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506

[기억-조성원]1960년대 안양과 신작로 길

[조성원의기억속 안양]60년대 안양과 신작로 길 2-1 신작로 길 1 언덕너머에 신작로(新作路) 길이 생겼다. 동네 사람들이 다들 신작로라 불러서 나는 그 길 이름이 신작로인 줄 알고 지냈다. 우리 동네는 신작로 말고도 아래엔 아스팔트로 포장된 국도가 가로질러 있었다. 수원과 서울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해마다 개나리 필 무렵 수원에 모 심으러 박대통령이 행차하는 날엔 우리는 그 길 변에 늘어서 박수를 쳤다. 그때는 그가 수원으로 향한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는데 후일 그가 간 곳은 농촌진흥청이고 권농일이라는 날짜에 맞춰 해마다 그곳을 향했다는 사실도 자연 알게 되었다. 안양에 유명한 갈비 집으로 ‘화진정’이란 곳이 역전에 있었는데 그는 당시 박통이 수원에 오면 으레 들리던 갈비집에 주방장 출신이라고 ..

[기억-조성원]1960년대 그 시절 안양과 복부인

[조성원의 기억속 안양]1960년대 그 시절 안양과 복부인 (그 시절 안양과 복부인) 가는 세월은 이정표 없이 무작정 달리는 기차와도 같다. 창문 틈에 비치는 풍경이 어제와 또 다르다. 가는 속도는 얼마쯤 되는 것일까. 안양을 떠난 지 햇수로 35년이 넘는다. 흘러간 세월만큼 너무도 변한 안양! 동구 밖에 포도밭 고추밭 냇가가 그대로 있는 정감어린 안양도 아닌데 지금도 여전히 애착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내 삶의 깊이만큼이나 골 패인 마음, 어쩌면 고향 땅의 흙냄새, 그 순진함으로서 비로소 치유가 가능하다고 여겨서일지 모른다. 동심의 고향은 엄마의 품속 같고 따스한 정감을 지녔다. 하지만 잡다하다 싶은 작은 기억들은 그림자조차도 너무도 희미해 자꾸 맘속으로만 숨는다. 그러기에 잊을 건 잊혀지고 조용히 살..

[자료]안양지역의 천주교 역사

안양지역의 천주교 역사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1887년에 한불조약이 체결됨으로써 공식적으로 선교가 시작됐다. 이 후 경기도에서도 본격적으로 성당들이 건립되었는데, 1888년에 화성군 '갓등이'(현재의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에 세워진 예배처가 경기도 최초의 성당이다. 일명 '갓등이 성당'이라고 불리던'왕림성당'을 모 본당으로 하여 '미리내성당'(1896년 설립, 경기도 안성)과 '하우현성당'(1900년 설립, 경기도 의왕시)이 차례로 건립됐다. 당시 '하우현성당'을 모 본당으로 하여 안양의 첫 성당인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이 건립됨으로써 명실공히 안양 지역에도 한국 천주교의 계보를 잇게 됐다. 안양지역의 천주교 유례를 보면 '장내동성당'이 건립되기 전에 '하우현성당'에서 관할하던 수리산 공소가 있었던 ..

[자료]경인교대 경기캠퍼스에 읽힌 이야기

경인교대 경기캠퍼스에 읽힌 이야기 경인교육대학교 경기캠퍼스는 경기도로부터 안양시 석수동에 위치한 삼성산 자락의 석산부지6만5천여평(21만9천566㎡)와 시설비 899억원을 지원받아 2003년 12월 착공한 지 2년여만인 2005년 3월1일 개교했으며 전체 학생수는 2천여명에 달한다. 경기도가 학교 부지와 시설비까지 지원하고 나선 이유는 경기도에 교육대학이 없으나 법률상 수도권에 대학교 설립이 불가능하자 경인교대 캠퍼스 유치에 나선 것으로 도는 2001년 '경기교육대학 설립 1천만 서명운동'을 펼치는 등의 노력 끝에 2003년 경기도가 대학 설립예산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정부로부터 경기캠퍼스 설립을 승인받았다. 경기캠퍼스 건축연면적은 51,735㎡(15,650평)로 2003년 12월23일 착공식을 가졌으며 ..

[자료]과천.군포.안양.의왕의 엣 경관 이야기

과천.군포.안양.의왕의 엣 경관 이야기 제1절 토지이용의 변화 한국의 근대화 또는 산업화에 대해서는 인문·사회과학 분야 전반에서 계속 새로운 논점이 제기되고 있으며, 여기에 지역별 접근도 가세되면서 논의가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화 또는 산업화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된 결론이 도출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산업화의 지역적 전개 과정은 서울이나 부산과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시작되어서 그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도 단위에서는 경기도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급격하게 그 변화를 맞이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을 듯하다. 산업화가 진행되면 여러 부문에서 변화가 포착되지만, 지리학의 측면에서는 무엇보다 토지이용의 변화에 주목하게 된다..

