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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최병렬]안양사람들이 기억하는 오래된 음식점 이야기

이야기보따리/기억

 

안양사람들이 기억하는 오래된 음식점 이야기

안양지역에 음식점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아마도 한양가는 길목인 인덕원 사거리 일대 자리했던 주막에서 당시 오가던 길손에게 팔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추정일뿐 기록은 없다. 안양시는 2006년 안양시민축제 당시 음식문화축제를 준비하면서 안양의 대표음식으로 설렁탕을 선정해 과거 자료를 수집한 적이 있다.
자료를 조사한 안양문화원 최태술 위원은 “지금 동안구 평촌에 귀인동이 있다. 이 마을은 이름 그대로 宮中에서 宮人으로 생활하다 퇴역 하신 귀인(貴人)들이 살든 곳이어서 귀인동이다. 또 수촌마을에는 내시촌이 있어 두 곳 다 퇴역한 궁인들이 궁중에서 하던 선농제 행사에서 끓이던 설렁탕 기술을 알았을 것이다”며 이를 통해 설렁탕이 일반에게 전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렇다면 어느 지역 설렁탕보다 안양 설렁탕이 진짜 중 진짜가 아닐까.
1926년생으로 안양3동에서 태어난 이용구 옹은 어린시절의 풍경을 눈썰미있게 기록한 [양지마을의 까치소리]에서 1930년 당시 안양은 안양역을 중심으로 밀집된 곳에만 겨우 전깃불이 있을 뿐, 그 외에는 밤이면 희미한 석유 등잔불만이 가물거리는 고장으로 하루에 기차가 수회 지나며(단선) 서울~수원간 경수(京水)버스가 몇 대 지나던 촌락이었다고 기록했다.
그는 안양역 건물은 까만 기와지붕에 몇평 안 되는 성냥곽 만한 역사(驛舍)에 대합실과 개찰구와 집찰구뿐이었으며, 역 앞 국도 건너에는 미륵당(彌勒堂)이 있고, 그 주위에 수백 년 된 노향목(老香木 ) 두 그루가 안양의 내력(來歷)을 다 아는 듯 우뚝 서 있었다. 바로 그 및에 두 개의 목로주점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이 옹이 말하는 목로주점은 한 장 사진 기록을 통해 시간을 넘어 과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1943년 2월 20일 민속학자 송석하(宋錫夏)가 안양역을 지나가다 촬영했던 사진속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가 촬영하고자 했던 안양역 광장이 존재했던 미륵당이었다. 그가 남긴 3장의 흑백사진중 1장의 사진에는 한자로 쓰여진 안양음식점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 기억으로는 안양역 주변과 구시장, 새 상권이 형성된 새시장(중앙시장) 일대에 본격적으로 다방, 양화점, 병원, 양복점들과 함께 음식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일제 강점기부터 피서지로 유명했던 안양유원지에도 음식점들이 성업했었다.
 
1968년 개업한 안양유원지(안양예술공원)의 봉암식당
 
안양유원지(안양예술공원)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일본인들이 계곡을 막아 천연풀장을 만들며 시작된 여름철 피서지로 50-60년에 한강 이남에서는 유일한 물놀이 시설이었다.
안양유원지가 유명했던 것은 이곳만큼 숲이 울창하면서 계곡의 수량이 풍부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락철에는 유원지 입구에 '안양 풀장' 간이역이 생겨 경부선을 달리던 기차가 섰고, 역에서 풀장까지 임시 버스가 운행되는 등 60년대 여름철엔 하루이용객 2만여명을 헤아리던 곳이다.
안양예술공원상가연합회 부회장 남창림(71)씨는 계곡 주변으로 자연스레 음식점들이 하나둘 들어섰어요“라고 당시의 기억을 더듬었다.
안양유원지에는 영남여관, 백운여관 등 숙박시설도 있었다. 특히 안양 최초의 카바레도 이곳에 있었는데 왕궁 카바레였다. 지금의 카페 ‘데이지아’ 건물이 이전 카바레 건물인데 지금도 악사들이 연주하던 반원형의 무대가 지금도 남아있다.
안양토박이인 안양시의회 김성수 사무국장은 안양유원지안에 유명했던 식당으로 1969년 문을 연 봉암식당과 고바우식당, 우정식당 등을 기억한다. 두 식당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어 아마 안양에서 현존하는 식당으로 가장 오래된 식당이 아닐까 싶다.
봉암식당(031-471-7428)은 1968년에 문을 연 대형식으로 염불암 올라가는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좋아 예전부터 친목모임이, 회식장소로 유명했다. 필자가 근로자회관에서 근무할 때 함께 일했던 독일수녀님 서말가리다 선생님은 이집에서 60년대부터 불고기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다고 말한바 있다.
 
