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6]의왕 성라자로마을 톺아보기(2010.05.25)

 

경기문화재단/ 경기그레이트북스 20

경기도 근현대 생활문화 III

양훈도 

 

성 라자로 마을 답사일 : 2010년 5월 25일

 

 

한센병을 묵상한 50년

 

의왕시 오전동 87 성 라자로 마을은 모락산 서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성라자로 마을은 무의탁 한센병 환자의 입원 치료와 치유된 환자의 사회 복귀 및 자활 터전을 마련해 주고자 설립된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구라사업 기관이다. 구라사업은 2000년 공식 병명이 한센병으로 바뀌기 전까지 나병 환자로 불리던 이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일컫는다.

성 라자로 마을 설립은 6·25 직전인 1950년 6월 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메리놀 외방선교회 소속 제오르지오 캐롤 신부가 시흥군 서면 광명리 신기촌(현재의 광명시)에 ‘성 나자로원’을 세웠다. 훗날 주교가 된 캐롤 신부는 한국이름이 안성安成이며, 1981년 향년 75세로 선종할 때까지 한센병 환자를 돕기 위해 애쓴 사제다. 캐롤 신부는 1951년 7월 당시 행정구역으로 화성군 일왕면 오전리(현재의 위치) 임야와 토지 8만여 평을 1,500달러를 주고 매입, ‘성 나자로원’을 이곳으로 옮겼다. 따라서 ‘신기촌 시절’부터 따지면 성 라자로 마을은 정확히 60주년이 되고, 오전리 이전으로부터 기산하면 59주년을 맞는다.

현재 마을은 해발 365m로 그리 높지 않으나 골이 깊은 모락산을 배경으로 잘 꾸며진 휴양지를 연상시킨다. 마을의 중심인 성당을 비롯해 20여 동에 이르는 건물이 정성껏 가꾸어진 나무들과 꽃밭, 곳곳에 놓인 성상聖像 및 조각품, 그리고 모락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과 어우러져 아늑하게 정돈돼 있다. 특히 성당은 교회 건축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건축물 가운데서도 잘 지은 건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주 초기엔 예전 폐결핵 환자 요양소로 쓰던 가옥 4채가 고작이었다고 한다. 가정집과 성당은 건물이 없어 임시로 천막을 치고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처럼 미약하게 시작한 성 라자로 마을이 오늘날 4계절 모두 아름다운 곳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말로 다 하기 어려운 사제들과 환우들의 땀과 눈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병마가 남긴 후유증 때문에 깍지 끼고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릴 수조차 없는 환우들의 끊임없는 기도 또한 지금의 성 라자로 마을을 있게 한 원동력일 터이다.

 

예수성심·성모성심 성당

성 라자로 마을의 구심점이자 1979년 대한민국 국전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한 아름다운 성당의 정식 명칭은 ‘예수성심·성모성심 성당’이다. 이 성당의 역사를 살펴보려면 먼저 이경재李庚宰(알렉산델, 1926~1998) 신부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신부는 2번에 걸쳐 성 라자로 마을 원장을 지내면서 오늘날의 토대를 닦았고, 성당도 이 신부의 구상과 집념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 신부는 우선 1951년 젊은 나이(26세)에 수원본당(현 북수동성당) 보좌신부로 부임했다가 원생들의 요청으로 마을을 방문하여 생전 처음으로 한센병 환자를 대하고 평생을 이들을 위해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이듬해 이 신부는 설립자 캐롤 신부에 이어 초대 원장으로 부임했다가 경험미숙으로 1년여 만에 이곳을 떠났다. 하지만 1970년 제7대 원장으로 다시부임한 이후 선종 때까지 한센인들의 지팡이로 사제로 28년을 바쳤다. 마을 안 기념홍보관에는 이경재 신부가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이 고스란히 진열되어 있다. 이하에서 『성 라자로마을 50년사』의 기록을 중심으로 성당 건립 경위를 살펴본다.

이 신부가 새 성당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해는 1973년이다. 1950년대 초에 지어진 목조 기와집 성당은 너무 낡았고 환우들에게 불편했다. 이 신부는 구라사에서 역사적 인물인 다미안 신부가 하와이 군도 몰로카이 섬에 나환자를 찾아 자원하여 들어간 지 1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려 기념성당을 지을 결심을 했다. 이 신부는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유희준劉熙俊(비오) 교수에게 설계를 부탁했다. 조건은 세 가지였다. 첫째, 나환우와 일반이 함께 사용할 성당임을 고려할 것, 둘째, 강당 같은

설계를 하지 말 것, 셋째, 마을 지형에 맞는 독창적인 설계를 할 것. 그리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떠나가는 배 형상을 연상시키는 성당 설계도가 완성되었다.