[자료]민간 항일운동 포문 연 안양 출신 원태우지사

이토 히로부미에게 돌멩이 던진 원태우의사 대한민국 사람 중에 1909년 중국 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기차역에서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1905년 11월 22일 경기 안양에서 열차를 타고 가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짱돌을 기막히게 날려 부상을 입힌 안양 출신의 원태우 의사와 민간 항일 운동의 효시라 할수 있는 거사의 현장에 대해서는 모르는 이들이 많다. 1905년은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비운의 해이다. 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는 11월 17일 조약 체결을 한 후 5일후인 22일 일본측 조약담당자였던 하야시 곤스케 공사를 대동하고 수원에서 사냥을 한 후 안양을 거쳐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고 ..

[기록]22명의 여성노동자가 숨진 안양 '그린힐' 화재

22명의 여성노동자가 화재로 숨진 그린힐 봉제공장 1988년 3월 25일 안양시 비산1동 그린힐 봉제공장(비산종합상가 빌딩 3층)에서 화재가 났다. 일에 지쳐 기숙사에서 곤히 잠을 자던 소녀 스물 두 명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간 비국적인 사건이었다. 화재 원인은 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불법 기숙사 운영과 무허가 공장을 숨기기 위해 출입문에 쌓아놓은 제품이 인화성 물질 역할을 했다. 하나밖에 없는 출입문에는 철재 셔터로 닫혀있고, 지상으로 연결된 화장실 창문에는 쇠창살이 달려있어 불 속에서 소녀들은 살기 위해 화장실에서 몸부림치다가 켜켜이 쌓여 타 죽고 만다. 당시 여성 노동자 28명중 22명이 화재로 사망했다. 이 여성 노동자들은 3.7평의 방에서 5~8명씩 새우잠을 자면서 이을 했는데 폭력배들이 들어올지..

[자료]안양의 역사와 각 동 지명유래(2)

안양의 역사와 각 동 지명유래(2) ■수푸루지(林谷洞, 林川) 비산사거리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 이곳은 조선조 인조 때 좌의정을 역임한 심기원(沈器遠 ?∼1644)이 그의 부친인 심간(沈諫. 1560∼1624. 청풍군수 역임)이 죽자 이 마을 뒷산에 예장한 후 그의 후손인 청송 심씨가 묘하에 세거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그 뒤 수원 백씨, 고령 박씨, 곡부 박씨, 전주 이씨, 안동 김씨 등이 살기 시작하였다. 이 마을은 깊은 골짜기에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인 고을이라 하여 ‘수푸루지(林谷洞)’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또 마을 앞으로 큰 하천(안양천, 임곡천)이 흐른다 하여 ‘수풀내(林川)’라 부르기도 하였다. 수푸루지는 1978년 대림대학(비산동 526번지의 7호)이 건립되고, 이어 비산동 신시가지가 형성되면..

[자료]안양의 역사와 각 동 지명유래(1)

안양의 역사 및 각 동 지명유래(1) ●역사 문헌상에 등장하는 안양의 역사는 율목군이라는 행정명칭이 있으나 이전의 원삼국시대와 선사시대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1989년 평촌지역 문화유적 조사시 석기시대의 각종 유물과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가 발견되어 안양지역의 오래된 주거근거를 알수가 있으며 청동기시대를 거쳐 원삼국시대에는 마한의 영토에서, 백제 근초고왕(346-375)때에 백제의 영토가 되었다가 고구려 장수왕(394-491)때 한강연안 및 경기도 전지역이 고구려 남쪽의 영토가 되었다. ●지명유래 안양(安養)이란 명칭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安養寺)에서 유래되었다. 신라 효공왕 4년(900)에 궁예의 후예인 왕건이 금주(시흥)와 과주(과천)등의 지역을 징벌하기 위해 삼성산을 지나게 되..

[자료]안양의 역사와 문화유산 해설

안양의 역사와 문화유산 해설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안양은 예로부터 산좋고 물좋고 인심좋아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정토 안양이라 일컬어져 왔으며, 북쪽으로는 수도 서울과 인접해 있고 동으로는 과천, 의왕, 남서쪽으로는 안산, 군포, 서쪽으로는 광명, 시흥등이 접하고 있어 오랜동안 7개 도시를 잇는 중핵도시로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김포 국제공항과는 1시간 거리에 있으며, 한국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경부고속도로와는 10분대 거리, 서해안 시도와 더불어 경인 고속도로는 우리 안양 북단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한국 놀이 문화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서울 대공원과는 10분 거리이며, 용인 에버랜드와 민속촌은 40분 거리, 예술의 전당과 서울 잠실 운동장과는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안양의 CD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