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552

[기억-황영화]내고향 안양 '양지말'

[황영화]내고향 안양 '양지말' 우리집은 안양공고옆 남향으로 있는 아담한 한옥집이었다. 국민학교 1학년때 아버지와 먼 외삼촌 되시는 분이 직접지으시고 상량식때 높다란 너까래에 아버지께서 붓으로 글을 써 넣으셨다. 대문도 기와로 덮은 작은 나무문이었고 담따라 장미넝쿨이 예뻤고 장독대옆으론 포도나무가 있어 여름에 늘 시원한 그늘을 선사했었을 뿐더러 마당엔 펌프가 있어 누나나 엄니가 시원하게 찬물로 등목을 시켜 주곤했다. 마루 뒷문을 열면 김대영이네 앞마당이 그대로 나왔고 뒷동네엔 김재록, 원명희, 박일권, 최우광 등이 앞동네엔 이원재, 김선규 등이 살았다. 뒷동네애들과는 대농뒷산에서 해 저물도록 공차고 늦게 들어와 야단을 들어야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약삭골, 지금 서 초등학교 자리 논에 물을 대서 겨울엔 솔..

[자료]전국 최초의 코하우징 주택 '아카데미 테마타운'

코하우징(Co-Housing)을 아십니까? 2000년대 초부터 미디어를 통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해 수년전에는 광고에도 나오는 이른바 ‘땅콩 집’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형태의 공동체 주택을 말한다. 개인들의 독립된 생활 공간은 갖춰져 있지만 함께 사는 이웃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치며 생활할 수 있는 공동 공간을 설치해 이웃과 소통하기 쉬운 집이다. 경기 안양시 박달동에는 1992년에 건립한 전국 최초의 코하우징(Cohousing) 주택 단지인 '아카데미 테마타운'이 있다. 이 단지는 11동의 건물과 88세대, 분양면적은 17평에서 37평까지 다양하며 신축 당시 1동의 지하에는 놀이방, 7동 지하에는 공동 아카데미룸, 9동 지하에는 공동 문화체육시설 등 적극적인 공동생활시설을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

[옛신문]삼막사 청기와 훔쳐갔던 일본인 교장(매일신보 1934.09.15)

삼막사 청기와 훔쳐갔던 일본인 교장 이야기 삼막사(三幕寺)의 청와(靑瓦), 교장(校長)에 치의(致疑) 절에서는 도적 맞았다 하고 본전씨(本田氏) 주장(主張)은 달라 1934년 9월 5일자 [영등포(永登浦)] 교육자의 인격향상을 절규하는 이때 주임대우의 학교장이 절도피의자로 취조를 받는 기괴한 사실이 있다. 영등포공립고등학교(영등포공립고등학교) 본전항조(本田恒助)시와 영등포읍 고려자기제조업 황인춘(黃仁春)씨, 산업기수 임구남(林久男) 3씨는 지난 7월 하순경에 고려자기 원료점토를 구하려 관악에를 갔다가 삼막사(삼막사)에 가서 점심을 먹을 때 그 절 망해루(望海樓) 지붕에 있는 청개와(靑瓦, 청기와)를 보고 그 절에 있는 9세 된 지어성(池○成)이라는 어린이를 시켜 그 절 기와를 벗겨내려 잠시 가져갔다가 다..

[자료]신증동국여지승람 제10권/ 경기 금천현(衿川縣)

【신증동국여지승람】제10권 / 경기도(京畿道)/ 금천현(衿川縣) 동쪽으로 과천현 경계까지 11리이고, 남쪽으로 안산군 경계까지 16리이며, 서쪽으로 부평부 경계까지 17리이고, 북쪽으로 양천현 경계까지는 27리이며 노량까지는 23리인데 서울과의 거리는 31리이다. 건치연혁 본디 고구려 잉벌노현(仍伐奴縣)인데 신라 경덕왕이 곡양(穀壤)으로 고쳐 율진군(栗津郡) 속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금주(衿州) -금을 금(黔)이라 한 곳도 있다. 로 고쳤고, 성종(成宗)이 단련사(團練使)를 두넊믐는데, 목종(穆宗)이 없앴다. 현종 9년에 수주(樹州)에 예속시켰고 명종이 비로소 감무를 두었다. 본조 태종 14년에 과천과 합쳐 금과현(衿果縣)을 만들었다가 두어 달만에 도로 돌리고, 또 양천과 합쳐 금양현(衿陽縣)으로 ..

