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공공의 적'이 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2005/11/22 시민연대]안양민예총 지부장
[2005/11/22 시민연대]안양민예총 지부장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 시비걸기2
‘공공의 적’이 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는 과연 ‘공공’(public, 公共)이라는 이름에 합당한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전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철저히 ‘반 공공적’(反 公共的)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미 필자가 밥벌어 먹고 있는 인천일보 11월15일자 데스크칼럼을 통해 지적했다.
칼럼을 통해 채 다 하지 못한 얘기 몇 가지 덧붙인다면,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공공’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보는 것이다. 지역의 공중(公衆) 또는 공공 영역과의 최소한의 컨센서스(consensus)나 소통(communication)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오히려 지역의 문화예술계는 '공공‘의 이름을 단 이 낯선 문화예술프로젝트 영역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됐다. 이는 확실히 ’반 공공적‘이며, ’반 문화적‘이기까지 하다고 보는 것이다.
#. 돈, 터 다 대주고 구경꾼으로!
이번에는 공공예술이 담고 있는 의미 측면에서 보겠다.
30억원 안팎이 부어진 이 프로젝트는 안양유원지 6만여 평 부지에 나라 안팎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작가들의 작품 50-60점을 깔아놓은 것으로 요약된다.
말이 공공이지, 정작 ‘공공’의 딱지를 붙일 만한 것은 장소와 관객뿐이다. 안양유원지라는 공공장소에 이른바 ‘예술품’들을 깔아놓았으니 안양시민은 ‘부디 왕림하셔서 구경들 하시라’는 거다.
게다가 그게 어디 보통 예술품인가. 비록 안양과는 이렇다 할 인연이 없을지라도 나라 안팎의 이름께나 날리는 저명하신 분들의 작품이다. 그런 작품들을 구경하는 데 혈세 수 십억 정도 쓰는 건 결코 비싼 게 아니란다. 오히려 싼 값에 ‘모실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비록 작품들이 안양과 별 인연도 없이 자본의 힘으로 세계 이곳저곳에서 끌어왔기로서니 요즘같은 ‘글로벌 시대’에 그걸 문제 삼는 것은 좀 쫀쫀한 것 아니냐는 반론은 제법 그럴 듯 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공중(公衆)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쉽게 접근하고(public access) 감상(public use)할 수 있다면 그 역시 공공예술이 가진 함의의 한 부분일 게다. 돈 대주고 터 대주고 구경꾼으로 들러리 서는 심정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아주 틀려먹은 건 아닐 것이다.
#. 따로국밥이 돼버린 공공예술
문제는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 있다고 본다.
과문한 탓에 예술작품이란 텍스트(text)는 그 배경 또는 무대(context)와의 교감이 풍요로울수록 건강한 생명력을 획득한다는 설을 굳게 믿고 있다. 지역사회 공중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공공예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본다.
특정 지역의 공공의 공간을 차지하는 이른바 ‘공공예술 작품’들이 해당 지역이 갖고 있는 그 지역만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그저 자본의 위력에 이끌려 설치돼있다면 이는 확실히 코미디다. 소말리아의 한 부락에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공공예술의 이름으로 설치했다면 그건 코미디 수준을 넘어 주민에 대한 조롱이 된다. 물론 그 부락의 귀족들이나 부호들에게는 고상한 예술작품이 되겠지만 말이다.
물론 안양은 소말리아와 다르지만 본질마저 다르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안양은 안양만이 갖고 있는 도시의 정체성을 갖고 있고, 안양만의 나름대로의 역사성을 갖고 있다.
특히 지금의 공공예술프로젝트가 펼쳐지는 안양유원지는 안양이라는 도시 역사의 시원 또는 발원지쯤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안양이라는 도시이름이 그 곳에서 비롯됐고, 1천여년 전부터 행복하고 근심걱정 없는 세상을 뜻하는 ‘안양세계’를 염원하던 사찰들이 모여있던 곳이다.
