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 경기그레이트북스 20
경기도 근현대 생활문화 III
양훈도
한국한센복지협회 답사일 : 2018년 9월 7일
성 나자로 마을 초입에 한국한센복지협회가 온 사연
한국한센복지협회의 주소는 의왕시 원골로 59이다. 의왕 모락산 자락에 자리잡은 성 나자로 마을의 초입이다. 한국한센복지협회를 지나 옆길로 올라가면 성 나자로 마을이 나온다. 성 나자로 마을은 1951년 현재의 위치에 터를 잡은 구라사업救癩事業 기관이자 한센인 재활의 터전이다. 구라사업이란 2000년 이전까지 나병 혹은 ‘문둥병’으로 불리던 환자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일컫는다. 나병은 2000년 공식 병명이 한센병으로 바뀌었다. 나병 환자들이 겪었던 고통과 사회적 차별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한센복지협회가 의왕 성 나자로 마을 곁에 본부를 두게 된 것은 오늘날의 성 나자로 마을 기틀을 마련한 이경재李庚宰(1926~1998) 신부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경재 신부는 1951년 이후 2차례나 성 나자로 마을 원장을 지내면서, 헌신적으로 한센인들의 터전을 마련한 사제다. 이경재 신부는 1975년 한국한센복지협회[당시 협회 명칭은 사단법인 대한나협회]와 현재 협회 부지를 50년간 무상 임대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나환자 재활 마을인 성 나자로 마을과 한국한센협회가 나란히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계약 만료 시점은 2025년이다.
협회 건물의 건립 자금은 ‘일본선박진흥회’라는 데서 댔다. 협회 본관 건물의 동판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본 연구원은 우리나라 나사업(癩事業)을 돕기 위하여 일본선박진흥회가 정부에 기증한 기금으로 건립되었으며, 일부 의료시설은 일본국내 다수 독지가의 기금으로 설치된 것임. 1976년 9월.” [원문 한자는 한글로 바꾸었고, 일부 띄어쓰기는 현행 맞춤법에 따라 수정했음.] 다시말해, 일본선박진흥회라는 곳에서 한국 정부에 건립기금을 기증하는 형식을 취했고, 그 외 일본의 독지가들이 도움을 주어 협회가 세워지게 되었다는 얘기다.
일본선박진흥회는 ‘일본재단’의 전신이다. 일본재단은 일본 최대의 재단법인으로서, 세계적으로 식량·의료·교육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일본선박진흥회는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1899~1995년)가 경정競艇 사업 수익금으로 만든 단체로서, 한센병 퇴치 지원에 상당히 힘을 쏟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사카와 료이치는 극우주의자로서 제2차 세계대전 후 A급 전범으로 수감되었다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사사카와 료이치는 의외로 한센병 관련 지원에 앞장섰다. 현재 일본재단의 회장은 사사카와 료이치의 아들인 사사카와 요헤이笹川陽平(1939년생)다. 사사카와 요헤이 회장은 2002년 한국한센복지협회를 방문해 기념식수를 했고, 그 사실을 알리는 표지판이 협회 마당의 해당 나무 앞에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나병근절책 연구회 1976년 본관 신축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 교육관, 직원 기숙사, 식당, 경비실 등이 차례로 지어졌다. 본관은 협회 사무실이 있는 부분과 병원 부분으로 나뉜다. 병원은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특수의료기관으로 출발했는데, 한센병 환자가 급격히 줄어든 현재는 일반 환자도 진료한다. 시작이 한센병 치료인 탓에 주 진료과목은 피부과이고, 성형외과 정형외과 안과 치과 한방의학 진료도 통합적으로 한다. 피부과 진료와 약 처방은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 있다.
김성태 한국한센복지협회 기획예산과장은 “현재 내원 환자 100명 중에 한센인은 5~6명에 불과하다. 제주도에서도 일반 외래환자가 찾아온다.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복지피부과는 우리 협회의 경기인천지부이기도 하다. 앞으로 우리 병원은 내과 등 타 과목으로도 진료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했다. 수원 복지피부과도 피부병 치료에 탁월하다고 입소문이 나 있는 병원이다. 협회는 전국에 11개 시·도 지부가 있다.
본관 건물로 들어서 2층 협회 사무실로 올라가는 계단참에 1928년 작성된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 취지’가 붙어 있다. 조선총독부가 재정 부족을 이유로 한센인들에 대한 시설 확충에 난색을 표하자, 조선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구라단체가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다.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는 오늘날 한국한센복지협회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연구회 취지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모두 38명이다. 명단을 들여다보면 윤치호 안재홍 송진우 김성수 김병로 신흥우 이인 최규동 오긍선 등 당대의 조선인 각계 명망가가 상당수 눈의 띤다. 1920년대 조선의 한센병 환자는 1만5천~2만 명 선인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이들을 치료하고 돌볼 공립 시설은 전국에 3~4곳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외국인 선교사등이 설립한 시설까지 다 합해도 수용인원은 2,000여 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가 발족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나병
근절책연구회를 결성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은 최흥종崔興琮(1880~1966년) 목사다.