[기억-최태술]안양과 設農湯(설농탕)

안양과 설렁탕 안양에는 유명한 설렁탕집이 있었다. 이름하여 경민식당이다. 70~80세 정도의 어르신 좀더 내려온다면 60대의 안양토박이들은 거의 안다. 안양역 구 도로변에 있는 식당에서 가마솥을 걸고 24시간 끓여 진하고 뒷맛까지 깔끔한 그 맛을 잊지 못하는 분들이 지금도 경민식당 설렁탕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유래는 이러하다. 안양 동안구 평촌에는 귀인동이 있다. 이 동 이름이 글자 그대로 귀인(貴人)들이 살던 곳이어서 귀인동이다. 이곳에 살던 귀인이란 宮中에서 宮人으로 생활하다 퇴역하신 분들이다. 또 지금의 수촌 뒤 내씨들이 살았다. 두 곳 다 퇴역한 궁인들이 생활하면서 궁중에서 하던 설렁탕을 끓여 당시 한양으로 오가는 길손에게 팔기 시작한 것이 안양 설렁탕이 유명해진 발단이라 한다. ..

[기억-조기찬]1970년대 초 안양읍내 이야기

[조기찬]1970년대 초 안양읍내 이야기 지금이야 전국 어느 곳의 어떤 도로라도 잘 포장되어 있고 저 시골구석의 차량은 물론이고 리어커도 잘 다니지 않는 길도 모두들 잘 포장이 되어있어 마음만 먹으면 하루종일 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 돌아 다닐 수 있지만 60년대 말 70년대의 초 우리나라 도로포장 상태는 서울의 사대문 안과 중요한 국도와 간선도로만이 포장 되어있을 정도라서 그밖의 도로는 도로상태가 엉망이어서 차량이 지나가면 맑은 날에는 흙먼지가 날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웅덩이에 고인 물로 지나가는 차량에 의해 흙탕물을 뒤집어 쓰는 것이 예사인 그런 시절이었다. 70년대 초반시절 서울과 수원을 이어 연결하고 서울의 외곽을 형성하며 폭발적인 발전을 앞두고 있던 안양은 아직까지는 시로 승격을 하지는 못했지만 ..

[자료]안양에 잠시 머물렀던 우리나라 최초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인 정월(晶月) 나혜석(1896~1948).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 여권운동가, 문필가 등으로 활동하며 불꽃처럼 살다간 비운의 선각자인 그가 죽기 직전의 말년을 안양 경성기독보육원 양로원에서 보낸 시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안양에서의 삶을 찾아보기 전전에 우선 나혜석은 누구인가 알아본다. 나혜석은 1896년 경기 수원시 신풍동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친 나기정은 대한제국 때 경기도 관찰부 재판주사, 시흥군수를 지냈으며 일제 때는 용인군수를 지냈다. 1913년 진명여자보통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둘째 오빠 나경석의 권유로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유화과에 입학, 화가로서의 공부를 시작했다. 1914년 일본 유학생 동인지 에 '이상적 부인'이라는 ..

[자료]바위에 새겨진 천년의 울림 마애종

1천년 전 한 이름없는 석공이 거대한 암벽에 종을 치는 스님을 새겨 넣으면서 꿈꿨던 安養世界, 마애종 속 스님이 종을 치며 간절히 소망했던 '오로지 기쁨과 평화만이 있든 세상'. 천년 세월 잠자고 있던 마애종을 다시금 깨워 종을 울릴 수 있을까. 2008년 11월 12일 오후 2시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안양 마애종의 학술적·예술적 가치와 국가문화재 승격'을 주제로 개최된 '제3회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에서 문화재 전문가들은 "국내에 유일한 마애종이 국가문화재로 승격돼야 마땅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군포의왕지부(회장 임종순)와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위원장 황평우)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포럼에 참여한 8명의 문화재 전문가들은 발제와 토론을 통해 "국내 유일의 마애종..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3)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3)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화장실 뒷쪽의 자그마한 길옆 암벽에 기와를 얹은 보호각 하나가 있다. 그 안에는 범종 하나가 조각돼 있는데 경기도유형문화재92호로 지정된 마애종(磨崖鐘, 만안구 석수동 산32)이다. 마애종의 역사성과 지역공동체 엄기표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전임연구원 1. 머리말 안양에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늦어도 청동기시대에는 하천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다. 이후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중앙정부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는 불교가 폭넓게 성행한 시대였으므로 불교문화가 이러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당간지주와 石塔(석탑)이 남아있는 중초사지, 석조부도와 귀부 등이 남..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2)

[자료]안양 마애종 연구 자료 모음(2)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화장실 뒷쪽의 자그마한 길옆 암벽에 기와를 얹은 보호각 하나가 있다. 그 안에는 범종 하나가 조각돼 있는데 경기도유형문화재92호로 지정된 마애종(磨崖鐘, 만안구 석수동 산32)이다. 마애종/안양의 역사성과 마애종의 문화적 가치 엄기표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2005년 「제2회 安養世界 마애종 문화포럼」의 발제문입니다. Ⅰ. 머리말Ⅱ. 안양의 역사와 불가의 안양세계Ⅲ. 마애종의 양식과 조성 시기Ⅳ. 마애종이 갖는 과거와 현재의 의미Ⅴ. 맺음말 국문요약 안양 석수동 마애종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안양 지역에서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던 중초사지(中初寺址)와 安養寺가 위치한 지점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지역적으로 중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