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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정조 임금 어가 행차하듯 가는 '통영별로' 첫걸음

이야기보따리/기사

정조 임금 어가 행차하듯 가는 '통영별로' 첫걸음
[통영로 옛길을 되살린다] (35)통영별로(統營別路) 다시 출발선에 서다
출처: 2013.01.17일자 경남도민일보에서(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02626)
최헌섭(두류문화연구원 원장) | webmaster@idomin.com
  
앞선 호에서 지난 2년간 진행해 온 통영로가 숭례문에 도착함으로써 긴 여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도착은 새로운 출발을 전제하는 것이니, 방향을 바꾸면 들머리가 날머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계사년 1월, 이제 통영으로 향하는 다른 길(통영별로, 통영일로)을 잡아 새로운 출발선에 섰습니다. 통영별로(統營別路)는 서울과 삼도수군통제영을 오가던 통영로(統營路)의 다른 길입니다. 그 경로는 숭례문을 출발, 동작나루를 통해 한강을 건너 삼남대로(三南大路)를 따라 남행하다가 전주 삼례역(參禮驛)에서 갈라져 임실 남원 함양 산청 진주 고성을 거쳐 통영으로 이릅니다. 이 길은 정조의 화성 행차로, 춘향전에서 이몽룡의 암행로가 겹치고, 공주에서 전주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동학농민전쟁 루트와도 부분적으로 겹치는 역사적인 길입니다. 독자 여러분,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선 저희와 길벗이 되어 길 위의 역사를 찾아 떠나시기 바랍니다.
숭례문을 나서다
우리가 걷는 통영별로의 서울∼수원 구간은 대체로 정조 임금이 화성 행차를 위해 오간 길과 겹치게 되어, 이 노정을 따라 옛길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남대문을 출발한 길은 통영로와 달리 곧바로 남쪽으로 이르지 않고 남서쪽으로 길을 잡아 지하철 1호선과 비슷한 선형을 따릅니다. 〈대동지지〉에는 예서 동작나루까지 20리라 했습니다.
남대문을 나서서 얼마 걷지 않으면 옛 남지(南池)가 있던 자리에 이릅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은 화기(火氣)가 강해 그것을 막기 위해 동대문 안쪽에 동지(東池), 서대문 북쪽에 서지(西池)와 이곳에 남지를 두었습니다. 뒤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에도 광화문 바깥에 물에 사는 상상 속 신수(神獸)인 해태를 새긴 석상을 세운 것도 그런 까닭이었습니다. 이렇듯 도성의 여러 곳에 못을 둔 것은 지방의 읍성 내에 연못을 둔 것과 같은 뜻입니다. 평소에는 풍치를 돋우는 수변공원의 구실을 하고 화재가 발생하면 불을 끄기 위한 방화수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곳의 옛 경관을 살필 수 있는 이기룡의 남지기로회도(南池耆老會圖)에는 연못 안의 연꽃과 어우러진 버들이 그려져 있어 남지의 그런 쓰임을 잘 일러주고 있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 서울시가 정도 600년을 기려 세운 남지-터 표석에는 '서울 도성 숭례문 밖에 있던 연못으로 장원서(掌苑署)에서 관리하였음'을 새겨 두었습니다. 이제 시한을 다해 가는 MB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지 않아 불에 타버린 숭례문을 바라보며, 처음 이곳에 못을 두었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 봅니다.
청파 배다리를 향하다
숭례문을 나선 정조 임금의 어가는 남지를 지나 지금의 서울역 부근에 있던 도제골(도저동:桃楮洞) 앞길을 지나 청파 새다리가 있던 청파동 1가를 향하게 되는데, 우리는 옛길을 덮어쓴 세종대로를 따라 걷다가 이문동에서 육교를 통해 서울역을 건넙니다. 육교를 통해 서울역을 가로질러 건너면 머잖아 옛 청파역(靑坡驛)이 있던 청파동을 지나게 됩니다. 이 역은 고려시대 청교도(靑郊道)에 속한 청파역(靑波驛)이었다가 조선시대까지 그 쓰임이 이어져 왔습니다. 청파역은 동대문 밖 4리에 있던 노원역(盧原驛)과 더불어 조선시대 한성부 관할(도성에서 10리) 안에 있던 두 역 가운데 하나로서,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 역원에는 '숭례문 밖 3리에 있다'고 나옵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이곳은 남태령을 넘어 통영별로와 삼남대로를 오가는 길과 노량진을 거쳐 시흥을 오가는 길의 갈림길로 그려져 있습니다. 숙대 앞에서 옛 밥전거리(밥을 팔던 곳)가 있던 삼각지로 이어지는 지금의 청파로가 대체로 옛길이 지나던 곳으로 여겨집니다.