해서, 안양에 뿌리내리고 살며 안양의 도시 정체성을 고민하는 허다한 이들은 어떻게든 안양유원지 일대가 안고 있는 풍요로운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오늘에 되살릴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안양유원지 곳곳에 널려있는 중요한 문화재들이 그저 허접스런 골동품들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것들이 오늘 이 시대에 건내는 메시지를 감지하는 것은 이 시대의 영혼을 살찌우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일대에서 벌어지는 ‘공공’이란 이름의 ‘예술적 행위’들은 마땅히 이를 담아내려는 최소한도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역사와 상황이 던지는 메시지를 예술품에 담아내려는 시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세계적 작가’라는 간판을 앞세워, 도대체 어떤 사연이 깃든 어느 장소에 세워지는 것인 알지도 못한 채 덜렁 설계도면만을 보내는 작가들의 태도도 마땅찮고, 그렇게 해서라도 ‘참여시켜야 한다’는 발상도 뭐(?) 같긴 마찬가지다.
#. 유원지에 설치된 흥미로운 놀이 거리들
프로젝트를 위해 땀흘린 사람들에게 모독이라고 들릴 수 있겠지만 유원지 곳곳에 널린 작품들은 그저 낯설고 신기한 ‘유원지 속 놀이기구’들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름대로 문화적 내공을 제법 갖춘 사람들을 대동해 두 차례 관찰한 결과 그렇다.
기왕지사 ‘먹고 마시고 춤추는 곳으로서의 유원지’ 본연의 역할에 걸맞게 꾸밀 요량이라면, 좀 더 싼 값에 좀 더 흥미로운 놀이 기구나 볼 거리, 탈 거리 등을 장만할 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물론 관계자들이 이 글을 본다면 ‘무식하기 짝이 없는 놈’이라는 욕설이 터져나올 법 하다. 하지만 이른바 ‘작품’ 주변에서 만난 허다한 사람들이 느끼는 정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게 현실이다.
공중의 영역에 머물거나 지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눈높이가 그럴진데, 고매하고 높은 식견을 가진 소수가 제아무리 ‘세계 최고 거장’이니 ‘뛰어나고 탁월한 작품’ 어쩌고 해봐야 그들만의 생각일 뿐이다.
솔직히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건가?
도무지 해독이 불가능한 이른바 작품들을 보물찾기 식으로 깔아놓고는 ‘이건 볼프강 어쩌구의 작품이고, 저건 파브리스 거시기의 작품이고 ...’하는 것이 안양유원지에 친구들과 모처럼 한 잔 하러온 안양*동 분식집 주인 허석구씨에게 어떤 의미일 수 있는 것인가?
느닷없이 드러선 ‘요상한 물건’들 덕분에 ‘유원지, 많이 좋아졌다’지만, 여기에 돈 30억원 이상 박았다는 대목에선 “**넘들, 선거할라고 돈 지랄하고 있다”는 게 허씨의 “무식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며, 필자 역시 딱 그 수준을 넘지 못한다.
때문에, 무식한 중생들을 다 일깨워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수준 높은 사람들끼리 어디 조용한 곳에서 십시일반 제 돈 내고 한다면 공연힌 시빗거리는 않되지 않나 싶다.
#. 어쨌거나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상당수 작품들은 여전히 공사 중이긴 하지만. 지난해 8월 기획단이 꾸려진지 15개월 만의 일이다. 실로 박진감넘치는 추진력이 아닐 수 없다.
이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할 터, 안양시와 무슨 위원회 등은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한 쪽으로는 ‘참여’를 보장 또는 권장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는 하다)
물론 이를 주도하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일단 스스로 확신이 들면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않으려는 자치단체장의 독선 - 이 마저도 ‘소신’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미화되고 있는 판국이다 - 은 이 해괴한 프로젝트의 최대 자양분이 될 것이다.
프로젝트는 앞으로 이를 자양분으로 하여, 그 영역을 안양 전역으로 넓힐 생각이라고 한다. 저명하고 수준 높은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안양시민 누구나 눈만 뜨면 만날 수 있는 그 날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제발 부탁컨데, 난 그런 날이 오길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다 세금을 제 돈 쓰듯 하지 말길 바란다.