최 목사는 여수에서 미국 의료선교사 로버트 윌슨과 함께 구라사업에 힘을 쏟던 시절 조직적인 구라사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 결성에 나섰다. 그런데, 조선총독부는 조선나병근절책연구회의 모금운동을 방해하는 한편 1932년 ‘조선나예방협회’를 조직했다. 관제 조직의 성격을 띤 조선나예방협회는 공식적인 구라협회를 표방했다. 한국한센복지협회 홈페이지의 연혁을 보면, 조선나병근절책 연구회를 모체로 하지만, 조선나예방협회를 협회의 기원으로 명기하고 있다. 한센병과 관련된 역사 서술은 입장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조선나예방협회는 해방 후1948년 대한나예방협회로 계승되었고, 1956년 사단법인 대한나협회로 개칭했다가, 1982년 재단법인 한국나병연구원 대한나협회로 흡수 통합되었다. 1984년 사단법인 대한나관리협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2000년 사단법인 한국한센복지협회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한센인은 2018년 1분기 기준으로 9,900명쯤 된다.” (김성태 과장)
일본 우익 인사의 지원이라는 아이러니
한국한센복지협회의 전체면적은 1만1,300㎡에 이른다. 정문으로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건물인 입원실은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다른 건물들은 본관 신축을 시작으로 1970년대 후반에 건축되었다. 건물은 대부분 기능 위주로 간결하게 지어졌다.
건물인 본관 뒤쪽에는 ‘평화개발기념관’이라는 현판이 붙은 기숙사 건물이 있다. 연수원 숙사이자, 협회 직원이나 의료진 가운데 출퇴근이 힘든 사람이 생활할 수 있도록 지어진 건물로서 방 6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사용자가 없는 빈 건물이다. 기숙사 건물 앞에도 기념식수 표지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수원숙사 준공기념식수 일본국 송록신도대화산松綠神道大和山 교주 전택강삼랑敎主 田澤康三郞 1978년 9월 18일”.
송록신도대화산에 대해 김성태 과장에게 물었으나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앞서 본관 동판에 적힌 “일부 일본의 독지가”들 가운데 하나로 추정된다.
교육관 건물도 1970년대에 지어졌다. 하지만 교육관 내부는 리모델링해서 현재도 교육 장소로 쓰인다. 교육은 한센병을 담당하는 시도 공무원 8개 반과 직원 역량 강화 10개 반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공무원 교육은 질병관리본부가 주관한다. 교육실은 30명 정도 교육받을 수 있는 강의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관 건물은 사실 뒤편의 은밀한 공간이 주목된다. 교육관 뒤편으로 돌아가면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스산한 느낌을 주는,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면 쇠문이 달린, 교도소의 독방을 연상시키는 방이 2개 나란히 있다. 변기를 갖추고 있는 방은 창에 쇠창살이 둘러쳐져 있다.
“부랑아 한센인이나 문제 있는 한센인을 수용하던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시설이 언제 생겼는지, 언제까지 운영되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악명 높은 소록도의 감금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한센복지협회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는 사실은 과거 한국의 한센인들이 어떤 차별과 인권유린을 겪었는지 짐작게 해 준다.
계약 만료 뒤엔 어떻게?
오는 2025년이면 이경재 신부와 한국한센복지협회 간의 무상임대 계약이 만료된다.
“저희야 계약을 연장해서 현 위치에서 한센인의 복지를 위해 더 노력하는 협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계약 연장이 되지 않을 경우 일부 부지를 매입해서 증축하는 방안이나,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겠지요.” (김성태 과장) 향후
어떻게 결정이 되더라도 한센인의 역사가 배어 있는 일부 건물은 보전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듯하다. 건립할 무렵에는 한국의 재정 여건 상 일본 우익 관련 단체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성 나자로 마을과 나란히 한국 구라사의 한 장을 써온 공간을 그대로 지워서는 안 된다고 판단된다. 아픔이 배어 있는 어두운 역사까지 직시할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 도움말 주신 분 |
김성태 한국한센복지협회 기획예산과장
| 참고자료 |
“조선한센병사-일제식민지하의 소록도” http://cafe.daum.net/kachs/CkQ2/302?q=%EC%A1%B0%EC%84%A0
%ED%95%9C%EC%84%BC%EB%B3%91%EC%82%AC
한국한센복지협회 홈페이지 http://www.khwa.or.kr/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http://www.sorokdo.go.kr/sorokdo/board/sorokdoHtmlView.jsp?menu_
cd=030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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