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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6]1903년 창립 군포 둔대교회 톺아보기(2010.03.16)

안양똑딱이 2024. 1. 16. 07:55

둔대교회(1970년대)

 

경기문화재단/ 경기그레이트북스 18

경기도 근현대 생활문화 I

양훈도 

 

군포 둔대교회 답사일 : 2010316

 

 

“100년 교회둔대교회

둔대교회는 찾기 쉽지 않다. 군포시 둔대동 434번지라는 주소만 가지고는 위치를 짐작하기 어렵다. 반월저수지를 끼고 서쪽으로 돌아가면 나오는 작은 마을 둔대교회 원 예배당과 현재 예배장소인 가건물에 도착해서도 잠시 두리번거려야 교회 방향을 가리키는 작은 팻말을 찾을 수 있다. 거기서100m쯤 올라가야 둔대교회(현 교회명은 둔대케네시스교회)가 나온다이 일대에서 유서 깊은 박 씨네 고택 바로 위에 자리잡은 작은 예배당이 군포 사람들이 “100년 교회라고 부르는 둔대교회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소속인 둔대케네시스교회 주보에는 교회 창립일이 190331일로 돼 있다. 교회 설립 107주년을 넘긴 셈이다.

여기서 예배를 드린 걸로 따지면 그보다도 몇 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겁니다. 하지만 흙담집 예배당이 세워진 건 그 무렵이지요. 현재 남아 있는 예배당은 85~6년 전에 증개축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둔대케네시스교회 길동무강인태 목사의 말이다. 이 교회에서는 담임목사라 하지 않고 길동무라고 한다. 강 목사의 말을 입증해 줄 문건이 남아 있다. 이 교회 1975년 당회록이다.

 

교회 역사는 당회원들이 모두 있는 곳에서 김금준 명예 집사님이 이야기함으73년 된 것이 확인됨.’ 당시 당회장 김광원 전도사의 도장까지 찍힌 회의록이다. 1975년으로부터 73년 전이면 1903년경이다. 따라서 이때부터 교회 창립일을 190331일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근대문화유산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군포시로서는 소중한 예배당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군포케네시스교회 부지는 꽤 넓다. 1,370가량 된다. 이 부지 안에 교육관 겸용인 교회 사택, 임시 건물로 지어진 예배당, 그리고 강 목사가 “90전에 지어졌다고 한 작은 예배당과 수십 년은 족히 되었을 종탑과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김금준 집사님의 증언도 그렇고, 김 집사님 따님이나 이 마을에 사시는 90대 노인분의 증언도 일치합니다.”

강 목사는 살아계신 분들의 증언을 녹취해 놓았다고 밝혔다. 90년 된 옛 예배당은 40규모의 한옥이다. “창문과 내부는 7~8년 전에 고쳤다고 해요. 하지만 골조는 예전 그대로입니다. 내부도 손을 대지 않았더라면 역사를 보존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3년 전 의왕시에 있던 케노시스교회와 이곳 둔대교회를 통합하면서 길동무를 맡은 강 목사는 유서 깊은 둔대교회 예배당이 옛 모습을 잃은 점을 안타까워했다. 강 목사의 말대로 예배당 내부는 천장에 반자를 쳐서 예전 서까래나 상량 기록 등을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처마나 벽을 살펴보면 이 예배당이 상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골조의 보전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현재도 이 예배당은 수요예배나 새벽기도 때 사용한다.

 

교회 종탑은 세워진 연대를 정확히 알 자료가 없다. 종탑 안의 종은 없어졌다. 교회 앞마당 은행나무는 수령이 60년 되었다고 한다. 둔대교회에는 일제시대 때부터 썼다고 알려진 손종(hand bell)이 유일한 유물로 남아 있다. 예배 시간이나 공부시간을 알리기 위해 들고 다니며 울리던 종이다. 종소리는 여전히 청아하다. 강 목사는 이 종이 우리 교회 보물 1라고 했다.

 

선교사가 짓지 않은 한옥 교회

군포, 안산 일대에서 우리 교회보다 오래된 교회는 소래 무지내교회 등 1~2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100년 이상 된 교회는 거의가 선교사들이 와서 지은 것들인데, 우리 교회는 자생적으로 지어진 한옥 교회입니다.”

 

강인태 목사가 관계자 증언 등을 종합한 바에 따르면 둔대교회가 세워진 역사는 다음과 같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이 일대에서 가장 부자는 교회 아래 아직도 남아 있는 고택의 주인 박경춘 씨였다. 박 씨는 “2천석꾼으로서 근동에 많은 농토를 가지고 있었다. 박 씨는 아들 용덕 씨에게 신교육을 시키기로 하고 배제학당출신 황 선생을 서울에서 초빙해왔다. 황 선생은 당시에 이미 감리교인이었던듯하다. 그 영향으로 용덕 씨는 황 선생과 현재 고택의 자기 방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를 알게 된 박경춘 씨가 집 뒤 산기슭에 작은 토담을 지어주고 아예 거기서 예배를 올리라고 했다. 그 토담 예배당 자리가 현재 남아 있는 그 예배당 자리다.

