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627

[20221210]1919년 3월 29일 서이면 안양리 삼일운동 만세시위 기록

2022.12.10/ #역사 #기록 #삼일운동 #안양 #안양리 #만세시위 국사편찬위원회의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한 결과 1919년 3월29일 京畿道 始興郡 西二面 安養里_시흥군 서이면 안양리(현 안양역앞)와 京畿道 始興郡 東面 安養里_시흥군 동면 안양리(현 석수동 삼막골)에서 삼일운동 만세시위가 전개된 사실이 드러났다.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의 [3월 29일 경기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 만세시위] 제목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3월 29일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와 동면 안양리에서 약 300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일본 경찰이 작성해 조선총둑부와 일본 육군성에 보고한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 문건에 기록된 내용이다. 기록을 보면 동면 안양리와 서이면 안양리 2곳에서 진행된 시위..

[20221210]1919년 3월29일 안양 박달리 삼일운동 만세시위 기록

2022.12.10/ #역사 #기록 #삼일운동 #안양 #박달동 #만세시위 국사편찬위원회의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한 결과 1919년 3월29일 안양 박달동에서도 삼일운동 만세시위가 전개된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의 [3월 29일 경기 시흥군 서면 박달리 만세시위] 제목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3월 29일 시흥군 서면 박달리에서 약 80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일본 경찰이 작성해 조선총둑부와 일본 육군성에 보고한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 문건에 기록된 내용이다.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관련해 일본 육군성이 발·수신한 문서로서 약 13,000면의 분량이며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기상으로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3월 ..

[20221210]1940년대 안양 시대상 기록한 채만식 '안양복거기' 전문

소설 『탁류(濁流)』로 유명한 채만식의 수필 ‘안양복거기’에는 1940년대 안양의 모습이 세밀하게 담겨져 있다. 저작권 보호만료로  전문이 공개된 안양복거기를 통해 과거 안양속으로 들어가볼까 한다.  이 ‘안양복거기’ 전문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것이 문학작품이어서가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 특히 안양과 관련된 생활사 연구의 자료적 가치와 더불어 문화 유산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채민식은 1940년에 인천 송도에서 ‘양지말’(현 안양 3동)로 이사를 와 작품활동을 하다가 1946년에 낙향(이리)하여 4년간의 폐결핵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안양복거기’는 그가 새롭게 삶의 터전으로 삼게 된 ‘안양의 인상기’라 할 수 있는데, 아주 긴 편지 형식의 글로 매일신보에 연재한바 있다.‘P형’에게 보내는 ..

[20221121]2021년 안양천 생태모니터링 자료(안양군포의왕환경련)

안양군포의왕환경운동연합에서 2021년 안양천 생태모니터링 보고서 ‘안양천을 걸어요’ 책자와 모바일용 전자책을 발간했습니다. 1990년대 오염된 하천으로 알려진 안양천을 살리려고 1999년에 인근 지자체와 시민단체들이 모여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식물과 곤충, 새, 물고기 등 다양한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자연형 하천으로 변화했습니다. 깨끗해진 안양천이 되어 흐른 지 2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안양천은 도시의 녹지공간으로, 생태통로로, 또한 시민들에게는 충분한 휴식처로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종 시설물의 설치, 하천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 기후변화에 의한 생물종의 변화가 있어 모니터링의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안양군포의왕환경운동연합은 안양천이 흐르는 상류와 중류 그리..

[20221117]안양6동 옛 검역원 정원에 있던 축혼비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중앙로변에 자리했던 농림축산검역본부. 안양지역민들에게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란 명칭으로 더 친숙한 곳으로 지금은 안양시 땅이지만 시가 어떤 공간으로 활용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아 빈 공간이다. 이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건물의 앞마당 화단에 세워져 있던 축혼비(농림축산검역본부가 김천으로 이전하면서 가져갔다) 부터 이해해야 한다. “열 목숨 얻기 위해 한 목숨 바친 그대 희생 빛내리. 넋이여 고히 잠드소서. 1969년 10월 20일” 인간의 안전한 식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동물을 대상으로 갖가지 실험을 한다. 결국 이 동물들의 생명을 끊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 시설에서 희생된 동물들의 넋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매년 제사를 지낸다. 꽃 피는 철에는 붉은꽃으로 에워싸이는 화단은 어찌..

