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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순]수리산 자연친구들은 지금 우리에게 ‘SOS’ 중

[이금순]수리산 자연친구들은 지금 우리에게 ‘SOS’ 중 [06/20 군포시민신문]군포환경자치시민회 수리산자연학교 수리산은 우리의 심장이며, 생명줄이다. 그런데 그 수리산이 지금 아파하고 몸살을 앓고 있다. 정작 돌봐 주어야 할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수리산은 계곡의 물이 녹으며 흐르는 소리로, 버드나무 겨울눈 터지는 소리로, 생강나무 꽃망울 터지는 소리로 봄이 시작됨을 알린다. 물론 자세히 귀기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현상들이다. 그 중에서도 3월초에 노랑턱멧새가 앙징스러운 모습으로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사랑의 노래를 부르면 어김없이 개암나무의 꽃이 핀다. 연이어 생강나무, 산수유가 노오란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을 알리고, 너무 이른봄에 꽃을 피어야하기에 몸에는 털옷으로 무장을 한 노루귀, 복..

[이병택]안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제언

[이병택]안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제언 [01/01/10 전 안양경실련 초대집행위원장] 이전 홈페이지 자료를 정리하다 작고하신 이병택 님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안양경실련 초대 집행위원장을 역임하시기도 한 이 선생님의 글을 이곳에 올리며 삼가 고인 명복을 빕니다. 안양의 생김새, 문화공간의 미학 - 안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제언 - 이병택 (안양·의왕경실련 공동대표·안양문화원장 역임) 지난 6월 9일 안양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정립하고 체계화하며 더 나아가 안양시의 바람직 한 미래상을 정립하는데 목적을 둔 성결대학교 안양학 연구소가 개설되었다. 이를 계기로 안양의 정체성(identity)을 언제, 어디서부터 찾고 또 무엇을 확립할 것인가 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안양의 생..

암장코스 의왕시 오봉산 병풍바위

[정보통]암장코스 의왕시 오봉산 병풍바위 의왕시청 뒤 병풍암.의왕시청 뒷산(오봉산)에 작은 암장 병풍바위가 있다. 이곳 암장은 수원 맥산회와 적십자 산악안전대 지도자들이 1985~6년에 몇개의 루트를 개척하여 간간히 등반을 해 오던 중 1992~3년 수원 돌비알 산악회에서 추가로 개척을 하여 총12개의 루트가 열여있다. 의왕시청에서 5분이면 암장까지 갈 수 있으며 승용차를 가지고 간다면 의왕시청에 주차(무료)할 수 있다. 암장 앞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가 있으며 공터에서 야영도 가능하다. 의왕시청 바로 뒷산에 자리하고 있어 접근이 편리하여 이지역 클라이머들은 심심치 않게 이곳 암장을 찾는다. 높이18m, 폭30여m쯤 되는 이곳 병풍암은 페이스, 크랙, 오버행 등으로 되어있다. 암질은 검은색과 흰색..

안양출신 시인, 이성환(李星煥) 시비

[볼기행]안양출신 시인, 이성환(李星煥) 시비 안양출신 시인, 이성환(李星煥) 시비 '모닥불'직각 형태의 이성환 시비에 '모닥불'이 새겨져 있다. 시인 이성환(李星煥, 1936-1966)은 안양시 박달동 348에서 출생했다. 중학 시절에 시집 (1951)을, 그리고 고교 재학시에 제2시집 (1954)를 상재한 천부적인 시인이다. 서라벌예대 문창과, 동국대국문과, 경희대학원을 거치는 동안 「현대문학」을 통해등단했다(1956). 그의 시편들은 판화와 같은 간결한 논리로 일관되 어, 단단한 구성과 참신한 시어로 앞날이 크게 촉망되었으나, 졸업후 동대문 상고교사, 제주대 조교수로 있다가 31세에 요절했다. 제3시집 (1971)이 있다. 이성환 시비 등 3권의 시집을 내고 31세에 요절한 이성환과 동명의 시학도가..

안양 石水시장 속 미술관 '스톤앤워터'

[볼기행]안양 石水시장 속 미술관 '스톤앤워터' 안양 石水시장 속 미술관 '스톤앤워터' 고층 아파트 사잇길을 죽 따라가다 보면 시장이 나온다. 시장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사람들은 마트나 백화점으로 쇼핑을 가지만, 재래시장은 여전히 그 곳에 있다. 안양시 만안구 석수2동 석수(石水)시장.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시장이다. 하지만 석수시장은 특이하다. 21평짜리 전시공간 ‘스톤앤워터(Stone&Water)’가 있기 때문이다. 이름 한 번 그럴싸하지만 사실은 석수동의 石(돌)과 水(물)에서 따온 것이다. 왜 하필 시장을 선택했을까? 이 공간을 지키고 있는 박찬응(朴贊應·44)씨는 “청담동 등에 자리잡은 고급화랑은 여느 사람들이 웬만해선 갈 수 없는 곳이고 대안(代案)공간으로 불리는 양평 등지의 ..

