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소명식]도시에 문화의 약수터 ‘쌈지광장’을

안양똑딱이 2016. 6. 3. 17:08
[소명식]도시에 문화의 약수터 ‘쌈지광장’을

[2005/06/08 시민연대]아키포럼 건축 소장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인간은 정말 사회적 동물인 것 같다. 둘이상 모이면 대화를 나누고 무엇인가를 궁리하고 모의한다. 인류문명에서 최초의 민주시민문화가 발전됐던 고대 그리스 문명의 실질적 핵심장소는 시민들이 모여 의논했던 광장이 아닌가. 여러도시국가 중 선두주자였던 아테네의 시민광장인 아고라(Agora)는 서구세계의 정신가치와 사회민주사상 형성의 밑거름이 됐다. 그러한 형태는 이웃 로마의 시민광장(Forum romanum)으로 전파돼 로마시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서방세계를 제패한 로마제국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그 후 그것은 유럽의 광장문화로 크게 번성돼, 유럽의 어느 도시를 가든 도시내부에 있는 광장이 시민들의 대화와 축제의 장으로 사용되는 등 현재 유럽 도시문화의 핵심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광장문화는 양적으로 팽창된 도시의 비인간적, 회색문명의 숨통을 열어주는 통로이면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도시의 약수터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광장문화와 유사한 거리문화가 있다. 옛부터 마을에 장터가 서는 날이면 사람들에 의해 거리가 광장으로 만들어져, 장돌뱅이들 혹은 보부상들에 의해 여러형태의 퍼포먼스가 벌어지면 모여든 사람들이 구경하면서 축제를 즐기고, 이웃마을간의 정보를 나누고, 삶의 지혜를 나눴다. 그날은 사·농·공·상의 화합의 장이기도 했으며, 지친 심신을 치유하는 카타르시스의 장이기도 했다.

현대의 도시에서도 그것은 유효하지만, 안양시 구도심지에는 그러한 공간의 여유가 없는 듯 하다. 마당축제이거나 장터축제가 열릴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말자. 우리에겐 거리가 있다. 다양한 업종의 가게들과 노점상으로 붐비는 거리,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옆자리를 내줄 수 있고 숨결을 느낄수 있는 개인적 영역인 70㎝거리까지 기꺼이 허용해 줄 수 있는 곳이 우리의 전통거리이다. 사람들의 냄새를 맡으며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를 밑천으로 시작해 볼 수 있다. 중요자원은 사람이다. 안양1번가에는 학생들이 넘치고, 그들의 젊음과 열정과 재능을 풀어놀 쌈지광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안양역, 안양1번가, 재래시장, 삼덕공원 지역은 이미 문화적인 요소가 많이 자리잡고 있다. 교보문고나 대동문고와 같은 대형서점도 있고, 우리은행 옆 골목엔 중고책 서점도 있으며, 문화관광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우리문화소극장에서는 이미 연중기획으로 대학로의 연극들이 공연되고 있다. 재래시장에는 3~40년 전통의 순대국밥집 거리가 있고, 주머니 빈약한 대학생들의 쉼터 곱창골목이 있다. 더 들여다 보면 청바지골목, 포목점골목 등 각 골목마다 전통의 숨결이 남아 있다. 게다가 중앙시장 반경 1㎞내에 학교가 20개소나 밀집돼 있어 학생수만도 2만명이 넘어, 이미 단골이용객은 어느 정도 확보해 놓은 상태이다. 쓸만한 전문 인적자원도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이런 요소들을 이용해 구상만 잘 한다면 이지역은 인사동, 대학로, 동대문시장의 요소가 함께 어우러진 전국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 진짜 보물을 캘 수 있는 지역인 것이다.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에는 장터문화제가 활성화될 수 있게 더 비싸지기 전에 건물 한두개를 시에서 사들여 퍼포먼스가 가능한 쌈지광장을 제공해 주는 것이 재래시장 활성화에 가장 훌륭한 투자가 아닌가 한다. 구도심지 몇군데에 쌈지광장만 마련되어진다면 시민, 상인 그리고 학생들 스스로가 문화공간을 연출해 낼 것이다.

큰 광장까지는 필요없다. 유럽의 조그만 광장처럼 우리도 안양의 몽마르트광장, 캄포광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쌈지광장 두어개 정도만 마련된다면 굳이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매일 퍼포먼스가 행해질 것이고, 음악회, 연주회, 아니면 마술쇼가 열릴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틀림없이 뱀장수 아님 차력사가 낀 약장수라도 나타날 것이다. 누가 알랴? 그것을 보고 있던 안양시민이나 학생들 중에서 세계적인 음악가가 태어날수도 있고 세계적인 마술가나 행위예술가가 태어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대림대 겸임교수·아키포럼 소장

2005-06-09 04: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