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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4]안양천 옛이름 大川(대천) 수록 신중동국여지승람

2025.03.15/ ##아카이브 #고문서 #대촌 #안양천 #신중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에 기록된 안양천의 엣 지명 대천(大川)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대천(大川)이 금천현의 읍치(邑治)에서 서쪽으로 5리(里)에 있다. 과천현(果川縣)의 관악(冠岳) 청계(淸溪) 등 여러 산에서 발원하여 나와 북쪽으로 흘러 양천현(陽川縣)의 철곶포(鐵串浦)로 들어간다.  당시 금천현 구간을 대천이라 기록한 것인데, 금천현에서 가장 큰 하천이란 뜻으로 보통 순 우리말 '한내'에 대한 한자표기로 많은 고을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양천현의 안양천 구간을 철곶포라 불렀음도 알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포구나 갯가의 특수한 지형을 하천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20250315]사라진 지역사를 분석한 <시흥의 열두딸들> 글

서울시 영등포, 구로, 관악, 동작, 서초, 금천 6구와 경기도 안양, 광명, 안산, 과천, 군포, 시흥 6시가 한때는 시흥군이라는 하나의 지역이었다. 시흥군이 근현대 격변의 역사를 거치며 열두 딸 지자체들로 다시 태어난 결과, 조선시대 시흥군의 중심지였던 시흥동은 지금 시흥시가 아니라 금천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왜 시흥군은 열두 딸들로 조각조각 나뉘었을까? 시흥군에서 서울과 경기 서남부의 도시들이 태어나는 과정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글쓴이는 기업 연구직에 종사하며 역사, 지리, 문자, 클래식 등 잡학 지식에 관심이 많은 회사원인 이원규님. 사라지고 잊혀지고 왜곡돼 가는 시흥군 지역사에 대해 자세한 조사와 분석과 연구에 감탄과 감사와 더불어 박수를 보낸다. https://brunch.co.kr/brunc..

[20250314]안양 박달동골목 가성비 좋은 <태원정육식당>

2024.03.12/ #동네맛집 #안양 #박달동 #골목 #정육식당 #태원정육식당/  안양 박달동의 태원정육식당은 2014년 부터 2024년까지 블루리본을 무려 11차례나 받은 인증된 맛집이다. 식당은 안양 박달1동행정복지센터 옆 골목에 위치해 있는데 투++의 맛나고 가성비 좋은 한우를 먹기위헤 멀리서 손님들이 찾아온다. 동네 깊숙한 골목의 자그마한 고기집에 웨이팅이 있다니 놀라운 집이다.고기류는 국내산 한우와 한돈만 취급한다. 살치살, 갈비살, 안심, 등심, 특수모듬, 육회, 삼겹살과 된장찌개, 한우 육회비빔밥이 있다. 주류는 소주, 맥주 다 있는데 소주가 4,000원으로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기본 상차림으로 쌈채소, 배추김치, 얼갈이무침, 부추무침, 마늘, 쌈장, 소금 등이 기본메뉴들로 나오는..

[20250314]안양시민들, 경부선 철도 지하화 촉구 궐기대회

2025.03.13/ #행사 #안양역광장 #시민궐기대회/  경부선 지하화 촉구 시민대회.‘경부선 지하화 안양 추진위원회’(위원장 김의중)가 13일 오후 5시 안양역 광장에서 철도 지하화 촉구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대호 안양시장과 박준모 안양시의장을 비롯 경기도의원, 안양시의원 및 추진위원회와 시민 400여명이 참석해 경부선 철도 지하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정부의 종합계획 반영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참석자들은 저마다 ‘포기하지 않겠다’ ‘안양의 미래를 여는 길’‘선택이 아니라 필수’ 등의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손팻말을 들고 연신 "경부선 지하화"를 외치며 숙원 사업인 안양 지역을 통과하는 경부선 철도 지하화 사업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20250313]안양8동 명학마을 골목과 굴다리 & 메트로병원 주변

2025.03.13/ #도시기록 #안양8동 #명학마을 #동네 #골목 #명학철도길 #토끼굴 #수도권외곽순환도로 #명학마을 #교각 #시설물/ 안양8동 명학마을의 저녁-밤 풍경. 골목이 있고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는 동네. 마을 한복판에 훙물같은 거대하고 높다란 콘크리트 교각과 제1수도권외곽순환도로가 지나가는 곳. 경부선 철길 아래를 통과하는 토끼굴이 있는곳 토끼굴(안양8동 지하보도) 이야기 안양에서 수원을 연결하는 옛1번국도(현 만안로-엘에스로) 위너스골프장앞에서 경부선철길 밑으로 안양로(미도아파트.메트로병원버스정류장)를 연결하는 명학철도길로 예전에는 명학마을 토끼굴이라 불렀다. 1970년대 토끼굴이 지나는 철길과 1번국도 양 옆은 논과 밭들뿐이었다. 현재의 미도아파트 근처에는 목장과 배밭도 있었다. 지금..

