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섭]포스트모던한 공공예술로서의 ‘웜홀’
[2007/10/12]안양시민신문 집필위원 / 안양대학교 영문과 교수
[2007/10/12]안양시민신문 집필위원 / 안양대학교 영문과 교수
포스트모던한 공공예술로서의 ‘웜홀’
얼마 전 비토 아콘치(Vito Acconci)가 안양예술공원에 와서 새로 생긴 근사한 주차장, 이른바 ‘웜홀’(Wormhole)을 보고 갔다. 웜홀이 그의 작품이라고 인정해 주기를 갈망하는 관계자들에게 “뉴욕에 돌아가 더 생각해 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그는 그냥 갔다. ‘이십삼억원짜리 고철더미’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는 이 작품은 원작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예술적 사생아가 될 판이다. 안양시청 입장에서는 모처럼 예술과 문화가 진작되던 그간의 분위기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됐다.
아콘치 자신이 말했듯이 앞으로 그가 이 작품을 적절히 수정하고 보완해 자신의 예술적 의도와 부합하게 자신의 것이라고 인지해 주면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결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안양의 자랑거리가 될 이 멋진 주차장을 놓고 벌어진 그간의 사태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에 있어서 과연 작가란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웜홀을 만든 것은 아콘치라는 탁월한 개인만이 아니다. 뉴욕의 아콘치 스튜디오에 소속된 다른 디자이너들이나 실시설계를 맡은 이공건축, 시공을 맡은 창대건설의 실무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푸른색 원통을 걸으며 또 다른 차원으로의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도 이 작품의 제작자로 볼 수 있다. 또 작품에 붙여진 작가의 이름은 어떤 미학적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상품이 아니라 브랜드라는 기호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루이비통 핸드백에 루이비통 상표 라벨이 없으면 이 명품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아콘치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비 내리는 가을 이 투명한 플라스틱 원통 속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흥이 사라지거나 본래적 아름다움이 상실되지는 않는다. 미로의 비너스는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여전히 최고의 명작이다. 아콘치는 작품의 핵심 부분인 플라스틱 원통에 삼각형 창과 담장이가 없는 등 몇 가지 “사소하지만 심각한 실수”가 있다고 불평한다.
이 실수가 누구 책임인지 밝히는 것은 행정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심미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작품이 일단 완성되면 제작 과정에서 생긴 실수나 우연도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미로의 비너스에 두 팔을 다시 달아준다고 그 예술적 가치가 높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혹시라도 아콘치가 이 작품을 인지해 주지 않는다면, 그가 요구한대로 “작품명과 그의 이름을 삭제하고 작품 앞에 이에 대한 설명판을 부착하는 한편 모든 언론매체와 인터넷에 그의 작품이 아님을 게시”해 이 웜홀을 예술적 사생아로 남게 하는 것도 괜찮다.
그리하면 이 작품에 관한 그간의 논란과 갈등도 앞으로 이를 감상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소중한 심미적 체험의 일부가 될 것이다. 종래에는 예술작품을 작가라는 개인에게만 귀속시켰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열린 미학은 예술작품을 이에 참여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개방한다. 이제 모든 예술은 본질적으로 공공예술이다.
얼마 전 비토 아콘치(Vito Acconci)가 안양예술공원에 와서 새로 생긴 근사한 주차장, 이른바 ‘웜홀’(Wormhole)을 보고 갔다. 웜홀이 그의 작품이라고 인정해 주기를 갈망하는 관계자들에게 “뉴욕에 돌아가 더 생각해 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그는 그냥 갔다. ‘이십삼억원짜리 고철더미’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는 이 작품은 원작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예술적 사생아가 될 판이다. 안양시청 입장에서는 모처럼 예술과 문화가 진작되던 그간의 분위기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됐다.
아콘치 자신이 말했듯이 앞으로 그가 이 작품을 적절히 수정하고 보완해 자신의 예술적 의도와 부합하게 자신의 것이라고 인지해 주면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결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안양의 자랑거리가 될 이 멋진 주차장을 놓고 벌어진 그간의 사태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에 있어서 과연 작가란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웜홀을 만든 것은 아콘치라는 탁월한 개인만이 아니다. 뉴욕의 아콘치 스튜디오에 소속된 다른 디자이너들이나 실시설계를 맡은 이공건축, 시공을 맡은 창대건설의 실무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푸른색 원통을 걸으며 또 다른 차원으로의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도 이 작품의 제작자로 볼 수 있다. 또 작품에 붙여진 작가의 이름은 어떤 미학적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상품이 아니라 브랜드라는 기호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루이비통 핸드백에 루이비통 상표 라벨이 없으면 이 명품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아콘치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비 내리는 가을 이 투명한 플라스틱 원통 속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흥이 사라지거나 본래적 아름다움이 상실되지는 않는다. 미로의 비너스는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여전히 최고의 명작이다. 아콘치는 작품의 핵심 부분인 플라스틱 원통에 삼각형 창과 담장이가 없는 등 몇 가지 “사소하지만 심각한 실수”가 있다고 불평한다.
이 실수가 누구 책임인지 밝히는 것은 행정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심미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작품이 일단 완성되면 제작 과정에서 생긴 실수나 우연도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미로의 비너스에 두 팔을 다시 달아준다고 그 예술적 가치가 높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혹시라도 아콘치가 이 작품을 인지해 주지 않는다면, 그가 요구한대로 “작품명과 그의 이름을 삭제하고 작품 앞에 이에 대한 설명판을 부착하는 한편 모든 언론매체와 인터넷에 그의 작품이 아님을 게시”해 이 웜홀을 예술적 사생아로 남게 하는 것도 괜찮다.
그리하면 이 작품에 관한 그간의 논란과 갈등도 앞으로 이를 감상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소중한 심미적 체험의 일부가 될 것이다. 종래에는 예술작품을 작가라는 개인에게만 귀속시켰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열린 미학은 예술작품을 이에 참여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개방한다. 이제 모든 예술은 본질적으로 공공예술이다.
2007-10-13 02: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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