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이관직]도시에서 찾는 ‘느림의 아름다움’

안양똑딱이 2016. 6. 3. 16:58
[이관직]도시에서 찾는 ‘느림의 아름다움’

[2005/06/08 시민연대]이공건축 소장


 

도시를 걷다 보면 여러 종류의 건물을 만나게 된다. 건물마다 나름대로 어떤 스타일이 있다. 건물의 기능, 세워진 당시 사람들의 관심, 공법, 유행했던 재료 등이 건물에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드물지만 60~70년대 큰 길가의 건물은 외벽재료로 타일을 많이 사용했다. 물론 타일조차 붙이지 못해 시멘트 몰탈 위에 페인트를 칠한 건물도 많았었다. 80년대에는 주택과 같은 저층 건물은 벽돌을 많이 썼고, 소위 빌딩들은 화강석을 판석으로 가공해 붙이기 시작했다. 걷다 보면 아직도 화강석 판석의 건물들이 눈에 띈다. 90년대에 들면서 유리와 금속 건물 시절이 왔다. 건물 전면을 알루미늄 창문 프레임과 유리 커튼월로 감싸고, 어떤 부분은 알루미늄에 불소수지 성분의 도료를 코팅한 금속판으로 덮었다. 구시가지의 길에서는 이렇게 도시의 세월을 느끼면서 걸을 수 있다.

중심가에 들어오면 도시의 풍경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하루가 다르게 건물의 입면은 새롭게 리모델링되어 있고, 그나마 거의 전면 모두가 광고간판으로 가득하다.

층마다, 창마다, 하물며 지붕까지 각종 간판들을 가득 붙이고 있는 우리 건물들. 혹자는 건물마다 가득 짊어진 그 간판들이 우리다움일 수도 있다고 한다. 옛 건축의 처마 밑에 현판을 달고 방문자의 감동과 방문의의를 적은 액틀을 남겼던 역사적인 전통과 연결시키는 것인데 좀 억지스럽기는 하다. 허나 옛날, 건물에 자신을 남기고자 했던 마음이 치열한 자본주의 경쟁 속에서 상호와 업종을 광고하고자 하는 절박한 필요로 바꿔, 1번가와 로데오거리 중심가를 광고와 네온사인이 무성한 풍경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평촌 신시가지에서 일부 거리는 현대적 도시 계획적인 설계방식이 현실적으로 잘 조정되었다. 모처럼의 나들이를 즐겁게 하는 그늘진 아케이드며 조경구조물, 벤치, 분수의 이벤트 등이 흐뭇하다.

학의천과 안양천은 여러 사람과 단체들의 노력으로 물고기가 돌아오고, 두루미와 각종 야생조류가 찾아와 제철이면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겼던 옛날의 모습을 조금씩 회복해 간다. 우리 안양이 다시, 혹은 새롭게 도시적인 즐거움과 건강함을 만들어가고 있다.

조금 다른 눈으로 보면 안양은 문제투성이, 분쟁과 갈등, 문화적인 미성숙과 갈팡질팡 행정에 이 도시적인 즐거움과 건강함이 과연 회복될 수 있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세계 어느 도시나 나름의 문제들을 안고 있겠지만, 서울 외곽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안양은 더 심각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도시는 오랜 세월 그 시대를 살아온 많은 사람들의 삶과 관심이 누적된 역사와 현재의 문제인 거주, 교통, 상업, 행정 등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도시와 그 안에 건축은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여하에 따라서 보고 즐기고 누리는 곳이 될 수 있다.

이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 도시를 가꾸고 살아갈 수 있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다.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느긋하고 진득하게 문제를 풀어야 한다. 잘못된 방향도 있고, 실패한 정책도 있지만, 생태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금의 상황과 속도와 수준을 이해하고, 이 지점에서부터 발전과 정비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서툴지만 자신의 과거와 흔적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눈이다. 가난했던 시절, 지금도 가난한 골목들과 그 삶들을 먼저 받아들이고 개선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지키면서 하나 둘씩 천천히, 오래 보아가며, 친화할 수 있게 다듬어 가야 한다.

정해진 법률의 정신을 잘 조정해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스러운 위원회나 심의제도를 만들어 행정위주의 조급증으로 해치우는 습성, 자신의 안목이 앞섰다 해서, 힘과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규제와 행정위주의 강제와 지도로 내달을 것이 아니다. 관련 민원인, 주민, 전문가를 믿고, 지원하고, 보좌하는 행정이 필요하다. 주민과 전문가, 행정가, 행정 조직의 수준 모두가 올라갈 때, 도시가 조금씩 더 아름다워지고 건강해지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우리 자신, 우리의 도시를 다듬을 많은 시간이 있다. 이 도시는 앞으로 백년을 천년을 계속할 것이므로.

고려대 겸임교수. 이공건축 소장

2005-06-09 03:5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