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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7]옛 국립수의과학검역원 톺아보기(2018.09.17)

안양똑딱이 2024. 1. 17. 06:54

 

경기문화재단/ 경기그레이트북스 18

경기도 근현대 생활문화 II  

양훈도 

 

옛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답사일 : 201897

 

이제는 흔적만 남은 안양 유일의 국립기관

안양시 만안구 안양6480번지(안양로 175) 농림축산검역본부는 201512이삿짐을 싸기 시작해 20164월 경상북도 김천혁신도시로 이전을 완료했다. 1942년 가축위생사업소라는 명칭으로 안양에 터 잡았던 시점부터 따지74년 만이고, 1964년 새로운 청사를 짓고 전국의 본부로 새롭게 출발한 해로부터는 계산해도 반세기가 넘는다.

안양시민들에게 농림축산검역본부는 가축연구소 혹은 수의과학검역원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1964년 새 청사를 지으면서 안양가축연구소라 개칭했고, 1998년에 국립 수의과학검역원으로 명칭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2011년에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로, 2년 뒤인 2013년엔 농림축산검역본부로 개칭했어도 입에 익은 이름은 쉬 떠나지 않는 법이다.

 

인터넷으로 안양6동 지도를 찾아보면 안양로 변에 아무런 표시가 없는 여러 동의 건물과 부지가 나온다. 바로 이 자리가 옛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다. 총면적이 56,309(17,000)에 건물이 27개 동에 이른다. 현재 건물 대부분이 비어 있다. 2019년부터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본관 앞 넓은 정원은 현재 공원으로 개방되어 있고, 일부 건물만 소방훈련 시설 등으로 활용 중이다.

 

동물의 영혼을 달래던 비석도 옮겨가고

국립 수의과학검역원은 무엇을 하던 기관일까. 우선, 수입 동물이나 축산물을 검역하고, 수입 축산식품의 위생 검사를 담당한다. 아울러 가축의 질병 방역 사업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구제역이 돌면 긴급 방역을 지휘한다. 조류 인플루엔자 방역도 이곳의 중요 임무 가운데 하나다. 국산 축산식품의 위생관리 및 안전성 검사도 이곳에서 맡는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와 우유, 유가공품 등이 안전한지 검사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국립 수의과학검역원은 수의과학 기술개발 및 연구, 동물용 의약품 등의 검정과 검사 및 안전관리, 동물보호 및 복지 사업을 진행한다. 한마디로, 가축 질병과 축산 식품 검사 관련 업무를 총괄한다. 안양은 그러니까 수십 년간 동물과 축산물의 안전을 책임진 도시였던 셈이다.

 

안양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앞마당에 있었던 축혼비畜魂碑는 이 기관과 관련된 이들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열 목숨 얻기 위해 한 목숨 바친 그대희생 빛내리. 넋이여 고히 잠드소서. 19691020

 

검역과 검사의 과정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축생들에게 바치는 헌사인데, 희생된 동물의 명복을 비는 연구자들의 마음씨가 드러난다. 축혼비 건립과정에 관해 국립수의과학검역권 100년사는 다음과 같은 회고를 싣고 있다.

1968년 농림부 장관에게 체계적 축산단지 조성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한 최재윤 박사는 우수한 연구라 하여 상금 10만 원을 받았다. 최 박사는 상금을 뜻있게 쓰고 싶다 하여 축혼비 건립을 제안했다. 비문 역시 최 박사가 직접 지었다. 이후 해마다 식목일 행사 전에 전 직원이 모인 가운데 축혼비 앞에서 동물들을 위한 제사를 올렸다. 제사상에는 채소만을 올렸다. 희생된 동물의 넋을 기리는 제사에 그들의 살을 올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축혼비는 지금 안양에 없다. 김천으로 이사하면서 아예 가져갔기 때문이. 70년 이상 안양에서 생명을 거둔 동물들을 생각하면 어쩐지 허전하다. 목숨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제 목숨을 내놓은 생명들을 기리는 비석 하나 이 자리에 다시 세워도 좋을 듯하다. 21세기에 더욱 중요해진 생명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의미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혔건만

국립수의과학검역소의 본관 건물도 아름다운 건축으로 손꼽히던 작품이다. 2003년 안양시 건축문화상을 수상했고, 2014년 경기도가 발간한 지도로 보는 아름다운 경기건축에도 수록되어 있다. 본관은 건축가 이광노李光魯(1928~2018)가 설계했다. 이광노는 남산 어린이회관, 국회의사당, 서울대 캠퍼스, 삼성빌딩, 서울대학병원, 주한중국대사관, 아산재단 중앙병원 등 한국건축사의 중요 건물들을 설계한 분이다. 이광노 선생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 교수로 있던 1960년대 초반 국립수의과학검역(당시엔 안양가축연구소) 본관의 설계를 맡았다. 이 본관 건물은 곧 사라질 운명이

