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직연의 연사록과 연행록
의왕 왕곡동 청풍 김씨 문중은 많은 문집과 초상화 등 유물을 보존해 왔으며, 각종 석물과 신도비를 갖춘 왕곡동의 청풍 김씨 묘역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1858년 사은겸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의 수도 연경(지금의 북경)에 다녀온 김직연은 직접 그 내용을 연사록과 연행록이라 하여 각각 한문과 한글로 지어 후세에 전했다. 김직연 관련 기록물들은 현재 의왕시 향토사료관에 기증되어 보관되어 있다.
김직연의 연행록과 연사록은 품산 김직연이 청나라에 사은겸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다녀오면서 지은 한글 및 한문 필사본 기행문집이다. 1858년(철종 9) 10월 26일 출발하여 1859년 3월 20일 귀환하여 철종에게 복명하기까지 310명의 인원과 105필의 말이 98일 동안 총2,013리를 여행한 것을 기록한 방대한 책이다.
연행록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친절한 설명과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중점적으로 엮어 놓았으며, 연사록은 연행록과 같은 내용을 한문으로 쓴 것으로 공적인 보고를 목적으로 하여 정확한 날짜와 시간, 인명, 주고받은 시구 등 보다 풍부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조선의 공식적인 청나라 외교사절단의 기록을 한글본과 한문본으로 기록한 김직연의 연행록과 연사록은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이며, 특히 한글본은 학술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의왕향토사료관에서는 2014년 기증고도서의 세번째 번역서 『연행록』을 발간하여 전국 박물관, 도서관, 연구기관 등 400부를 배포하였다! 연행록은 조선시대에 중국에 다녀온 사신들이나 그 수행원들이 남긴 기행문을 말하는 使行記錄(사행기록)이다. 조선 전기의 대명 사신들은 기행시를 많이 남기고 조선 후기의 사신들은 기행문을 많이 썼다.
김직연의 연행록을 살펴보면 당시 여행길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비롯하여 북경에 체류하면서 직접 체험한 여러 사건들을 통해 19세기 청나라와의 외교관계, 문물제도, 청나라 사람들의 생활양식, 문사들과의 교류 등 정치·경제·문화에 걸쳐 매우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다. 또한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서양의 여러 나라가 청나라에 어떤 식으로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역사적인 자료로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의왕향토사료관에서 지금까지 번역한 책은 총 3권으로 모두 조선 철종때 청풍김씨 선조 김직연이 저술한 책으로 그 중 두 권은 한문본 『燕楂錄(연사록)』(1858)과 한글본 『연행록』(1858)이고 나머지 한 권은 「讀古綠(독고록)」(1839)이다.
한문본 『燕楂錄(연사록)』(1858)과 한글본 『연행록』(1858) 이 2책은 지금까지 발견된 『연행록』이라는 이름으로 전하는 사행일기 3책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외에 가장 후대에 해당하는 되는 책이다.
기존의 3책은 권협이 1597년(선조30)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청병(請兵)을 위해 명나라를 다녀온 사행일기와, 최덕중(崔德中)이 1712년(숙종38) 동지겸사은사(冬至兼謝恩使) 부사 윤지인(尹趾仁)의 군관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사행기 그리고 김정중(金正中)이 1791년(정조15) 동지겸사은사 일행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것 등이다. 새롭게 발견된 김직연의 『연행록』은 한문학, 고전문학을 비롯한 사료로써의 가치도 매우 높다.
번역서 중 나머지 한 권인 『讀古錄(독고록)』(1839)은 『품산만필』 중 제17권으로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한 김직연의 독서록이다. 춘추전국시대부터 명대의 책까지 방대한 양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 내려간 책으로 김직연이 얼마나 많은 독서를 했으며 문인으로서의 문장력이 뛰어난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의왕향토사료관에서는 청풍김씨 문중 김준영씨가 기증한 고도서를 앞으로도 꾸준히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연구·조사를 진행 한다고 하니 더욱 고증도서를 꾸준히 연구하여 의왕의 역사가 더욱 자세하고 깊어질 것으로 기대해본다.
청풍김씨 김직연(1811~1884)의 「연행록」
그럼 지금부터 의왕에서 발간한 연행록을 쓴 김직연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자.
金直淵(김직연)은 廣州(광주) 旺倫面(왕륜면) 肆覲川里(사근천리) 苐其(제기)출생입니다. ‘品山(품산)’을 자호로 삼았으며 자신에 대하여 기술한 「品山自述(품산자술)」과 문집 『品山謾筆(품산만필)』을 남겼다. 1846년 급제하여 벼슬에 나아간 후 사헌부지평, 경기도지사, 홍문관부교리 등을 두루 거쳤을 정도로 훌륭한 선비이다. 현재 김직연 묘역은 왕곡동 청풍김씨 문중 묘역인 백운산 서쪽 기슭 佛堂洞(불당골)에 자리잡고 있다.
청풍김씨가 왕곡동에 터전을 잡게 된 때는 10世 金友曾(김우증, 15세기 말~16세기 전반)때 부터이며 13世 충백·효백·인백·예백의 4형제가 각 파조가 되어 청풍김씨 문중이 본격적으로 세를 형성하여 이 중 김직연은 20세 인백파의 인물로 여러 관직을 거친 뛰어난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글과 시를 짓는데도 뛰어난 문인이었다. 특히 서울 인왕산을 중심으로 결성된 문사들의 모임뿐만 아니라 의왕 인근에서 결성된 詩社(시사: 시인들이 조직한 문학적 단체)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박철하]의왕의 어제와 오늘: 지역 정체성을 조명하다
내고장 역사 바로 알기 글에서
편집자주: 박철하 선생은 의왕시 오전동 전주나미마을 345번지에서 태어난 의왕 토박이로 고천초, 안양중, 유신고를 거쳐 고려대 사학과와 숭실대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단체. 전국 군 이상 지방에서 활동했던 계급의식이 있는 청년들의 반일운동과 사회혁명운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전문위원과 경기도교육청 역사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참여와 자치를 위한 의왕풀뿌리희망연대 공동대표, 의왕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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