[옛신문]제1회 안양 밤줍기대회 참관 후기(1933.10.04 동아일보)

#기록 #옛신문 #안양 #습률대회 #밤줍기대회/ 1933년 10월 4일자 동아일보에 게제된 제1회 전국 부녀자밤줍기대회(습률대회)의 참관 후기. 일제강점기 이전 안양 담안(4동)과 율목동(3.9동)은 밤나무밭으로 1933년과 1934년에는 동아일보사와 그 자매지인 신가정(현재의 여성동아 전신) 주최로 전국부녀자 밤줍기대회가 열릴만큼 밤의 명산지로 유 명했다. 당시 동아일보에 보도된 밤줍기대회 관련기사 중 그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아래 글은 습률대회에 다녀온 기자가 쓴 참관 후기로 보인다. 금물결 치는가을들에 전개된 호화판 제1회 습률대회 후기-k생 동아일보 | 1933.10.04 기사텍스트) 새벽 하늘에 별이 채 살아지지도 않은 듯 싶은 기차가 떠나려면 아직도 한시간 반은 있어야 되는때부터 용산역은..

[옛신문]경향신문 지령10000호 특집 '강산만리' 안양편(1979.03.14)

2022.11.12/ #옛신문 #아카이브 #자료/ 경향신문 지령10000호특집 江山萬里(강산만리) 1979.03.14 기사 칼럼/논단) 안양고향) 따라 靑(정따라 토박이 에세이 포도알 애향심은 아득한 「淨土(정토)」..."내일의 繁榮(번영) "힘차게 公害 공해없는 衛星工業(위성 공업) 도시로 새面(면모) "地域(지역) 발전"에 강한 紐帶(유대) (과천) (반월) 光( 광)업 고 더욱 活(활기) 肥(비옥한 타원 (분지) 나의 고향은 급행열차가 서지 않는 곳 친구야 놀러오려거든 3등객차를 타고 오렴. 鄕土(향토)의 토박이 K시인은 安養(안양)을 이렇게 노래했다. 서민적이고 전원적인 흙의 냄새를 담뿍 담고있는 이 시의 安(안양)은 원래가 佛敎(불교)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지니고 몸을 쉬게 하는」極樂土(극락정토..

[옛신문]22명 생명 앗아가 안양 그린힐 화재(1988.03.25)

2022.11.06/ #기록 #옛신문 #안양 #그린힐화재/ 안양에서 발생한 아품의 사고중 하나. 22명의 여성노동자가 화재로 숨진 그린힐 봉제공장 사고 1988년 3월 25일 안양시 비산1동 그린힐 봉제공장(비산종합상가 빌딩 3층. 현 비산이마트 건너 에비뉴빌딩 자리)에서 화재가 났다. 일에 지쳐 기숙사에서 곤히 잠을 자던 소녀 스물 두 명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간 비국적인 사건이었다. 화재 원인은 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불법 기숙사 운영과 무허가 공장을 숨기기 위해 출입문에 쌓아놓은 제품이 인화성 물질 역할을 했다. 하나밖에 없는 출입문에는 철재 셔터로 닫혀있고, 지상으로 연결된 화장실 창문에는 쇠창살이 달려있어 불 속에서 소녀들은 살기 위해 화장실에서 몸부림치다가 켜켜이 쌓여 타 죽고 만다.당시 여성 ..

[최병렬]기록으로 안양천 톺아보기-PDF파일(2022.11.06)

2022.10.04/ #안양천 #문화도시 #안양문화예재단/ 안양문화예술재단이 안양의 문화도시 사업으로 ‘내가 만들고 가꾸는 PLAY CITY’를 실현하기 위해 마련한 ‘안양천, 요즘 어때요?’ ‘안양천, 요즘 어때요?’는 안양천 유역 생태계와 역사-문화를 함께 알아보고 시민 개개인의 경험을 공유하며 안양천의 놀이 문화 조성을 함께 모색하는 활동으로 총 7회에 걸쳐 ▶안양천의 역사와 문화 ▶수변문화 활성화 사례 공유특강 ▶안양천의 다양한 활동조사 발표 ▶활동 제안 워크숍 등 교육과 라운드 테이블 형식으로 진행했다. 그중 안양천 톺아보기는 안양천의 약사와 문화 등 이해를 돕기위해 지난 10월 4일 실시한 한 강의로 PPT내용을 PDF로 변환한 자료다.

[옛신문]안양 유유공장 화재(1996.04.19)

2022.11.06/ #기록 #기억 #화재 #유유산업 #옛신문 #옛사진/ 사진 제공: 안양소방서에 근무했던 김종철 소방관. 사진속 화재가 발생한 장소는 현재의 특별기획전시관이있던 곳이다. 1996년 4월 29일 오후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모기약제조업체인 유유후마킬라㈜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불은 창고안에 있던 18억9천7백여만원 상당의 분무식 모기약 완제품과 기계류, 창고건물 3채를 모두 태운 뒤 인근 1백40평규모의 비닐하우스로된 화원(주인김태종) 2채와 김씨의 승합차로 옮겨 붙어 1천3백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내 전체 재산피해액은 19억1천여만원(경찰추정)에 달하는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불로 이 회사 생산부장 신순성씨(54) 등 직원 2명과 이명숙양(17) 등 인근 지역주민 6명, 안양소방서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