안양역과 구시장 일대에 있던 식당
 
1920년대 개장한 안양 구시장은 1970년대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안양역 인근 일번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안양 최고의 번화가이다. 안양역 좌우 구도로변과 길 건너 현재 일번가 골목길에는 많은 음식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많은 시간과 세월이 흘러도 추억으로 기억될 만큼 대표적 음식점은 어느 집이 있을까.
1950-60년대에는 안양역 구도로변에는 가마솥에 설렁탕을 끓이던 경민식당이 있었으며, 안양역 앞에는 고향식당이 유명했었다.
중국집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서민들이 찾았던 음식점이다. 화교 학교에 다니던 주인장 딸이 너무나 예뻐 당시 남학생들이 얼굴 한번 보기위해 짜장면을 먹으러 자주 드나다녔던 순흥루와 동춘관 등은 1950-70년대 안양시내 중국집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안양역 건너편에는 아이스케키와 하드를 만들어 팔던 태극당 제과점이 있었고, 미승당, 풍미당 빵집이 있었다. 제과점은 1990년대 안양 중앙시장 입구 옆에 학생들의 데이트 장소였던 폼비제과점으로 이어지다가 끝내 문을 닫고 말았다.
일번가 골목에는 동그랑땡이 맛있던 느티나무집이 있었고, 안양우체국앞에는 술꾼들로 봄볐던 양일해장국이 있었다. 또 안양역에서 대동서점 골목을 지나 안양9동 채석장까지 연결됐던 철길옆에는 구름다리가 유명했다.
안양 일범가 골목길에는 화진정, 유래정, 진고개 식당 등 불고기와 갈비, 냉면, 육개장, 설탕탕 등을 팔던 한식당이 쭈욱 늘어서 있었다. 안양아구탕 원조 남촌아구탕, 학생들 데이트장소였던 폼비제과점도 추억 명소였다.
안양토박이로 현재 안양4동에서 흑산도 홍어집을 경영하는 정효진씨를 만나 그가 기억하는 6-70년대 음식점과 먹꺼리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정씨는 젊었을 때 안양지역을 주름잡던 주먹(?)이었기에 그가 기억하는 식당과 술집들의 얘기는 추억이자 역사다.
안양역앞에는 1960년 제일 유명했던 식당은 고향식당이다. 역전파출소옆에 있었는데 해장국 한그릇에 1200원이었다. 진짜 좋았다. 70년대 중반에 없어졌다.
술질으로는 구시장에 변무일씨가 하던 빠가 있었다. 안양에 빠로서는 처음 생겼는데 맥주병에 먹거리를 넣어서 팔았었다. 구시장 입구 오른쪽 2층에는 다방이 있었고, 비산동 진흥아파트 앞에 술집으로는 개성집, 안양에게 제일 나가던 음식점은 장춘옥으로 최고였다.
남부시장에는 금천옥과 경남옥이 있었고, 동춘관은 47년인가 50년인가 생겼다. 안양역앞에 복어집이 있었는데 아주 유명했다. 현재의 일번가 청사초롱앞에 있었다. 동춘관과 쌍벽을 이루었던 순흥루의 딸 이름이 후에미나 였는데 현재 대만에 살고 있다. 아직도 소식을 주고 받는 이들이 제법 있다.
경민식당은 성결대앞으로 이전했다가 90년대 초인가 폐업했으며 주인은 미국 LA가서 살고 있다. 경민식당은 절대 다데기를 주지 않았다. 국물 맛이 변하면 안된다고 철칙으로 고수했다.
60년대 말 구시장 넘어가는 철길에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고, 안양 삼원극장옆 철길의 구름다리는 70년대 중반에 생겼다. 구름다리의 닭 내장탕과 닭 곱창은 정말 끝내주었다.
60년대에 근로자회관에서 운영하던 급식소에서 미군부대에서 지원받은 밀가루로 국수를 3원인가 5원인가 팔았는데 배고팠던 시절이었기에 줄 지어서 먹었다.
안양 일번가 동서연결지하차도 옆에 있던 남촌식당 자리에는 64-65년도인가 기름에 튀기는 빵을 팔던 집이 있었는데 당시 김두한씨가 안양 왔다가 맛을 보기도 했다. 건너편에는 계란을 넣어서 하는 이태리빵집이 우와 먹고 싶었지 마음대로 사먹지 못했지, 죽였다.
구시장 넘어가는 땡땡 철길옆에는 광창라사가 있었고 중국집 강성각의 호떡도 유명했다.
안양에서 70년대 후반 80년대 해장국집으로 유명했던 양일식당은 안양우체국 아래 큰 길에가 있다가 안양병원 옆 골목으로 옮겨졌으나 장사가 안돼 끝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