문제는 7만 달러로 추산된 건축비였다. 이 신부는 설계도와 투시도를 들고 로마로, 독일 프라이부르크로 성금을 모으기 위해 다녔으나 허사였다. 이 신부는 일본으로 후지사와 시의 성심수녀회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230만 엔을 후원받을 수 있었다. 일단 그 돈으로 기초공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공사비 부족으로 1년간 공사가 중단되었다. 다시 백방으로 모금을 호소한 이 신부 덕분에 일본 나가사키의 순심성모회 수녀원에서 170만 엔을 보내왔다. 마침내 착공 2년5개월만인 1975년 10월 21일 김남수 주교의 주례로 성당 봉헌식을 올릴 수 있었다.

성당 입구는 한센인을 위한 입구가 따로 있고, 한센인을 위한 좌석은 제대(祭臺)를 내려다보는 위쪽에 설치되어 있다. 이는 한센인들이 이 세상에서는 비록 가장 낮은 자리에 있지만, 천국에서는 윗자리를 차지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띤다. 유희준 교수는 이 성당의 설계상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성 라자로 성당은 바위가 주를 이루는 경사진 땅을 절토·성토 작업을 최소화하면서 대지를 활용하여 1/3의 건강한 사람과 2/3의 나환우가 함께 미사를 올릴 수 있도록 성당 내부가 구성되어 있다. 대지형태에 순응하여 건축기능적 합리성을 충족

시키면서, 그리고 건강한 사람과 나환우의 신체적 분리를 이루면서 정신적으로는 나환우를 위계적으로 올려주고 제대로 향하도록 초점감을 형성하는 공간 구성을 이루는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또한 빛의 조도율과 함께 낮은곳으로부터 완만한 곡면형 천장면을 따라 올라가는 천장높이의 변화는 부채형태의 평면구성과 더불어 깊은 신심을 위한 종교적 정점감을 자아내고 있는 건물이다.”(『성 라자로 마을 50년사』, 209쪽에서 재인용.)

성당 내부의 장식과 각종 성물의 디자인과 제작에도 서울대 미대 학장 김세중 교수를 주축으로 남용우, 민철홍, 권순형, 장선백, 김교만 교수 등 쟁쟁한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이 조형한 각종 성물과 스테인드글라스 벽화 14처(‘십자가의 길’)등이 성당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을 함께 빛내주고 있다. 성물 제작비는 일본 미국의 수녀회와 라자로 돕기회, 그리고 의왕농장 주민들과 환우들의 성금으로 조달했다. 종탑의 경우 일본 순심성모회의 기부금으로 건립되었다. 종(무게 300㎏, 길이 76㎝)은 재미교포들의 헌금 4,000달러로 독일에서 제작하여 1978년 9월 처음으로 타종하였다.

 

한편 성당 외부 조경 공사비와 성당 앞 90m 도로포장 공사비는 일본 고베시의 어느 성당과 나라 현의 도키와 쇼오겐 스님이 각각 기증하였다. 이처럼 성라자로 마을은 국제적인 지원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더욱이 가톨릭뿐만 아니라 타국, 타 종교 신도들의 지원도 적지 않았다. 이경재 신부는 이 성당을 다미안신부 및 일본의 유명한 구라사업가였던 이와시다 쇼오이치 신부 기념성당으로 봉헌했다. 1980년 12월에는 김세중 교수가 조각한 두 신부의 흉상이 건립되었다.

“이 오르간은 마을 역사와 같습니다.” 이범석 성 라자로 마을 행정부장은 200평가량 되는 성당 내 한구석에 놓인 작은 파이프오르간이 50년이 넘었다고 했다. 이 부장은 환우석 앞자리에 놓인 종 모양의 미사용구도 보여주었다. 시각장애를 가진 환우들에게 소리로 미사 순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도구다. “현재 환우는 60분 정도 계십니다. 11년 전 제가 근무를 시작했을 무렵엔 105분이었지요. 가장 많을 때는 150분가량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분들이 이젠 연세도 많이 드셨고, 병마로 인해 중복장애를 가지신 분이 많습니다.” 손을 깍지 끼어 기도를 올리기도 어렵고 앞이 보이지 않아도 함께 미사를 올리도록 세심하게 준비한 성당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주는 도구가 바로 이 종이라고 할 수 있다. 성당의 미사는 평일엔 오전 7시, 주일엔 오전 10시에 올려진다

 

‘정결의 집’과 각종 성상·조각

성 라자로 마을에 있는 숙소와 편의시설은 모두 이름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1971년 일본 도쿄 대교구 내 여섯 성당에서 모금한 300만 엔으로 지어진 숙소는 ‘반석의 집’, 미국 휴스턴의 성 빈센트 성당에서 기탁한 성금 6,000달러를 기반으로 지어진 숙소는 ‘샛별의 집’ 하는 식이라 부른다. 이 밖에도 ‘토마스의 집’ ‘고마움의 집’ ‘기쁨의 집’ ‘모둠의 집’ 등등 거의 30개에 이르는 집에 각기 고유한 명칭이 붙어 있다. 마치 별장과 같이 지어진 이들 건물은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개보수를 하여 예전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정결의 집’은 70년대 초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 집은 육영수 여사가 보낸 성금 450만 원으로 지어졌다. 육 여사는 성 라자로 마을 환우들이 이발과 목욕 한 번 제대로 해보는 게 소원이라는 신문 기사를 읽고 건축비를 지원했다고 한다. 단층(건평 12평)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이경재 신부가 제7대 원장으로 재 부임하여 지은 첫 현대식 건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정결의집’은 1971년 10월 낙성식을 보았다.