므로, <안양시사>(2010)의 평가를 그대로 인용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안양시사>의 기록을 길게 인용한 이유는 본관 동 내부를 직접 답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립 당시 아직 미개발 상태였던 뒷산을 배경으로 자아내는 아름다운 주변옆으로 긴 2층의 주 건축물의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기둥을 벽면 밖으로 돌출시켰으며, 그 사이의 창들이 리듬감을 더해 주고 있다. 중앙 현관의 차양 지붕은 돌출되어 있는데 V자 모양으로 하늘로 치켜 올라가 있어 더욱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중앙 현관 주변을 외줄 기둥과 경쾌한 지붕으로 디자인하는 것은 1950~1960년대 한국 건축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것으로, 당시에 모더니즘 경향이 넓게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부의 바닥과 기둥의 마감은 인조석 테라죠 물갈기로 하였으며, 그 바탕을 연분홍, 살구색 등 온화한 계통으로 배색하여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실험실의 내부에 온기를 주고 있다.

또한 현관 내부 중앙 기둥에 1950년대 한미경제원조 조치에 의해 이 건물이 지어졌음을 나타내는 표식 동판이 붙어 있다.

평면을 살펴보면, 북쪽에 복도를 배치한 평복도형으로 남쪽에 실험실과 사무실을 배치하였다. 서쪽에는 계단실을 두어 높아지는 대지에 맞추어 옥외로 통하는 출구를 두었다.

이 건물은 계단실의 창을 옆으로 길게 내고 열려 있는 공간도 세밀한 창살로 구획하여 르 코르뷔제에를 비롯한 근대 건축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국제주의 양식이 짙게 배어 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전면은 콘크리트 마감으로 하였는데 측면과 배면 등 뒤편의 외벽만은 붉은 벽돌로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이어지는 전쟁 복구사업의 연장에서 본다면 풍족하지 못한 재료의 생산 및 수급, 무엇보다 기술적으로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당시 상황으로 인해 완벽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내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했던 것에 기인한다.

따라서 전체의 형태는 국제주의 양식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구조 기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재료는 이에 미치지 못하여 건물의 뒤편에서는 현장의 재료를 활용하여 겉모양을 맞추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콘크리트로 미끈한 형태를 빚는 요즘 추세에 비추어 볼 때 1960년대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농촌이었던 안양의 교외 현장에서는 재래 재료인 붉은 점토벽돌로 근사한 외양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 건물에서 또 하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건물 전면부의 3층에 새겨져있는 부조물인데, 이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대표적 조각가인 김문기의 작품이다. 이 부조물에는 인간의 안전한 식생활을 확보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들의 형상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오른쪽 위 한 켠‘LABORATORY’라고 씌어 있어 이 건물이 실험시설임을 알려 주고 있다. 이 실험실 건물 뒤편(서쪽)에도 굴뚝 등 소각시설을 갖춘 적색벽돌의 부속시설들이 1970년대까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또 검역원 직원들의 사택이 있던 자리에는 안양세무서(현 만안세무서)가 들어서면서 모두 없어져 옛 모습은 사진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원문 그대로 옮기지 않고, 편의상 임의로 줄바꾸기를 하였다.)

 

그나마 동물 릴리프는 남았다

답사일 현재 본관 3층 전면부에 설치된 부조浮彫는 그대로 남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조각가 김문기의 작품인 이 부조의 제작 과정에 얽힌 이야기가 국립수의과학검역권 100년사에 실려 있다. 당시 건축을 담당한 직원(박근식)이 작성한 회고에 따르면, 건축 설계 당시부터 연구소의 취지를 살릴 부조물을 세우기로 하고, 세심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설계자와 조각가에서 지구상의 모든 동물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미생물을 연구하고 백신을 만드는 곳이라는 연구소의 취지를 여러 차례 설명하고, 취지에 맞는 작품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스케치 단계에서부터 긴밀하게 논의를 계속한 끝에 작품은 천지 창조 당시를 재현한 느낌으로 탄생했다. “조각은 마치 성서에 나오는 천지창조를 옮겨놓은 것 같았다. 궁창穹蒼에 구름이 있고 비가 내려 바다가 생기고, 높이 뜬 태양아래 나무가 자라며, 말과 양, 돼지와 계란까지 있었다. 그리고 플라스크와 천칭, 두꺼운 책, 펜 등성경에 기록된 천지창조와 다름없었다.” (박근식)

