유공원의 동상, 안양역 계단 벽면의 부조에 이어 의거지에 새로 설치한 조형물 의 흉상과 얼굴 이미지를 보면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선비 모습에 턱수염이 더부룩한 5-60대의 장년의 얼굴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사건 이후 일본에서 발행한 일로전쟁화보의 「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이란 제하의 기록화(작가: 기무라 고타로/일본인)에 그려진 한복 도포에 갓을 쓴 선비 모습과 이를 밑그림 삼아 그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나 원태우 지사의 사진이 찾지 못했다는 이유와 무관심 등으로 지금까지 일본인 화가의 그림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원태우 지사의 의거는 조선 말 특권 계층이 아닌 일반 민중의 젊은이가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다는 항일항쟁 증거 중 하나이기에 때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면밀한 고증과 연구를 통해 하루속히 신분을 정확히 묘사하고 조형물 이미지도 수정할 필요성이 크다.
또 안양시, 인터넷 자료 등에 쓰여진 표기는 물론 관내 설치된 기념 표지석을 보면 의사(義士), 지사(志士)로 각각 다르게 표기되어 혼란을 주고 있기에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참고로 국가보훈처에서는 일제강점기 열사(烈士) ・ 의사(義士) ・ 지사(志士)를 구분하지 않고 ‘독립유공자’로 통칭하지만 민간 학계에서는 의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성패에 관계없이 목숨을 걸고 무력적인 행동으로 항거하며 죽은 사람에게, 지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품은 사람이란 뜻으로 대부분 광복 후에 돌아가신 분에게 호칭되고 있다.

[참고문헌] 《기려수필》,《속음청사》,《대한계년사》,《독립운동사》,《안양문헌》,《시흥군지》,《경기인물지》,《일로전쟁화보》,《대한매일신보》

 

[20190227]안양시, 녹색건축물 주택에 5억6700만원 지원

안양지역뉴스/안양

 

안양시가 녹색건축물과 소규모 공동주택에 대한 시설보조금으로 올해 5억6700만원을 지원한다.

안양시에 따르면 보조금을 받는 주택은 110개소로 녹색건축물을 조성하는 주택이 48세대다. 소규모 공동주택은 62개 단지다. 지난해 10월 시설비 지원에 따른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안양시는 녹색건축물에 대해서는 보일러와 창호 교체비용으로 9700만원을 지원하고, 단지 내 옥상 방수와 담장 및 하수도 보수, 도로정비 등의 공사를 추진하는 소규모 공동주택을 대상으로는 4억7천만 원을 보조한다.

지원액은 녹색건축물 조성사업의 경우 5백만원까지다. 공동주택은 2천만 원이 상한선이다.

안양시는 올해 상반기 중 사업을 추진토록 해 보조금 지원을 완료할 계획이다.

안양시는 2016년 에너지 절약 차원의 녹색건축물을 활성화하고 공동주택 노후시설 정비를 위해 관련 조례를 제정, 2017년부터 시설보조금을 지원해 호응을 얻고 있다.

안양시는 보조금 지원에 따른 설명회를 지난 25일 세대주, 단지 대표, 공사관계자 등 1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했다.   

[20190227]의왕시 과장 승진전보 인사발령(2019.2.28일자)

안양지역뉴스/의왕

 


의왕시 인사발령(2019. 2. 28.자)
5급(과장) 승진, 전보, 직무대리


  [ 5급(과장) 승진 ]
  △ 건축과장 구홍서

  [ 5급(과장) 전보 ]
  △ 의회사무과장 남궁현
  △ 기획예산담당관 안종서
  △ 복지정책과장 강수영
  △ 사회복지과장 이선주
  △ 평생교육과장 안  혁
  △ 세정과장 정춘서
  △ 문화체육과장 정해룡
  △ 내손도서관장 김영숙
  △ 청계동장 박종희

  [ 5급(과장) 직무대리 ]
  △ 아동복지과장 이윤주
  △ 일자리과장 노은래
  △ 징수과장 최홍식
  △ 정보통신과장 이미환
  △ 건강증진과장 홍석우
  △ 공원녹지과장 최명식

[20190227]군포시, 협치기구 조례 제정 시민토론회 초대합니다

안양지역뉴스/군포


군포시가 협치기구인 ‘100인 위원회’ 구성을 위해 민․관 TF팀을 구성해 준비해온 조례안 제정에 앞서 시민 의견을 담아내는 토론회를 개최한다.

오는 3월 21일 오후 7시부터 군포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토론회는 작년 12월 진행된 1차 토론회의 내용을 보완하고, 최종안 마련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시민 100명이 참여한다.