국내 첫 '마술소극장' 안양에 탄생

국내 첫 '마술소극장' 안양에 탄생 국내 처음으로 안양에 마술 소극장이 탄생 각기 다른 톡특한 마술을 펼치는 마술 삼남매(황휘, 황휘정, 황휘숙씨) 소극장 규모의 마술극장이 정식 공연장 허가를 받아 지난 2003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안양에 문을 연다. 안양시 만안구 6동 구도로변인 코암호텔 골목에 위치한 마술 소극장에서는 일반인들을 위한 정기공연이 매주 금.토요일 저녁에 열리는 것을 비롯 주중에는 마술 애호가들의 정기모임, 세미나, 초보자공연 등이 펼쳐지며 마술 활성화를 위한 교육도 실시되는 등 마술을 위한 종합 공간으로 운영된다. 이번에 마술 소극장을 개관한 황휘 대표는 올림픽역도경기장 등 국내의 각종 행사에 초대받아 다양한 마술을 선보임으로 주목을 받아왔으며 연예인 초청행사, 자선공연, 어린이 행사..

안양 호계동의 24시 전주 콩나물 해장국

[맛기행]안양 호계동의 24시 전주 콩나물 해장국 24시 전주 콩나물 해장국...넉넉한 인심과 담백한 맛이 일품 국물맛이 시원한 콩나물 해장국-맛으로 인정받는 안양 최고 명소를 꿈꾼다 과음한 다음날 어김없이 찾아오는 속쓰림, 허한 속을 풀어주는 데는 뭐니 해도 해장국 한 그릇이 제격이다.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선호하는 해장국도 가지각색. 그중 콩나물 해장국은 그 시원한 맛 때문에 술꾼들의 속풀이로 가장 많이 선호하는 해장국 중의 하나이다. 콩나물 해장국은 뛰어난 숙취 제거 효과로 해장 음식으로서 뿐만 아니라 다이어트 음식으로 알려져 여성들도 많이 찾는 음식이다. 안양시 호평동 사거리, 담백하고 시원한 맛의 콩나물해장국으로 안양 시민들의 입맛을 잡아끄는 곳이 있다. 바로 24시 전주 콩나물해장국. 2003..

이완용 별장터인 군포 신기마을 정자골

이완용 별장터인 군포 신기마을 정자골 “처음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조선말 이완용 별장터, 빼어난 자연경관 자랑거리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그 마음을 간직하려고 합니다. 재료와 양념을 아끼지 않고 손님을 기만하지 않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장사를 하는 정도(正道) 같아요.” 군포시 당동 신비마을에 위치한 오리황토구이 전문점 ‘정자골’ 허복일 사장의 경영 철학이다. 이곳 ‘정자골’이 위치한 지명 또한 정자가 많은 곳이라는 뜻을 가진 정자골. 조선 말기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세력을 떨쳤던, 매국노 이완용의 별장터라는 이야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모과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주먹나무, 향나무, 밤나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이곳 정자골의 자연 경관은 정말 빼어나다. 특..

역사의 숨결을 찾아 의왕 안자묘(安子廟)

[정보통]역사의 숨결을 찾아 의왕 안자묘(安子廟) 경기도 의왕시 월암동 철도대학 뒤편에는 우리나라에 주자학(朱子學)을 처음 전한 고려시대 유학자 회헌(晦軒) 안향(安珦.1243∼1306년) 선생의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이 있다. 사당은 원래 순흥(順興) 안씨 후손들에 의해 황해도 장산군 신서면 늘목리 대덕산에 설치됐으나 해방과 함께 국토가 남과 북으로 갈리자 선생의 24대 종손 안재찬(安在燦.84)씨가 1947년 남으로 내려오면서 신주를 서울로 모셨다. 안씨는 이어 1977년 의왕시 월암동에 터전을 잡고 현재의 위치에 사당을 지었다. 사당이 들어선 전체 부지 면적은 1천500평으로 입구에 비석이 있고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팔각지붕에 붉은 단청을 한 3칸 한옥이 나타난다. 사당 가운데 처마밑에는 '안..

한양으로 가는 길목 안양 인덕원(仁德院)

[정보통]역사의 숨결-안양 인덕원(仁德院) 인덕원이란 지명으로 유명한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은 예부터 교통 요충지로 인덕원 옛길은 과거 한양에서 한수이남지역을, 영.호남.충청 등 3남 지방에서 한양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곳으로 조선시대 6대 대로(大路)의 하나였다. 인덕원(仁德院)이란 마을 지명은 조선시대 때 내시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내시는 비록 거세된 몸이지만 궁중을 출입하고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는 높은 관직의 신분이었다. 그런데 이 마을에 거주하는 내시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해 '인화를 베푸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의미로 인덕(仁德)이란 명칭이 생겼고 이후 나라에서 공무나 여행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원(院)을 설치하면서 인덕원이라고 부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