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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하]의왕 능안마을 임영대군 묘역과 사당

안양똑딱이 2025. 3. 24. 01:19

 

능안마을 임영대군 묘역과 사당

 

임영대군 이구(1418~1469)는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이자 수양대군(세조)의 동생이다. 임영대군은 성격이 매우 활달하고, 문학과 역사를 두루 섭렵해서 논리가 뛰어나며 무예도 훌륭했다고 한다. 세조는 임영대군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선비와 같다고 칭찬했다. 󰡔예종실록󰡕에 따르면, 임영대군은 항상 검소하고 재산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며, 사람을 대할 때 정성을 다하고 거짓과 꾸밈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성품을 따서 예종은 임영대군에게 정간(貞簡)이란 시호를 내렸다.

 

임영대군은 세종과 문종대에 무기를 연구하여 총통을 새롭게 고쳐 만들고 화차를 제작했다. 형 수양대군이 단종을 물러나게 하고 왕위에 오르자 그의 통치를 보좌하였다. 왕자들 사이에 골육상쟁을 경험한 그는 동기간의 우애회복에 노력하여 여러 조카들 가운데 인재들을 찾아내어 관리로 등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화포제작을 주관한 임영대군의 경험을 살려 세조는 그로 하여금 군기감을 조사토록 하였고, 그는 잘못을 확인하고 군기감 운영을 바로잡기도 했다. 또한 세조의 명을 받아 신숙주와 함께 효령대군을 위한 원각사 창건에 힘쓰기도 했다.

 

임영대군은 비록 궁중에서 자라고 생활하였지만 민간의 생활을 잘 알고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정책에 반영하려 했다. 예를 들면, 군사들에게 개인적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게 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당시 그 제도가 시행되면서 백성들이 소를 잡아서 갑옷 비용으로 다 써버리게 되어 백성들의 원망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임영대군은 먹고 입는 것도 힘든 군사들에게 갑옷까지 만들어 입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세조에게 건의했다. 이처럼 임영대군은 세조를 도와 백성들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조정에 전하는 등 백성들을 보살피고 사랑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임영대군은 예종이 즉위한 직후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금은 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며 5일 동안 조정에서 하는 회의를 폐지하고, 장례의 필요한 물품을 충분히 제공해 주었다.

 

후손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임금이 되자 임영대군은 이곳 능안마을에 내려와 숨어 지냈다고 한다. 세조가 함께 조정을 돌보자고 찾아왔지만 이를 끝내 거절하였으며, 매일 모락산 큰 바위에 올라가 망궐례를 올리면서 한성을 걱정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모락산(慕洛山)이란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임영대군의 묘역을 중심으로 후손들이 모여 살면서 능안(陵內)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임영대군 묘역

 

임영대군의 묘역은 의왕시 내손동 능안마을 모락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묘역의 가장 큰 특징은 묘역을 상계와 중계, 하계 3단으로 구분하여 조선 전기 왕실 묘역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점이다. 상계에는 상석과 묘표가 배치되어 있으며, 중계에는 장명등과 망주석을, 하계에는 문인석을 차례로 배치하였다. 장명등과 문인석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이며, 묘표는 1924년에 다시 중건되었고, 망주석은 1981년에 묘역을 정비할 때 새로 교체된 것이다. 광해군과 인조, 현종 때에는 임영대군의 묘역이 왕릉 후보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임영대군 사당

 

임영대군사당은 묘역의 동쪽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사당은 원래 종가 뒤편에 있었으나 몇 차례 이전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정면 3, 측면 2칸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지금의 사당은 2000년에 사당을 완전히 해체한 뒤 쓸 만한 재목만을 간추려 다시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사당은 맞배지붕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기와지붕 양 옆으로 비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방풍널을 달았다. 사당 주위로 기와지붕 담장을 둘러 보호하고 정면에는 1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세웠다. 사당 실내 중앙에는 임영대군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나머지 공간에는 제사에 쓰이는 그릇과 옷이 보관되어 있다. 사당의 한 칸은 원래 서고로 사용하면서 고문서와 유물을 두었는데 한국전쟁 때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사당에서는 매년 음력 121일이 되면 전국의 후손들이 모여 임영대군 제사(기신제)를 지내고 있다. 임영대군 묘역과 사당은 경기도지정문화재자료 제98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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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박철하 선생은 의왕시 오전동 전주나미마을 345번지에서 태어난 의왕 토박이로 고천초, 안양중, 유신고를 거쳐 고려대 사학과와 숭실대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단체. 전국 군 이상 지방에서 활동했던 계급의식이 있는 청년들의 반일운동과 사회혁명운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전문위원과 경기도교육청 역사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참여와 자치를 위한 의왕풀뿌리희망연대 공동대표, 의왕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