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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0]안양 병목안 채석장 철길 남아있는 흔적

2017.03.30/ #안양 #병목안채석장 #철길 #1934년 #안양9동/ 일제 강점기 경부선 복선화공사가 진행될 무렵인 1934년 안양역에서 병목안까지 철길이 놓이고 안양9동 수리산 자락의 커다란 산 하나가 파헤쳐졌다. 경부선을 놓으면서 자갈을 채취하기 위해서다. 해방 이후에도 철도청은 1980년대까지 수도권 일대에 건축용 골재로 제공하기 남포(다이나마이트)를 터트려 산을 깨트렸는데 이곳을 병목안 채석장이라 불렀다. 당시 병목안에는 전국에서 모인 돌 캐는 사람들이 살았음은 물론이다. 1주일에 두세 차례 철도운반 화물열차를 운행했는데 당시 안양9동과 새마을에 살던 중학생 정도의 녀석들은 열차가 지나갈 때를 기다렸다가 화물차 맨 뒷칸에 몰래 매달려 안양시내로 또는 집으로 가기도 했다. 개중에는 어른들도 있..

[안양광역]안양7동 덕천마을의 옛 지명은 ‘벌터(坪村)’

안양7동 덕천마을의 옛 지명은 ‘벌터(坪村)’ 2015-04-13 오후 5:32:00 12 ‘벌터’자연마을 지명석 이전설치 행사에 참석한 안양7동 박창배 동장, 정하길 주민자치위원장, 민정기 (사)대한노인회 안양7동 경로당 회장(통친회장) 및 경로당회원 등 지역주민들이 마을의 발전을 염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고 대부분 농경지였던 지역에 일제강점기 초 시흥시 정왕동에 살던 원정상(元貞常)씨가 분가하면서 정착 이래 자연마을이 형성되면서 ‘벌터’라 불리었다. 1978년 마을의 유지들에 의해 ‘덕천마을’로 개칭되었고, 이듬해 5월 1일 안양 6동에서 분리되어 안양7동으로 분동(分洞)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리적, 인문적 특성을 간직한 자연마을 지명은 지역의..

[영상]사라지고 다시 태어난 안양 덕천마을(2016.12.31)

덕천의 어제와 오늘 ○ 제작 : 안양시 홍보실 ○ 게시 : 2016.12.31 안양시홈피 영상보기 http://tv.anyang.go.kr/1819 안양 덕천마을은 주접동 동북쪽에 있는 안양천변에 자리한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으나 일제강점기 초에 시흥시 정왕동에 살던 원정상(元貞常, 안양여고 원종면 선생의 증조부)씨가 분가를 나와 지금의 안양7동 213에 정착했고, 이어 전주 이씨, 창령 성씨등이 세거하면서 자연마을이 형성되었고 ‘벌터’라 불리었다. 1978년 마을의 유지들에 의해 ‘덕천마을’로 개칭되었고, 이듬해 5월 1일 안양 6동에서 분리되어 안양7동으로 분동(分洞)된다. 이곳은 196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지역이 농경지였다. 예컨대, 명학역과 주접지하도에 이르는 경부선 철도변은..

[영상]대한민국 책의 도시 군포(2015.01.04)

대한민국 책의 도시 군포 제작; 군포시 게시일: 2015. 1. 4. 인류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세상, 무한한 지식의 보고, 책의 세상은 그 무엇보다 깊고 아름답습니다. 대한민국 책의 도시 군포 2010년 7월, 시민 모두가 책을 통해 더 큰 세상과 만나고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책 읽는 도시', 그 꿈을 향한 군포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습니다. 유튜브 영상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_pBsxjH6kPU

[영상]안양 호현마을 새옷을 입다(2015.01)

경기도 안양시 박달2동, 서해안 고속도로가 높이 솟아 가로지르고 그 아래 살랑살랑 실개천이 넘실거리는 동네가 있습니다. 안양에 남은 마지막 자연부락 그동안 대단위 신도시 위주의 도시정책 추친으로 생활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해짐에 따라 그 격차를 해소하고자 경기도와 안양시는 1억 5천만원의 예산을 편성하여 마을환경개선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1년이라는 기간동안 주민숙원사업, 문화/교육사업 그리고 환경개선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공공기관과 시민단체 그리고 지역협의체가 힘과 뜻을 모아 주민공동체가 복원되고 깨끗하고 풍요로운 생활환경복지마을 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 기록을 저희 미디어두가 담아 보았습니다. 영상 https://vimeo.com/116835786 제작 미디오두/ 2015.01/ 권영세작가 호현마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