[20250312]지난 42년동안 국민과 함께 기록한 기상기후

기상청이 주최한 제42회 기상기후 사진·영상 공모전에서  지리산 위로 '물기둥'이 솟은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 대상에 선정되는 등 수상작 40점을 12일 발표했다.이번 공모전은 일상 속 다양한 기상현상을 국민이 직접 기록함으로써, 기상 및 기후변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오늘의 기록, 내일을 바꾼다’라는 주제 아래 마련한 것으로 기상·기후 현상,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등으로 이를 기록한 사진 또는 영상을 온라인으로 접수했다.1984년 시작돼 지난 42년간 대한민국의 사계절을 기록해 온 기상기후 사진·영상 공모전엔 지난 1월14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사진 3394점, 영상 115점 등 총 3509점의 작품이 접수됐다.이중 전문 심사위원단의 1·2차 평가를 거쳐 사진 부문 37점, 영상 부문 3..

[20250312]안양 대교보신탕집, 폭발사고로 전국에 유명

2025.03.11/ #신문 #기사 #역사 #안양 #대교보신탕 #모수차이/ 1981년 가스폭발사고 안양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을 꼽으라면 어디를 지목할까. 안양사람뿐 아니라 타지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곳이 바로 안양 대교보신탕이 아닐까. 1969년에 문을 열었으니 55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우숫개 소리로 까스 폭발사고 이후 안양뿐 아니라 전국에서 대교보신탕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가 됐다.대부분의 보신탕집들은 허름하거나 산골, 골짜기, 유원지의 주막 분위기인 것과 달리 대교보신탕은 우선 규모 부터가 다르다. 위치야 예전 안양천변 그 자리에 있지만 15평 규모였던 식당은 전국 최대 규모의 초대형 보신 전용회관으로 변모했다.자고로 동사나 명사는 말할 것도 형용사 문장에도 ‘개’라는 한 글자면 같다 붙이면 요상..

[20250312]모니터링보고서-수암천과 수리산 이야기

인류의 역사는 하천을 따라 형성되고 발전해 왔다. 안양의 역사와 문화 역시 안양천이 있기에 가능했고, 안양천의 갈래갈래 작은 물줄기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들고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사는 마을이 만들어졌다. 안양의 젖줄인 안양천은 한때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오염이 심각한 하천이었지만, 시와 시민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생명력 넘치는 하천이 됐다. 안양천은 본류 이외에도 수암천 삼봉천, 갈월천 등 많은 지천의 물이 모아져 큰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다.늘푸른안양21에서는 2013년 기획사업으로 수암천 모니터링을 계획하게 됐다. 많은 지천 가운데 우리가 수암천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그동안 복개천이었다가 올해 복원이 완료됐기 때문이다. 수암천은 수리산에서 발원해 안양 원도심을 관통하면서 안양천 본류와 만나는 ..

[20250312]안양시민, 경부선 철도 지하화 추진 궐기대회 연다

경부선 철도 지하화를 촉구하는 시민궐기대회가 오는 13일 오후 5시 안양역 광장에서 열린다.‘경부선 철도 지하화 안양 추진위원회(위원장 김의중)가 주관하는 이날 행사에서는 소음, 분진 등으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는 경부선을 지하화 해달라는 성명서가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철도 지하화 선도사업 대상구간으로 경기 안산시와 대전, 부산을 선정한 바 있다. 2012년부터 철도 지하화 사업을 추진해 온 안양시가 미선정되면서, 최대호 안양시장과 안양시의회는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경부선 철도 지하화 당위성을 피력했다. 여기에 시민들까지 동참하면서 ‘안양시 경부선 철도 지하화’의 관심이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김의중 추진위원장은 “안양의 경부선 철도 지하화는 도시개발의 문제이기 전에, 주민 생활, ..

[20250311]안양 출신 독립운동가 하영홍과 삼막골교회

기독교인항일투사. 본관은 진주(晋州) ​시흥현 군내면 안양리 263(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삼막골에서 출생하여 21세 때(1900년) 안양시 석수동 지역에서는 최초로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고, 이듬해 감리교회 지도자교육반을 수료한 후, 삼막골 마을을 그리스도의 마을로 만들기 위해 전도하였다. 이어 전답을 판 돈 180원으로 초가 3간 규모의 삼막골교회를 세워 이 교회의 속장이 되어 광무 5년(1901) 8월 6일 스웨어러(미국인) 선교사와 존스 장로사(현 감리사와 비슷한 직 책)와 각회 교회 형제·자매 70여명이 봉헌예배를 올렸다. 그 후 가세의 빈곤으로 짚신을 팔아 생활하던 중 25세가 되던 광무 8년(1904)9월 14일(음력 8월 5일) 하오 3시 시흥현 내의 한천교(현 광명시 입구의 안양천)에서..