 

농림축산검역본부는 김천으로 이전하면서, 축혼비와 수령이 오래된 조경수 등을 일부 가져갔지만, 이 부조를 떼어 가져가지는 않았다안양시에서 이곳옛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자리 개발을 담당하는 김갑순 주무관은 이 부조물과 본관동 전면부 벽체는 보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9년에 철거가 본격화 되면 부조와 전면부 벽체는 커팅해서 보관했다가, 후일 이 부지에 들어서는 공공시설물 건축 시에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왕 보존하는 김에 축혼비에 버금가는 위령시설도 설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안양 가축위생사업소가 1960년대 초에 전국수의과학의 본산이 된 계

기는 태풍이었다. 1961태풍으로 부산의 가축위생사업소 본부가 초토화되어 신축해야 할 형편이었다. 정부는 이 무렵 농

업연구기관을 수원을 중심으로 인근에 집결시킬 방침을 세웠고, 가축위생사업은 안양 지소가 본소로 결정되었다.

 

USOM(미국대외원조기관)의 지원을 받아 본소의 본관이 이 때 지어졌다. 이후 업무가 늘어나면서 수많은 건물이 새롭게 들어섰다. <안양시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신·증축된 건물도 많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진 건물들도 있다. 아직 철거되지 않은 건물은 27개 동에 이른다. 본관 좌측으로 세균연구동, 바이러스 연구동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대강당동, 별관동, 독성연구동 등이 간격을 두고 들어서 있다.

뒤편으로도 동물위생연구동, 동물약품 관리동, 해외전염병 연구동, 질병진단센터 등이 줄지어 있다. 넓은 축구장과 테니스장도 있고, 축구장 뒤로는 감염연구동과 동물관리사, 검정 동물사, 해부 제제실 등이 있다. 답사일 현재 연구시설과 기기는 모두 김천으로 옮겨가 대부분의 방이 비어 있으나, 각 건물의 용도를 알리는 표지판이나, 내부 각 실의 표찰은 그대로 붙어 있다. 동물 실험을 했던 건물에서는 동물 해부를 위한 고정 시설들을 볼 수 있었다.

 

안양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2009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한반도에서 검역 업무가 시작된 지 만 1세기가 지났음을 기리는 행사였다. 하지만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따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이전은 이미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다. 더구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안양 도심 한복판이어서 안양의 여론은 진작부터 이전을 바라고 있었다. 안양에 가축위생사업소가 자리 잡을 당시 이 일대는 한적한 교외였다. 안양 자체도 번화한 도시가 되기 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양1970년대부터 급속도로 인구가 늘고, 심이 팽창했으므로, 가축 관련 시설이 계속유지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안양시는 2010년 국토해양부와 1292억 원에 부지 매입 계약을 맺었다. 이후 한차례 철회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2018

안양시는 부지 매입비용을 완납하고 2019년부터 본격 개발에 착수하기로 했다. 가 발표한 개발계획에 따르면 전체 부지의 절반은 공공편익시설로, 나머지는 첨단 지식산업 클러스터로 개발된다. 공공시설로는 공원과 어린이 복합문화시설, 복합체육센터, 만안구청사 등이 들어올 예정이다.

옛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정문 오른쪽에는 미래의 청사진을 그린 큰 입간판이 서 있다. 예전 국립종자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식물검역부 등이 있었던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건너편에는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역사성을 고려해 일부를 보전해야 한다는 시민사회 일각의 문제 제기도 있었으나, 역시 개발 논리가 승리했다. 결국 이곳에 검역원이 있었다는 역사성은 부조물과 본관 벽체, 위령 시설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열 목숨을 위해 한목숨 내어놓고 떠난 숱한 생명들의 삶은 본관 앞 아름드리 고목들의 몫으로나 남을 듯하다.

 

| 도움말 주신 분 |

김갑순 안양시 제2부흥과 개발사업팀 주무관

정용훈 주민 (국립수의과학검역원 40년 근무)

 

| 참고 자료 |

국립수의과학검역원 편집팀, 국립수의과학검역원 100년사, 2009

안양시사편찬위원회, 안양시사, 2010

최병렬, “옛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안양 미래유산”, 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2017. 2. 18

국립수의과학검역원 74년 안양 시대 마감”, 안양지역시민연대/안양지역정보뱅크, 2016.5.27.

구 농림축산검역본부 안양 부지, 어떻게 활용되나”, 데일리벳, 2018.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