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이종만]우리는 밤거리에서 왜 떨고 서 있는가

안양똑딱이 2016. 6. 30. 15:11
[이종만]우리는 밤거리에서 왜 떨고 서 있는가

[2005/11/25]경기환경운동연합 대표
우리는 밤거리에서 왜 떨고 서 있는가

11월 막바지. 아직 겨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을이랄 수도 없다. 거리의 낙엽을 몰아가는 찬 밤바람이 뺨을 때리면서 몸이 떨려온다. 집에서 아래내의를 껴입고 겨울파커를 걸치고 나왔지만 손이 시리고 두 다리가 후들거린다. 나이 60이 넘어서인가.

시민단체 회원들인 우리 셋은 구 가축위생시험소 앞의 육교를 건너 명학역으로 통하는 골목에 들어섰다. 이곳이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서 우리는 보다 많은 전단을 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상품을 팔거나 광고하는 게 아니고 ‘시민공원 조성’을 홍보하는 전단지인데도 오가는 시민들이 잘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춥다.

낮에는 모 치과 원장이 같은 활동을 했다는 소식이다. 그 분은 밀려드는 환자 치료하랴 지역 언론 살피랴… 예사 바쁜 분이 아닌데…. 그렇긴 해도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조금씩이나마 진전되고 있다면 좀 위안이 될 텐데 벌써 5년 넘게 헛돌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꽤나 숨차게 달려왔다. 새로 개발된 동안구의 평촌지역에는 중앙공원 자유공원 등 나름대로 널찍한 도심공원이 갖추어져 있는데 수백년동안 안양의 본 바닥 노릇을 해 온 만안구에는 제대로 된 공원 하나 없는 것을 많은 시민들이 안타까워해 오던 차에 만안구에 있던 경기도 소유의 가축위생시험소가 수원으로 이전하게 되어, 이곳을 시민공원으로 만들자는 목적으로 ‘만안구 도심공원 조성 범시민기구’(이하 ‘범시민기구’)가 발족했다. 여기에는 환경연합 경실련 YMCA 등 안양지역의 26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했다.

‘범시민기구’는 곧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시작, 4,384명의 서명을 받아, 당시의 대통령과 경기지사에게 서명명단과 공원조성 탄원서를 제출했다(2000.11). 또 신중대 시장에게 ‘공원조성’이라는 선거공약 이행촉구(2000.9), 도지사에게 공원조성 건의서 전달(2001.3) 등이 있었다. 마침내 도지사 면담에서 공원화 약속을 받아냈다(2001.11).

우리는 믿었다. 도의 최고 책임자(임창열 前 경기도지사)가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약속한 것이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좋았으면 우리가 도지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했을까.

우린 신이 났다. 도심공원 전체 부지에 대청소를 실시했고(2002.3) 야생화를 정성껏 식재했으며(2002.4) 매년(2003~4) 봄마다 멋진 시민 공원을 꿈꾸며 열심히 청소했다. 그리고 부지내 몇개의 건물 철거를 도로부터 승인 받았으며(2004.6), 현재의 손 지사도 시민단체 대표들과의 면담에서 도심공원 조성약속을 확인했다(2005.4).

그런데 이게 왠 날벼락인가. 경기도로부터 약속파기 공문이 왔으니(2005.10.19). 우리는 다시 도지사와의 면담에서 약속이 파기되었음을 확인했다(2005.10.25).

우리가 정부의 위엄을 존중하고 믿고, 그래서 꼬박꼬박 세금을 바치는 것은 정부가 우리를 보호하고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위 ‘지방자치시대’에서는 ‘시’와 ‘도’가 곧 정부이다. 아니 오히려 일상적으로 우리 피부에 노상 와 닿는 정부는 바로 ‘시’와 ‘도’가 아닌가. 정부는 우리에게 믿음을 줘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나는 어두운 밤거리에서 추위에 떨며 시민들에게 ‘도심공원 조성’ 홍보지를 떠맡기다시피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2005-11-25 17: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