시는 이날 토론회에서 ‘협치 100인 위원회 구성 및 운영 조례(안)’의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고,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을 원탁토론의 시간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시는 내달 8일까지 군포형 협치 행정에 관심이 높은, 성공적인 협치기구 탄생에 기여할 시민 100명을 공개 모집(선착순 접수)해 토론회 참석자들을 선정한다고 26일 밝혔다.

토론회 참여를 희망하는 군포시민은 군포시청 3층 정책감사실을 방문해 신청하거나 온라인(https://goo.gl/forms/uyTa9G9XT1wvL9ay1)에서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정책감사실에 문의(031-390-0859)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신청하 정책감사실장은 “협치의 기본은 시민의 참여, 시민과의 소통이기 때문에 이번뿐만 아니라 4월에도 토론회를 한 번 더 개최해 조례안에 시민의 목소리를 최대한 담으려 한다”며 “적극적인 의견수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시는 지난해 말 ‘협치 선진지 벤치마킹 결과 보고회 및 군포시 협치기구 구성 및 운영(안) 토론회’를 개최하며 1차로 협치기구 구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바 있으며, 3월 2차 토론회와 4월 3차 토론회 등에서 지속적으로 여론을 수렴․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시는 3차에 걸친 토론으로 최종안을 만들어 5월 중 입법예고를 하고, 7월에 열릴 군포시의회 정례회를 통해 조례를 제정한 후 9월께 ‘협치 100인 위원회’의 정식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90227]군포시, 경기도 옥외광고물 업무 평가 '우수' 평가

안양지역뉴스/군포

 

군포시가 옥외광고물 관리․지도 등을 통해 도시의 미관과 안전도를 함께 올린 공을 경기도가 인정했다.

시는 최근 이뤄진 경기도의 ‘2018년도 옥외광고업무 평가’에서 우수 기관으로 선정돼 표창을 받는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평가에서 시는 특히 주민이 참여하는 불법 유동광고물 수거보상제 운영 등 불법 광고물 정비 및 근절을 위한 노력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것이 경기도의 설명이다.

또 행정 광고 현수막 실명 표시제 운영, 군포역 일원 간판이 아름다운거리 조성사업, 풍수해 대비 옥외광고물 안전점검 실시 등 쾌적하면서도 안전한 거리환경 조성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시는 덧붙였다.

장태진 건축과장은 “아름답고 안전한 도시 환경 조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불법 광고물 신고와 정비에 협조해 준 시민들의 노력 덕분에 우수 기관으로 선정될 수 있었다”며 “쾌적해 살기 좋은 군포의 이미지를 지속해서 확립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의 옥외광고 업무평가는 도내 31개 시․군을 대상으로 매년 시행된다. 옥외광고업무 추진 의지와 역량, 불법 광고물 정비실적, 옥외광고물 안전관리 등이 주요 평가 항목이다.

[20190227]군포시, 3월 30일 군포장 만세운동 재연한다

안양지역뉴스/군포

 

군포시가 오는 3월 30일 100년전 군포장과 군포역 인근에서 일어났던 항일 만세운동을 재연한다.

군포시와 국가보훈처 및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1919년 3월 31일 열린 군포장(軍浦場, 5일장)에서는 독립을 열망하는 인근 지역(현재의 군포, 안양, 의왕) 거주민 2천여명이 모여 만세운동을 펼쳤다.

당시 만세운동 참여자들은 군포장(안양 호계동 구사거리) 에서 군포장역(전철 1호선 군포역) 앞의 일본 경찰관주재소로 행진했는데, 일제는 경찰 외에도 군 병력까지 동원해 총을 쏘는 등의 폭력으로 군중들을 해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와 관련 군포시는 내달 30일 군포역 일대에 특별무대를 설치, 기념식과 기념공연 등의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100주년을 맞은 군포지역 내 독립운동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현재까지 이어진 군포시민의 애향심과 애국심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잔치를 여는 것으로 주요 행사를 보면 시민 200여명이 참여하는 거리극 ‘군포항일독립만세운동 재연공연’, 독립선언서 낭독, 3․1 운동 의상 체험, 청소년 나라사랑 플래시몹(flash mob) 공연, 진조크루와 YB의 특별공연 등이 준비된다.

이를 위해 시는 행사 전일과 당일 군포역 인근에서 교통 통제를 할 예정이며, 자세한 정보는 별도로 시청 홈페이지와 SNS 등을 이용해 공지한다. 기타 더 자세한 정보는 시청 복지정책과(031-390-0212) 또는 정책감사실(031-390-0881)에 문의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한대희 군포시장은 “도시와 나라의 발전․성장을 위해 시민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에 시민이 주도한 항일 만세운동을 기리는 행사를 개최, 시민의 역량을 다시 한번 깨우고 부흥하는 계기를 만들려 한다”며 “많은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군포시는 지난 2016년 5월 군포역 광장에 항일 독립 만세운동을 펼친 시민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높이 11m의 기념탑을 세우고 제막식을 가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