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이승언]安養의 由來_안양문화 제4호 글(1985.12.31)

안양똑딱이 2025. 3. 22. 15:37

 

1. 안양의 근원지

1) 안양의 근원지에 대한 청설

안양의 근원지 즉 뿌리는 필자(이승언)安養文化號行政 域變에서 언급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안양의 근원지는 금천현이었고, 금천현의 중심지는 안양이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이러한 오류는 해방이후 향토사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없이 어느 한 책자가 발표한 용을 그대로 전재했기 때문인데,  살펴 본 바를 종합해 보연, 안양의 뿌리 즉 근원지는 삼성산에서 말원한 삼성천을 현계로 했고 뒤에서 언급을 하겠지만 안양의 영칭 유래가 삼성산.안양사에서 유래되었으니 염밀한 의미에서는 금천현이 안양의 근원지라는 것이 옳다고 보나 현 안양시의 인구 및 면적은 물론 안양 행정 중심지가 삼성천 이남의 지역으로  과거 과천현의 치역이었으, 안양의 근원지는 과천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3 ) 安養名稍 由來

前記한 바와같이 안양의 명칭 유래에 대하여는 정립한 설이 없어 이를 정확하게 논증하기란 어렵다. 전기한 설 가운데, ⓵⓶설은 만안교 가설 이전에 안양리라는 행정지명이 있었으므로 논외로 치고, 설은 막연하여 실증할 수가 없으며, ⓸⓹⓺설은 불교적인 측연에서 안양의 명칭 유래를 밝히고 있는데, 필자 역시 심상산 안양사에서의 원용설이 가장 합리적인 주장으로 보고 있다.

필자가 안양의 명칭 유래를 안양사에서 보는 이유는

삼성산 안양사 부근에 있는 심막사, 삼성천, 삼막천 등의 地名이 모두 불교와 관련이 갚고

삼성산 안양사의 위치가 금천현 안양리(현 안양시 석수동)에 속해 있었으며

안양유원지 일대 옛 지명이 안양동·안양골이라 했었다는 촌로들 증언과 문헌이 뒷받첨

안양사 이전에는 안양이란 운헌이 없으며

삼성천을 경계로 하여 서로 다른 행정구역이연서 安養里란 같은 지명을 택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주변 일대를 佛心으로 安養世界를 이룩하려고 했던 션조들의 갚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응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본문중 년대 추정과 내용 둥에 있어 미흡한 부문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전적으로 필자가 천학했기 때운이며, 본고가 모든 사실들을 빠짐없이 정확하게 기술했다고는 생각지 않으며, 누락되었거나 잘못된 내용 등이 있으연 차후 보완키로 한다.

끝으로 본고를 집필하는데 있어 학계의 정병학 교수님(숙명여대 사학과) 최혁수 교수님(전 동국대 국문과) 김영진 박사님(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장) 이명규 교수님(한양대 국문과) 김병모 교수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최범훈 교수님(경기대 국문과) 장힘한씨(국문학) 심멸렬씨(불교학)와 안양에 거주 하시는 장배근씨(양지회장) 김형욱씨(전 안양 부읍장) 이성래 씨(전 동면 안양리장) 변원신씨(안양시 ,행정상담위원) 유효득씨(석수동 거주), 박유선씨(한국반공연앵 안양시 지부장) 최명래씨(안양시 안양동 674-89) 둥의 지도와 자문에 힘입은 바 컸었다.

(향토사가 시흥군지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