아직도 여전히 동네 가난한 화가의 그림 한 쪽, 조각가의 작품 한 점 제대로 공공의 영역에서 만날 수 없는 터, 언감생심 그런 날 속히 오게 하겠다는 꿈, 제발 깨길 바란다.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군포의왕지부 지부장 송경호
‘공공의 적’이 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는 과연 ‘공공’(public, 公共)이라는 이름에 합당한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전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철저히 ‘반 공공적’(反 公共的)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미 필자가 밥벌어 먹고 있는 인천일보 11월15일자 데스크칼럼을 통해 지적했다.
칼럼을 통해 채 다 하지 못한 얘기 몇 가지 덧붙인다면,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공공’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보는 것이다. 지역의 공중(公衆) 또는 공공 영역과의 최소한의 컨센서스(consensus)나 소통(communication)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오히려 지역의 문화예술계는 '공공‘의 이름을 단 이 낯선 문화예술프로젝트 영역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됐다. 이는 확실히 ’반 공공적‘이며, ’반 문화적‘이기까지 하다고 보는 것이다.
#. 돈, 터 다 대주고 구경꾼으로!
이번에는 공공예술이 담고 있는 의미 측면에서 보겠다.
30억원 안팎이 부어진 이 프로젝트는 안양유원지 6만여 평 부지에 나라 안팎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작가들의 작품 50-60점을 깔아놓은 것으로 요약된다.
말이 공공이지, 정작 ‘공공’의 딱지를 붙일 만한 것은 장소와 관객뿐이다. 안양유원지라는 공공장소에 이른바 ‘예술품’들을 깔아놓았으니 안양시민은 ‘부디 왕림하셔서 구경들 하시라’는 거다.
게다가 그게 어디 보통 예술품인가. 비록 안양과는 이렇다 할 인연이 없을지라도 나라 안팎의 이름께나 날리는 저명하신 분들의 작품이다. 그런 작품들을 구경하는 데 혈세 수 십억 정도 쓰는 건 결코 비싼 게 아니란다. 오히려 싼 값에 ‘모실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비록 작품들이 안양과 별 인연도 없이 자본의 힘으로 세계 이곳저곳에서 끌어왔기로서니 요즘같은 ‘글로벌 시대’에 그걸 문제 삼는 것은 좀 쫀쫀한 것 아니냐는 반론은 제법 그럴 듯 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공중(公衆)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쉽게 접근하고(public access) 감상(public use)할 수 있다면 그 역시 공공예술이 가진 함의의 한 부분일 게다. 돈 대주고 터 대주고 구경꾼으로 들러리 서는 심정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아주 틀려먹은 건 아닐 것이다.
#. 따로국밥이 돼버린 공공예술
문제는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 있다고 본다.
과문한 탓에 예술작품이란 텍스트(text)는 그 배경 또는 무대(context)와의 교감이 풍요로울수록 건강한 생명력을 획득한다는 설을 굳게 믿고 있다. 지역사회 공중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공공예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본다.
특정 지역의 공공의 공간을 차지하는 이른바 ‘공공예술 작품’들이 해당 지역이 갖고 있는 그 지역만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그저 자본의 위력에 이끌려 설치돼있다면 이는 확실히 코미디다. 소말리아의 한 부락에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공공예술의 이름으로 설치했다면 그건 코미디 수준을 넘어 주민에 대한 조롱이 된다. 물론 그 부락의 귀족들이나 부호들에게는 고상한 예술작품이 되겠지만 말이다.
물론 안양은 소말리아와 다르지만 본질마저 다르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안양은 안양만이 갖고 있는 도시의 정체성을 갖고 있고, 안양만의 나름대로의 역사성을 갖고 있다.
특히 지금의 공공예술프로젝트가 펼쳐지는 안양유원지는 안양이라는 도시 역사의 시원 또는 발원지쯤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안양이라는 도시이름이 그 곳에서 비롯됐고, 1천여년 전부터 행복하고 근심걱정 없는 세상을 뜻하는 ‘안양세계’를 염원하던 사찰들이 모여있던 곳이다.