앞서 교회 설립일을 증언했다고 언급한 김금준 씨는 박경춘 씨의 손자며느리다. 김 씨가 당시 증언한 바에 따르면 1903년 본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또 김 씨의 딸인 박상애 씨도 어머니께 집과 교회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는 말을 늘상 듣고 자랐다는 것이다. 박상애 씨는 현재 고택의 주인인 박상호 씨의 손위 누이다.

 

경술국치 이후 둔대교회는 몇 차례 곤욕을 치렀다. 우선 3.1운동 당시 일본 순사들이 교회 문에 못질을 했다고 한다. 순사들이 교회에 불을 질렀으나 그을리기만 하고 불이 꺼졌다는 증언도 있다. 하지만 두 증언 모두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현 교회가 85~6년 전에 증개축되었다면 3.1운동 이후이기 때문이다. 러나 둔대교회가 일제로부터 주목을 받고 박해를 받았을 가능성은 높다. 둔대교회는 최용신이 활동했던 안산 샘골교회와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둔대교회는 샘골교회의 언니 교회 격이다. 둔대교회가 샘골교회를 설립한 것은 아니지만, 둔대교회를 세운 주인공에 해당하는 박용덕 씨가 샘골교회를 지을 당시 샘골교회 부지 1,050평을 기증했다고 한다. 이는 샘골교회와 인연이 깊은 독립운동가 염석주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최용신 역시 둔대교회를 여러 번 다녀갔다. 오늘날에는 안산과 군포로 나뉘어 있지만, 당시엔 걸어서 다니는 거리였다. 두 교회는 연합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연합집회를 가지기도 했다.

 

따라서 둔대교회도 일제시대 계몽운동의 산실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다. 교회 앞마당 은행나무도 샘골교회 김우경 장로가 60년 전에 심은것이다. 김 장로는 두 그루를 구해 한 그루는 이곳에, 한 그루는 샘골교회 마당에 심었다. 교회 설립일이 명확지 않지만, 31일로 정한 이유도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교회라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시급한 교회사 정리

둔대교회는 그렇게 10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다. 6.25 때 반월국민학교가 소실되자 교회 예배당이 임시 교사校舍 구실을 하기도 했고, 6.25 후 반월저수지가 조성될 때는 마을이 수몰되는 것도 지켜보았다. 교회가 자리잡은 둔터마을은 반월저수지가 생기기 전까지는 제법 큰 마을이었으나, 주민이 흩어졌다. 그러나 둔대교회는 언제나 작은 교회로서 이곳 신자들의 정신적 안식처 역할을 해왔다. 신도가 가장 많았을 때인 1960~70년에도 둔대교회 신자40~50명 정도였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면서 연세 많은 신도 7~8만 남기도 했다.

 

둔대교회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감리교 군포 지방회에서 100년도 넘은 교회를 돌봐야 한다는 의논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의왕 케노시스 교회와 둔대교회를 통합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지요.”

 

사실 둔대교회가 “100교회라는 별칭을 얻은 것은 통합 이후 강 목사의 노력이 컸다. 강 목사는 부임 이후 자료를 수집하고 노인들 증언을 녹음하는 작업을 틈틈이 했다고 한다. 100년사를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 둔대케노시스교회는 재적교인 150명에 출석교인이 100명 가까이 된다. 강 목사는 옛 교회 복원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작은 교회 입장에서 100년사 발간이나 복원 사업 자체가 힘에 겨운 듯하다.

 

둔대교회 100년사와 옛 예배당의 보존 복원은 교회 자체의 일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한 세기 이상 지속된 교회사는 그 자체로 중요한 향토사이다. 자생적인 한옥 예배당도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초기 한국교회의 건축 양식이므로 소중히 보존하고 연구해 보아야 한다. 게다가 둔대교회가 식민지 시기에 겪은 고난은 기독교 독립운동의 일부로서 재조명될 가치가 있다. 특히 샘골교회와 둔대교회 간의 인연은 더 소상히 밝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예배당의 설립 연대를 전문적으로 고증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와 함께 강 목사가 수집한 자료와 녹취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교회와 관련된 인물과 지역주민의 증언을 더 폭넓게 채록하여야 할 것이다.

고령자가 많으므로 이 작업은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질수록 좋다.

 

| 도움말 주신 분 |

강인태 둔대교회 목사

윤완수 둔대교회 관리부장

문희경 군포문화원 사무국장

 

| 참고자료 |

둔대교회 1975년 당회록

 

군대교회 사택(197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