‘정결의 집’은 앞 칸과 뒤 칸으로 나뉘어 있다. 앞 칸은 뒤 칸을 세 도막으로 나누어 가운데 도막과 같은 너비이고, 앞뒤 칸이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아래쪽에서 본 ‘ㅜ’자 형태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오랫동안 이발소와 목욕탕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가르멜 재속회 사무실’(재속회는 평신도로서 수도자의 삶을 사는 신자들의 모임)으로 쓰인다.

마을의 상징적 조형물인 마을 입구 어귀 아치형 정문은 ‘정결의 집’보다 몇달 먼저 세워졌다. 1971년 7월 23일 낙성된 정문은 원래 경수국도변의 마을 어귀에 세워져 있다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정문 옆에는 역시 김세중 교수가 조각한 ‘새삶의 예수상’이 있다. 이보다 앞서 6월30일에는 TV 탤런트 안은숙 씨와 영화배우 윤정희 씨가 기탁한 성금으로 마을 숲속에 성모 마리아상과 성녀 데레사상이 건립되었다.

이처럼 마을 곳곳에는 단순한 성상의 수준을 넘어 예술작품인 성상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서도 걸작을 꼽는다면 종합교육관 겸 강당의 역할을 하는 ‘라자로의 집’(1981년 준공) 맞은편 스위니 신부 묘석 옆에 있는 피에타상이다. 피에타상은 마을 설립 30주년을 기념해 1980년 김세중 교수가 만든 작품이다. 이 피에타는 김 교수가 세상에 남긴 명작 가운데 하나로 유명하다. 피에타상의 봉헌자는 안광신-이택영 부부인데, 대학생 시절부터 라자로 돕기회원이었던 이택영이 결혼 후 첫아들을 얻고 그 기념으로 이경재 신부에게 기증한 금반지 10돈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이 부부는 “나환자들의 힘겨운 고통을 믿음으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피에타상을 바친다”는 말을 남겼다.

 

국경 없는 도움과 라자로 돕기회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옆에 큼지막하게 이런 글귀가 붙어있다.

“머지않아 우리들의 사랑의 씨앗은 싹 트리라. SOONER OR LATER THE SEEDS OF OURLOVE WILL GROW.” 설립자 캐롤 주교와 그 뒤를 이은 이경재 신부가 뿌린 사랑의 씨앗은 오늘날 싹이 텄을 뿐만 아니라 무성한 나무로 자라난 듯 보인다.

현재 조욱현 토마스 원장신부와 신부, 수녀, 평신도 등 35명의 직원이 평균 연령 65세인 60여 분의 환우를 돌본다. 환우 가운데는 103세 할머니를 포함해 초창기부터 이곳에서 사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성 라자로 마을이 언제나 순탄한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집을 하나 짓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면서 기금을 모아야 했던 시절도 있었고, 음성 환우 자녀를 위해 설립한 초등학교 분교 문제로 인근 주민들과 마찰이 빚어졌던 시절도 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항상 뒤에서 받쳐준 버팀목이 ‘라자로 후원회’(LAZARUS SPONSOR ASSOCIATION)이다.

1970년 12월 발족한 ‘라자로 돕기회’는 40성상을 지나면서 현재 국내외 회원만 2만여 명에 이른다. 역대회장은 초대 류홍렬 씨를 위시해 엄익채, 김성진, 봉두완, 박찬종, 정창현 씨 등이 맡았다. ‘라자로 돕기회’가 주최하는 연말 행사인 ‘그대 있

음에’는 1975년 처음 시작되어 지금까지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성 라자로 마을의 노래 ‘사랑의 샘터’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랑에 주린 당신인가 싶어 내 사랑한 아름 품고 왔더니/ 그대 풍성한 마음이 오히려 내 가슴 채워주네.” 송창식의 노래로도 유명한 ‘그대 있음에’의 가사와도 상통하는 노랫말이다.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 가사에 담긴 노랫말을 실천에 옮겨 현실화시킨 곳이 ‘성 라자로 마을’이다. 우리 근현대사의 짙은 그늘 속에 가려져 있던 이들의 손을 잡고, 오해와 편견의 벽을 부수기 위해 노력해온 ‘성 라자로 마을’ 의 정신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마을 전체를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해도 좋을 듯하다.

 

| 도움말 주신 분 |

이범석 성 라자로 마을 행정부장

| 참고자료 | 서상요 엮음, 『성 라자로 마을 50년사』,

                   성 라자로 마을, 2000. 경기도,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보고서』, 2004.

                   http://www.lazalus.or.kr 성 라자로 마을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