용산 언덕 앞길을 지난 어가는 석우(石隅:돌모루) 만천주교(蔓川舟橋)를 거쳐 한강 배다리에 이릅니다. 지금 옛 돌모루 자리에는 어린이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만천주교는 지금의 남영역 앞에 있었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는 '청파배다리터' 표석을 세우고 '조선시대 도성에서 청파·원효로로 통하는 주요 길목인 만초천에 놓였던 돌다리터'라 새겼습니다. 바로 이 청파배다리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옛 기록에 남대문 바깥에 있었다고 전하는 청파신교(靑坡新橋)입니다. 이 다리는 처음에 만초천(蔓草川)에 배로 다리를 놓아 배다리 또는 선교(船橋)라 했다가 뒤에 돌다리로 고쳐 쌓았는데, 그 즈음에 청파 새다리라 한 듯합니다. 정조 임금의 능행길은 예서 노량진으로 길을 잡아 그곳에 미리 설치해 둔 배다리로 한강을 건넜는데 그 자리는 대체로 지금의 한강철교가 놓인 곳이랍니다. 한강을 건넌 어가 행렬은 시흥과 안양을 거쳐 사근참행궁(肆覲站行宮)에 이르기까지 통영별로와 헤어지게 됩니다.어가가 용산 언덕 앞길에 나오자 관광민인(觀光民人:구경꾼)이 모여들었는데 왕은 이를 막지 말라고 명했다고 합니다. 이때 어가가 당도한 곳은 청파동 1가에 있던 밤동산(율동산:栗東山)에서 이어지는 율원현(栗原峴)으로 불리던 방울재 부근으로 지금의 효창공원 동쪽입니다.
한강을 건너다
통영별로는 청파배다리에서 지금의 용산역 부근을 지나 동작나루에서 한강을 건너게 됩니다. 배다리를 지나는 옛길은 옛 밥전거리가 있던 삼각지를 지나게 되는데, 이즈음에 이르러 남대문을 나선 길손들이 허기를 달래며 발품을 쉬어갔을 듯 싶습니다. 삼각지에서 곧장 남쪽으로 나 있는 길이 바로 옛 통영별로인데, 얼마 가지 않아 군부대에 막혀서 돌아갑니다. 옛길은 예서 와현(瓦峴)을 넘었는데 바로 근처에 있던 와서(瓦署)에서 비롯한 이름입니다. 와현을 내려선 길은 국립중앙박물관 앞을 지나 동작나루를 통해 한강을 건넙니다. 우리는 지독한 강바람과 맞서며 동작대교를 걸어서 한강을 건넜습니다. 동작나루를 지난 길은 4리를 더 걸어 우면산 자락의 승방평(僧房坪)에 들게 되는데, 이즈음에 이르렀을 때 짧은 겨울해가 어둑해지기 시작합니다.
옛 동작나루가 있던 한강 둔치. /최헌섭
남태령(南泰嶺)을 넘다
승방평에서 남태령까지는 7리 길입니다. 고개 들머리의 사당역 부근에 닿으니 벌써 해가 져서 남태령을 오르기 위해 이곳에 즐비한 포장마차에서 허기를 달래며 힘을 돋웁니다.
과천과 서울의 지경고개인 남태령 고갯마루에는 새로 세운 표지석이 우뚝하고 최근 확장한 8차로 도로 위로 두 지역을 오가는 자동차 행렬이 맹렬하게 치닫고 있습니다. 과천의 진산인 관악산과 우면산 사이의 잘록이에 열린 이 고개는 삼남으로 오가던 옛길이 지나던 곳입니다.
남태령
이 고개는 여우고개(호현: 狐峴) 또는 여시고개(엽시현:葉屍峴)라거나 도적고개로도 불렸는데, 앞 이름에는 근처 낙성대역 출신인 강감찬 장군과 관련한 전설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런 이름을 가진 고개가 남태령이 된 데는 정조의 능행 때 있었던 이야기 한 토막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이 고개에서 쉬어가던 정조가 고개의 이름을 물으니 어느 시골 늙은이(일설에는 과천현 이방 변씨)가 남태령(南泰嶺)이라 아뢴 데서 비롯한 것이라 합니다.
과천에서 본 남태령. /최헌섭
당시 정조를 수행하던 관리 가운데 이 고개의 원래 이름을 알고 있던 이가 있어 거짓 아뢴 것을 꾸짖었습니다. 임금께서 그 까닭을 물었더니, '감히 거짓으로 아뢰고자 한 것이 아니옵고, 이 고개는 원래 도적고개 또는 여우고개라 하오나 상감께서 물으심에 그런 상스런 이름을 알려 올릴 수 없었사옵니다. 이 고개가 한양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맨 처음 큰 고개인지라 남태령이라 아뢰었나이다'라고 하자, 정조가 촌로의 마음 씀씀이를 가상히 여겨 주지(周知)라는 벼슬을 내리고 앞으로 남태령이라 부르게 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한 것이지요.
그러나 〈춘향전〉 어사출두 부분에 '청파역 말 잡아타고, 칠패 팔패 배다리 얼른 넘어 밥전거리 지나 동작이를 얼른 건너 남태령을 넘어'라 한 구절에 이미 그런 이름이 나오므로 남태령은 정조 이전에 만들어진 지명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이 고개가 자리한 곳이 관악구 남현동(南峴洞)인 점도 이 고개를 한양의 남쪽 고개로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