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7동 덕천마을의 옛 지명은 ‘벌터(坪村)’
2015-04-13 오후 5:32:00 12
‘벌터’자연마을 지명석 이전설치 행사에 참석한 안양7동 박창배 동장, 정하길 주민자치위원장, 민정기 (사)대한노인회 안양7동 경로당 회장(통친회장) 및 경로당회원 등 지역주민들이 마을의 발전을 염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고 대부분 농경지였던 지역에 일제강점기 초 시흥시 정왕동에 살던 원정상(元貞常)씨가 분가하면서 정착 이래 자연마을이 형성되면서 ‘벌터’라 불리었다. 1978년 마을의 유지들에 의해 ‘덕천마을’로 개칭되었고, 이듬해 5월 1일 안양 6동에서 분리되어 안양7동으로 분동(分洞)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리적, 인문적 특성을 간직한 자연마을 지명은 지역의 특색이 반영되어 있는 고유명사로 지명만 보아도 지역의 특성을 알 수 있는 전통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오늘날 피할 수 없는 도시화 속에서 자연마을들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고, 변화 속에 옛 지명은 점차 잊혀져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안양7동 덕천마을의 옛 지명인 ‘벌터(坪村)’지명 표지석 이전 설치행사가 2015년 4월 8일 (수) 오전 11시 주접지하차도 초입 쌈지공원에서 열렸다.
원래 본 지명석(地名石)은 2012년 6월 12일 안양7동 경로당 앞에 건립하여 임시로 존치한 이래, 길일을 택해 널리 ‘벌터’지명유래의 정체성을 알리고자 금번 덕천(德泉)마을 초입 주접지하차도 입구로 이전행사를 가진 것. 행사에는 안양7동 박창배 동장, 정하길 주민자치위원장, 민정기 (사)대한노인회 안양7동 경로당 회장(통친회장), 남기황 7동 새마을협의회 회장 및 주민자치위원, 원종면 前,안양문화원장, 경로당 회원 등 지역주민들이 함께한 가운데 열렸다.
오늘의 뜻 깊은 행사를 갖기까지에는 덕천마을에 대규모 아파트 주거단지 택지개발을 앞두고, 일전에 안양 7동 경로당 회원을 중심으로 뜻있는 지역인사들이 모여 옛 동네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한 마을비 건립이 논의된바 있었고, 안양7동 경로당회원 등의 중지를 모아 마을비(지명비)는 제작 되었다.
지명석의 전면글씨는 송재(松齋) 우동호(寓東鎬) 화백(前 안양향토문화연구소 소장)의 글씨를 음각하여 새겼고, 마을 표지석 후면은 안양시지명유래집(1996, 새안양회발간)을 참조하여 ‘벌터’마을의 유래를 새겨 넣었다. 지명석 후면에 새겨 넣은 글씨에 따르면,「일제 강점기 초 원정상(元貞常, 1868~1948)씨가 처음 이 지역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였고, 이씨(李氏), 성씨(成氏), 김씨(金氏)등이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넓은 벌판에 있는 촌락이라 하여 ‘벌터(坪村)’라 칭하게 되었다」고 명기하고 있어, 예전에는 주거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허허벌판임을 알 수 있다.
금번 ‘벌터’ 지명 표지석이 제자리에 자리 잡기까지는 안양 7동 주민센터에 안양 7동 경로당 앞에 있던 마을 표지석을 쌈지공원으로 이전요구를 발의한 경로당 회원, 박창배 안양7동 동장 및 정하길 주민자치위원장의 적극적인 주민의견 수렴을 거쳐 오늘 행사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옛날 ‘벌터’라 불리던 시절부터 살아온 지역원로인 홍명의(洪明義) 선생(안양초 19회 졸업, 1936생)은 “벼, 포도, 보리, 수수 등을 경작하며 논·밭농사를 짓던 넓은 벌판이었던 마을이 오늘날 도시화로 논·밭농사를 거의 찾을 수 없다.”고 밝히며, ‘벌터’표지석 설치를 반기며, 그 옛날 회상하고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은 오늘 행사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말고, ‘벌터’지명석 표석을 설치한 날을 기점으로 매년 이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정례적으로 열려 주민소통과 화합을 다지길 희망했다.
안양7동 ‘벌터’지명비(地名碑石) 설치의 의미는 택지개발사업 등에 따른 도시화, 산업화 속에 점차 잊혀져가는 마을지명 유래의 역사를 알리고, 지역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아가는 의미 있는 사업이란 평이다.
선조들이 남긴 무형문화유산인 자연마을 지명은 시·공간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지명만으로도 그 마을의 역사적, 지리적, 인문적 특성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금번 안양7동 ‘벌터’지명석 설치 행사가 안양의 자연마을 지명을 찾아가는 단초가 되길 기대해 본다. 안양광역신문 조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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