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그러니까 국민학교 저학년 때...
방학이 시작되면 외가댁으로 보내졌다.
외사촌형들이 귀여워해서 새도 잡아 구어 주기도 하고 나이 차이가 적은 이종사촌과 이곳 저곳 들쑤시고 다니기도 했고
동네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과 쏘다니며 노는 것도 즐거웠다.
큰댁 작은댁은 제법 잘 살아도 우리는 늘 쪼들렸고 외가와 이모님댁도 제법 잘살았지만 우리집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았다.
물론 상대적으로... 범고개나 가학리 쪽에 사는 친구들도 다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방학만 되면 나는 외가로 이모님댁으로 보내졌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방관하는 시멘트 일을 하셨다.
하여간 즐겁게 놀다 보면 한두달이 훌쩍 지나갔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가 되면 어머니께서 날 데리러 목천 외가로 오셔서 함께 기차를 타고 돌아 왔다.
철컹철컹 흔들리는 기차를 몇시간씩 타고 올라오면서 점점 불안감이 커져 갔고 군포를 지나면서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면 그 공포와 불안은 극도로 치솟았다.
노느라 방학숙제가 밀린 것이었고 일기장도 앞에 며칠 쓰고는 텅 비어 있었기에 이제 집에 도착하면 혼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하루이틀 사이에 다 해야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먼지가 날리던 안양역에서 내려 내가 들 수 있는 가방과 보따리를 들고 앞서 가시는 어머니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범고개 집에 다다르면 ...
일단 그날은 조용히 넘어 간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고난의 시작이다.
회초리로 일단 종아리부터 몇대 맞고
밀린 일기를 대충 기억을 되살려 쓰고
밀린 방학숙제를 하고
밀린 미술숙제를 한다.
한달 보름동안 해야할 일을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내기 위해서 흐릿한 전등불 아래 밤늦게까지 ...
환갑 나이가 되니 지금 느낌이 딱 그 무렵 방학 끝나기 직전 집에 도착했을 때 그 순간 같다.
지금까지 해 놓은 것도 없고 금방 결과가 나올만한 것도 아무것도 없다. 그저 환갑이라고 여기저기서 축하는 받는데 그게 끝나면 곧바로 밀린 숙제에 들어가야 하는 그런 순간... 태풍전야와도 같은... 그런 느낌.
막상 닥치면 뭔가 되겠지 하다가도 느닷없이 드는 막연한 불안감...
얼른 이 시기가 지나면 좋겠다.
단념하는 법도 더 능숙해질 거고
불안과 공포에도 익숙해 지지 않을까...
글쓴이 임희택(맑은한울)님은
안양시 박달동 범고개에서 태어난 1963년생 안양토박이로 안서초, 안양동중(신성중), 신성고, 한양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 대표 등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맑은한울 별칭의 논객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며 사회복지사로, 맑고 밝고 온누리를 추구하는 자칭 진정한 보수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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