해서, 안양에 뿌리내리고 살며 안양의 도시 정체성을 고민하는 허다한 이들은 어떻게든 안양유원지 일대가 안고 있는 풍요로운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오늘에 되살릴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안양유원지 곳곳에 널려있는 중요한 문화재들이 그저 허접스런 골동품들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것들이 오늘 이 시대에 건내는 메시지를 감지하는 것은 이 시대의 영혼을 살찌우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일대에서 벌어지는 ‘공공’이란 이름의 ‘예술적 행위’들은 마땅히 이를 담아내려는 최소한도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역사와 상황이 던지는 메시지를 예술품에 담아내려는 시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세계적 작가’라는 간판을 앞세워, 도대체 어떤 사연이 깃든 어느 장소에 세워지는 것인 알지도 못한 채 덜렁 설계도면만을 보내는 작가들의 태도도 마땅찮고, 그렇게 해서라도 ‘참여시켜야 한다’는 발상도 뭐(?) 같긴 마찬가지다.
#. 유원지에 설치된 흥미로운 놀이 거리들
프로젝트를 위해 땀흘린 사람들에게 모독이라고 들릴 수 있겠지만 유원지 곳곳에 널린 작품들은 그저 낯설고 신기한 ‘유원지 속 놀이기구’들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름대로 문화적 내공을 제법 갖춘 사람들을 대동해 두 차례 관찰한 결과 그렇다.
기왕지사 ‘먹고 마시고 춤추는 곳으로서의 유원지’ 본연의 역할에 걸맞게 꾸밀 요량이라면, 좀 더 싼 값에 좀 더 흥미로운 놀이 기구나 볼 거리, 탈 거리 등을 장만할 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물론 관계자들이 이 글을 본다면 ‘무식하기 짝이 없는 놈’이라는 욕설이 터져나올 법 하다. 하지만 이른바 ‘작품’ 주변에서 만난 허다한 사람들이 느끼는 정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게 현실이다.
공중의 영역에 머물거나 지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눈높이가 그럴진데, 고매하고 높은 식견을 가진 소수가 제아무리 ‘세계 최고 거장’이니 ‘뛰어나고 탁월한 작품’ 어쩌고 해봐야 그들만의 생각일 뿐이다.
솔직히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건가?
도무지 해독이 불가능한 이른바 작품들을 보물찾기 식으로 깔아놓고는 ‘이건 볼프강 어쩌구의 작품이고, 저건 파브리스 거시기의 작품이고 ...’하는 것이 안양유원지에 친구들과 모처럼 한 잔 하러온 안양*동 분식집 주인 허석구씨에게 어떤 의미일 수 있는 것인가?
느닷없이 드러선 ‘요상한 물건’들 덕분에 ‘유원지, 많이 좋아졌다’지만, 여기에 돈 30억원 이상 박았다는 대목에선 “**넘들, 선거할라고 돈 지랄하고 있다”는 게 허씨의 “무식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며, 필자 역시 딱 그 수준을 넘지 못한다.
때문에, 무식한 중생들을 다 일깨워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수준 높은 사람들끼리 어디 조용한 곳에서 십시일반 제 돈 내고 한다면 공연힌 시빗거리는 않되지 않나 싶다.
#. 어쨌거나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상당수 작품들은 여전히 공사 중이긴 하지만. 지난해 8월 기획단이 꾸려진지 15개월 만의 일이다. 실로 박진감넘치는 추진력이 아닐 수 없다.
이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할 터, 안양시와 무슨 위원회 등은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한 쪽으로는 ‘참여’를 보장 또는 권장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는 하다)
물론 이를 주도하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일단 스스로 확신이 들면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않으려는 자치단체장의 독선 - 이 마저도 ‘소신’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미화되고 있는 판국이다 - 은 이 해괴한 프로젝트의 최대 자양분이 될 것이다.
프로젝트는 앞으로 이를 자양분으로 하여, 그 영역을 안양 전역으로 넓힐 생각이라고 한다. 저명하고 수준 높은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안양시민 누구나 눈만 뜨면 만날 수 있는 그 날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제발 부탁컨데, 난 그런 날이 오길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다 세금을 제 돈 쓰듯 하지 말길 바란다.
아직도 여전히 동네 가난한 화가의 그림 한 쪽, 조각가의 작품 한 점 제대로 공공의 영역에서 만날 수 없는 터, 언감생심 그런 날 속히 오게 하겠다는 꿈, 제발 깨길 바란다.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군포의왕지부 지부장 송경호
2005-11-22 17: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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